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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32화 (23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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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며칠 동안은 아무런 위험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하늘에는 비둘기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지상에도 일반 감염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핑크가 데려 온 들개 무리가 한가로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시험 삼아 변해보려고 했지만 약기운이 떨어졌는지 변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체력과 감각은 여전했지만 단지 변이만 불가능했다. 솔직히 감염 비둘기만 아니라면 큰 상관은 없지만 언젠가는 그 약물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 일행들은 낚시를 하며 식량을 구하거나 멀리까지 나가 야생 동물이라도 사냥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다고 아무 풀이나 뜯어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잘못 먹었다가 독초라도 먹는다면 그대로 이 세상과 하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해산물만 먹을 수는 없었다.

" 입에서 비린내가 사라질 생각을  안 하네."

" 지금까지 비린 것은 없었는데요?"

" 말이 그렇다고."

내 말에 토를 달고 대꾸하는 미란이를 째려보며 말했다. 우리 모습이 웃겨보였는지 은혜도 살짝 웃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 앞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정원처럼 꾸몄다. 비록 대충 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와 테이블이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호화 펜션이나 다름없었다.

" 한가롭네.. 위험도 없고.."

" 이런 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운 은혜가 나를 보며 말했다. 다른 애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거나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자는 인원도 보였다. 세상이 멈춘 시간이 오래 되서 그런지 열대야도 없었고 밤에는 선선할 정도였다. 낮에도 햇빛을 피해 그늘에 있으면 열기를 피할 수 있었다. 마을의 모습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해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른들이 보였다. 자경단원이 꽤 멀리까지 정찰을 나가서 확인 한 결과 적어도 하루 정도 거리에는 일반 감염체가 없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도 이렇게 여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 하암... 애들은 마을에 내려갔어?"

" 응. 뭐 여자 친구라도 사귀러 내려갔나?"

" 모르지."

우리는 실없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아직 한 낮인데도 제법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이 징조가 좋지 않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평화로움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구름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내 주변의 나무들은 춤을 추듯 나뭇가지가 크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잠이 들었다.

" 투둑..투둑.."

" 응??"

" 비가 오네요?"

" 얼마나 잠들었던 거야?"

" 글쎄요.. 한 시간 반 정도.."

은혜와 나는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단잠에서 깨어났다. 서둘러 자리를 옮겨 카라반으로 들어갔고 카라반 앞에는 일행들이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쿠웅!!"

" 천둥 번개까지.. 이거.. 심상치 않은데.."

" 태풍이라도 오나?"

" 워워.. 여기서 태풍이 오면 우리 정말 망한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곳은 위장만 했을 뿐이지 자연재해에 대비한 것은 아니었다. 점점 강하게 부는 바람에 불안감을 느끼며 끈으로 외부를 단단히 고정시켰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 후두둑!! 후두둑!!"

" 말이 씨가 됐잖아! 에잉!!"

굵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기태가 짜증을 부렸다.

" 지금까지 비는 많이 맞았는데 왜 그래?"

" 이제 봐라."

기태는 뭐가 불안한지 자꾸 하늘을 바라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왜 기태가 그토록 불안해 했는지 알게 되었다.

" 콰앙!!!"

" 씨.. 바로 옆에 떨어졌나보네?"

" 워... 장난 아닌데?"

해안이라 그런지 거대한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 왔고 마을 사람들은 집이나 텐트를 보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텐트는 강한 바람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제 모습을 잃었고 우리가 지내고 있는 건물에 위장을 하기 위해 덮어놨던 나무와 자재들도 힘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 지금 당장은 보수가 힘드니 우선 차 안으로 들어가자!"

" 젠장!! 무슨 바람이 이렇게 부는 거야?!"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고 우리는 서둘러 카라반 안으로 들어갔다. 강한 빗줄기에 카라반 안에서는 작은 소리로는 대화가 힘들 정도였고 생전 처음 겪는 자연에 다들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 대단하다. 이래서 자연이 무섭구나."

" 워..."

빌딩 숲에서만 살던 사람들이니 이렇게 직격으로 바람을 겪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그 강한 바람을 직접 겪으니 물난리다 뭐다 했던 것이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뉴스에서만 보던 장면을 직접 보니.. 장난이 아닌데?"

" 여기는 괜찮겠지?"

" 짓다만 건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은데."

" 설마 무너지지는 않겠지?"

" 아무리 짓다 말았다고 해도 설마.."

" 후우..."

우리는 혹시 몰라 가장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은 카라반 안에 들어갔고 숨죽이며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 예상과 다르게 메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나무까지 뽑힐 것 같은 위력의 바람이 불었고 빗줄기는 직접 맞으면 따가울 정도였다. 비록 완공된 건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람을 막아 줄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제대로 고정하지 못한 카라반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 우선 나가서 차량을 고정하자. 저렇게 뒀다간 넘어가겠다."

" 옷은 최대한 긴 옷을 챙겨 입고 나가고."

" 으앗! 따가워!!"

얇은 옷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긴팔인데 비를 맞으면 따가웠다. 우리는 세차게 부는 바람을 뚫고 카라반과 차량이 주차된 곳으로 가서 단단하게 고정을 시켰다. 이미 건물 외부에는 우리가 위장해둔 나무와 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 설마 카라반을 보고 달려들지는 않겠지?"

