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20화 (219/281)

0220 / 0281 ----------------------------------------------

-3부-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우리는 소형 보트를 찾아 주변 선착장을 헤맸고 다행히 몇 대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배는 어렵게 이동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무기가 장착된 유람선이었다. 원래 우리가 있던 지점에서 500m 가량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다. 겨우겨우 이동을 시켜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시간은 이미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일했더니 죽겠다."

" 하아.. 배고파.."

예전에는 그래도 고급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던 건물로 들어갔다. 한강에 건물을 세워 영업을 하려면 일층은 무조건 마리나 클럽이 들어가야 했다. 우리가 있는 건물은 직사각 건물에 2,3층은 행사를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우리가 있는 건물에 들어오려면 단 하나의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방어에도 꽤 유용했고 건물 사용도 가능하니 이래저래 손해는 아니었다.

" 2층은 텅텅 비어있어. 3층도 레스토랑이었는지 그냥 평범해. 그리고 초반에

여기서 생활하던 인원이 있었나봐. 생필품 흔적이랑 불을 피웠던 흔적까지

있어. 상황을 보니 급하게 건물을 벗어나고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나봐."

" 처음부터 여긴 위험지역이었습니다. 감염 비둘기의 출몰도 자주 있고

무엇보다 일반 감염체를 막을 방벽 설치가 어려워 방어가 거의 불가능 한

수준이었습니다."

김 병장의 말에 재효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 다리에 부비트랩을 설치할까?"

" 유탄 한 발이면 끊어질 것 같은데 굳이.."

" 하긴.."

우리는 간단하게 전투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대화를 나눴다. 사태 초반 잠시 쓴 흔적을 제외하면 건물의 상태는 양호했다. 문제라면 너무 허허벌판이라 멀리서도 감여체가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군다나 건물을 지역 특성상 거의 대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어 외부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 어디서 락카라도 구해와 칠해야지. 이래서야 원.."

" 내 기억으로는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사무용품 파는 매장이 있었는데."

" 어떻게 알아요?"

" 예전에 이 근처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내 기억이 맞다면 걸어서는 조금

무리고 차를 타고 십 분이 채 안 걸렸던 것 같은데."

" 뭐라도 남아있겠지."

" 그런 물건들이야 생존에 직결되는 물품이 아니니 아마 남았을 거야."

" 우선 오늘 하루 수고했고 오늘 초번 근무자가 나니까 다들 들어가서 쉬어."

" 그럼 수고하십쇼."

내가 초번 근무자라 다른 인원들은 들여보내고 나 혼자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초반부터 위험지역이 맞았는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백골이 된 시신들과 수많은 탄흔들이 발견되었다.

" 저벅..저벅.."

발에 밟히는 정체불명의 물질들이 소리를 내면서 바스라 들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생존자가 오랫동안 없었으니 감염체가 나타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외부의 점검을 대충 끝내고는 건물로 들어왔다. 건물로 들어가는 다리에 펜스가 설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허술했고 정문도 유리로 된 자동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으니 작동은 하지 않았다.

" 이래저래 손 볼 곳이 많기는 하지만.. 오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괜히

시간 쏟아 고치기는 싫은데."

나는 건물 내부 이것저곳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건물 내부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고 창문도 제대로 없는 곳이다 보니 환기는 물 건너갔다. 도대체 이 환기도 안 되는 공간에서 무슨 수로 불을 피우고 생활을 했는지 궁금했다. 건물 자체는 크기가 크지 않아 둘러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창고를 뒤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유통기한이 아직 남은 음료와 견과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누가 한바탕 쓸어간 것은 아닌 상태였다. 하지만 레스토랑이라고 유통기한이 무자비하게 긴 음식만 쓰는 것은 아니었기에 구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없었다. 냉장고가 있어봐야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으니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열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 별로 쓸만한 것은 없네."

스테이크 써는 나이프 정도야 잘만 던진다면 감염체를 죽일 수 있겠지만 감염 비둘기를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 옛날 생각이 나네.."

대학생 때 용돈이 필요하면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당시만 해도 그런 개인적으로 운영되는 맛 집으로 소문난 곳이 많았고 그 때 나름의 추억도 있었다. 그런 추억에 빠져 기억을 더듬고 있다 보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고 정신을 차렸다.

" 자자! 정신 차리고!"

나는 다시 건물을 살피며 외부를 봤다. 하늘과 육지 그 어느 곳에서도 감염체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간간히 부는 바람 소리만이 내 귓가를 스쳤고 그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래저래 주변을 살피니 다음 근무자인 박 중사가 나와 있었다.

" 깨우러 갔는데 벌써 일어 났네?"

" 뭐.. 습관이라.."

" 뭐가 습관이란 거야? 야밤에 일어나는 것?"

" 뭐..하하.."

박 중사는 대충 얼버무리듯 웃었고 나는 특별한 전달사항이 없어 박 중사와 나란히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 후우.."

" 여름인데도 해가 지면 선선하다."

" 예전에는 열대야다 뭐다 진짜 더워서 에어컨이 없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 이제는 밤에 추울  때도 있다니까."

" 이런 점은... 좋다고 해야 하나..?"

박 중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이라도 뭔가 좋은 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박 중사의 장점이었다. 언제나 웃음일 잃지 않지만 결단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확실한 선택을 보여주는 녀석이 부럽기만 했다. 아직은 나보다 박 중사가 리더라는 존재에 가까웠다. 나는 무척이나 기분파였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 부럽다."

