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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며칠간 우리의 일과는 해변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마을은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과는 다르게 인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살곳을 잃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이다.
" 많이 줄었네."
" 저기 보이는 집에 살던 사람들도 떠났다고 하더라."
" 많이 떠났네. 자경단원들도 많이 줄었고."
" 자경단장이 근심이 많겠네."
" 지금 그 사람 걱정할 시간이 어디 있냐? 우선 이것부터 치우자."
" 끙차!"
얼추 정리가 된 집으로 남은 마을 주민이 다시 삶의 시작을 위해 입주가 시작되었다. 짐이라고는 얼마 없었지만 그래도 비바람을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우선적으로 노약자나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을 먼저 정리가 끝난 집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주민들은 우선 임시적으로 마련된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다. 솔직히 우리 차량을 내어줄 수도 있었지만 우리도 계속 여기서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확연하게 줄어든 마을주민으로 인하여 일의 속도도 덩달아 낮아졌다.
" 우선 주변은 배제하고 지낼 숙소 위주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경단장이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도 그 의견에 찬성하며 마을주민이 지낼 곳부터 빠르게 정리하기로 했다.
2주 정도가 지나서야 마을주민들이 살 집들이 정리가 끝이 났다. 야외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해서 일행들의 피부는 까맣게 탄 모습이었고 주민들의 피부색도 처음보다 많이 변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다가 한 번 뒤집어진 효과인지 아니면 계절 탓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훨씬 많은 수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 오늘도 양이 장난이 아닌데?"
"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으니."
일을 끝낸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오늘 먹을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 낚시를 시작했다. 밑밥을 던지는 작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섭게 몰려든 고기로 인하여 양동이 하나가 가득 차오르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주민들도 먹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이제는 큰 작업은 끝난 상황이라 더 이상 우리 할 일은 없었다.
" 내일부터 뭘 한담.."
" 뭐 변할게 있냐? 그냥 이런 식이지."
하루하루 먹을 걱정을 하며 지내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이 시작되었다. 천만 다행인지 마을 보수 작업을 하는 시간동안 감염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고 일반 감염체 몇몇만 마을을 공격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들개 무리가 순식간에 감염체를 제거했고 예전 비둘기 공격 때처럼 우리는 먹고 남은 뼈와 부산물을 태우는 일만 하였다.
" 그나저나 신기하네. 개들은 먹어도 변하지 않나봐?"
" 뭔가 면역이 있는게 아닐까?"
" 신기하네.."
" 우리.. 들개를 이용해서 감염체를 사냥하면 어떨까?"
낚시를 하던 중 박 중사가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감염체의 공격을 막을 때 들개의 피해는 거의 없던 것이 생각이 났다.
" 오호! 그거 좋은 방법인데?"
" 하지만 들개들이 우리말을 들을 리가 없잖아?"
" 핑크가 있으니까. 보니까 저 무리 우두머리가 핑크인 것 같은데?"
" 흠.. 항상 핑크가 선두에 있기는 했지."
집에서 잘 지내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을 보인 핑크였는데 지금까지 감염체의 공격을 막으려 움직인 것 같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용해서 감염체를 상대한다면 우리에게는 큰 이익이 될 상황이었다. 물론 저 녀석들이 우리말을 잘 따라준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모습을 본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음 날 나는 핑크와 함께 주변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핑크가 움직이자 다른 개들도 움직이며 따라오기 시작했고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며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변에는 감염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멀리 나가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달린 것 같은데도 감염체는커녕 비둘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태풍으로 비둘기들도 살기 위해 어디론가 피신을 한 모양이었다.
" 난감하네. 뭔가 시험해볼 상황이 없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그 동안 지긋지긋하게 보이던 녀석들이 찾으려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젠장..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난 투덜거리며 다시 숙소로 돌아갔고 애꿎은 개들만 힘들게 하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재효와 여자들만 두고 남자들은 마을의 작업을 도와주러 나갔다. 아무래도 감염체가 주변에 없다는 것을 확인해서 인지 조금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도 마을로 내려갔다. 주민들과 우리 일행은 뭔가 쫓기듯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했다.
" 뭔 일 있어? 왜 다들 분주해?"
" 어? 왔냐? 언제 감염체가 공격해 올지 모르니 빨리 해야지."
