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3 / 0281 ----------------------------------------------
-3부-
운이 나쁘게 오는 감염 비둘기는 한 번에 몰려 왔지만 돌아가는 비둘기는 한 번에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까지 계속해서 이동하는 비둘기로 인해 우리는 뜬 눈으로 밤을 샜다.
" 후아암.."
" 졸려..."
돌고 돌아 다시 내 근무 순번이 돌아왔다. 제대로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벌써 내 차례라는 사실이 믿고 싶지 않았다. 박 중사도 제대로 잠을 못 잤는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 아직도 날아다니네."
" 미치겠다. 이래서야.."
" 뭘 할 수가 없네."
하늘위의 비둘기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감염체나 생존자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지역은 애초에 생존자의 발길이 끊어진 곳이니 별다른 먹잇감이 없는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배회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감염 비둘기가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이틀이 넘게 걸렸다. 덕분에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한 우리의 피로는 극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 끄응..."
" 하암..."
다들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 근무를 서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엄청 피곤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 다들 엄청 힘들겠네."
"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이런 장시간동안 감염 비둘기들이 활동하는 이유가
뭐지?"
" 모르지.. 숫자에 비해 먹잇감이 부족하니 미친 듯이 찾고 다니는지도."
" 돌아버리겠군."
" 손 병장. 무전에서는 별다른 이야기는 없어?"
기태가 무전을 잡고 있는 손 병장에게 물었다. 손 병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없습니다. 그저 일상적인 무전일 뿐입니다. 감염 비둘기에 관한 무전이
아니라면 이단자 집단의 무전은 없습니다."
" 눈치도 빠르네. 벌써 튄 거야?"
재효의 말에 손 병장이 말을 했다.
" 그냥 튄 것도 아닙니다. 도망가던 중 감염 비둘기의 공격을 받은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 감염체로부터는 안전해도 감염 비둘기는 아니었지."
" 그리고.."
손 병장은 힘들게 입을 열며 말했다.
" 그리고... 생존 구역 몇 군데가 전멸... 했다고 합니다.."
" 뭐?!"
" 뭐라고?! 어째서?! 분명 이런 상황에 다들 피했을텐데?!"
" 모든 구역이라고 방어가 잘 되어 있고 탄약이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공격 받은 구역은 인원수에 비하여 탄약이 부족하고 방벽도 허술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방벽이야 감염 비둘기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지만요."
" 그럼.. 비둘기들이 방어가 허술한 곳을 찾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던 것이군. 진짜 대단하다."
생각지도 못한 비둘기의 지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부대에서는 단지 비둘기의 둥지가 여길 것이라는 추측으로 화력을 쏟아 부었는데 그 행위가
오히려 비둘기의 화를 돋운 셈이었다.
" 난리 났군. 그럼 우리를 모르게 지나친게 아니라..."
" 알지만 굳이 공격해봐야 소득이 없으니 그냥 지나간 거야."
" 하..."
" 흐미..."
우리 인원이라 해봐야 10명 남짓. 다른 구역을 공격한다면 적어도 수십에서 수백의 인원이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꽤 강한 화력과 인원이 있었고 배 안에서 생활하니 우리를 사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비둘기 입장에서는 공격하기 어렵고 인원도 얼마 안 되는 우리를 공격하는 것보다 비교적 방어가 허술하고 인원이 많은 구역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은 당연했다.
" 돌아버리겠군."
" 생각보다 지능이 너무 높습니다."
" 섣부른 판단일 수 있어. 단지 운이 나빠서 당할 일일수도 있고."
감염 비둘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듯 한 말들이 나오자 박 중사가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크게 믿는 표정은 아니었다.
" 이래서야 어딜 가도 위험하네? 인원이 늘어나면 바로 표적이 되고?"
" 우리... 진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불안한 표정의 미란이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웬만한 초등학생 이상의 지능 수준을 가진 적. 그것도 날아다니는 녀석들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 이제..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네."
" 최대한 자제해야지. 한 방에 훅 갈수 있으니."
" 돌겠군."
" 진짜.. 우리 어쩌냐.."
" 우리는 그래도 상황이 나쁘지 않지. 지금 다른 구역은... 응?"
" 왜?"
" 무전기에서 무슨 소리가?"
" 손 병장 확인 좀 해봐."
" 알겠습니다."
대화 도중 박 중사가 무전기에서 희미하게 나는 소리를 들었고 손 병장이 무전기의 볼륨을 높여 무전 내용에 집중하는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표정에 다들 무전 내용을 궁금해 하였다.
" 무슨 내용이야? 표정이 왜 그래?"
손 병장의 표정을 보며 박 중사가 말했고 손 병장은 무전기의 볼륨을 줄이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우릴 보여 이야기했다.
" 현재.. 경기도 지역에서 새로 감염 비둘기의 둥지가 발견 됐다고 합니다. 그
숫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무리 중에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 그리고?"
" 현재 그 무리들이 서울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 젠장.."
" 빌어먹을..."
" 본부대에서 무전은 없어?"
" 현재 전원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남은 식량과 탄약을 최대한 빨리
구역마다 배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름 후까지 서울을 떠나라는 무전입니다.
각자 알아서 남부 지역 생존 구역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입니다."
" 무책임하군."
" 그런데 왜 하필 보름이지?"
" 아마.."
" 아마?"
김 병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아마도... 핵을.."
