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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본부대에서는 무전이 없었다. 박 중사가 무전을 해도 따로 무전을 주겠다는 답변만 할 뿐 별다른 무전은 없었다. 우리는 무너진 방벽을 임시로 보수를 했고 폐허가 된 주둔지를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이제는 감염 비둘기도 안 오네."
" 여기보다 다른 곳이 녀석들 입장에서 더 좋은 사냥터니까."
" 아..."
박 중사의 대답은 잔인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기껏해야 20명 남짓인 우리 구역보다 수백의 인원이 모여 있는 다른 구역을 공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사냥이었다.
" 뒤적..뒤적.."
우리와 병사들은 무너진 텐트와 천막을 치우며 정리했고 다행히 남은 탄약과 무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처 발견되지 못한 시신들이 속속 발견이 되었고 시신의 일부분까지 모아 화장을 하기로 했다.
" 부디.. 다음 생에는..."
다음 생에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과 다르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병사는 말을 잇지 못 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다들 고개 숙여 묵념을 했다. 우리는 완전히 시신이 탈 수 있도록 주변의 나무를 더 넣어 불을 키웠고 다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본부대에서 무전은 없어?"
" 똑같은 대답이야."
" 버려진...겁니까?"
병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박 중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본다면 버려진 상황이 맞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난리통을 겪었는데도 주변에 보이는 닭과 토끼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 저 녀석들은 걱정도 없고 좋겠다."
" 무슨 걱정이 없냐. 우리 미래의 식량인데."
" 아.. 맞다."
지금은 버틸 식량이 있다고 해도 앞으로 보급이 없을 것 같으니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 연료와 식량을 양껏 받았고 주둔지에서 발견된 식량도 상당한 편이라 이 인원이라면 한 달 정도는 무난하게 버틸 양이었다. 물론 하루 두 끼 아껴서 먹는다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말이다.
" 정리가 끝났습니다."
" 응?!"
" 왜?!"
기태가 뭔가를 느꼈는지 돌아섰고 우리는 다급하게 무기를 잡으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 아...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는.."
" 설마.. 그 이단자 집단인가?"
" 그럴 수도 있지."
" 이제는 섣불리 공격조차 못 오겠네. 배에 사람이 많으니."
" 아무리 많아도 그 힘이라면 일반 병사라면 상대하기 버거워."
" 이번 공격에 이단자 집단도 피해를 받았겠지?"
" 받았다면 그 집단이 와해 됐겠지? 아직도 집단이 유지된다면 공격을 피했다는
것이고."
" 저.. 박 중사님?"
" 응?"
" 무전으로 부대장이 박 중사님을 찾습니다."
" 알겠어."
박 중사는 옆에 있는 병사가 무전으로 박 중사를 찾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 뭔가 조심스러운 것을 보니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기태를 보며 말을 했다.
" 설마 지금보다 더 나쁘게 되겠냐?"
" 하긴.."
더 이상 나빠질 일도 없었다.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전을 듣던 박 중사는 무전을 끝내고 한 숨을 내쉬고는 우리를 바라봤다.
" 왜? 무슨 일이야?"
" 뭐..."
박 중사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 우리 구역이 이제는 더 이상 안전구역이 아니니 다른 구역으로 가라는
명령이야."
" 예상은 했는데 어느 구역으로?"
" 받아주는 구역으로."
" 미치겠군."
우리를 받아주는 구역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지급 받는 식량은 인원이 늘어난다고 같이 늘어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인원 수치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감시 대상으로 소문이 난 우리를 받아줄 구역이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 그냥..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지?"
" 솔직히 이런 상황에 우리를 받아주는 구역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 그럼 이제부터 저희는 여기서 생활하면 되는 겁니까?"
병사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 중사에게 물었고 박 중사는 병사들을 모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우선 우리 부대인원이고 이번에 생존한 부대 인원은 자율적으로 이동을
허락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버려진 상황이다. 뭐 위에서는 다른 구역으로
이동을 하라고 했지만 실제로 받아줄지도 의문이다."
" 그럼 저희는 가고 싶은 구역으로 가도 상관없다는 이십니까?"
" 맞네. 어디든 가도 상관없다네."
" 그럼 무기와 식량은.."
병사 한 명이 물었고 박 중사는 바로 대답을 해줬다.
" 원래 있던 식량은 주인이 있으니 제외하고 주둔지에서 발견된 식량은 동등하게
나눌 것이다. 무기와 탄약도 마찬가지고."
" 알겠습니다."
다행이라는 표정의 병사를 보니 저 병사는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았다.
" 그럼 바로 당장 떠날 인원은 출발해도 좋다. 오늘 밤까지 남는 인원은 우리와
함께 여기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겠네."
" 네."
대부분의 병사들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고 밤이 되기 전까지 각자 자유롭게 이동을 허락했다. 박 중사 부대의 병사들은 원래 머물던 배로 돌아가 미처 챙기지 못한 짐들을 챙기는 모습도 보였고 균등하게 나뉜 식량과 탄약을 받자마자 바로 떠나는 병사도 보였다.
" 기다렸다는 듯이 떠나네."
" 갈 사람은 가야지.."
" 남은 인원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배 난간에 기대어 박 중사와 함께 떠나는 인원을 보던 중 은혜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했다.
