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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새벽이 되어 무전을 듣던 홍렬이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서울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 예상했던 일이잖아."
" 그..그게 순서가.."
" 응? 순서?"
" 감염 비둘기가 완전히 쓸고 가서.. 어쩔 수 없이 폭격이.."
" 응?"
" 살아남은 부대의 무전에 따르면 잔여 감염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반 감염체 감염 비둘기 할 것 없이 말입니다."
" 그래도 걸어오려면 몇 달을 걸릴걸."
" 하지만 비둘기는 상황이 다릅니다. 언제 여기까지 올지 모릅니다."
" 그래도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 좀 걸릴걸?. 너무 걱정 하지마."
" 하지만.."
"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걱정하지 말라고."
" 네."
내 말에 뭔가 말을 하려던 홍렬이가 입을 다물었다. 내 평온한 표정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 도대체 뭘 믿고... 저리 평온할까요?"
" 저 자식? 원래 저랬어."
멀리서 기태와 성빈이가 하는 이야기가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마을에도 무전이 되는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일반 감염체는 어찌 상대한다해도 하늘에서 공격하는 감염 비둘기는 저들도 상대하기 껄끄러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뭔가 뾰족한 대비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집을 보수하는 것이 전부였다.
" 저.. 저희는 뭔가 안 해도 될까요?"
" 우리? 이대로 튼튼해서 괜찮아. 어차피 여기서 계속 있을 것도 아닌데."
" 네?"
여기 계속 있을 것이 아니라는 말에 성빈이가 놀라며 말했다.
" 한 곳에 계속 있는 것은 위험해. 있어봐서 알잖아? 감염 비둘기가 몰려오면
다시 위로 올라가면 돼."
" 하지만 서울은 지금!!"
" 알아. 거기까지 올라갈 것도 아니고 저들도 생각을 하고 뭔가를 떨어뜨렸겠지.
그게 핵이던 뭐든. 바람의 방향을 생각을 하고 터뜨렸겠지."
"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 아무튼 우선은 여기서 있는 편이 안전하니 안심해."
" 네."
나는 성빈이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성빈이 일행을 제외하면 우리 일행들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적응했으니 또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 반복에 반복이구나."
" 인생 뭐 있냐?"
" 진짜 너 천하태평이다?"
" 풋."
기태의 말에 웃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끝이 온다. 이제 슬슬 그 끝이 올 것 같은 예감에 최대한 여기서 머무를 생각이었다.
" 끙차."
난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바라봤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는 내뱉었다.
" 후우.. 이제는 갈 곳이 없군."
땅 끝까지 도망 온 상황에 더 이상 갈 곳은 없었다. 말을 그렇게 했어도 우리의 종착지는 여기였다. 아마도 기태와 박 중사는 알 것이다. 그래서 내 말에 반박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최후 결전 지역은 아마도 이곳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 진동 후에 점점 감염체의 공격 횟수가 증가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잘 막는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식량이든 체력이든 말이다.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고 마을의 숫자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이곳에서 거의 보이지 않던 감염 비둘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감염 비둘기의 시야에서 벗어난 듯 우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이제 슬슬 여기까지 몰려오네."
" 하아.."
" 준비하자."
일반 감염체는 마을에서 벗어난 생존자들이 산으로 가는 것을 보고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칼을 챙겨 들고 감염체들이 몰려오는 산 초입구로 내려가 감염체를 제거해 가기 시작했다.
" 쿵.."
" 다행히 예전처럼 다시 살아나지는 않네."
" 빌어먹을. 저 숫자 봐.."
마을 저 편에서 가득 몰려오는 감염체를 보고 박 중사가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감염체를 막고 있었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간 숫자였기에 진격속도를 늦추는 행위조차 하지 못했다.
" 젠장! 이대로는!"
마을 사람들은 욕을 하며 후퇴하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박 중사를 보고 말했다.
" 물러나."
" 너.. 설마 여기서 변할.."
" 미쳤냐? 그냥 날 뛸 생각이니까 혹시 모르니 물러나라고."
" 알았다."
박 중사는 나를 피해 멀찌감치 피했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칼을 움켜지고 몰려오는 감염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 퍼억!!!"
한 번의 칼질에 몇 녀석의 머리가 육체와 분리되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수 십 미터를 전진하며 내 뒤에는 두 번 죽은 시신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 콰앙!!!"
" 쳇!!!"
주변에 보이는 버려진 자동차를 힘껏 던졌지만 워낙 숫자가 많은 감염체로 인하여 얼마 가지 않아 힘을 잃고 멈췄다.
" 괜찮냐?"
" 뭐하러 왔어?"
언제 왔는지 박 중사가 옆에서 열심히 감염체를 제거하면서 말했다. 내가 걱정됐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기태와 재효도 보이는 것이 아마 홍렬이 일행을 숙소에 두고 모두 온 것 같았다.
" 숙소는 안전하냐? 전부 오면 어쩌자는 거야?"
