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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16화 (21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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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언제나 태양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인적인 뜨거움을 자랑하며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그 전에는 그래도 간간히 공급되던 전기가 끊어졌고 발전기를 이용해 전자제품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공급되는 연료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 치직.. 박 중사?"

" 치직.. 왜?"

나는 무전으로 박 중사를 찾았고 바로 응답을 해왔다.

" 치직.. 우리 연료 더 안주냐?"

" 치직.. 지금 우리도 없는데.."

" 치직.. 그럼 부대장에게 물어보면 되나?"

" 치직.. 글쎄.."

박 중사 일행도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해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탄약이고 식량이고 생필품이고 모든 물품이 지급되는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깜깜 무소식이 되었다. 나는 기태와 함께 부대장이 있는 부대로 찾아 들어갔다. 군용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부대는 그래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방어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봐야 감염 비둘기가 오면 전부 털려버릴 상황이지만.

" 무슨 일이십니까?"

" 부대장을 만나러 왔다."

"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대려 주십시오."

초면에 내가 반말을 하자 상당히 기분이 나쁜지 인상을 찌푸리며 초병이 말을 했다. 초병은 몇 번의 무전을 주고받고는 이내 우리보고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길을 안내했다. 확실히 이들은 무척이나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굳이 주변에 건물도 많은데 여기다 이런 부대를 배치해서 불편하게 생활을 하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얼마 걷지 않아 24인용 텐트 중 하나로 안내가 되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습하고 더운 기운이 확 뿜어져 나왔다.

" 무슨 일이십니까?"

" 뭐.. 저희에게 보급되던 물품들이 안와서요."

" 어떤 것 말입니까?"

부대장은 우리를 처다 보지도 않고 말을 했다. 책상에 앉아 뭔가를 계속 쓰고 보고면서 말이다.

" 식량과 무기. 탄약. 연료입니다."

" 식량은 현재 저희도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와 탄약.

연료는 앞으로 보급을 중지하겠다고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 흠.. 그런가요?"

기태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고 나도 계속 듣고 있다가 부대장에게 물었다.

" 그럼 최소한 이런 상황이니 보급이 늦어지니 기다려 달란 말 정도는 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 죄송하군요. 지금 보시다시피 저희도 환경이 열악하고 몇 번의 전투로 피로가

누적되어 전달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슬슬 혈압이 치솟는 것을 느끼는 중 우리가 있는 텐트로 김 중사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 부대장님. 현재 보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 속였군.'

적절한 타이밍에 김 중사가 말을 했고 나와 기태는 김 중사를 바라보고 다시 부대장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봤다. 부대장은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로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이야기 했다.

" 김 중사. 이 분들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보급해 주도록."

" 알겠습니다."

" 그 외 연료와 탄약 무기들은 균등하게 병사들에게 공급을 하되 여분은

남겨두고 진행하도록."

" 알겠습니다."

예전에는 저렇게 존칭을 쓰면서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완전히 부대에 소속되고 나서 변한 것 같았다. 나와 기태는 부대장에게 식량 이동을 부탁하고 텐트를 나오는 찰라 부대장에 말했다.

" 현재 인원이 부족하니 직접 가져가시죠."

" 그러죠."

주변에 할 일없이 놀고 있는 병사들이 수두룩했는데 부대장은 병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직접 식량을 가져가라고 했다. 언제는 배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가 이제는 직접 가져가라 했다. 자기들 멋대로 변하는 모습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태와 나는 안내하는 김 중사를 따라 식량 창고로 들어갔고 창고를 담당하는 병사와 김 중사는 무언가 작게 속삭이고는 인사도 없이 우리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 그래도 한 동안 같이 지낸 정이 있는데 말도 없네."

" 냅둬. 저러다 부자 되겠지."

" 하아.."

기태는 못내 김 중사와의 관계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식량창고를 담당하는 병사는 박스를 우리에게 던지듯 주고는 말했다.

" 2주치 식량입니다. 다음 보급은 현재 계획이 없지만 말입니다."

" 앵? 이게 2주치?"

" 뭐..야.."

박스 안에는 작은 몇 개의 밀가루와 쌀이 들어있었고 먹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드는 부푼 캔 음식 사이에 멀쩡한 캔 음식이 보였다. 생필품이라고 해봐야 예전에 길거리에서 나눠주던 휴대용 휴지와 구급약으로 보이는 반창고 몇 개가 전부였다. 아무리 봐도 우리 인원이 2주나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 이거.. 일인당 한 박스겠죠?"

" 아닙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병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점점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손을 떠는 내 모습을 보고 기태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 돌아가자. 상황이 좋지 않은가봐."

" 그래..."

몇 번의 전투와 끊긴 보급로로 상황이 좋지 못할 수도 있다고 위로하고 배로 돌아왔다. 마침 배에는 박 중사 일행과 병사 몇 명이 와있는 모습이 보였다.

" 보급 받아왔나봐?"

" 응. 보급이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기태는 받아온 박스를 대충 던지며 말했다. 박 중사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박스를 열었고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 참네. 눈에 뻔히 보이는 짓을 하네."

" 무슨 소리야?"

