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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침이 되어 마을을 바라보니 언제 그랬다는 듯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이미 다들 완전히 적응을 했는지 식량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감염 비둘기의 모습으로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박 중사는 나와 같이 마을로 내려가 자경단원을 만나기로 했기에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는 내려갔다.
" 어서 오십쇼."
" 네."
박 중사는 어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을에 나와 같이 내려왔다. 나 말고 다른 인원이 가라고 했지만 굳이 박 중사는 나와 같이 가기를 원했다.
" 귀찮은데.."
" 가.. 가서 이야기도 하고.."
" 에힝.."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허름한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자경단장으로 보이는 나이가 3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입을 열었다.
"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 아닙니다. 저희도 살려고..."
"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마을로 내려오실 생각은 없습니까?"
눈빛을 보아하니 자경단원으로 같이 활동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바로 그런 말을 꺼내기에는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생각 한 것이 마을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같은 공간에 있다면 감염체의 공격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마을에 피해는 많이 줄어들 것이니 말이다.
" 흠.. 저희는 크게.. 내려 올 생각이 없습니다."
박 중사는 어렵게 입을 열고 말을 했다. 아마도 여기 주거 상황과 우리 주거 상황은 천지차이였기에 괜한 오해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려와서 같이 생활하는 것은 꺼려졌을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일리는 없으니 말이다.
" 그런가요? 아쉽군요."
" 그래도 저희가 지내고 있는 곳에서 여기가 멀지 않으니 감염체가 온다면
저희도 바로 내려오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도 뭐라도 도움을.."
" 필요 없습니다. 여기 생활도 빠듯하신 것 같은데 저희는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있으니 우선 마을 사람들부터 챙기시죠."
내 말에 뭔가 기분이 나빴는지 약간 인상을 썼지만 이내 박 중사가 하는 말에 표정이 풀렸기에 알 수는 없었다.
" 최대한 저희도 도울 생각이니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올라 오셔도 됩니다."
"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저들 입장에서 우리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존재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퍼다 준다해도 고마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난 박 중사가 너무 나서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중사는 자경단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이미 해는 중천에 뜬 상태였다.
" 이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군요.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습니다."
" 아닙니다. 그럼 저희도 이만.."
"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처음 우리를 봤던 표정보다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하는 단장을 보고 나는 박 중사에게 말을 했다.
" 너무 퍼주는 것 아냐?"
" 저들도 양심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찾아오지 않겠지. 단장은
사람 좋아 보여 말을 했는데.."
" 모르지. 사람은 겪어 봐야 아는 것이니."
" 에휴... 넌 사람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터덜터덜 걸으며 말을 했고 박 중사는 내 말에 대꾸도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해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과 뭔가를 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뭘 줍는 걸까?"
" 조개 아냐?"
" 그런가.."
굳이 가까이 가서 볼 생각은 없었고 내 관심은 오로지 낚시를 하는 인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수확이 좋은지 낚시를 하는 인원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인원들이 바삐 낚싯대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그래도 뭔가 잡히나봐?"
" 가 볼래?"
" 그럴까?"
조개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낚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사람들은 열심히 뭔가를 낚는 모습을 보였고 그들의 수확물을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 말도 안 되는데.. 이 정도 크기가 정말 잡히나?"
"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인데?"
예전이라면 정말 월척이라고 부를 정도의 크기의 씨알 굵은 녀석들이 어망을 가득채운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서둘러 차에서 낚싯대를 챙겨 와서 미끼를 끼우고는 멀리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질이 시작됐고 낚시를 시작한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우리가 가져온 어망은 가득 차게 되었다.
" 이래서 여기에 생존자들이 많이 몰려있었구나."
" 이 정도면 대단한데? 며칠은 먹을 수 있는 양이야."
생각지도 못 한 수확에 나와 박 중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많이 잡아봐야 보관도 어렵고 이 정도 입질이라면 언제와도 수확은 비슷할 것 같았다.
"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가자!"
" 오늘은 제법 챙겨 먹을 수 있겠는걸?!"
들뜬 마음으로 박 중사와 나는 숙소로 올라갔고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다들 푸짐한 저녁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
" 빌어먹을.."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우리 주변으로 감염 비둘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불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저녁도 대충 먹으며 비둘기의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 저 녀석들이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야?"
" 저번에 포식 했으니 혹시나 하고 몰려든 것 아닐까요?"
" 서..설마요.."
우리 일행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해가 넘어가려는 듯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다행히 감염 비둘기는 우리 위에 오래 있지 않았다.
" 후우,.."
" 젠장.."
" 도대체 얼마나 빨리 날아왔기에 벌써 여기까지 온 거야?"
" 먹잇감이 주변에 없나봅니다.."
홍렬이의 말에 다들 홍렬이만 바라봤고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홍렬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 그나저나 큰일인데? 예상보다 너무 빨라."
" 뭐 .. 어쩔 수 없지."
"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내 말에 박 중사가 물었고 난 웃으면서 말을 했다.
" 또 도망가야지 별수 있냐."
·
내 대답에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고 나도 역시 홍렬이와 같은 신세가 되어 퇴장하게 되었다.
새벽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 감염 비둘기로 인하여 다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어디서 꼬셔왔는지 핑크가 처음에는 몇 마리의 들개를 끌고 왔는데 이제는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숫자가 모여 버렸다.
" 능력도 좋다. 도대체 이 많은 숫자의 개들을 어디서 끌고 온 거야?"