" 애들 있으니 걱정마."
" 하아... 그냥 평범한 애들을.. 하다못해 재효라도 남겨뒀어야지!"
" 걱정 말라니까! 애들도 잘 한다고! 조금은 믿어봐라!"
" 푸욱!!!"
우리 넷은 열심히 감염체를 제거해갔고 일반인과 전혀 다른 스피드와 힘. 그리고 체력으로 인해 비교적 쉽게 주변이 정리되는 모습이었다. 완전히 후퇴했던 생존자들도 우리의 전투를 보고 다시 몰려와 주변 감염체를 제거해가니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 신기하네. 보통은 그냥 도망가는 경우만 봤는데 여기 마을 사람들은 다시
오네?"
" 저들도 알겠지. 여기가 밀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 .... "
내 말에 박 중사는 말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끝도 없을 것 같던 감염체는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고 잔챙이들은 마을 자경단원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서둘러 제거하고 있었다.
" 감염 비둘기다!!"
" 젠장!! 도망가!!!"
널려 있는 시신을 보고 감염 비둘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모였던 인원들은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도 서둘러 산으로 올라갔다.
" 허억...허억.."
" 귀신같이 알고 오네."
" 우욱..."
잔인하게 시신을 뜯는 비둘기를 보고 자경단원이 한쪽에서 먹을 것을 게워내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언제 봐도 잔인한 광경에 다들 시선을 돌렸다.
" 절대 적응되지 않을 광경이군."
" 빌어먹을."
" 돌아가자."
기태의 말에 우리는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는 완전 무장을 하고 주변을 경계하는 홍렬이 일행이 보였다. 저렇게 무겁게 무장을 하면 민첩성이 떨어질 것 같은데 잘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다.
" 무거울 것 같은데 잘 움직이네."
" 제들도 적응이 됐겠지. 어서 들어가자."
" 마을 사람들은?"
" 알아서 피난 갔겠지."
다행히 마을 생존자로 보이는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감염 비둘기들은 널려진 시신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자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 후우..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네."
" 하아.."
긴장이 풀려버린 탓에 다들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통에 물을 들이키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 자경단원으로 보이는 인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 아닙니다. 다들 무사하신지요?"
이런 일에는 박 중사가 처리를 잘하는 관계로 보통은 박 중사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길게 하는지 박 중사는 자경단원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한참이 지난 후에 마무리가 됐는지 우리에게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해?"
" 뭐.. 우리 움직임을 봤으니 도와달라고.."
" 그래서?"
" 우리도 여기 오래 있을 것이 아니라고 했어. 있는 동안 감염체가 온다면
최대한 협조는 하겠다고 했고."
" 마음도 좋다."
" 어쩔 수 있냐. 괜히 삐딱하게 나가서 미움 받을 수는 없지."
" 잘했어."
우리는 각자 차량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며 저녁을 준비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즘 안전한 것이 확인된 마을 사람들도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생존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마을 외에도 다른 피난 구역이 있는 것 같았다.
"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만큼 반응속도와 훈련이 잘 되었다는
증거겠지."
" 그렇지.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살아남기는 어렵지."
대충 차려진 식사를 먹으며 말했다. 해가 넘어가면서 산속의 기온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겉옷을 챙겨 입으며 박 중사가 말했다.
" 자. 오늘도 순번을 정해서 근무를 서야지."
" 아.. 언제쯤 근무를 안서냐.."
" 그러게 말이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근무를 서야하는 상황이 고달팠지만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었으므로 다들 투덜거리기만 할 뿐 자신에 일에는 충실했다. 공평하게 오늘 초번은 내일 두 번째 근무로 지정이 되는 형식으로 돌아갔기에 오늘 나는 애매한 중간 근무자였다.
" 흠. 오늘은 중간 근무네."
" 어중간..하네.."
나와 같은 조로 편성된 재효도 같이 말했다. 요 며칠 카라반에서 힘을 쓰는 소리가 들렸는데 피곤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게 신기했다.
" 능력이 발달되니 난감한 경우도 많아.."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뜬금없는 말을 했지만 난 대꾸 없이 그냥 미소를 지었다.
뭐 내가 들었다면 재효도 들었을 가능성이 컸기에 말을 하지 않았다. 소총 탄약과 수류탄을 챙겨 카라반으로 들어갔다.
" 고생했어요."
" 뭘... 오늘도 잘 넘어갔네."
은혜는 완전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요새 계속 긴장한 상태로 지내다보니 안색도 많이 나빠진 상태였다. 물론 은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지만 유독 은혜의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 무리하지 말고 쉬어. 요새 안색도 않좋은데.."
" 괜찮아요. 저만 쉴 수는 없죠."
억지로 웃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힘들어보였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소총까지 보였다. 아마도 긴급한 상황에 사용하려고 준비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소총을 바닥에 잘 내려놓고 은혜가 잠드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 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