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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자전거를 끌고 가다 그늘을 찾아 멈췄고 가방 속에서 물을 꺼내 한 번에 마셨다.
시간이 오래되어 시원하지 않았지만 그냥저냥 입속에 넣었다. 예전에는 땀이 많은 체질이라 한 여름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움직이는데도 예전보다 땀이 덜 흐르는 것이 신기했다. 한참을 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다시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움직였다. 이번에는 올 때와 다르게 아주 천천히 움직였고 주변의 사물을 찬찬히 살피며 움직였다. 내 감각에도 어떤 감염체와 생존자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계획은 무모했지만 작전은 성공한 것 같았다. 주변에서 비교적 멀쩡한 건물을 찾아 하룻밤이라도 보낼 생각이었지만 멀쩡한 건물은 찾기 힘들었다. 겨우겨우 온전한 건물을 찾았지만 형태도 제대로 남지 않아 혹시라도 감염체가 공격한다면 자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 잠을 자긴 글렀네."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지만 마땅히 잘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텐트라도 챙겨왔다면 어디라도 들어가 잘 수 있을텐데 제대로 준비를 못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움직였지만 꽤 먼 거리를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건물을 찾기 힘들 정도로 서울 경기지역은 폐허로 변한 모습이었다. 더불어 생존자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황폐하게 변한 도시를 빠져나와 예전에는 농경지였던 곳을 지나니 허름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건물로 지어진 일종의 창고 같은 모습이었지만 감염체의 공격에는 잠시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 끼익.."
" 생각보다 넓네?"
내부는 오랜 시간 사용한 흔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농기구와 잡다한 물품들로 어지럽게 널려진 창고의 한 구석을 정리하고는 자리를 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지만 미리 자리를 잡아 일찍 잠에 들어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일 생각이었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자리에 누웠다. 오늘 본 광경을 다시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뭐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도 없는 상황에 도대체 누가 군을 지시하는지 모르겠지만 일괄되지 못한 모습이 씁쓸했다. 감염체를 피할 만하니까 감염 비둘기가 나타났고 공중 공격에 취약한 상황이나 어쩔 수 없이 근원지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는 현재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지고 서울을 지키려 애를 썼겠지만 비둘기의 등장으로 그 가능성이 줄어들자 이렇게 폭격을 한 것이다.
" 우선 내일 마저 둘러보고 내려가야겠다."
둘러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 자신에게 뭔가 계기가 될 것 같다는 희망에 조금 더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 끄응.."
아침에 해가 뜨고 바로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고 서울, 경기 지역을 돌았다. 무참하게 폭격당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대규모의 비둘기 시체 무덤도 보였다.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폐허가 된 서울을 뒤로하고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힘차게 폐달을 밟았다.
다시 돌아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길도 제대로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오다 감염체 무리를 만나 피하느라 돌아서 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 왔어요?!"
" 무사히 왔구나!"
돌아온 내 모습을 보고 다들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내 실력으로 감염체에게 당할리 없었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품에 꼭 안긴 은혜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애들의 폭풍 질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 현재 서울은 어때?"
" 생존자들은 있디? 비둘기는??"
" 중간에 생존 기지나 다른 것은 못 보셨습니까?"
" 워워.. 천천히.."
나는 애들을 진정시키고 내가 본 광경을 설명했다. 처참하게 변한 서울과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말을 했고 생존기지의 흔적도 볼 수 없다고 말을 했다.
" 하지만 비둘기 둥지를 폭격했는지 비둘기 시체는 많이 보이더라."
" 허...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간 걸까요?"
" 모르지. 내려오면서도 생존자들을 본적이 없으니. 아마 강원도나 동쪽 지역에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못 봤을 수도 있고."
" 강원도 지역이 방어하기는 편할지도 모르지."
" 저희 이곳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좋겠죠?"
" 아직까지는 움직일 만한 곳이 없으니 여기가 좋지. 하지만 근처에 다른 마을도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으니 조심은 해야하고."
당장 이동할 곳도 없고 뚜렷한 목적도 없기에 우선은 여기 머무르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른 일행은 자경단장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도 그에 대한 의심을 풀 수 없었다.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 노인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 우선 먹자. 제대로 먹지도 못했잖아?"
" 응. 배고파. 뭐 잡아온 것 있어?"
" 어제는 입질이 좋아서 그래도 꽤 수확이 있습니다. 어서 드시죠."
어제 낚시에서 재미가 쏠쏠했는지 물고기가 가득 담긴 양동이를 가리키며 홍렬이가 말을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제일 많이 잡은 것이 홍렬이일 것 같았다.
" 네가 제일 많이 잡았나봐? 표정을 보니?"
" 뭐...하하!"
" 하하!"
홍렬이의 멋쩍은 웃음에 다들 웃었다. 다들 웃고 떠드는 사이 은혜가 내 옆으로 와 앉으면서 물었다.
" 뭔가 마음에 결정을 내렸어요?"
" 응?"
" 아니.. 뭔가 고민을 하는 모습이 요새 많이 보여서. 그 답을 얻기 위해 서울에
간 것 아니에요?"
" 맞아. 뭐. 답을 얻는다기보다 마음을 정리하러 갔다고나 할까?"
" 정리하러 간 것 치고는 너무 위험한 곳에 멀리갔다왔네요?"
" 뭐..."
은혜는 내 품에 안기며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은혜를 안아주며 요리를 하고 있는 애들을 바라봤다. 잡을 고기를 손질하고 단순히 불에 구워 먹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 우리 상황에서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이 없었다. 알맞게 구워진 생선을 한 개씩 들고는 가시를 제거하며 먹었다. 따뜻한 쌀밥이 생각나는 맛이었지만 최대한 아껴야 했기에 오늘은 생선으로 만족을 해야했다.
