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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40화 (23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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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메뉴를 허겁지겁 먹고 펜션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 앉아 근무조를 짜기로 했다.

" 사람이 많이 없으니 2인 1조로 움직이면 한 시간씩 두 번을 서거나 한 번에

두 시간을 서야겠네."

" 추운 것도 아니니 두 시간이 좋겠다."

" 네. 저도 차라리 두 시간이."

" 저도."

다들 두 번을 서느니 차라리 한 번에 두 시간을 서기로 했고 순번도 비교적 쉽게 정했다. 나는 이번에는 민수와 한 조가 되었다. 진화된 사람과 일반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박 중사의 판단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이다. 단지 박 중사는 그 중간 단계에 있는 상황이라 일반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진화된 상태라고 보기로 했다.

" 이대로라면 되겠지?"

" 그럼 무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우선 일인당 소총 한 자루씩은 돌아갈 수 있으니 각자 챙겨두고 수류탄이랑

유탄도 챙겨. 각자 침실에는 혹시 모르니 최대한 많은 수의 탄창과 탄약을

챙겨두고."

" 부비트랩은?"

" 제대로 설치할 수 없다면 오히려 좋을 것이 없으니 패스."

" 응."

근무는 10시부터 다음 날 해가 뜨는 순간까지 서기로 했고 어차피 해가 일찍 뜨니 시간은 얼추 비슷하게 설 것 같았다. 초번초로 편성된 나와 민수는 무기를 챙겨들고는 우선 주변을 살피러 갔다. 달빛만이 유일한 빛인 상황이라 제대로 앞을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이러다 남들에게 발각되기가 더 쉬울 수도 있었고 자칫 우리가 다칠 수도 있었기에 포기했다.

" 진짜 어둡다. 손전등을 켤 수도 없고."

" 네. 이렇게 어두울 거라곤.."

" 확실히 예전에는 우리가 진짜 좋은 세상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네."

" 네. 군대에서도 그렇게 불편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때가 더

좋았다는 정도니까요."

" 하긴.."

민수의 말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 왜 민수 일행이 우리와 같이 합류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 그 때 다른 병사들은 전부 떠났는데 너희는 왜 남았어?"

" 아.. 그 때 말입니까?"

민수는 약간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 제가 상병 때 감염체 사건이 터졌습니다. 군에서는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는데

쉽게 제압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인지 우선 대외적으로 퍼지는 상황을

막으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단이 났죠.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부대가 재정비되고 무너지고를 반복했죠. 그러다가 박 중사님

부대와 같이 싸웠고 그 때 애들이랑 느낀 것은 여기 일행과 같이 다니면

최소한 감염체 때문에 죽을 위험성은 없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민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살기위해서. 그런 민수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 다들 비슷한 이유지.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욕망."

" 군에서 잠시 탈영을 해서 일반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생활을

해봤습니다."

처음 듣는 민수의 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 뭐 처음에 취지는 좋았습니다. 버려진 사단에 자리를 잡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을 하고 생활하자는 것이었는데 말이야 쉽지 그게 가능하답니까?

처음에는 구하는 식량으로 버텼는데 나중에는 총을 가진 사람이 힘이 있으니

결국 그 사람 밑에서 명령받아 생활하다 누군가 배신하고 배신하고 그 일의

연속이었죠."

" 흠..."

그런 집단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처음 듣다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 뭐 영화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 일어나는 일이 처음에는 안 믿겼죠. 하지만

정말 그대로 따라가더군요. 남자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붙어서 생활하고

좀 예쁜 여자들은 이래저래 화를 당하고..."

민수는 하늘을 보고 잠시 멈췄다 다시 이야기를 했다.

" 그래서 애들이랑 같이 야밤에 도주했습니다. 갈 곳도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

마침 서울에서 다시 정비하는 부대가 있어 합류하게 되었고요."

" 합류했을 때 제재는 없었나봐? 탈영했는데?"

