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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35화 (23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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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한가한 마을에는 이제는 낚시를 하는 인원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자경단잔의 말로는 주변의 마을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지만 솔직히 여기나 거기나 거리도 크게 멀지 않았고 사람들도 이제는 생존자가 많은 지역에 감염체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것도 같은데 굳이 몰려다녔다. 솔직히 사람들은 뭉쳐있을 때 힘을 발휘한다지만 지금 상황은 몰려있으면 오히려 손해인 상황이었다.

" 생각보다 많이 사람이 없네."

" 많이 떠났다고 하던데 정말 많이 없네."

" 덕분에 낚시할 공간이 많으니 좋게 생각하시죠."

홍렬이가 웃으면서 말했고 우리는 저녁 찬거리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낚싯대를 던졌다. 간간하게 입질이 오긴 했지만 수확은 좋지 못했다. 사람이 떠나면서 고기도 떠났는지 수확은 좋지 못했다.

" 얼마 전까지 입질이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네."

" 참.. 이래서야.. 지금까지 잡힌 양으로는 저녁 먹기도 힘든 양인데."

" 그래도 아직은 비상식량이 꽤 있으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 후우.. 앞으로가 문제지."

박 중사의 한숨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점점 줄어드는 식량에 반비례하게 구하는 식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 자경단장도 안 보이네?"

" 뭐 어디 농사일 도와주러 갔다던데?"

" 경작이 가능한 상황인가?"

" 모르지. 그래도 어딘가 수확이 가능한 식량이 있으니 버텼겠지. 아니면 이런

물고기만 먹고 어떻게 버티냐? 입에서 비린내 나겠네."

" 비린내가나도 좋으니 제발 많이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미끼만 버리고는 허탕을 치고 있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이제 한 두시간 후면 완전히 해가 질 것 같았다.

" 그만 돌아가자. 더 이상 해봐야 의미 없다."

" 후우... 오늘은 이게 전부인가?"

" 몇 마리 없네요?"

숙소에 돌아와 우리가 잡은 것을 확인한 미란이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잡은 것을 알기에 군말 없이 요리를 시작했다.

미란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은혜와 보미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다시 장비를 챙겨 건물을 보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렵사리 건물 위로 올라가 구멍이 뚫린 부분을 손봤다. 올라간 김에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다른 철판을 덧대어 보강작업도 했고 해가 지고 나서는 손전등을 이용해 작업을 계속했다.

" 거의 끝났다. 거기 드라이버 좀 부탁해."

" 받아!"

" 읏챠!"

마무리 잡업을 끝내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해가 떨어지자 기온은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 와.. 여름인데도 바닷바람이 장난이 아니네."

" 평범한 바람은 아닌 것 같은데.."

" 무슨 말이야?"

" 아니.. 그냥... 느낌이.."

내 말에 재효가 물었고 나는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내일. 서울에 가보자."

" 응?"

갑작스러운 내 말에 박 중사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 무슨 소리야? 서울이라니?"

" 느낌 상 이미 서울을 폭격이 끝났을 것 같고 상황을 좀 보고 싶어서."

" 그냥 여기서 잘 지내면 되는데 왜 서울로 올라가려고 해?"

" 그냥..."

" 형. 간다고 해도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지금 우리가 가진 차량 연비가

별로라서.. 내려올 때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면... 여기까지 걸어 올 수도 있어."

" 알아. 그래도... 뭔가 걸리는 일이 있어서.."

" 혼자 갈 생각이냐?"

이미 내 마음을 읽었는지 기태가 말을 했다.

" 우선은 혼자가 편할 것 같은데? 차량도 없고. 오토바이라도 타고 갈 생각이야."

" 너 급하게 결정한게 너무 티 나는데.. 은혜는 가만히 있을까?"

" 잘 말해야지."

중앙에 앉아 모닥불을 피우며 말을 했다. 가장 걱정할 사람이 은혜니 분명 허락을 해줄 리가 없었다. 솔직히 허락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대로 했다간 두 번 다시 은혜를 볼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난 조심스럽게 차로 들어갔고 은혜는 미란이와 요리를 하다가 내 표정으로 보고 뭔가 낌새를 챘는지 차를 나와서 건물 주변 나무 밑에 앉았다.

" 뭐 할말 있어요?"

" 응."

"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한 것 같네요?"

" 맞아."

" 자기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 한 적이 없는데.. 뭔가 불안한데요?"

말을 저렇게 해도 표정은 웃고 있었다. 마치 내 말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 나... 서울에 가볼 생각이야."

" 왜 가려고요?"

" 알아 볼 것이 있어."

" 뭘요?"

" 그냥... 왠지 마음에서 가보라고 외치는 것 같아."

난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내가 왜 서울에 가야하는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가봐야 할 것 같았다.

" 몸 조심히 다녀올 자신 있어요?"

" 전에도 잘 왔잖아. 걱정 하지마."

" 에휴... 언제 갈 생각인데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과 대답이었다.

" 내일.."

