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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17화 (21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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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에 은혜가 약간은 놀라며 물었다.

" 무슨 생각이에요?"

" 아무 생각 없어."

"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부대장이 자기 요구를 들어 줄까요?"

" 안 들어줘도 돼. 여하튼 칼자루를 쥔 사람은 우리가 돼야해. 아쉬울 것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고분고분해지지. 우리도 이득을 봐야지. 언제까지 퍼주기만 할

수 없지."

내 말에 은혜는 말이 없었다. 나는 잠시 쉬고는 다시 배로 올라갔고 배 위에는 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대단하다 너."

" 뭐가?"

기태의 말에 내가 대꾸했고 기태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내가 말한 물품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내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솔직히 별 기대도 안했는데 말이다.

" 오. 생각보다 엄청 빠른데?"

" 제발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조차로 우리 배에 기름을 가득 채웠고 발전기를 돌릴 여분의 연료까지 받았다. 그리고 2주치의 식량이라고 하기에는 양이 꽤 많은 식량과 여러 생필품들이 우리 배로 배달이 되기 시작했고 마지막 물품이 들어오고 나서 뭐 씹은 표정의 부대장이 다가왔다.

" 대령님이 허락하셔서 필요한 물품들은 전부 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무기와

탄약은 대령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제외했습니다."

" 뭐 상관 없습니다."

난 시크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고 그로 인해 부대장의 표정은 더욱 안 좋게 변했다.

" 조만간 대령님이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그 전에 말씀드리죠."

"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부대장은 병사들과 주둔지로 돌아갔고 우리는 지급받은 물품들을 정리했다.

부대장이 말한 대령님의 방문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대령은 배 바로 밖에서 소리쳤고 우리는 마지못해 대령이 올라 올 수 있는 사다리를 내려줬다.

"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 어제 내가 보낸 물건들은 잘 받았나?"

" 덕분에."

" 그런가? 이번에는 좀 다른 검사를 하러 왔다네."

무슨 드릴 같이 생긴 주사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비들이 배 밖 육지에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장비가 무거워 올라올 수 없으니 내려가지."

" 알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대령의 말에 따랐고 일행을 안심시키고는 임시로 지어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 탱!!!"

" 그 때와 동일합니다. 저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DNA가 전부입니다."

주사 바늘도 엑스레이도 뭐도 내 몸을 뚫고 갈 수가 없었다. 면봉으로 입안을 긁어 DNA를 채취하는 것이 저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흠.. 이래서야.."

" 저희가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 혹시 그 정서라는 사람이 준 약물을 가지고 있나?"

대령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없습니다. 예전 전투에 전부 주사했습니다. 그래봐야 주사기 한 대 분량이

전부였습니다."

" 아쉽군."

뭐가 아쉽다는 건지. 있다고 해도 애초에 나 같은 변이를 염두하고 연구를 진행한 쪽과 전혀 준비도 없이 연구하는 이쪽은 내가 봤을 때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기술차이가 존재했다.

" 젠장. 이래서야."

대령은 뭔가 짜증이 났는지 신경질을 냈고 그런 모습을 보고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며 앉아 있었다.

" 뭐 더 할 것 남았습니까?"

내가 물었고 대령은 대답도 없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 이러면.. 기태나 재효를..."

" 절대... 절대 그들에게 손 끝 하나라도 건들이기만 해 보십쇼.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고 내 표정을 본 대령이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 아..아닐세.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그런 쪽이 아니라.."

" 제 일행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장담할 수 있는 일을 해드리죠."

" 아..알겠네."

대령은 바로 꼬리를 내렸고 더 이상 진행할 수 있는 검사가 없어 나는 배로 돌아왔다.

" 뭐했어?"

" 예전이랑 다를 것도 없었어. 그냥 이것저것 검사를 했는데 뭐 제대로 된 것도

없었고."

" 대단하네. 포기할 때도 됐는데."

" 탐나나봐."

" 그나저나 이번 일로 완전히 미운 털 박혔네."

" 고운 털 박혀봐야 뭐 좋을게 있..."

" 응?"

" 숨어!"

" 앵?!!"

" 애애애애앵!!!"

멀리서 감염 비둘기 때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번부터 느끼는 일이지만 진짜 감시는 잘하고 있나보다.

" 몇 마리 안 되네?"

" 이상하네.."

" 어라?!"

" 왜?!"

" 저...저.."

재효가 보는 방향에 맞춰 시야를 돌렸더니 비록 몇 마리뿐인 감염 비둘기였지만 크기가 살벌할 정도였다. 25인승 버스정도 되는 크기의 비둘기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가 아닌 것인지 우리 위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느낌상 우리를 찾는다기 보다 뭔가 다른 존재를 찾는 모습이었고 몇 분 째 주변을 배회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더욱 초초해져갔고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뭐지?"

"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 아니면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행동일지도 몰라."

기태의 말이 맞았다. 저대로 몇 주만 버틴다면 우리는 다른 구역과 단절된다. 물론 저것들도 생명체니 뭔가를 섭취해야 할 것이니 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 교대...라니.."

" 빌어먹을. 저 정도 지능이 있단말야?"

어디선가 날아온 다른 감염 비둘기들이 원래 있던 비둘기들과 합류했고 원래 있던 비둘기들은 몇 바퀴를 더 돌고야 자리를 이동했다. 그런 모습에 우리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 우리를 다른 구역과 단절 시키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왜 하필 우리지?"

" 모르지.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을지도."

" 아무래도 저 주둔지 수상해."

" 응?"

재효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재효를 바라봤다.

