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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다음 근무자인 박 중사와 홍렬이가 나와 교대가 이뤄졌다.
"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어. 마을에 있는 자경단이 생각보다 부지런한 정도?
그리고 생각보다 마을 사람이 가진 담배가 많다는 점?"
" 무슨 소리야?"
" 어디서 보급을 받는 건지 모르겠는데 비교적 부유하게 생존한 우리보다
담배가 더 많다는 건 다른 식량이나 생필품에도 여유가 있다는 뜻 아닐까?"
" 흠.."
" 솔직히 담배는 기호식품에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마을을 보면 한 시간에
몇 사람씩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자경단 인원도 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더라. 서울도 아닌 이런 한적한 동네에 저
많은 인원을 만족하는 담배가 있다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니냐?"
" 뭔가 어디서 보급을 받는다라.."
" 아니면 직접 재배를 해서 잎담배를 말아 피울 수도 있습니다. 가까이 본 것이
아니니 아직.."
" 홍렬이 말도 맞아. 이 마을 뭔가 뒤죽박죽에 앞뒤가 안 맞는 일도 많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 아무래도 우리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니 조심하고."
" 언제는 좋은 상황이 있었냐. 수고해."
나는 박 중사를 뒤로 하고 은혜가 자고 있는 카라반으로 들어갔다. 깊게 잠이 든 은혜 옆 내 자리에 핑크가 자리를 잡고 누운 모습이 보였다.
" 녀석.. 내 자리인데.."
내 말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다시 잠을 청하는 녀석을 밀어내고 나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끄아아!!"
" 잘 잤어요?"
" 응?!"
보통은 나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던 은혜였는데 내가 일어났는데도 내 옆에 누워있는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 뭘 그리 놀래요."
" 아니.. 보통 내가 일어나면 자기가 없었는데.. 그래서.."
" 오늘 아침은 미란 언니가 하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저도 늦잠도 자고
해보려고요."
" 그래그래! 가끔은 사람이 늦장도 부리고 해야지! 언제까지 딱딱하게 살 수는
없지!"
어차피 카라반에 들어올 사람도 없었기에 아침부터 사랑의 행위를 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카라반 사이가 너무 가까운 상황이었다. 거의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들리는 상황이라 눈물을 머금고 가벼운 입맞춤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 뭐 특이한 행동이나 그런 것 좀 있어?"
" 아니.. 그냥.. 평범해...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난민촌 수준이야."
" 흠.."
" 감염체다!"
" 응?!!"
감염체의 공격이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이라 다들 당황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종을 울리더니 남자들이 나와 감염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도망가기 바쁜 상황이 연출되는데 이곳의 대응방법은 지금까지 와는 달랐다.
" 꽤 체계적인데? 소총이나 다른 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엄청 긴 창으로
공격하네? 경험에서 나온 전투 방법인데?"
" 자경단이란 존재. 우리가 생각했던 존재가 아닌가?"
" 모르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을지도."
우리는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몰려든 감염체를 공격하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운이 나쁜 상황인지 다른 방향에서도 감염체가 몰려들기 시작했고 주변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나와 감염체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염체의 숫자에 비해 마을 사람들이 월등히 많은 상태라 상황은 금방 정리가 되었다. 확인 사살을 하고 한 곳에 모아 태우고 정리하는 시간은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여기는 감염체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니라 감염체 공격을 잘 막는 곳이었구나."
" 대단한데? 저런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우리보다 효율적으로 막네?"
" 사람들 단합 봐라. 엄청나잖아? 저 정도 숫자가 모이고 공격하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어. 확실히 공격조와 수비조. 그리고 뒤처리조가 나눠진
모습이야. 누가 지휘하는지 몰라도 존경스러울 정도야. 저 인원을 저렇게까지
반응할 수 있게 훈련을 시키다니."
" 덕분에 우리는 안전하네. 감염체가 여기까지 올 리가 없으니."
" 그런데 여기 야생 동물들이 많다고 하던데.. 괜찮겠지?"
" 그래봐야 멧돼지 야생견인데.."
" 야생견의 무서운 점은 몰려다니는 습성인데.."
" 우리에게 핑크가 있잖아!"
재효의 말에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핑크라고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줄 아냐? 저 녀석도 한계가 있다고."
아직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이 된 녀석이 없어서 안심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심이 풀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아우우우!!!"
" 늑대..야?"
" 서..설마..."
멀지 않은 곳에서 영화 속에서 듣던 울음소리가 들리자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건물 안에서 그것도 차량 안에서 생활을 하니 뚫고 들어올 가능성은 적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 외벽을 보수 할 수 없겠지?"
" 너무 늦었어. 괜히 소음으로 저것들 시선을 끌지 말자."
