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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31화 (23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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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다행히 들개들은 배를 채우고는 마을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갔다. 개들이 남기고 간 부산물을 한 곳으로 치우고는 불로 태우고 우리 일행도 숙소로 돌아갔다. 바닷가 근처이긴 했지만 산에는 약수터도 있었고 작은 개울도 몇 개 있어 식수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지 그 양에 비해 사람들이 워낙 많아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개울물로 깨끗해 보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알 수 없으니 먹기를 꺼려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물이 그 물일 것 같지만 사람 심리가 왠지 약수터 물이 더 깨끗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도 물통을 챙겨 약수터로 갔고 다행히 줄은 길지 않았다. 평소라면 엄청나게 줄을 서서 기다렸을 것인데 오늘은 비둘기의 공격이 있어서인지 한가한 모습이었다. 약수터에서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당연히 줄을 서야했고 집안에 환자가 있거나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자경단이 배포한 티켓을 제시하면 줄을 서지 않아도 바로 물을 떠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일인당 20L의 제약이 있었다. 더 받고 싶으면 다시 맨 뒤로 돌아가서 줄을 서면 상관없었지만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었다. 약수터에서 가장 많은 다툼이 일어나는지 자경단원들이 꽤 보였다.

" 생각보다 살벌하네."

" 그럴 수밖에 없지. 다른 건 몰라도 물이 없다면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니."

우리도 일인당 물통을 하나씩 들고 줄을 섰고 사람들은 기다리는 동안 같이 온 일행들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제대로 먹지 못해 뚱뚱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제법 덩치가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예전보다 훨씬 왜소한 체격이 많이 보였다. 완전히 바짝 마른 여자들도 보였고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자의 팔다리는 잘못하면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물통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 먹고 살기 힘드니."

" 하아.. 제대로 된 생존 구역은 없을까요?"

지금까지 군인으로 지내온 민수가 말을 했다. 버티다가 못해 우리에게 왔지만 은연중 튼튼하고 안전한 생존 구역을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아서라. 이미 몇 번 경험했잖아. 차라리 이렇게 이동하면서 사는 것이 안전할

수 있단다."

" 알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해서요."

"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지금 와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는 최대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니?"

" 알고 있습니다만.. 점점 지치네요."

" 그럴수록 더 힘을 내야지. 봐라.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못한 상황에서도

잘 버티고 있잖아."

이제 초등학생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박 중사가 말을 했다. 난 말없이 묵묵하게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박 중사는 그런 민수에게 계속해서 말을 했다.

" 우린 무척이나 운이 좋은 편이었지. 재원이도 기태도 재효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감염체를 상대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 일반 생존자보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 물자까지 있다 보니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하지만 다른 집단도 생기고 여러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했지. 그리고

우리 일행이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도망만 다니다보니 매번 이런 식으로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어."

" 네.."

민수는 우리 이야기를 처음 듣는 상황이니 무척이나 신중한 표정으로 박 중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우리 일행의 실력이라면 감염체를 쫒아 다니면서 제거한다면 언젠가는 그

숫자가 줄어들고 끝이 보이겠지. 하지만 재원이는 무슨 생각인지 전혀 그런

움직임을 취하고 있지 않아. 그저 지금의 일행이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는

움직이고 판단하지. 언행일치가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재원이는 일행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있어."

내가 듣고 있는지 모르는지 박 중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 재원이는 계속해서 떠돌 생각인 것 같아. 만약 어딘가 안전한 곳이 있다면

머무를 생각도 있는 것 같지만 현재까지는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편이 제일

안전하니까. 그리고 우리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고. 적어도 비를 피할 곳은

있으니 말이야."

박 중사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 너희가 오기 전에도 우리 일행은 꽤 많았어. 친구도 동료도 있었는데.. 한 곳에

머무르다 피난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알 수도 없지. 누군가는 우리를 떠났고 누군가는 연락이 끊기고 뭐 그런 일이

반복에 연속이었지. 그러면서 재원이는 더 폐쇄적으로 변한 것일지도 몰라."

" 그런데.. 왜 계속 재원이 형님 이야기만..."

" 그 자식이 여기 실질적인 리더니까."

" 아.. 그래도 박 중사님에게 여러 가지를 도움을 주고 보통은 박 중사님이

결정하시는 것을 따라가던데요?"

" 보통은 그렇지. 재원이는 자신이 생각해서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면

크게 반대하지 않아. 그냥 묻어가는 성격이지만 자신이 생각한 계획한 일을

실행할 때에는 이야기가 틀려지지."

" 아..."

" 물론 욱하는 성격도 있고 앞뒤 안보고 덤비는 성격도 있고 잔인한 면도 있지만

심성은 착한 녀석이고 생각보다 치밀한 녀석이라 적이 된다면 제일 무서운

타입이지."

" 그런 면이 있었군요."

" 응. 자기 식구 챙기는 것은 끔찍하고 자기 여자 외에는 한 눈팔지 않는.. 뭐

지금은 한눈팔 여자도 없지만. 여하튼 이런저런 면에서 대단한 녀석이지."