" 그나저나 애들이 무척이나 얌전하네요?"
" 그러게..."
생각보다 짖지도 않고 은혜가 다가가서 쓰다듬어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들개 무리를 보며 신기해했다. 처음과 완전히 다른 모습의 들개들을 보며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지금은 녀석들 보다 비둘기들이 먼저였다.
" 그래도 다행히 생존자들을 못 봤다나봐."
" 그런가? 아니면 저번처럼 뭔가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고."
" 그냥도 어려운 녀석들인데 지능까지 높다니."
까마귀가 지능이 높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비둘기가 이토록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몇몇은 지상으로 내려오려는 움직임도 보였지만 뭔가 불안한지 육지에 착륙하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착륙을 기다리면 매복을 하는 자경단원들이 보였지만 공격을 하는 비둘기의 눈치도 장난이 아니었다.
" 젠장.. 또 말려죽일 셈인가?"
예전에 당한 경험이 있는지 성빈이가 조용하게 욕을 내뱉으며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식량이 충분했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지 알 수는 없었다.
" 우선 불을 피우지 말고 내부에서 빛이 세어나가지 않게 조심을 하고.."
" 그런다고 저것들이 우리 위치를 모를까"
" 아마도. 알았다면 여기부터 뒤졌겠지."
마을사람들도 조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극도 시간이 지나면 담담해지듯이 감염 비둘기들이 지상에 내려올 모습이 보이지 않자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언제 내려와서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무척이나 위험했지만 사람들은 주변에서 먹을 것을 구하거나 취사를 하는 행위가 보였다.
" 너무 위험한데.. 언제 비둘기가 내려올지 모르는데 너무 무방비 상태야. 알게
모르게 지금 비둘기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하늘을 보니 비둘기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느린 속도지만 확실히 숫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으로 다가온 핑크가 데려온 들개들이 우리 주변을 지키듯 앉아 있었다. 그 숫자도 어마어마할 정도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녀석까지 한다면 족히 수백은 넘을 숫자였다.
" 그나저나 저 개들은 뭐 먹고 살지?"
" 주변에 멧돼지나 야생 동물들이 많다고 했으니 사냥해서 먹고 살지 않을까?"
" 대단한 녀석들이네."
내 옆에서 홍렬이와 민수의 대화를 듣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정도 숫자의 개들이 먹을 야생 동물이 근처에 많다는 소리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본 녀석은 고작 몇 마리뿐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갑자기 비둘기의 움직임이 달라지며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 젠장!!!"
" 이런!! 뭐야 저 녀석들?!"
불과 몇 초 사이에 빠른 속도로 지상에 착륙한 녀석들은 총총거리며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었고 나와 박 중사도 무기를 챙겨들고는 마을로 뛰어내려갔다.
" 투둑! 투둑!!"
" 응?!"
" 뭐..뭐야?!"
핑크를 선두로 엄청난 숫자의 개들이 뛰기 시작했고 실로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 두두두두두두!!"
" 얼랭? 설마?"
" 설마.. 비둘기를 공격하러?!"
마을에 내려와 평지에 도달했을 때에는 그 속도가 월등히 빨라져 지상에 있는 비둘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몇 마리이면 상대도 되지 않았겠지만 비둘기 한 놈에 수십이 달라붙어 공격을 하니 제대로 날아오르지도 못한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 끼에에엑!!"
" 뛰어!!!"
주변의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날아오르는 녀석들도 보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투망 같은 것을 던지며 비둘기를 공격했다. 운 좋게 멀리 날아오른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은 소총으로 조준 사격을 하여 바닥에 추락시켰고 바닥에 떨어진 녀석들은 이내 들개 무리의 공격을 받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 쿠웅..."
" 푹!!!"
땅에 떨어져 발버둥치는 녀석의 머리를 자르고 다른 녀석에게 다가가 날개를 찢었다. 굳이 내가 마무리를 하지 않아도 개들이 몰려와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끝냈기에 한결 일이 쉬웠다.
" 대단하네.."
" 핑크가 대장인가?"
" 그런데 왜 전에는 생존자를 위협한걸까?"
" 아마도 산 속에 뭔가 있었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 아닐까?"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현재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도 창이나 투망을 이용해 비둘기를 잡았고 위기감을 느낀 비둘기들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후우.. 이제 끝인가?"
" 와... 저 녀석들봐.."
며칠 굶었는지 감염 비둘기를 처참하게 물어뜯으며 먹는 모습이 보였고 몇 마리는 비둘기를 끌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비둘기들이 변한 이유는 우리가 아는 바로는 감염체를 먹고 2차 감염이 되어 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렇게 먹다가 새로운 종족의 적이 또 등장하는 것은 아닌가 궁금했다.
" 저것들.. 설마 비둘기처럼 변하는 것 아니겠지?"
" 설마.. 그럼 정말 골치 아픈데."
" 걱정하지 마십쇼. 저렇게 잡아 먹은지 꽤 됐습니다."
" 그럼 저렇게 무리를 지어 공격한 경우도 있습니까? 마을까지 내려와서?"
박 중사의 물음에 자경단장이 말을 했다.
" 지금까지는 없었는데.. 저희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저러다 마을 사람들까지 공격하면..."
어느새 옆에 다가온 자경단장이 우리에게 말했다. 예전부터 그랬다면 지금 뭔가 변화된 녀석이 있을 법도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녀석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19세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들개 무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