" 걱정 하지마. 내가 방금 주변을 돌고 왔는데 비둘기는커녕 감염체 코빼기도
안보여. 핑크랑 같이 뭐라도 해보려 했는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 그래? 그 때 말한 그 계획을 실행하려고?"
" 응. 아무래도 사람이 상대한 것보다 효율적일 것 같아서."
" 잘 따라와 준다면 문제가 없는데.. 그리고 그리 오래 지속될 것 같지도 않고."
" 그렇지. 핑크가 없다면 저 많은 개들을 통솔할 수도 없고 훈려할 시간도
없는데. 우선 임시방편으로 숫자라도 줄여야지."
" 그래도 주변에 감염체가 없다니 조금은 여유가 생기겠는데?"
" 며칠 동안은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아.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일을 하지 말자.
할 때 제대로 해야 다음에 또 손 볼일 없지. 주변 경계는 내가 돌게. 너흰 마을
작업에 신경 써."
" 그래주면 우리야 편하지."
" 그럼 나는 주변을 돌아볼게."
나는 일행에게 마을을 부탁하고 주변을 돌았다. 언제 왔는지 늠름한 모습으로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는 핑크를 보고 살짝 웃고는 마을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는 정리가 얼추 끝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쓰레기가 널려진 모습이 보였다. 우선 급하게 주거 지역만 청소를 진행했고 외각 지역은 상대적으로 정리가 덜 된 상태였다. 어지럽게 널려진 쓰레기들 더미에서 쓸만한 것이 있나 찾아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 흠.."
정리가 덜 끝난 곳에서 누군지 모르는 시신이 나왔다. 시신의 상태를 보아하니 감염체는 아닌 것 같았고 이번 사태에서 화를 당한 인원인 것 같았다.
" 애들에게 연락이라도 해야 하나?"
나는 혹시나 주변에 다른 시신들이 있나 찾아봤지만 남자로 보이는 시신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마을로 달려가 자경단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자경단장은 인원을 꾸려 내가 알려준 곳으로 사람을 보냈고 다른 곳에도 있을지 모를 시신을 찾기 위한 팀도 꾸렸다.
"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화장처리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자경단장은 시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말을 했고 1분 정도가 지나 고개를 들었다.
묵념을 마친 자경단장은 시신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미리 준비한 화장터로 이동을 했다.
" 타닥..타닥.."
거대한 불이 하늘 높이 치솟았고 우리는 그저 불을 볼뿐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 돌아가시죠."
자경단자의 말에 다들 등을 돌려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에서의 작업은 얼추 정리가 되었고 남은 마을 주민들이 살 곳도 정리가 끝났다. 자경단원과 우리는 마을 주변에 감염체의 접근을 막을 부실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 여러분들도 마을로 내려오심이 어떤가요?"
자경단장은 우리 일행의 능력을 보고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두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예전에도 말을 했듯이 내려올 생각은 없었다. 괜히 위화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었다.
"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내려올 생각이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내려가면 핑크도 내려와야 했고 그러면 그 많은 들개들도 같이 내려온다는 소리인데 마을에서 지내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 그 캠핑카라면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지내는 것도 눈치껏 알고 있었습니다."
" 하하..."
무안함에 내가 웃었고 다른 인원들도 멋쩍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도 우리를 감시 아닌 감시를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자경단장이 말을 했다.
" 감시했던 것은 아니고 처음 산에 갔을 때 봤습니다. 위화감 조성이나 지금까지
경험이 있으시니 안 내려오시는 것이라 알고 있었고요."
우리 차량을 본 것이 우연이라고는 했지만 탐탁치는 않았다.
" 정 그렇다면 저쪽에 버려진 창고가 있습니다. 밤에 내려오신다면 보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 솔직히 저희가 위에서 지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는데 굳이 저희를 계속
마을로 내리려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박 중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산에서 생활하나 마을에서 생활하나 반응 속도의 차이는 불과 10분이었다.
" 산에서 내려오시나 마을에서 바로 움직이시나 시간차이가 얼마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몇 분이 마을 사람 한 분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자경단잔으로써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박 중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 했다.
" 솔직히 저희가 가진 무기와 식량은 마을을 압도합니다. 숙소도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저희가 여기 내려온다면 마을 사람들이 지금처럼 생활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희 경험상 좋았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박 중사의 말에 자경단장은 말이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단장은 입을 열었다.