" 봐봐. 군용 텐트만 잔뜩 설치되어 있는데 주변에 발전기가 너무 많아. 설마

텐트마다 에어컨을 설치할리도 없고."

" 하긴.. 저번에 부대장 텐트에 갔을 때에도 에어컨이 작동되는 텐트는

아니었어."

" 도대체 뭐지?"

" 뭔가 연구 시설이 있을지도 몰라."

" 응?"

내 말에 기태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 하긴.. 대령이 너무 빨리 왔어."

" 응?"

" 분명 꽤 덩치가 있는 장비였는데 하루 만에 여길 왔다고. 그 정도 크기라면

차량이 이동해야 하는데 트럭이 움직이는 소리나 모습은 보지 못했어."

" 뭔가 확실히 있는데 말야.."

"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으니.."

" 그래서 저 비둘기들이 기를 쓰고 여기를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어."

" 밤에 몰래 가볼까?"

" 지금은 때가 아냐. 하늘에 저 녀석만 없다면 큰 문제는 아닌데.."

" 에잇!"

" 녀석들이 뭔가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면 분명 부대에서 움직일테니 우리는

체력을 보충하자."

" 크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 저번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그랬고 우리를 공격하기보다 저기를 공격하는

경향이 커. 그러니 조금은 안심해도 될거야."

내 말에 기태가 반대하며 나섰다.

"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어. 저들이 노리는 것은 오히려 우리 일지도 몰라."

" 굳이 우리를 왜 노릴까? 저 녀석들 생각보다 머리가 좋아. 그럼 예전에 내가

싸운 것을 본 녀석도 있을 것이고 이 배가 상당히 튼튼하다는 것을 알 수도

있어. 상대적으로 텐트가 공격하기 쉽겠지."

" 으흠.."

내 말에 기태가 반박을 하지 못했다.

" 우리를 노린다고 쳐도 저 녀석들이 움직인다면 분명 사이렌이 울릴 거야.

이번에도 봐. 거의 우리와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저 부대도 비둘기를 발견했어.

그러니 이번에도 큰 위험은 없을거야. 그리고 뭔가 움직임이 달라지면 너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잖아?"

내 말에 기태가 수긍을 했다.

" 응.. 하지만 아직은 확실한 능력이 아니라서..."

" 괜찮아. 그러니 괜히 여기서 체력 낭비하지 말고 쉬자."

다들 내 의견에 반대했지만 솔직히 우리가 돌아가며 근무를 선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기에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 애애앵!!"

" 빌어먹을!! 이번이 몇 번째야!!"

" 아흠.. 또 울려요?"

밤새도록 부대장의 부대에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로 밤잠을 설쳤다. 감염 비둘기가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 사이렌이 울리다 보니 별 것 아닌 움직임에도 울려 우리고 박 중사고 부대장의 부대고 제대로 잠을 잔 인원은 없는 것 같았다.  박 중사도 얼굴이 퉁퉁 부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다.

" 너도 제대로 못 잤구나."

" 응.. 저 사이렌 진짜 거슬리더라."

" 저것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 우리를 지치게 하려는 속셈인가.."

" 그렇다면 제대로 먹히고 있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육지의 병사들의 움직임도 둔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하늘은 보니 비둘기들은 개체만 바뀌었을 뿐 움직임은 그대로였다. 이따금씩 활강을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지상 근처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비둘기들이 다른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육지위의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대응할 준비를 했지만 이내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늘어지는 모습이었다.

" 저런 방식이라면 며칠 못가서 완전히 지쳐 버릴 것 같은데."

" 그게 저 녀석들이 원한 결과일지도."

" 무시무시할 정도로 지능이 좋은데."

우리는 배 난간에 기대어 한동안 감염 비둘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중 다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놀랐다.

" 도대체 왜..?"

" 저것들은 가만히 있는데?"

병사들의 움직임은 하늘이 아닌 지상을 향하고 있었다.

" 설마... 일반 감염체?"

" 방벽이 무너졌다는 소린가?!"

" 방벽 근무 인원은 없었던 거야?!"

기태가 박 중사를 보며 소리쳤다.

" 설마 일반 감염체가 방벽을 뚫고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 못했지! 그리고

외부에서 여기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감염체가 몰려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단 말야!"

박 중사의 외침에 기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그래서.. 아무도 방벽을 방어한 인원이 없었다는 말이군.."

" 온다!!"

고수부지로 이어지는 터널에서 몰려드는 감염체를 보고 병사들은 급하게 움직이며 총을 쏘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대공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가 월등히 많은 상황에 생각지도 못한 지상으로 침투하는 적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변종 감염체가 몇 없다는 것이었다. 로켓포까지 사용하며 전투가 지속됐고 지상의 먹잇감을 본 감염 비둘기들은 본능을 참지 못하고 무서운 기세로 활강하기 시작했다.

" 쿠웅!!!"

" 쏴라!!! 쏴!!!"

병사들은 위에서 내려온 감염 비둘기까지 상대하느라 혼비백산인 모습이었고 박 중사의 배에서도 무기를 사용하며 지상군을 지원했지만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삼파전으로 변한 싸움은 모두가 적이었다. 병사는 감염체와 감염 비둘기를 상대하고 감염 비둘기는 감염체와 병사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감염체 또한 병사와 감염 비둘기를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말도 안 돼는 상황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서로 엉켜 눈앞의 존재가 같은 편이 아니라면 무조건 죽이고 있었다. 뭉쳐 있는 상황이라 수류탄이나 유탄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가장 먼저 숫자가 줄어든 쪽은 생존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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