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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너무 냄새가 난다면 다른 생존자들의 의심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간단하게 차려 먹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옹기종기 모여 뭔가를 잡는 모습도 보였고 멀리서는 낚시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산 중턱에는 사냥을 하려는 듯 창과 총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나와 박 중사도 가능한 허름하게 차려입고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본 것과 다르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는 모습이었다. 생선을 굽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내 코로 흘러들어왔다. 냄새가 날까 제대로 챙겨 먹지 못 한 우리 행동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생활하네?"
" 인간이란 적응에 빠른 동물이니까. 그나저나 사람들이 엄청 많네."
우리는 해변을 걸으며 말했다.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밝았다.
" 허.. 여긴 뭐야?"
" 생각보다.. 진짜 평화로운데?"
우리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어르신이 보였고 그 근처에서 앉아 낚시 수확을 관찰했다.
" 못 보던 청년이군. 이번에 온 피난민인가?"
" 네.. 얼마 전에 근처에 왔습니다."
어르신은 우리를 슬쩍 보고는 말을 했다.
" 허허.. 점점 인원이 늘어나는구만.."
" 원래는 없었나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없었지.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했어.
불과 보름 정도 됐나?"
" 아.."
" 덕분에 평화로웠던 마을도 하루도 조용할 일이 없게 됐지. 뭐 나름 자경단도
있기는 하지만 크게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경단까지 있을 정도면 자리를 잡은지 꽤 됐다는 소리인데 그 전에 보름 정도 됐다는 말을 들은 상황이라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 보름 만에 모인 인원인데 자경단이 빨리 생겼네요?"
"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니 누군가는 잡아줘야 하지 않겠나."
어르신의 말에 우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생겼기에 자경단까지 만들 정도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그래도 자경단이 생기고 조금은 조용해졌지. 자네들도 조심하게나.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니."
" 조언 감사합니다."
" 조언은 무슨.. 그나저나 어디에 자리를 잡았나?"
" 저기 산 중턱에 잡았습니다."
" 허허.."
어르신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왜..왜 그러시는지..?"
" 그 근처에 생존자들이 없지 않나?"
" 네.."
" 생존자가 없는 이유가 있으니 없겠지. 그 근처에서 야생 멧돼지나 개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서 그 근처에서 생존자들이 자리를 잡지 않았다네."
" 야생..돼지와 개라.."
" 뭐 능력만 된다면 크게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보시다시피 변변한
무기도 없는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나는 박 중사와 눈이 마주쳤고 어쩐지 생존자들이 없는 이유를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이왕 왔으니 어느 정도는 여기서 머물 생각이겠지? 자네들은 젊으니 잘
생각해서 행동하게나."
" 무엇을 말입니까?"
" 지켜보면 알 것이네. 그럼 난 수확이 좋다보니 일찍 들어가야겠네."
" 네. 감사합니다."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어르신은 낚싯대를 접었다. 우리는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고 걸음은 느리게 눈은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생존자들이 모인 곳은 평화로운 광경만 보였다. 자경단으로 보이는 다섯 명의 인원이 무장을 하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장이라고 해봐야 소총을 들고 있는 인원은 한 명뿐이었고 네 명은 창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 저 총 탄약이 있을까?"
" 글쎄.. 뭔가 묵직해 보이기는 하는데.."
우리가 자경단을 유심히 바라보자 우리의 시선을 느낀 자경단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 젠장.. 너무 쳐다봤나?"
" 왜 오지?"
단순히 쳐다봤다고 시비를 걸러 올리는 없었다.
" 못 보던 인원인데 이번에 온 건가?"
나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녀석이 대뜸 반말을 하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듯 행동하는 녀석을 보니 살인 충동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 속마음을 알았는지 박 중사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 네. 이번에 저 산 중턱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 흠.. 저 산이라면 우리 구역이 아닌데. 볼일 없으면 여기서 꺼지고."
" 이.."
내가 울컥하는 마음에 팔을 들려고 하자 박 중사도 나를 잡은 팔에 힘을 주고 말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박 중사는 바로 등을 돌려 마을을 떠났다.
" 왜 막은 거야?"
" 자경단이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수도 있어. 당장은 뭐 어쩔 수 있다고 해도
몰려오면 골치 아파."
" 상관없어. 압도적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겁 먹고 안 올걸?"
" 인간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하는 법을 아는 존재다."
" 쳇."
박 중사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빠른 속도로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응?"
" 왜?"
잘 가다 박 중사가 걸음을 멈췄고 박 중사가 걸음을 멈춘 곳에는 모양이 그려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 구역을 의미하는 건가?"
" 글쎄.. 다른 곳도 한 번 가보자."
생존자 구역은 마치 작은 마을처럼 나눠져 있었다. 중간 중간에 서 있는 깃대의 모양은 확인된 것만 3가지였다.
" 아마도.. 그 자경단이.."
" 마치 조직 폭력배 구역 다툼을 보는 것 같네. 자신의 구역에 있으면 뭔가를
받고 다른 구역의 침략을 막는 것처럼."
" 대단하네?"
" 뭐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겠지. 생존자들 표정이 밝은 것을 보아 우리 생각
보다 나쁜 상황은 아니겠지."
" 흠.. 그럼 우리가 있는 지역은 따로 관리하는 자경단이 없다는 소리겠군?"
" 누가 거기 살겠니. 야생 동물들이 득실거린다잖아."