" 솔직히 현재 저희 마을에는 여러분처럼 젊은 사람은 이제는 거의 없습니다.
이번 사태로 많은 사람이 떠났고 남은 사람은 대부분이 노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맞는 말이야. 오늘도 보니 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내려온다고
해도 별 일은 생길 것 같지는 않은데?"
기태도 단장의 의견에 찬성하는 뜻을 내비쳤다. 솔직히 산 속에서 사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정체불명의 벌레에 모기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계속해서 살기는 힘들었다.
" 우선 저희 일행과 상의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혼자 결정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 알겠습니다."
"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 네."
갑자기 기태가 끼어들며 말을 했다.
" 지금까지야 뭐 다른 생존자들이 많이 유입이 돼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 굳이 이곳에 남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태의 물음에 단장은 바로 대답을 했다.
" 여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곳입니다. 그리고 식구들과 친척들도 여기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갈 곳은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이곳에서 지내야
합니다. 다들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단호한 단장의 말에 다들 말이 없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여기서 계속 생활했던 것 같았다.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봤었는데 단장은 꿋꿋하게 마을에 남아 생활했던 것이었다.
" 난 내려와도 상관없어. 마을 사람들이 많이 없다면 들개들이 내려와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 저도.."
" 저도 상관없습니다."
단장의 말에 다들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단장의 단호한 모습은 일행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 그럼 결정됐군."
" 바로 이동할까?"
" 우선 버려진 창고라는 곳부터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접근성이나 건물 상태를
봐서 이동을 해야지 무턱대고 이동했다간 난감함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민수의 말에 다들 우선 창고로 가보기로 했다. 마을의 저장창고로 쓰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상태는 크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 만든어 진지 적어도 20년은 되어 보이는데?"
" 허.. 그래도 튼튼해 보이기는 한데요?"
" 그런가?"
그 흔한 슬레이트 건물도 아닌 시멘트로 세워진 건물이었다. 천정도 기와로 만들어진. 창문도 제대로 없어 그 형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높이는 보통 건물 2층보다 조금 높았고 맨 위에만 몇 개의 창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문도 건물 정면 좌우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엄청 녹이 슬어 조금만 충격을 줘도 부서질 것 같았다.
" 현재는 이 건물이 최선입니다."
단장은 말이 끝나자 건물 문을 열어 내부를 보여줬다.
" 끼이익.."
사용한지도 꽤 오래됐는지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한 상태였고 천정에는 철근을 덧대어 수리한 흔적이 보였다. 조금은 쾌쾌한 냄새가 났지만 조금만 손본다면 지내는 것은 큰 어려움은
없어보였다.
" 괜찮겠네. 뭐 조금만 손본다면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을 것 같은데?"
"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염체가 갑자기 밀려오지만 않는다면 위치도 나쁜 편은
아닙니다."
" 우선 철문부터 손을 봐야겠네."
" 창문도."
" 여기서... 괜찮겠습니까?'
뭔가 조금은 미안했는지 단장이 물었지만 다들 별 표정변화 없이 말을 했다. 마을 위치 자체가 나쁜 편이 아니라 감염체의 공격도 뜸했고 이제 남은 생존자들도 얼마 없기에 굳이 여기를 찾아 비둘기들이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저번처럼 태풍이 불어온다면 버틸지가 의문이었지만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것을 보면 한 동안은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 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자. 우선 숙소로 가서 필요한 공구를 챙겨오고
재원이랑 재효는 건물에 필요한 자재를 구해와."
"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라는 거야?"
" 이번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쓸려 내려온 것들이 많으니 한번 찾아봐."
" 알았다."
말이야 쉽지 쓰레기 더미에서 과연 얼마나 멀쩡한 자재를 구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리고 박 중사는 인원을 나눠 업무를 계속해서 지시했다.
" 미란이랑 은혜 보미는 우선 건물 내부를 청소하고 민수와 홍렬이가 도와줘.
그리고 성빈이는 기태와 함께 건물을 보고 보수할 것을 체크하고 외부에
감염체를 막을 수 있게 울타리나 벽을 설치해주고."
" 알겠습니다."
박 중사의 지시를 받고 우리는 흩어져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하였다. 나와 재효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쓸만한 자재를 가져왔고 기태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을 말해주고는 보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