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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보수하기도 전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감염체가 하나 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 그저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었지만 그냥 보낼 수 없었기에 틈틈이 제거하며 일을 했다.
" 많은 숫자는 아니라서 다행이네."
" 생각해보니.. 자재를 구해오는 것이 아니라 근처를 순찰하는 업무에 가까운데?"
" 그러네?"
필요한 자재와 물품을 찾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감염체를 경계하는 모습이 더 컸다.
" 핑크랑 함께 주변을 쓸고 다녀볼까?"
"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있으니 다음에."
재효는 건물에서 튼튼한 파이프를 들며 말을 했다. 제대로 된 용접기구도 없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건물을 보수해야 했기에 시간이 제법 소모되었다.
" 이 정도면 되나?"
" 응. 우선 임시적으로 보수는 가능할 것 같은데.. 문제는 천정인데? 슬레이트를
대체할 것이 별로 없고 고정시키는 것도 힘든데."
" 높이가 높은데 우리가 가진 사다리로는 작업이 힘들어."
" 흠.."
지붕 한 곳에 구멍이 뻥 뚫린 모습을 보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세월이 오래 되다 보니 어딘가 보수해야할 곳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장비로는 천정은 무리였다.
" 다른 마을에는 뭔가 있지 않을까?"
" 웬만하면 다른 곳은 피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 왜요?"
창고 수리를 도와주던 단장이 말을 했다.
" 경계심이 심해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괜한 의심만 살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해결해야할 것 같습니다."
" 그 정도입니까?"
"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살아남으셨다면 알 것 아닙니까? 모르는 사람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맞는 말이긴 했는데 우리가 여기 왔을 때에는 그렇게 심한 경계는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단장에게 물어봤다.
" 저희가 여기 왔을 때는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요?"
" 그건 여러분이 산 속에 지내서 그랬습니다. 만약 마을에서 지냈다고 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입니다. 보통은 해변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 그런데 왜 생존자들을 받아줬습니까?"
" 받아 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다들 자리를 잡고 눌러앉아 버렸으니까요.
이제 와서 내 땅이니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 하긴.. 살고 봐야하는 현실이니."
" 처음에 몇 명이 왔을 때에는 동질감에 받아주고 챙겨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숫자가 늘자 어쩔 수 없게 되었죠."
사람이 많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타협하는 성격이 아니니. 그리고 이런 긴장된 상황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성격도 변했을 것이다. 내 옆에서 누군가 죽어가는 내 옆의 사람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계속 보고 겪는 다면 당연한 변화였다.
" 그럼 여기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로 간 걸까?"
기태의 물음에 단장이 말을 했다.
" 소문에 의하면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생존자 기지가 있다고 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으로 간 사람들이 많죠."
" 우리가 봤던 기지인가?"
" 아.. 그 기지보다는 훨씬 멀죠. 그 기지는 초반에 군에서 만든 기지인데
감염체 공격에서 한 번 전멸당하고 일반 생존자들이 자리를 잡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기지는 생존자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 그때도 보니까 이미 포화상태라서 외부에서 지내는 인원도 많던데요."
" 네. 워낙 작은 기지다보니.."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창고 보수는 거의 끝나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천정에 뚫린 구멍이었는데 현재 우리가 그 구멍을 메울 방법은 없었다.
" 마을에 중장비나 뭐 그런 것은 없나요?"
" 그래봐야 경운기나 트렉터가 전부입니다. 농사를 주된 곳으로 하는 마을이
아니다보니."
" 큰일인데. 빨리 수리를 해야지 바람이라도 분다면 연쇄적으로 무너질 것
같은데?"
" 나무라도 잘라 사다리를 만들어야지 저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차량을 가지고 오시죠. 아마 마을 사람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 남아 있는 생존자들은 또 해변에서 생활하는 건가요?"
" 아닙니다. 떠난 인원도 많고 남는 집도 제법 생겨 대부분 건물 안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입니다."
" 자경단원들도 많이 줄었겠습니다?"
" 네.. 원래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까지 잘해야 다섯이 전부일 것입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놀랐다. 그래도 꽤 남았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 유입된 생존자들이 대부분 떠났다는 소리였다.
" 어차피 자경단도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인원도 적고 다른 마을에서 여기에
뭐가 있다고 약탈하러 오겠습니까? 이미 저장된 식량은 예전에 소모가 됐고
그 마을도 낚시나 산에서 뭔가 구하는 것이 전부이니까요."
" 상황은 대부분 비슷하니 한쪽에서 뭔가 월등한 것을 가지지 않는 한 서로
공격하는 일은 없겠군요."
" 네."
" 하지만 우리를 본다면 사정이 달라지겠지?"
" 응?"
" 무기나 식량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트레일러나 카라반이 보인다면 뭔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최악을 상황을 피하려면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겠지."
내 말에 박 중사가 대답을 했다.
" 너무 과한 걱정인 것 같은데?"
" 이런 상황에서는 과한 걱정이 독이 되지는 않겠지."
" 맞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죠."
내 말에 홍렬이가 찬성하며 말을 했다. 이런 대화중에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경단장. 도대체 저 남자는 왜 우리를 도와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은 감염체가 공격해 온다면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감염체를 상대해 마을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인원이 적은 마을에 감염체가 나타날 확률은 적었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본다면 감염체가 마음을 먹고 공격하는 것은 생존자들이 많았을 때 이야기다.
" 흠... 뭔가..."
" 뭐가요?"
혼잣말을 들은 은혜가 물었고 나는 표정을 풀지 않고 말을 했다.