" 그래도 핑크가 있으니 걱정은 없지."
" 신기한 녀석이야. 잘 짖지도 않고."
" 뭐. 성격이겠지."
나는 천천히 산을 오르며 말했다. 가는 길이 제법 험하긴 했지만 크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르기 편한 길보다 험한 길이 우리에게는 좋았다.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에 몰래 오기가 힘들 것이니 말이다.
" 그래도 전망은 좋다."
" 후.."
멀리서 주변을 보니 산 중턱에 우리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인원이 제법 보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위장을 철저하게 했는지 내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인원도 제법 되어 보이는 생존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자경단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거나 그들에게 뭔가를 상납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산 중턱에 자리를 잡을 것일 수도 있다.
" 주변 나무를 더 베어 와서 주변을 좀 가리자."
" 지금도 충분한 것 같은데.."
"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박 중사는 더 철저하게 위장을 하자는 의견을 내었고 나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완고한 박 중사의 의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기태는 수시로 주변을 감시했고 나와 박 중사는 주변에 나무와 자재들을 모아와 차량을 가렸다.
" 무슨 통나무집을 만든 것 같은데.."
" 이 정도면 되겠지."
" 이미 차고 넘친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잠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지내야할 곳을 정리가 끝날 때 즈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바닷가 근처 생존자들도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부지런히 하던 일을 끝내고 자신들만의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간간이 보이던 자경단들도 어디론가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 정말... 사람들이란 신기하지.."
" 응?"
박 중사의 중얼거림을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물었다.
" 세상이 변하면 사람들은 그 변화에 맞춰 적응하는 모습이.. 자신이 힘이 없으니
힘이 있는 자에게 기대고.. 힘이 있는 자는 더 많은 권력을 원하고."
" 뭘 적응이냐. 원래 그랬는데."
" 그런가?"
박 중사는 내 대답에 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박 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우리만.. 우리만 신경 쓰자."
" 그래.."
우리는 서로 멋쩍게 웃으며 돌아섰다.
건물에 들어가 무전기를 가동해 혹시나 오가는 무전이 있나 확인을 했지만 주요 채널에서도 오가는 무전이 없었다.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면 분명 무슨 무전이라도 할텐데 무전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산 중턱이라 수신율이 별로 인가?"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무전기 이래도 최신 기종입니다."
" 난 군대에서 쓰는 물건이 최신품이라는 말이 제일 신용이 안가."
재효의 말에 다들 웃었다. 솔직히 군에서 나보다 오래된 물건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수통만 해도 25년이 넘은 것도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 하긴..."
" 혹시 모르니 근무를 서면서 무전도 같이 듣자. 지금이야 여기가 평화롭다고
하지만 언제 서울처럼 변할지 모르는 일이야."
박 중사의 말에 다들 근무를 준비했다.
" 2인 1조로 편성하자. 위치가 위치다 보니 위험할 수 있으니. 1명은 저격총으로
장거리를 감시하고 1명은 기관총과 유탄으로 무장하자."
" 알겠습니다."
" 건물 옥상이 없으니 건물 앞에서 근무를 서자. 산 속이라 밤이 되면 쌀쌀할 수
있으니 여분 옷들 챙기고."
" 이제부터 시작인가."
지금까지 며칠간의 평화를 끝으로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갔다. 내 근무 시간은 어정쩡한 중간 근무였기에 빨리 잠을 자둬야만 했다.
" 킁!"
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핑크도 나오려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손짓으로 들어가라 했고 몇 초간 나를 바라보던 핑크는 은혜 곁으로 돌아갔다.
" 후우... 산 속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쌀쌀하네."
" 남쪽이라고 전부 따뜻한 것은 아니었지 말입니다."
" 민수야. 말 편히 하라고 몇 번을 이야기 하냐.. 너 때문에 자꾸 김 병장이라고
부르게 되잖아."
" 하하! 죄송합니다. 습관이 되다보니.."
" 뭐.. 천천히 고쳐나가면 되지. 안 추워?"
" 괜찮습니다. 야상을 입었더니 좀 괜찮습니다."
" 버틸만하면 안 되지. 그러다 괜히 몸살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최대한
몸 관리를 하면서 버텨야지."
" 네. 감사합니다."
" 네가 저격 총을 잡을래? 소총을 잡을래?"
"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 그래? 그럼 반반씩 잡자. 처음 45분은 내가 저격 총을 잡을게."
" 알겠습니다."
민수는 내 말에 웃으며 말을 했다. 나는 돗자리를 깔고 엎어져서 저격 총의 초점을 맞췄고 마을 곳곳을 망원경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마을 안의 움직임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간혹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사람과 가끔 지나가는 자경단 인원이 보일 뿐이었다. 아직도 구할 수 있는 담배가 있다는데 신기했다. 그래도 자경단원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지 정해진 길로 규칙적으로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 자경단원이 생각보다 군기가 있나봅니다. 보는 사람도 없어서 어디 짱박혀서
잠이라도 잘 것 같은데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 잘못생각하고 있나?"
" 아직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으니 섣불리 판단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 하아.. 이러나저러나 위험투성이야. 미쳐버리겠네."
"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어디입니까?"
말을 하는 민수의 표정을 무척이나 어두웠다. 뭔가 사정이 있을 것 같았지만 괜히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꺼내보라고 하는 것도 미안했기에 별 말없이 마을을 둘러보는 작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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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편은 연타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