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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25화 (22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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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기태는 컨테이너 꼭대기에 앉아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먼 산을 바라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나는 그런 기태 옆으로 가서 같이 담배를 피우며 말을 했다.

" 녀석들이 몰려드는 예상 장소가 어디야?"

" 어디긴. 뻔하지 서울."

" 젠장.. 불에 뛰어드는 나방 꼴인데?"

" 저 숫자라면 서울에 있는 생존자들은 씨가 말라."

" 그럼 생각보다 더 빨리 서울 청소 작업을 진행 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

" 아마도.. 도대체 무슨 무기를 사용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 설마 멍청이 같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지."

" 모르는 일이야. 세상에는 멍청이가 많으니."

나도 기태를 따라 먼 산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들이 우리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고 컨테이너 아래로 내려가 애들이 차린 진수성찬을 먹으려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열흘간 우리는 최대한 많은 양을 가져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각자 차량을 선택하고 최대한 많은 양을 적재할 수 있게 테트리스 게임처럼 차곡차곡 짐을 싣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비축된 양이 많아 적재할 공간이 점점 부족하게 되었다.

" 가능한 식량은 유통기한이 긴 식품부터 챙기고 무기는 화력이 강한 녀석들만

챙기자."

" 아깝다.."

" 어쩔 수 없어. 트레일러 차량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네."

무기와 탄약을 적재하며 다들 구슬땀을 흘렸다. 실제는 땀이 날 정도의 작업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작업을 마무리하고 쉬고 있던 중 무전을 듣던 미란이가 소리쳤다.

" 오빠!! 오빠!! 내려와 봐!!"

" 왜?!"

" 무전에서 뭔가 오가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알았어!"

재효는 3층에서 바로 1층으로 뛰어내렸고 바로 미란이에게 무전기를 받아 듣기 시작했다.

" 흠... 젠장...생각보다.."

" 왜? 무슨 일이야?"

재효가 내려오는 소리에 박 중사와 손 병장도 무전기 근처로 몰려들었다. 무전을 듣던 재효는 무전기를 박 중사에게 넘기며 말했다.

" 생각보다 서울 청소 작업이 일찍 시작되려나봐. 무전으로 피하라는 내용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 그리고 감염 비둘기가 엄청나게 늘어났나봐. 전멸된

구역도 상당하고."

" 그럼 우리도 가능한 빨리 움직이자."

" 어디로 갈 생각이야? 예전처럼 강원도로?"

재효의 말에 박 중사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 아니.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가자. 정말 만약..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서울에서

멀어지는 것이 상책이야. 가능한 멀리 멀리."

" 만약을 대비하자는 이유군.."

" 정말 서울을 청소할 생각인가? 예전과 다른데? 갑자기 생각을 바꾼 이유가

뭘까?"

" 윗선이 물갈이가 됐거나 뭔가 변화가 생겼나봐?"

다들 갑자기 변한 본부대의 생각에 의문이 생겼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뭐 이제는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기에 다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대로라면 경고도 없이 바로 폭격을 가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하고 거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곳에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 이제는 챙길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챙겼어. 아쉽지만 놓고 가야할 것은 놓고

가야지."

박 중사의 말에 일행들은 아직 남아있는 식량과 무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적어도 폭격하는데 일주일은 걸릴 것 같으니까 그 안에만 떠나면 될 것

같습니다.."

" 일주일?"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김 병장의 말에 박 중사가 물었다.

" 제가 나왔을 당시에도 파일럿은 몇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파일럿도 나이가

많아 일반 전투기를 운용하는 것도 버거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남쪽에 있는

생존자 기지에 충원을 요구했는데 바로 출발한다해도 일주일은 걸릴

상황이었으니까요."

" 그..정도로 도로 사정이 열악해?"

" 도로 사정도 사정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고 충원을

해줬으니까요. 뭐 그들이라고 좋을 것도 없으니까요."

" 그렇군. 그런데 우리가 그런 무기가 있나?"

" 그런 상황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있으니까 폭격을 가하려고 하겠죠.

그래도 다른 생존 기지에서 크게 협조적이지 않으니 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아무리 무전으로 난리를 쳐도 뭔가 있어야 공격을 할 것이고 그리고 제가

아는 본부대 인원들이라면 진짜 공격할 상황이 된다면 저런 무전도 할 리

없죠. 바로 떨어뜨리겠죠."

" 그 정도야?"

" 자기들 살려고 뭔 짓을 못하겠습니까. 예전부터 그랬는데요."

뭔가 겪은 것이 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뭐 우리도 예전 생존 구역에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방벽을 치고 버티는 사람들을 봤으니 김 병자도 못 봤을리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함인지 재효가 식량 창고에서 고기를 꺼내오며 말했다.

" 어차피 남은 것도 많은데 있는 동안 배터지게 먹자고!!"

" 그래요! 두 번 다시 못 먹을 것들도 있으니!! 먹다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고

하는데 실컷 먹자고요!"