" 이번에 제대로 된 보급이 들어온 것으로 아는데.. 이런 물품이라니. 이거 완전

예전에 보급 받고 소비 못한 음식들을 처리한 모습인데?"

" 뭐?!!"

내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소리를 쳤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이제는 한계를 넘기 직전이었다. 내 표정을 본 박 중사도 약간은 얼어버린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아..아니.. 이번에 제대로 보급이 들어왔.."

" 젠장!! "

" 쾅!!"

난 신경질적으로 캔 음식을 하나 집어 부대장이 있는 곳으로 던졌고 어디에 부딪힌 캔 음식은 폭발하는 굉음을 내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맞았다면 즉사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 워워!! 진정해!!"

"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저것들이 지금 나를 뭘로 보고!!"

" 진정하라고!"

" 이 새끼들을.."

난 분노가 극에 치솟으며 떨리는 몸을 느꼈다. 같은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치를 떨었다. 그러던 중 은혜가 내게 다가와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진정해요... 진정.. 숨을 크게 들이쉬고..내쉬고.."

" 후우.... 후우..."

" 옳지..."

" 하아..."

" 형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다."

" 그렇게나 말이다."

나와 은혜를 보고 다들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솔직히 은혜 앞에서 다시 그렇게 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내 모습을 보고 다들 부대장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한 마디씩 했다.

" 더워 죽겠는데 저런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기는 했는데 이제는

쌤통이다."

" 비나 쏟아져서 다 잠겨 버려라!"

다들 부대장의 부대를 보고 한 마디씩 했고 내가 던진 캔 음식의 위치로 병사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 사람이 맞지는 않았겠지?"

" 그러거나 말거나."

박 중사의 말에 내가 외쳤다. 곧이어 부대장이 병사 몇 명을 끌고 우리 배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 무슨 짓입니까?"

" 뭐가 말입니까?"

부대장의 물음에 내가 대답을 했다. 하지만 부대장은 내 모습에 전혀 기가 죽지 않고 말을 했다.

" 사람이라도 맞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 안 맞았으면 된 것 아닙니까?"

내가 깐족거리며 말을 하자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음을 느낀 부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앞으로 행동 조심하시죠."

" 그쪽도 조심하지죠."

내 말에 돌아선 부대장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 무슨 말입니까?"

" 제대로 보급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에게 이 따위 물건을 줬단

말이죠?"

내가 박스를 발로 차며 말을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부대장은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전.. 이런 식량을 받은 적도.. 배급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 그럼 누가 이런 물건을 우리에게 배급한 것입니까."

대답은 뻔했다. 우리에게 배급을 주도록 명령을 받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 다시 가져다 드리지요."

" 연료도 가져오시죠."

" 안됩니다."

부대장은 딱 잘라 말을 했다. 아무래도 우리만 호화스럽게 생활하는 모습이 육지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병사들과 위화감을 조성하는 모습이 부대의 균열을 초래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이 개의치 않았기에 다시 물었다.

" 그럼 이번만 보급을 해주시죠. 분명 지급 받은 물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최소한 한 번은 주고 끊어야 할 것 아닙니까?"

" 보급 받은 양도 충분한 양이 아닙니다. 저희 차량에도 빠듯한 양입니다."

" 어차피 차량 이동도 얼마 없지 않습니까?"

" 배에서 에어컨을 틀고 전자제품을 가동할 목적으로 쓸 연료라면 줄 수

없습니다."

" 그렇군요. 그럼 우리도 떠나겠습니다."

" 네? 하지만 이동할 연료가 떨어졌지 않습니까?"

" 저랑 오랜 시간 생활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 정도로 허술해 보입니까?"

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대장은 진짜 남은 연료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도박을 걸며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 안됩니다. 대령님 말씀 못 들었습니까? 여러분은 여기서 이동할 수 없습니다."

" 뭐 그동안 대접이 좋아 고분고분 있었지만 이런 식이라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귀빈 대접을 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죄인 취급이라.. 어디 한 번

제대로 붙어보시죠."

내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의 변한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해도 내 힘은 옆에서 겪어봐서 잘 알 부대장이었다. 마음먹고 내가 밤중에 부대를 쓸어버리겠다고 휘졌고 다닌다면 제대로 반항도 못해보고 몰살할 것은 뻔했고 부대장은 내 성격의 변화를 눈치 챘기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알겠습니다. 우선 대령님에게 다시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 그 외 필요한 물품을 적어서 보내드리죠."

" 무..무슨..?!!"

" 뭐 굳이 전부 구해오지 않아도 됩니다만 구해왔으면 합니다."

" 우리가 무슨 심부름꾼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박 중사는 여기서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 안 됩니다. 박 중사는 엄연히 한 부대를 이끌고 있는 몸입니다. 그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는 부대장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 뭐 그럼 저 배를 여기 옆으로 끌고 오도록 하죠."

" 네?"

" 그럼 됐지 않습니까? 어차피 우리를 감시하고 감염 비둘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부대라면 저희 옆에 있는 것이 좋겠죠."

" 하아.."

부대장의 나의 억지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이제 카드는 제 손에 있습니다.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은혜와 배 안으로 들어갔고 내 뒤로는 부대장의 이가는 소리와 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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