" 불안하네."
" 아오오오!!"
" 저 녀석들은 목도 안 아픈가? 계속 울어!"
미란이가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들 신경이 예민해진 상황이라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기에 조금은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 다들 너무 걱정마. 아무리 개들이 무리를 지어 온다고 하더라도 차량 안까지
들어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 네.."
은혜도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다 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아우우우!!"
" 으으으..."
" 저 녀석들 뭐야?"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 몸에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점점 가까이 들리는 울음소리에 일행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근무를 서는 사람들도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 바스락!!"
" 철컥!!"
" 워워!! 바람소리야!!"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에 민수가 반응하며 장전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며 총을 잡았다. 벌써 이런 반응만 한 시간 동안 열 번이 넘었다.
" 진정해.. 진정해.. 정말로 왔다면 소리가 엄청 많이 들리니 너무 긴장 하지마."
" 죄송합니다."
" 뭐가 죄송해. 진정하고 커피 한 잔 마셔."
" 감사합니다."
나는 구석에서 불빛이 세어나가지 않게 조심하며 물을 끓여 커피를 탔다. 뜨거운 커피가 목을 넘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따뜻한 음료가 들어가자 약간은 진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 울음소리가 점점..가까워..젠장.."
" 철컥!!"
건물 뒤를 돌아 순찰하던 중 몇 마리의 개가 보였다. 하지만 개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대한 크기였다.
" 뭘 먹고 컸는지는 알겠는데 생각보다 크다?"
" 일행들을 깨울까요?"
" 걱정마. 네가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서 나오네."
기태와 박 중사도 무기를 챙겨 나오는 모습이 보였고 홍렬이와 성빈이도 무기를 챙겨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들은 안전을 위해 한 차량에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핑크는 짖지도 않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들개를 위협하는 모습이 보였다. 들개들도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지만 기 싸움에서 눌렸는지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 신기하네. 핑크한테 겁먹었나?"
" 그런 것 같은데? 싸우지도 않고 기에 눌려버리네."
" 다행이네."
하지만 들개들은 우리를 피해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내려가는 것 같은데 과연 예전의 들개와 비슷한 성향일지 아니면 감염 비둘기처럼 변했는지 궁금했다. 유심히 들개들의 움직임을 지켜봤지만 사람을 보면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들개들은 변한 것 같지는 않았다. 자경단원들이 창과 막대로 위협을 가하자 역시나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 흠.. 들개들은 큰 위협은 안되네."
" 어...하지만 저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 쿠흥!!"
" 아놔.."
거의 송아지만한 멧돼지가 우리 뒤에 콧바람을 크게 내쉬며 뒷발을 굴리고 있었다.
" 젠장.. 저 녀석 잡으면 먹을 수 있나?"
내 말에 박 중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 상태를 보니 먹으면 탈 날 것 같다."
" 그럼 어쩐담?"
" 뭘 어째! 잡아야지!!!"
" 쿠옹!!"
멧돼지는 무식하게 우리에게 돌진하기 시작했지만 내 앞에 다가오기도 전에 핑크가 중간에 뛰어와 목덜미를 물고는 공중으로 들어 바닥에 패대기 쳤다.
" 쿠웅!!"
" 와..."
나는 칼을 들어 자세를 취하고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바로 베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핑크가 나설 줄은 몰랐다.
" 어디가?"
핑크는 그 큰 멧돼지를 끌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 어디 가는 걸까?"
" 들개들 주러가나?"
" 응? 그 정도로 지능이 좋은가?"
" 지금까지 봤을 때 특별히 훈련이나 뭘 해본 적이 없는데 저렇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지능은 꽤 높은 것 같은데?"
" 하긴..."
저렇게 가도 다시 올 것을 알았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마을을 바라봤다. 들개들은 쓰레기를 버린 곳이나 음식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는 모습을 봤다.
" 지잉..."
" 응?"
" 어?"
" 뭐지?"
아주 미약하게 느껴진 진동. 그리고 울림. 우리는 뭔가 느껴지는 불안감에 서로를 바라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 울림과 진동.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느낄 수 없었다.
" 설마.."
" 아마도.."
" 정말로 쏠 줄이야."
"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잖아?"
보통 사람인 성빈이 일행을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며 우리는 서울 방향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눈치껏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는지 성빈이 일행도 말없이 주변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도 우리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집에서 나와 우리처럼 서울 방향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보였다. 이내 그 사람은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 저 사람도 우리와 같네."
" 이제는 심심치 않게 보이네."
" 적대적이지 않겠지?"
기태의 말에 나는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 적대적이면 어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적이 될 것을.."
나는 다시 서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