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38화 (237/281)

0238 / 0281 ----------------------------------------------

-3부-

며칠에 걸쳐 우리는 주변을 정리했지만 생각보다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제는 구하기 힘든 소총을 가진 상황이란 것을 알았기에 섣불리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푯말도 정말이라고 믿었는지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 때문에 우리를 감시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태의 추측이 가장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 우선 마을에는 여자들도 없지."

" 하아.."

" 남자들이란.."

여자들은 여름이다 보니 상당히 가벼운 차림의 복장이었다. 우리야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다른 일행이 보기에는 상당한 노출이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가진 차량에 무기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힘과 인원수는 섣불리 공격하기에는 큰 위험이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운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들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 밖으로 나갈 상황이 생기면 우선 재효나 재원이는 여기서 머무르자. 둘 다

나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고. 민수 일행은 무기를 챙겨서 항상 준비하고 있고.

어쨌든 가장 최근까지 무기를 다뤘으니 사격 실력도 유지됐겠지."

" 저희에게 무기를 넘기는 것입니까?"

" 응? 왜?"

" 아.. 그래도 저희에게 무기를 넘기는 것은.. 조금.."

아무래도 우리와 합류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기 관리를 덜컥 넘기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었나보다. 무기를 넘기는 것은 민수 일행은 완벽히 믿는 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상관없어. 우리보다 너희가 더 잘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맡기는

것이니까. 잘 관리해주고. 우리는 솔직히 재고나 정비를 잘 못했으니까."

웃으며 말하는 박 중사를 보며 민수 일행은 뭔가 다짐을 하는 표정이었다. 믿음을 주니 그 기대에 맞춰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 생..각보다 무기가 상당한데요?"

" 그래? 우리도 제대로 몰랐는데."

놀라는 민수의 말에 난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 솔직히 지금 상황에 무기가 생존에 직결되는 상황인데 왜 이런 식으로

관리를.."

솔직히 자주 쓰는 무기 외에는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 무기보다 강력한 무기들이 저기 있는데 뭘."

박 중사는 나와 재효. 그리고 기태를 보며 말했다.

" 재원이는 행동만 적극적으로 나간다면 진짜 엄청난 녀석이고. 재효도 비슷하고.

기태는 레이더와 같은 역할이니 환상의 조합이긴 하지만 재원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다보니 셋 모두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고."

"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 그냥 그려니 하고 살자. 우리 몸 지키는 것이 최선이고 지금의 목표니. 더 이상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나라고 아쉬운게 없겠냐?"

" 알겠습니다."

" 민수야! 여기 탄약이 엄청나!"

홍렬이의 외침에 민수도 가서 우리가 구한 탄약과 무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도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좋은지 힘들지만 웃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박 중사와 함께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자국과 흔적이 많이 보였고 대담하게 담배꽁초까지 버리고 간 흔적이 있었다.

" 대담한데? 아주 대놓고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네?"

" 아니면 아마추어일 수도 있어.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것 일수도 있고."

" 흠.."

주변을 살피던 중 무덤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별 생각 없이 가려는데 얼핏 보이는 물건이 시야에 보여 뭔지 확인하러 갔다.

" 응? 설마.."

" 왜?"

"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겠지?"

" 마..맞는 것 같은데?"

색이 변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사람 뼈였다.

" 에이.. 네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감염체를 태우고.."

" 감염체를 태우면 뼈 대부분도 타는 것 봤잖아? 확실히 원래 사람이었던

뼈인데?"

" 그렇군."

애써 살아있던 사람 뼈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와 제대로 매장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 나와 박 중사의 생각은 비슷했다.

" 지금까지 설마... 먹고 살았던 것이.."

" 아마도..."

"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있을 줄이야.."

" 그래서 사람들이 이 근처에서 배회했군. 목표가 우리라기보다 우리가 여기를

발견할 것을 두려워해서."

" 하아..."

몇 개는 생각보다 상태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최근에 낮선 사람들이 많이 보였던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선 숙소로 돌아가 애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끔찍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진짜 그런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까?!"

" 설마 정말로 있을 줄이야."

"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게 아닐까요?"

다들 지금 상황이 믿기 힘들다며 말을 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크게 빗나간 생각일 것 같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연기. 먹을 것이 없는데도 불구한 상황인데 노인들의 건강상태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뭔가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최악이었다. 자경단장이 마을에 유입된 생존자들이 줄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다면 자신들의 식량을 구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 그럼 저 사람들은 우리를 식량으로 보고 사냥할 생각이었던.."

" 그럴지도.."

" 허.."