일행들은 각자 먹을 것을 골랐고 우리는 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입에 침이 고이는 향이 건물 내부에 진동했지만 어차피 주변에 다른 생존자들도 없는 마당에 신경 쓸 것도 없었다.

" 캬아!!!"

" 맛있다!!"

인원들은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젓가락을 움직였고 꽤 많은 양의 고기와 식량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차피 여길 떠나면 먹지 못할 음식이니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 하아.. 배부르다.."

" 진짜.. 오래만에 제대로 먹었다."

일행들은 통통하게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 투둑...투둑.."

" 응??"

" 비가 오나봐?"

" 조금 전까지 날이 맑았는데?"

" 이놈의 날씨는 무슨.."

하늘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컨테이너에 부딪히며 소리가 울려 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하.. 비만 내렸다하면 정말.."

나는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하게 감염체 사태 이후 비가 내렸다하면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 우선 차량을 선택해야 하는데.."

카라반이 두 대에 모터 홈까지 있어 숙식에는 문제가 없었다.

" 아무래도 카라반은 운전 경험이 있는 재원이가 운전하면 되겠고 트레일러는

내가 나머지는.."

박 중사는 각자 능력에 맞게 차량을 지정해줬고 다들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근처에 생존자도 감염체도 감염 비둘기도 거의 없는 상황이고 건물도 외부에서 본다면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기 힘든 형태라 우리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편히 쉬기로 했다.

" 하아... 정말 얼마 만에 편히 자는 밤인지.."

" 그 동안 다들 고생했어. 오늘은 푹 쉬자고."

" 이제 나갈 사람 없지? 문 잠근다?"

" 응!"

우리는 그래도 혹시 몰라 철저히 문단속을 했다. 괜히 문이라도 열어 놨는데 지나가던 감염체가 뭐지하고 들어왔다 몰살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 혹시 모르니 다들 문단속 잘하고.."

" 그럼.."

" 안녕히 주무십쇼."

각자 정한 카라반과 모터 홈으로 들어갔고 정말 오랜만에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 크아.."

" 잘 잤어요?"

" 응? 벌써 일어났어?"

" 네. 미란이 언니하고 아침 준비하느라고요."

" 아.."

" 먹을게 있을 때 한 끼라도 잘 챙겨먹어야죠."

은혜는 이미 일어나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미란이와 보미와 함께 아침을 준비하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 하암.."

다시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이미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밥도 안 먹고 자는 나를 깨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 오래 자는 것을 이제는 은혜도 알기에 그냥 둔 것이다.

" 드디어 일어났네요? 배 안 고파요?"

" 지금은 별로.."

" 배고프면 밖에 아직 남은 음식이 있으니 먹어요."

" 어디가?"

" 저녁 준비 하러요."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식사만 준비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 도대체 뭘 준비 해? 아침부터 식사 준비만 하는거야?"

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말을 하자 은혜가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 언제 또 우리가 이렇게 먹을지 모른다고.. 보미 언니가 최대한 잘 챙겨 먹자고

해서 다들 열심히 요리하고 먹고 그렇고 있어요."

은혜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매번 도망 다니고 이제는 도망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어쩔 수가 없다보니 다들 현재의 생활에 최대한 만족과 수긍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카라반을 나가니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듯 빗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은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했고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하니 짐을 옮기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 응?"

하지만 2층과 3층 어디에도 남자들은 보이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들은 얼굴이 퉁퉁 부운 상태로 카라반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그 동안의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선택한 것이다.

" 다들 그래도 피곤 좀 풀렸나? 얼굴 상태는 별로인데 표정들은 좋아 보이네?"

" 진짜 오랜만에 푹 잤다. 진짜 편하게."

" 하암.."

" 다들 일어났으면 식사하세요!"

우리가 일어나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보미가 외쳤다. 일어나자마자 뭔가를 먹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와 다르게 다들 부리나케 식사가 준비된 곳으로 이동했고 거하게 차려진 식사를 보며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남자들은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적재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이미 최대치를 넘긴 상태였다. 정말 잠을 잘 공간을 제외하고는 식량과 무기. 그리고 생필품으로 가득 찬 차량을 보고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인데.."

" 차량이 너무 무거워. 연비도 최악일텐데."

" 더 이상 적재할 공간도 없어. 기동성 정말 최악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 조심히 움직여야지. 그렇다고 짐을 덜고 갈 수는 없지. 최대한 많이 실어야

하루라도 더 살지."

" 기동성이 생명인 상황에 이렇게 무거워서야.."

박 중사도 우리의 차량을 보고 한 마디 했다. 더 이상 무거워 지는 것은 기태의 말대로 위험한 상황에 기동성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들어갈 공간도 없었다. 다른 차량을 구해 최대한 많이 적재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현재 차량도 6대를 움직이는 상황에 더 추가로 움직이는 것도 무리였다. 아쉽지만 지금 현재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 아쉽지만..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이야."

"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자. 아깝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남은 물건을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목적지를 정하고 이동 경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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