" 지금 여길 볼 겨를조차 없을걸? 마을 봐라."

" 허..."

마을에 자리를 잡았던 난민촌 같은 구역은 이미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밖으로 나와 집이나 텐트를 보수했지만 이미 바람을 타고 날아간 곳이 많았기에 온전한 집으로 피난을 가는 모습도 보였다.

" 젠장.. 가뜩이나 힘든데.."

" 빌어먹을..."

그래도 우리 상황은 좋았지만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곳곳이 무너지고 날아가고 엄청난 파도는 예전과 다르게 육지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바람을 막아줄 그 어떤 것도 없으니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멀쩡해 보이는 집도 창문이 깨지거나 문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 좌절했다.

" 젠장... 여기도 끝인가.."

" 후우.."

일행도 바람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초라도 빨리 이 위기가 끝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간절한 기대감과 다르게 이 위기는 만 하루가 지나 끝이 났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랗게 빛이 나고 있었고 바다의 물결도 잔잔했다. 하지만 육지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부서진 건물 잔해와 떠내려 온 쓰레기

더미로 해변은 쓰레기 하치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우선 살 곳부터 정리를 시작했지만 인원수에 비해 치울 것은 엄청나게 많았다.

" 내려가서 도와주자."

" 그러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인원으로 저 많은 쓰레기를 치운다면 몇 달은

걸릴 것입니다."

" 내려가자."

난 대답도 안했는데 자기들끼리 정해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한숨을 내쉬며 같이 따라가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일행 전부가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응? 우리 전부 내려오면 어쩌냐? 누군가는 숙소에 남아서 지켜야지?"

" 괜찮지 않을까? 설마 저 지경인데 여기까지 오겠어?"

" 예전 서울에서 백화점 붕괴됐을 때 사건 몰라? 그 참혹한 현장에서 명품

가방이나 물건 주워가는 사람도 있었잖아? 여기라고 그러지 않으란 법은

없어."

다들 내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고 우리는 재효와 미란이를 두고 가기로 정했고 간단한 식수를 챙겨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은 물에 떠내려 온 쓰레기와 부서진 자재들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도 그 사람들과 섞여 열심히 청소를 도왔다. 멀쩡한 사회라면 중장비가 동원되어 청소가 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우리가 중장비 역할을 담당하였다.

" 여기도 부탁드립니다!"

" 여기도요!"

덕분에 우리 일행은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마을에도 우리와 비슷한 존재들이 있어 예상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 크아!! 진짜 무겁다!"

" 여기 좀 도와주시죠!"

무너진 집을 정리하고 천막이나 텐트 잔해들을 치우는 일이 얼추 마무리 되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저녁밥으로 끼리를 때우고는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간이 숙소를 마련하고 다시 숙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니 우리 숙소 주변에 들개들이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 제들도 집을 잃었나? 죄다 모였네?"

" 불쌍하다."

안쓰럽게 잠을 자고 있는 개를 보고 박 중사가 말을 했다. 숙소에는 재효와 미란이가 우리를 반겨줬고 간단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 마을 사람들은 괜찮겠죠?"

" 아무래도 힘들겠지. 삶의 터전을 잃었으니."

우리와 다르게 안전한 곳에 살고 있는 인원이 많이 없다보니 피해가 컸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멀쩡한 건물이 있어 그곳에 자리를 잡았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여기도 흩어지겠지?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 진짜 너무한다."

누구를 지칭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미란이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뜨거운 차가 뱃속에 들어가자 몸이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를 다 마신 인원들은 하나둘씩 차로 돌아갔고 마지막은 나와 은혜가 남게 되었다.

" 뭘 그리 생각해요?"

" 그냥.."

" 답답하죠?"

" 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 너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아남고 살아가고

했으니까 앞으로도 문제없이 갈 수 있어요."

나와 다르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고 예전과 다른 내 모습이 보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끌려 다니는. 아니 그냥 흘러가니 흘러갔던 시간이 생각났다.

" 에구구..."

어차피 제대로 대응할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 일행의 능력이라면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인데 그런 행동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지속하기에는 내 체력은 이미 방전된 상태였고 무거운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하자 은혜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 어서 들어가요. 오늘 고생했어요."

" 고생은 무슨.."

은혜는 내 팔을 당기며 안으로 들어가자는 체스처를 취했고 난 웃으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틱 커피가 보였다. 이제는 남은 것이 없어 한 동안 먹지 못했고 앞으로도 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은혜는 어디선가 구해왔던 것이다.

" 우오! 이거 어디서 났어?"

난 흥분하며 말을 했고 은혜는 웃으며 말했다.

" 찬장 안에 몇 개 있는 것을 찾았어요. 짐을 옮길 때 여기저기 나눠놔서 어딘가

또 있을지 모르죠."

" 보물찾기인가?"

" 그런 셈이네요."

은혜는 환하게 웃으며 물을 끓였다. 난 뜨겁게 데워진 컵에 커피를 넣고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를 이 맛을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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