" 뭐가?"

뜬금없는 내 말에 박 중사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난 굳이 말을 해주지 않아도 녀석이 알거란 생각에 그저 웃었다.

" 싱거운 녀석. 어서 들어가 자라. 내일도 움직여야 하는데."

" 그래.. 수고해."

박 중사와 인수인계를 끝내고 은혜가 곤히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은혜 옆에서 조심스럽게 누워 은혜에게 팔베개를 해주고는 나도 같이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이 되어 다들 주방에 모여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 어제 별다른 일은 없었어?"

" 네. 밤새 감염체도 감염 비둘기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이상하네.. 그래도 나름 위험 지역인데 아무것도 없다는게.."

기태가 뭔가 이상한 듯 말을 했지만 손 병장이 말을 했다.

" 그것들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지금은 이곳은 올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 하긴... 오히려 다른 구역으로 가는게.. 차라리 이단자 집단으로 가지."

" 아.. 그 집단에 대해 알고 계셨군요."

" 김 병장도 알아?"

" 네. 실제로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 실제로?"

박 중사와 기태가 놀라며 물었다. 뭐 나도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뭘 저리 놀라는지.

" 아.. 가까이에서 본 것은 아니고 멀리서 본거라.."

" 그래.."

" 진짜 감염체가 그 집단은 공격하지 않아?"

" 감염체는 신기하게 공격은 하지 않습니다. 아.. 공격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주변에 감염체가 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감염

비둘기는 보이면 공격을 하죠."

" 효력은 일반 감염체로 국한되는군."

" 다행이네."

" 하지만 이단자 집단에 현혹되어 구역을 이탈하는 생존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저희 숫자가 월등하지만 조만간 역전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 그런데 김 병장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박 중사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 여기 오기 전에 본부대에서 정보과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점점 일반

병사가 알아야 할 수준이 넘어가자 위에서 절 야전으로 보냈습니다."

" 참네.."

어처구니없는 정보 차단에 기태가 코웃음을 날렸다. 뭔가 대응을 해야 할 본부대에서 정보 차단에만 급급한 상황인 것이다.

" 그럼 다른 구역 상황은 어때?"

" 몇 개의 구역을 제외하면 얼마 전의 저희 구역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네."

"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니까요."

" 그래?"

" 네. 예전 생존자 구역에서 살아남은 고위관리가 결국은 지금 본부대 구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김 병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얼마간은 무기와 식량이 제대로 보급이 되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 본부대에 무전을 해봤어?"

" 현재 어떤 무전도 오가는 것이 없습니다."

" 환장하겠군."

" 아침부터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하지 말자."

" 그래요."

아침 식사시간에 하는 대화치고는 너무 무거웠기에 우리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먹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같이 살폈다.

" 생각보다 방어는 어렵지 않습니다."

손 병장은 꼼꼼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박 중사에게 말했다. 기태도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 멀지 않은 곳에 감염 비둘기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 나도 느껴지기는 한데.."

" 위험한 것 같은데."

" 지금 우리는 어디를 가도 위험해."

내 말에 다들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를 노리는 이단자 집단과 나를 연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대령까지. 뭐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 본부대에서 우리 위치가 어디냐고 무전이 들어왔는데?"

" 씹어 그냥. 뭐가 알고 싶은게 그리 많아."

" 우선 대답은 안하고 있어. 하지만 언제까지 묵묵부답으로 대응할 수는 없으니

조만간에 뭔가 조치가 있겠지."

"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더 끌고 반응하기는 어렵겠지?"

" 아무래도 우리를 찾지 않을까? 배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뻔히 알고 있고 이동

루트가 한정되어 있으니."

" 그런데 왜.. 본부대에서 저희 위치를 알면 안 되는 이유라도.."

" 본부대에서 재원이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뭔가 자꾸 해보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 좋을 것은 없어."

" 치료제나 뭐 그런 것 아닙니까?"

" 절대 아닐걸. 뭔가 군사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 솔직히 치료는 힘들지.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해도 지금 있는 감염체는 이미 어쩔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 역시.. 뭔가 좋은 의도는 아니었군요."

" 정확히는 모르지만 느낌상 우리에게 좋을 것은 없다 이거지."

" 네.."

우리는 두 시간을 더 주변을 둘러보고 배로 돌아왔다. 방벽이 제대로 없고 감염 비둘기로부터 가깝다는 것만 빼면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문제는 그 두 개를 빼면 남는게 없다는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주하는 인원이 적으니 비둘기나 감염체나 다가올 확률은 적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그냥 지내기로 했다.

" 누군가 온다."

" 뭐?!"

" 숨어!!"

내 말에 다들 무성하게 자란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겼다. 다가오는 인원은 예전에도 본 이단자 집단에서 봤던 그 존재였다.

" 젠장..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 어려울 것도 없지. 그 위치에서 500m 정도 벗어났는데."

" 도대체 우리한테 뭘 원하길래 자꾸 찾아 오는거야?"

" 몰라서 묻냐?"

" 응?"

" 뻔하지. 저런 녀석이 원하는게 뭐겠냐? 처음 만났을 때 기억 안나?"

" 음..."

대충 예상은 했지만 아니길 바랐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존재를 바라봤고 그 존재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우리가 지내고 있는 배만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