" 글쎄.. 우리 부대에서도 상당수가 갈 것 같은데. 우리 부대 생각보다 결속력이
좋지 않아서."
"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전부 떠나겠지?"
" 아마도 그럴 것 같네. 떠나지 않는다면 나눈 식량을 받지 않았을 텐데 전부다
받아 갔으니."
" 양보다 질이죠."
" 맞지."
예전에 내가 습관처럼 내 뱉은 이야기를 은혜가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미소를 보여주고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에는 잠시 지냈던 인원들이 두고 간 물건들로 어질러진 모습이었다.
" 참네. 갈 때 가더라도 정리는 하고 가지."
미란이와 은혜는 병사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와 박 중사도 어지럽게 널려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고 정리가 끝나자 박 중사가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다.
" 남은 인원은..."
" 세 명."
" 대단하군."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전부 떠날 줄 알았기 때문이다.
" 자네 3명은 왜 남았지?"
" 저희 목숨을 구해준 분에게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 나?"
" 네!"
내가 목숨을 구해줬다니? 금시초문이다. 뭐 나야 감염체나 감염 비둘기를 죽이려 했는데 저들 눈에는 자신들을 구해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 그래? 이름이?"
" 손 홍렬. 조 성빈. 김 민수입니다. 계급은 병장입니다."
"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병장이야?"
군복의 상태와 계급장의 상태를 보니 시간이 꽤 오래 흘렀다는 것을 보여주는데도 병장이라는 것이 이상했다.
" 특별한 공이 없다면 이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계급이 올라가는 시절이
아닙니다."
민수라는 병장이 웃으며 말을 했다. 하긴 새로 들어오는 병사는 없는데 계속 진급을 시킨다면 나중에 전부 병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째보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 그럼 세 명은 여기 계속 남을 생각인가?"
" 네.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웃으며 말했지만 눈은 왠지 슬퍼 보였다.
" 그럼.. 새 식구를 맞이했으니 만찬을 즐겨볼까."
내 말에 세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식량은.. 인원수에 맞춰 분배한 것이 아닌가요?"
" 뭐 이제 와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균등하게 나눠준 것은 아냐."
내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정확한 양을 아는 사람도 없는데 대충 만족할 만큼의 양을 주고는 나머지는 잘 보관하고 있었다.
" 역시 너 답다."
" 대단하네."
"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별 불만 없이 갔네요?"
" 어차피 정확한 양을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뭘."
나는 창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려 내려갔고 다른 인원들은 우리의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에 모였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 가며 오랜만에 웃으며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남자들 인원수도 늘었고 무기도 보강이 되었다. 그리고 눈엣가시였지만 그래도 알람 역할을 해주던 부대가 사라진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직접 돌아가며 근무를 서야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 딱 6명이니까 1시간 20분씩 돌아가며 근무를 서자."
" 알겠습니다."
" 응."
" 내일은 옆 배에서 필요한 대공포나 무기를 챙겨오자."
" 저렇게 대파 됐는데 제대로 작동이 될까? 그리고 엄청 무거울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옮길 수 있을까?"
" 맞습니다. 탄약 무개만 해도 엄청나고 이 배에 제대로 설치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조 병장이 나를 도와주는 말을 했다. 박 중사는 우리 배에 무장을 하는 것을 원했지만 문제가 많았다.
" 저 배야 유람선이니 넓은 공간이 있지만 이 배는 아냐. 그리고 대공포만 해도
무게가 엄청난데 한쪽에만 무게가 쏠리면 이 배가 버틸지도 의문이야."
" 맞습니다. 애초에 저 배는 많은 인원이 버티게 설계된 배이지만 이 배는 태생
부터가 다릅니다."
" 어쩔 수 없나.."
" 어차피 바로 옆에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갈 수 있어. 너무
걱정 하지마."
" 그럼 경계 근무는 이 배와 저 배를 옮겨 다니면서 하는 걸로 하자고."
" 바로 옆에 붙여도 상관없나?"
" 저기 보면 선착장 비슷한 카페가 있으니 저쪽에 세워두자."
강에 떠 있는 건물 주변에 배를 정박할 수 있도록 만든 선착장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저기까지 어떻게 끌고 가나였다. 배는 한 번 시동을 걸고 움직이면 연료 소비가 엄청났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했다.
" 밧줄로 끌고 갈까? "
"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저기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 흠..."
여러 방법들이 나왔지만 결국은 소형 배를 이용하여 끌고 가는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소형 배가 얼마나 버틸지가 의문이었다.
" 우선 실행은 내일 하자. 오늘은 푹들 쉬고."
" 그래.. 다들 쉬자고."
" 그럼 저는 근무에 투입하겠습니다."
" 그래...앵?"
" 왜 그러십니까?"
초번 근무자인 손 병장의 무장은 장난이 아니었다. 유탄 발사기에 수류탄 3개. 기관총까지 어깨에 결속시켜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어디 바로 감염체를 제거하러 가는 줄 알았다.
" 너..너무 무거운 무장인데.."
" 혹시나 해서요."
손 병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박 중사는 다시 무장을 지시했고 결국은 소총과 탄창 5개. 유탄 정도만 허락이 되었다.
" 그럼.."
무장을 바꾼 손 병장은 우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근무를 위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서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