" 저 자경단장. 갑자기 신용이 안 가는데? 뭐 굳이 처음부터 신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 네? 저희를 이렇게 도와주는데.."
" 뭔가 속셈이 있다는게 느껴져."
" 너무 과해요. 뭔가 있었다면 벌써 진행했겠죠."
" 그런가? 너무 걱정이 앞섰나?"
내 말에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의심을 하니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이 의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을에만 있었다는 남자가 외부의 사정을 꽤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어른들을 모시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도 수상했다. 우리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한 남자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살아남았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할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생각에 빠지는 동안 사람들은 작업을 끝내고 원래 우리 숙소로 돌아갔고 밤늦게 움직이기로 하고는 일찍 잠에 들었다.
새벽. 달빛만이 육지를 비추는 유일한 등불인 시간에 우리를 차량을 몰고 어제 정리한 창고로 갔다. 다행히 마을에서 거리가 있는 도로를 이용해 최대한 마을 사람들이 모르게 이동을 했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 차량을 주차시키고는 창고 중아에 모닥불을 피웠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지만 바닷가고 해가 지면 기온이 떨어져 자칫 감기에 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타닥...타닥..."
나무가 타면서 운치 있는 소리와 향을 냈다. 다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는 모닥불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저 불을 바라보며 다들 말없이 있었는데 내가 입을 열어 그 분위기를 깼다.
" 있잖아.."
" 응?"
" 네?"
" 뭐 다들 단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별로 신용이 안간다."
" 그래? 왜? "
나랑 오랜 친구인 기태가 물었다. 내가 누군가를 신용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분명하다는 것을 녀석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 이상한 점이 몇 개 있어서."
" 뭔지 말입니다?"
아직도 군대 언어를 버리지 못한 성빈이가 물었고 그 모습을 보고 옅은 웃을 띄고는 말했다.
" 젊은 사람 혼자서 이곳에서 계속 지냈다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신기해. 여기 마을 생존자들이 몰려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전에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 생각해보니 식량은 그렇다고 해도 감염체의 공격을 어떻게 막았지?"
" 생존자 숫자가 얼마 없으니 가능했을 것 같은데.."
" 흠..."
다들 내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현재로써는 우리가 알 방법은 없었다.
" 우선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보고 재원이 말대로 완전히 신용하지는 말자."
" 괜히 섣불리 믿었다가 일 생기는 것보다 조심하는게 좋지."
" 밤이 늦었으니 다들 들어가서 쉬자. 내일도 살아야하는데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아직 완전하지 않은 건물 속에서 우리는 불안함을 감추고는 다들 차로 들어갔다.
아침이 되어서도 마을은 한가했다. 그나마 남았던 사람들도 몇몇은 떠났는지 빈 집이 보였다.
" 분명 얼마 전까지 누군가 살았던 것 같았는데?"
" 지금은 아무도 없네? 어디 갔나?"
" 아마 떠난 것 같습니다. 지나가다 들었는데 마을에 감염체가 나타나는 횟수가
예전보다 늘었다고 하더군요."
민수의 말에 다들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기태와 내 감각에 걸리는 녀석이 없는 상황에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 나나 기태의 감각에 걸리는 감염체는 없으니 너무 걱정 하지마."
" 그래도 불안한데. 가끔은 감각에 걸리지 않고 나타나는 녀석들도 있잖아?"
" 감각에 걸리지 않았던 녀석들은 숫자가 많지 않았으니 걱정마."
" 알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네."
우리는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말했다. 우리 주변을 호위하듯 따라다니는 들개들을 보며 감염체가 나타나길 바랐지만 눈에 보이는 녀석은 물론 감각에 느껴지는 녀석도 없었다. 아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비둘기들이 있었지만 방향을 보아하니 우리 근처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 확실히 사람이 없으니 여기로 몰려들지 않는구나."
" 아니면 저들도 우리 능력을 본능적으로 알아서 안 오는 것 아닐까요?"
" 그럴 수도 있지. 본능적으로 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들 나름대로 뭔가
의사소통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고."
" 그럼 정말 무서운 상황인데요?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라면.."
" 지금까지 움직임을 본다면 자세한 의사소통은 몰라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 같은데?"
" 정말 조심해야 할 상황인데?"
멀리까지 걸어왔기에 우리는 다시 돌아 마을로 뛰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치고 민수와 홍렬이 성빈이의 체력을 좋은 편이었지만 우리들에 비하면 정말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 헥...헥...천천히.."
" 아.. 미안.. 애들아!! 천천히 가자!!"
" 아!! 미안!!"
뒤에서 숨이 넘어갈 듯 한 표정으로 간신히 우리를 부른 민수는 허리를 반이나 접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배낭에 든 물을 건내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 정말 빠르시네요."
" 원래부터 이렇게 빠른 건 아니었고. 알다시피 변했으니까."
" 부럽습니다."
" 부러울 것 없어. 생각보다 부작용 때문에 살아가기 힘든 것도 있으니까."
" 부작용이요?"
" 처음에는 나도 좋았지. 이대로라면 감염체는 전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불편한 것도 많아. 청각도 그렇고 힘 조절이 안 되서 가끔 부숴먹는
것도 있고. 이래저래 장단점이 있지."
" 아.. 좋은 점만 보다보니."
" 내가 갖지 못한 것은 좋은 점만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너도 이렇게 변하고
싶다면 추천하지는 않아."
" 그 정도 입니까?"
" 뭐랄까..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 네?"
" 재원아! 낚시 할 꺼야?"
민수와 대화중에 기태가 나를 불렀고 덕분에 우리 대화는 끊어지고 마을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