그들이 우리를 감시한 것이 이런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소름이 돋았다. 기태의 의견도 틀린 것 같지 않았으니 결론은 하나였다.

" 남자는 식량. 여자는 노리개군."

" 빌어먹을. 자경단원의 숫자가 얼마나 됐지?"

" 제 기억으로는 10명 미만이었습니다."

기태의 물음에 성빈이가 대답했다.

" 숫자가 뭐가 중요해. 어차피 저들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 응?"

박 중사의 느긋한 대답에 다들 박 중사를 바라봤다.

" 흠.. 저들이 가진 무기는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고 자경단장 같은 경우는

재원이의 능력과 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니 섣불리. 아니 절대 저

숫자로 덤빌 일은 없어."

" 아..."

"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예전처럼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자."

" 알겠습니다."

지금은 잠들기 전에 크게 주변을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다들 각자 잠을 청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다시 근무를 서야하는 상황이었다.

" 며칠 좋았는데."

" 어쩔 수 없지."

일행들은 저마다 근무를 선다는 사실에 아쉬워했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인원이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 워워.. 다들 너무 긴장감이 없는 것 아냐? 우리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고."

"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해졌어."

" 저러다 또 그만두거나 우리 공격에 전멸하겠죠. 아니면 감염체가

쓸어버리거나."

다들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많아 긴장감이 없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 한 숨을 쉬며 말했다.

" 지금까지 온전하게 넘어갔다고 앞으로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어. 지금까지야

보는 눈도 많고 방어하기 좋은 곳에서 지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 다들

너무 긴장을 늦추지마."

" 네."

" 응."

" 알겠습니다."

나는 긴장하지 않는 일행에게 약간의 긴장감을 주기 위하여 말을 했고 다들 잘 알아 들었는지 몰라도 대답을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 싫은 소리도 할 줄 아네?"

" 뭐?"

" 아니. 매번 잔소리도 싫은 소리도 안하던 녀석이라."

" 참네."

큰 잔소리나 충고는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애들을 다그치는 말을 들은 박 중사가 말을 했다. 나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민수 일행들이 손질한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고 탄창에 탄약을 채우고는 무장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 어디가?"

" 주변을 둘러보러 갑니다."

" 지금? 내가 아까 말했다고 나가는 거야?"

" 아닙니다. 제 총이 아니다 보니 영점도 맞춰야 하고 이것저것 할 것도 있고."

" 하긴.."

사격을 하면 소리가 크게 나니 가능한 멀리 떨어져 나가서 사격을 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우리를 노리는 사람도 있으니 긴장하며 이동해야 했다.

" 혹시 모르니 조심해. 너희들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인원이라고."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것이지는 몰라도 무거울 정도로 과한 무장을 하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태가 뒤로 다가왔다.

" 아무래도 자기들이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저러는 것 같네."

" 응?"

" 너나 재효나 나는 진화된 인간이니 그렇다고 해도 박 중사만 봐도 체력이

좋잖아. 자신들도 뒤처지지 않으려 하겠지."

" 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 재들도 눈치가 있고 잘하는 애들이라 자기들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을

거야. 그러니 저러는 것이지."

" 에휴.."

" 애들도 애들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연구하고 행동하고 있어. 미란이 은혜만

봐도 침실에 자신들 소총을 두고 자는데."

" 뭐?!"

나도 모르는 사실을 이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 보미도 물론이고. 예전에 소총 사용법 하고 손질법을 알려줬어. 그리고는 각자

한 자루씩 들고 가더구만."

" 전혀 몰랐는데."

" 뭐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 적어도 너나 재효가 없어도 자신의 몸을 지킬

방법을 강구해야 했으니까."

" .... "

기태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만에 하나에 대비한 일을 일행들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단순히 내 능력만 믿고 남들은 없어서 못 쓰는 무기를 아무렇게나 방치했고 계획도 없었다. 갑자기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후우..."

이제는 두 갑만이 남은 담배 중 한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 왜?"

" 아니... 다들 열심히 살아가려는데 나만 너무 느긋한 것 같아서."

" 느긋하다라.. 그건 아니 것 같고. 그냥 그 모습이 네 장점이 될 수 있지."

" 뭐라는 거야?"

" 이제 와서 계획이 뭐가 필요하겠냐. 그냥 너처럼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웃으면서 말하기는 했지만 웬지 비꼬는 말투 같았다. 나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녀석과 오랜 친구 사이기에 가능했다. 내 표정을 본 기태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그러니 이제는 정신차리고 제대로 살 생각이나 하자."

" 알았다고."

내 옆을 지나가면서 어깨를 치며 말하는 녀석에게 대답을 하고는 나도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장비를 챙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