" 에이.. 설마. 우리나라에 핵무기도 없는데 무슨.. 그리고 서울에 쐈다간
대한민국 전체가 오염되는 것 아냐?"
" 바람 방향도 생각해서 터뜨려야 하는 것 아냐? 괜히 낙진이나 방사능에
남쪽으로 간다면 애꿎은 생존자들만 피해를 보니까."
" 설마... 베포라이저는 아니겠지.."
" 응?"
내 중얼거림에 박 중사와 김 병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 그거... 실제로 있는 무기야?."
" 뭐 나도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정도만 알고 있는데.."
" 그게 뭔데요?"
우리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은혜와 미란이가 물었다.
" 쉽게 말하면 증발기. 전자 렌지라고 하는게 맞나?"
" 뭔 소리야?"
" 그런 무기도 있단 말야?"
" 생물체의 수분을 증발시켜 죽이는 무기인데 실제로 가능해?"
" 이론적으로 가능한 무리가로 들었는데."
" 생각해보면 생존자들만 없다면 가장 효율적인 무기인데... 실제로 있다면
말이지."
" 지금은 정말 핵이 가장 유력한 청소 방법인가?"
" 수소 폭탄도 있고.. 하지만 우리 군이 그런 무기까지 가지고 있나?"
" 우선 가지고 있든 없던 조심해서 나쁜 건 없으니 서울을 떠나자."
" 참네. 그렇게 지킬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포격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 아냐?"
재효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애초 서울 폭격을 왜 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제야 포격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서울에서 얻을 것이 없다는 소리였다.
" 내일 당장 이동을 해야겠네."
" 미치겠군.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데."
"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아무리 우리가 감염체나 비둘기를 죽이고
다닌다고 해도 얼마나 티가 나겠어? 해봐야 우리만 힘든 일이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저런 계획을 실행 하는게 다행일 수 있지."
박 중사의 말이 끝나자 다들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도망 다니고 숨고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에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상황에 이런 방법이 맞을 수도 있었다. 어딘가 정착을 한다고 쳐도 그 곳을 지킬 힘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옮겨야 했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런 상황이다.
" 지킬 힘이 없다면... 떠날 수밖에 없겠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그래도 다행이지. 적어도 우리 일행을 지킬 힘은 있으니."
난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 더 이상 배에서 생활할 수 없으니 이동을 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차량이 없었다. 지금 와서 본부대에서 훔쳐올 수도 없었고 주변을 뒤지고 뒤져도 이미 멀쩡한 차량은 생존자들이 전부 끌고 간 상황이었다.
" 빌어먹을.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서 가는 것도 무리인데 우리가 옮겨야 하는
짐도 양이 장난이 아닌데."
" 걸어서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
" 왜? 걸어가려고?
" 발 빠른 사람 몇 명만 최대한 빨리 가서 뭐가 있는지 확인하자. 그런 다음
행동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설마 2주 동안 못가겠어?"
" 흠... 좋은 방법이긴 한데 가서 아무것도 없다면? 정서 형님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 그럴 것 같지는 않아.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야."
" 너무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와는 적이라고."
박 중사가 생각보다 정서 형님을 신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아무 것도 없을 리 없었다.
" 여기서 거리가 약 30km야. 보통 행군 속도로 생각한다면 6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도착하겠지만 너라면 훨씬 빠르게 도착하겠지."
" 응.."
" 그럼 누구랑 갈 생각인데?"
" 재효. 그래도 이 중에서 스피드는 가장 빠르니."
" 알았어."
박 중사는 내가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재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것이 눈에 보였다.
" 지금 바로 출발할거지?"
" 응. 간단한 물이랑 식량만 챙기고 바로."
나는 다시 한국에 와서 쓰지 않은 미국에서 만든 칼을 들고 말했다.
" 웬일이야? 그 칼을 다시 쓰고? 창이 편하다고 하지 않았어?"
" 응. 그냥 뭔가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그래.."
박 중사는 재효를 불러 준비를 시켰고 준비가 끝난 재효와 나는 무서운 속도로 정서 형님이 알려준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 저 둘.. 초반부터 기운 써도 상관없나?"
" 둘이 알아서 잘 가겠지."
떠나는 우리를 보고 박 중사와 기태가 말을 했다.
" 허억.. 허억..형 얼마나 더 가야해?!"
" 이제 반 정도 온 것 같은데? 힘들어?"
" 응.. 조금 쉬었다가자."
재효는 상당히 지친 표정으로 말했고 나와 재효는 도로 한 곳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크아!!"
500cc 물통의 물을 원샷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재효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 대충 보니 반 정도 온 것 같은데.."
" 출발한지 15분 정도 됐나?"
" 그 정도..."
" 진짜 빨리 왔네. 그나저나 형은 지치지도 않아? 난 숨 넘어 갈 것 같은데."
" 글쎄다..."
" 진짜 신기한 현상이야.."
재효는 남은 물을 입 속에 탈탈 털어 넣고는 다시 일어서며 말했다.
" 빨리 움직이자.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빨리 오지. 괜히 시간 끌지 말자 형."
" 그래."
재효와 나는 다시 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고 치타 수준의 달리기 속도로 뛰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서 형님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여기... 맞지?"
" 응. 지도 상 위치는 여기가 맞는데.."
" 하.."
우리가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에 컨테이너만 잔뜩 쌓여있는 일종의 창고 같은 곳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곳에 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재효는 큰 실망감에 자리에 누워버렸고 나도 허탈한 마음에 구석 공터로 가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