"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전 감염체를 죽이고 다니는데 쓰겠습니다."

" 그래? 하지만 재원이는 아니야. 그러니... 기대 하지마."

아마도 민수는 우리 일행의 실력으로 왜 도망 다니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그래서 저런 이야기를 박 중사가 해주는 것이고.

" 우리 차례가 얼마 안 남았네. 재원이는 어디 갔어?"

" 저기 담배 피러 갔습니다."

" 곧 오겠네. 어서 움직이자."

나는 박 중사 이야기가 끝나고 바로 움직여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식수를 떠서 무거워진 물통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순번을 정해 근무를 서기로 했고 난 민수와 같은 초번 초에 편성이 되었다.

" 박 중사와 하는 이야기는 들었어."

" 네.."

뭔가 죄를 지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민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 뭘 그리 죄진 사람처럼 있어? 너도 우리 일행의 안전함을 보고 우리와

같이 지내기로 한 것 아니야?"

" 맞습니다. 형님의 능력과 다른 분의 능력이라면 솔직히 저희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더 높아지겠죠."

" 맞아. 하지만 난 감염체를 죽이고 다니면서 그 숫자를 줄인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봐. 우선 감염체 숫자가 너무나 많아. 우리 일행이 죽일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오히려 그런 행동이 우리를 더 위험해 빠뜨릴 수 있고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행동일 수 있어."

"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생존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 남의 사정까지 봐줄 여유는 없어. 그런 의협심이 있다면 우리가 아닌 생존

구역의 군부대를 택했어야지."

" 전.. 적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내 말에 실망을 한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 뜻을 굽힐 생각도 없었다.

" 미안하지만 난 내 일행들이 무척이나 소중해.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감염체를 제거하고 어딘가에 안전한 구역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아냐. 그런 안전 구역. 이제 와서 큰 의미는 없다고 봐."

" 그래도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어딘가 안전 구역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완벽한 방어 체계와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 있다면 말이지."

" 그런 곳이 있을 겁니다!"

" 있다면... 좋겠다.."

성빈이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의는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금껏 지내온 결과 그런 곳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한 동안 말없이 근무만 섰다. 실망을 한 표정은 아닌 것 같지만 뭔가 깊게 생각하는 표정이라 쉽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 다른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야?"

" 네?"

" 아니.. 네가 생각하는 것이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인가 해서.."

" 아닙니다. 홍렬이랑 성빈이는 최대한 안전하게 살아남는 편이 좋다고   했으니까요."

" 신기하네? 서로 다른 의견인데 지금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 친구니까요."

친구라는 말에 어딘가 찌릿함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민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 흠.. 네 생각은 잘 알겠는데.. 솔직히 그런 구역이 있다면 사태 초반에

만들었어야해. 이제 와서 그런 구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솔직히 엄청 넓은 평지에 식수에 방어 무기까지. 그런 평지는 국내에

몇 군데 없으니 힘들겠지."

"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십니다."

" 너 사태 직후부터 어디에서 생활했어?"

" 전.. 강원도에서 계속 생활하다 서울에 구역을 나눠 방어할 때

투입되었습니다."

" 난 여러 곳에 있었어. 남쪽에 생존 구역에도 강원도에도 국제공항에도

미국에도. 하지만 항상 끝은 비슷했지."

" 패배... 그리고 피난이군요."

" 맞아. 무너지거나 자멸하거나 공격받아 사라지거나. 그런 상황만 계속 봐왔으니

내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알겠지?"

" 네..."

" 나도 물론 그런 구역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튼튼한 방어를

자랑하던 미국에서의 지하 기지도 뚫린 경험도 있었고. 그리고 감염

비둘기까지 생긴 마당에 돔 형태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현재 그럴 환경이

되지 않지. 식량을 재배해서 수확하는데 최소 몇 달이 걸리니 적어도 그

몇 달을 버틸 식량도 있어야 하는데 이제와 그럴 식량이 있을까?"

" 없겠죠..."

" 그러니 다들 이렇게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 하겠지. 서울에서도 봐. 안전 구역에 있는 방벽으로 일반 감염체로부터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 받았지만 강북에 있는 생존자들은 넘어오지 않았지.

물론 위에서는 이단자다 불손한 자들이다 해도 넘어오는 인원은 막지 않았지."

" ....."

내 말에 민수는 말이 없었다.

" 우리가 이렇게 차를 숨기고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밝히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경험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변하겠지.

나도 처음에는 너와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살아남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바뀌었지. 말을 이런 식으로 해도 행동은 저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고.. 뭐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온 거야."

" 하아..."

" 너무 심각하게 생각 하지마. 네가 생각해야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한 가지 뿐이야."

" 어떤 건가요?"

" 네 친구들과 네가 말한 구역이 생길 때까지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그러기 위해서면 최대한 몸을 사리고 행동해야겠지."

" 그때까지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당연하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야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지."

내 말에 민수는 그저 살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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