" 자기라면 잘 다녀오겠죠. 뭔가 답을 찾으러 가는 거죠?"

" 답이라... 답이라..."

은혜의 말에 내 행동을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음을 느꼈지만 가야 할 것 같았다.

" 답이 될지 오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녀올게."

" 절대 돌아와야 해요."

은혜는 그리고는 내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닫힌 내 입술을 열고 들어오는 부드러운 감촉을 허락하고는 한참을 음미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난 짐을 챙겼다. 일주일치의 식량과 물을 챙겼고 애들의 배웅을 받았다.

" 조심해서 다녀와라. 도대체 왜 갑자가 간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 형 조심해서 다녀와."

" 그래. 은혜 좀 부탁한다."

"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

웃으며 배웅은 하고 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난 이별의 시간을 짧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일행 전부와 인사를 마치고는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후우...후우..."

엄청난 속도로 달려 폐허가 된 도시에 도착했다. 거의 차량과 비슷한 속도였기에 이 속도라면 하루 정도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폐허가 된 도시에 들어가 쓸만한 이동수단이 있나 찾아봤다. 대부분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량이었고 오토바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 젠장... 쓸만한게 없네."

난 주변을 둘러보다 꽤 고가의 자전거를 발견했다. 어떻게 보면 소음이 나는 오토바이보다 자전거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전거를 집어 들고는 상태를 확인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 외에는 별 문제는 없어보였고 자전거에 달린 휴대용 공기주입기로 바람을 채우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달리는 속도보다 월등한 속도가 나왔고 소음 또한 없으니 걱정 없이 달릴 수 있었다.

" 시원하네."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할 말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쉽게 서울로 갈 수 있었다.

" 흠... 뭐지..?"

서울 근처 경기도에 도착해서 보니 사방에 접근 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푯말에는 서울은 위험지역이니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 써 있었고 나는 그런 표지판을 무시하고 열심히 서울을 향해 폐달을 굴렸다.

" 하...하..."

서울에 근접할수록 도시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 폭격이라도 맞은 것 마냥 건물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너진 상태였고 자전거로 달리기에도 무의미한 길의 연속이었다.

" 정말.. 핵이라도 떨어뜨린 건가?"

하지만 핵이라면 녹아내린 건물이 보여야 할 것인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나 화학탄이나 뭐 그런 것일 수도 있어 긴장하며 서울로 진입을 했지만 뛰어노는 동물이 간간히 보이는 것으로 보아 화학탄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서울에 상황은 다를 수 있으니 서울이 보이는 가능한 높은 산으로 올라가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 이 산이면 되겠는데?"

지리적으로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이고 산 정상에서 서울이 보일 것 같았기에 자전거를 놓고 빠르게 산 정상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 정상에 가기도 전에 서울의 상태를 알 법한 광경이 보였다.

" 젠장.... 진짜.."

서울 중심부는 아니었지만 근접한 곳의 광경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운석이라도 맞은 것 같은 광경. 땅은 군데군데 파여 있었고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전의 지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할 정도의 손상을 입은 땅을 보고 한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 정말.. 핵을 쏜 건가?"

핵을 쐈다고 하기에는 주변 동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냥 강한 폭발력의 흔적만 보였다. 지금 보고 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변한 모습이 보였고 하늘에는 감염 비둘기의 모습이 보였다.

" 계획은 실패했군."

원래 계획은 감염 비둘기와 감염체의 대량 살상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늘에 보란 듯이 날고 있는 비둘기로 보아 큰 성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방향을 돌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갈까 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서울 깊숙한 곳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 끼익..끼익.."

자전거 폐달 밟는 소리만이 내 귀에 들렸고 천천히 하지만 남들이 보면 엄청난 속도로 두 시간 가까이를 달려 도착한 곳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분명 한강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확실한 것 같은데 강의 흐름도 주변의 광경도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높은 빌딩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의 광경은 완전 폐허였다. 간간히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피해보려고 애썼지만 무너진 잔해 속으로 피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난감하네. 여기서 하루를 보내기는 글렀는데?"

아직 해는 중천이지만 조금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완전히 사라진 서울의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더 이상 머무를 곳도 지낼 곳도 없는 광경을 보고는 낙담했다.

" 그냥...돌아 가야하나."

더 둘러봐야 얻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애초에 뭔가 얻고 답을 얻으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광경을 보러 온 것도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한결같은 풍경이었다.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진 건물 잔해들. 간간히 보이는 감염체와 비둘기의 시체. 생존자 하나 없는 이곳에서 뭔가를 얻어 가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 후우.."

몇 번을 둘러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전거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꽤 많은 거리를 걸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결국 생존자들이 선택한 것은 그 전에도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서울의 폭격이었다. 결과는 모르지만 현재 상황을 본다면 반반일 가능성이 많았다.

" 비둘기의 둥지를 제거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몇 마리의 비둘기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나는 조금 더 북으로 올라갈까 했지만 그냥 포기했다. 더 이상 가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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