" 그런데 핑크가 안 보인다?"
내가 생선을 먹다 기태에게 물었다.
" 어제 저녁에 갑자기 다른 개들이랑 어디로 뛰어가던데?"
" 그런데 아무도 안 쫓아갔어?"
" 쫓아갈 수 있는 사람이 너 빼고 얼마나 된다고..."
내가 있었다면 상관이 없었지만 현재 핑크를 쫓아갈 체력이 되는 사람은 재효와 박 중사가 전부였다. 하지만 박 중사는 재효보다 체력이 떨어졌고 장기간 뛸 수 있는 체력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효가 쫓아가서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 어느 방향으로 갔는데?"
" 저기.."
생선을 먹다말고 재효는 핑크가 간 방향을 알려줬고 나는 대충 생선을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또 어디가게?"
내 움직임을 보고 기태가 말을 했고 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기태에게 말을 했다.
" 혹시.. 감염체나 뭐 생존자 느낌이나 그런 것 없냐?"
" 없는데."
" 훔..."
" 핑크가 감염체를 느끼고 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기태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기태 오빠 감각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 개들은 사람보다 후각이나 청각이 훨씬 좋잖아? 그러니 우리처럼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하면 감지할 수 있는 거리가 훨씬 많겠지. 그래서 뛰어간 것일 수도
있고."
" 지금까지 핑크의 능력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 그럼 한 번 다녀올게."
" 또 나가요?!"
내가 나간다는 말에 은혜가 나를 노려보며 말을 했고 나는 은혜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며 말했다.
" 잠깐 둘러보러 가는거야. 위험하지 않고 금방 돌아올게."
" 알겠어요."
삐진 척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 서울에서 구해온 자전거를 끌고 핑크가 사라진 방향으로 폐달을 밟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젠장..."
얼마나 달렸을까. 꽤 넓은 평지에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의 모습이 보였고 그 앞에 핑크를 선두로 들개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감염체는 살아있는 생존자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니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들개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감염체들이 들개 무리 중간을 지날 때 즈음 핑크가 갑자기 일어나 짖기 시작했고 미동도 없던 들개들이 감염체를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 워... 뭐야?"
감염체들은 들개의 공격에도 묵묵하게 자기들 갈 길을 가고 있었지만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팔다리를 물고 뜯는 모습부터 목을 물고 늘어지는 녀석들까지 꽤 체계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공격을 해도 어떤 감염체도 들개를 공격하지 않았다.
" 저거다!!"
지금까지 인간이 감염체를 상대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감정이 없고 그저 전진만 하는 감염체로 인해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과 생존자들이 죽으면 적의 숫자를 늘려주는 상황이라 섣불리 공격을 하기에도 무리가 많았다. 하지만 들개들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아군의 숫자가 줄어들지도 사기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단지 단점이 있다면 인간처럼 체계적인 공격이 불가능한 점이었지만 지금의 저 모습은 무작정 공격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핑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체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들개들은 이미 쓰러진 감염체를 뜯고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 신기하네. 비둘기는 감염이 돼서 변했는데 개들은 괜찮다니?"
2차 감염이 개들에게는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 다행이었다. 들개들도 비둘기처럼 변했다면 진짜 생존자들은 전멸할 가능성 100%였다. 핑크가 나를 봤는지 무서운 속도로 내게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런 핑크를 안아주고는 말을 했다.
" 너 대단한 놈이구나?"
" 컹! 컹!"
덩치가 나만한 녀석이 부리는 애교를 생각보다 징그러웠다. 입가에는 감염체 육체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고 냄새도 심하게 났다.
" 너 이대로 들어오면 엄마가 싫어하니 꼭 씻어야겟다."
" 커엉!!"
" 너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거냐? 아니면 그냥 짖는 거냐?"
" 커엉!"
"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야 넌."
내 품에서 애교를 부리던 녀석은 다시 들개 무리에 합류했고 올 때와 다르게 갈 때는 천천히 걸으며 우리 숙소 방향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 정말이야? 들개들이 감염체를 공격했다고?"
" 응. 아마도 지금까지 몇몇이 감염체를 공격해서 먹이로 삼았나봐. 그래서
여기가 감염체 공격이 뜸했던 것 같네."
" 신기하네.. 비둘기처럼 변하지도 않고."
" 그게 신기하긴 한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별 문제는 없겠지."
" 대단하다. 핑크만 있다면 개들을 이용해서 감염체를 정리하고 다릴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 이론적으로 맞기는 하지만.. 진짜 가능할까도 문제인데. 우리가 같이 싸우게
되면 감염체들이 우리를 노릴텐데?"
" 어떻게 보면 더 잘된 일일수도 있지. 우리가 감염체를 몰고 오면 들개가
처리하면 되잖아?"
" 흠.. 위험부담이 크긴 하지만.."
핑크가 들개와 협력해서 감염체를 공격한 이야기를 해주자 일행들의 표정을 무척이나 밝아졌다. 우리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개들을 잘만 훈련시키고 이용한다면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 개들이 돌아왔네요?"
밖을 보던 미란이가 말을 했고 개들은 우리 주변으로 와서 쉬는 모습이 보였다. 핑크는 내 말을 듣고 정말 씻고 왔는지 조금 전보다 훨씬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 진짜.. 내 말을 알아듣는 건가?"
은혜의 손짓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핑크를 보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