" 그 사람들이 저희가 탈영했는지 어떻게 안답니까? 인터넷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는데."

" 하긴..."

" 그래서 서울에서 방벽을 짓고 감염체를 제거하고 뭐 처음에는 잘 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물이 고이니 역시나 썩더군요. 식량을 빼돌리는

병사부터 무기 빼돌리는 간부며 다들 자기 살길만 찾더군요."

" 뭐 안 그런 부대도 있겠지."

" 소문에는 강원도에 그런 부대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본 사람이 없으니 말이죠."

" 나도 강원도에서 꽤 오래 생존했는데 그런 부대는커녕 군부대도 못 봤는데."

" 소문이니까요."

나와 민수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고 다음 근무자인 기태와 홍렬이가 나오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 특이사항은 있어?"

" 없어. 더군다나 안개가 자욱해서 진짜 아무것도 안보여."

" 이게 안개야?"

" 뭐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어느새 뿌연 안개가 주변을 덮었고 안개라기보다 습식 사우나에서 보이는 광경

같았다.

" 비가 오려나?"

" 또?"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진짜 후덥지근하다보니."

" 뭔 날씨가 이래?!"

" 세상이 멈추고 비가 왔다하면 진짜 잔인하게 내리더군요. 사태 직후 남쪽에서

생존자 캠프에 있을 때 강 근처에서 있었는데 강이 넘쳐서 생존자 기지가

그대로 잠긴 적도 있었습니다."

" 그.. 그 정도로?"

" 진짜 하늘 무너지게 내린 날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강물이 불어났고 하수구는

전부 역류하고 무기를 챙기기도 전에 이미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서 몸만 겨우

빠져나왔죠. 진짜 그 때 쓸려내려갔다면...후우.."

" 진짜 물이 불어나는 건 한 순간이던데요?"

홍령이도 동참하며 말을 했다.

" 우리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 여긴 그것보다 바람이 무섭더군요."

" 비...오나?"

살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 비가 오는 것 같았지만 그냥 느낌일 뿐이었다. 나와 민수는 펜션으로 들어가 대충 물을 뿌려 몸을 씻고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습한 기온에 다들 불쾌지수는 끝까지 올라간 상황이라 서로 조심하며 행동했다.

" 빌어먹을. 진짜 덥네."

" 후우... 젠장.."

울타리를 보강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나무를 자르면서도 입에서는 끊임없이 욕이 나오고 있었다. 땀은 비 오듯 떨어졌고 몇 그루 베어내기도 전에 이미 의욕은 바닥이었다.

" 오늘은 더 이상했다간 진짜 살인나겠다."

" 진짜 오늘 습도가 얼마냐? 이런 습도가 가능해?"

" 미치겠네."

" 돌아가자. 우선 여기까지 챙긴 것만 마무리하고 쉬자."

" 후우..후우.."

숨을 쉴 때마다 거짓말을 보태면 물이 입속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다른 일행들은 확실히 힘든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작업을 불가능할 것 같다는 박 중사의 판단에 다들 적극 찬성하며 펜션으로 돌아갔다.

이미 펜션에서 작업하던 인원들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비라도 내린다면 좋으련만. 해는 쨍쨍하고 습도는 살인적이니."

" 미칠 것 같다. 진짜."

살인적인 날씨에 우리는 작업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근처 개울에서 물을 떠와 몸에 물을 뿌리며 더위를 식혔다. 하지만 이런 행위도 한계가 있었고 오히려 갔다 오는 동안 땀이 더 흘러버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 제발 비라도 내려라.."

다들 간절히 비가 내리기를 희망했지만 우리의 바램과 다르게 꿉꿉한 날씨는

밤늦게까지 지속되었다. 근무를 서면서도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불쾌지수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참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 진짜 누가 건들이면 살인 날 것 같은데."

" 맞습니다. 이런 날씨는 살아생전 처음인데요?"

같이 근무를 서는 민수가 말을 했다. 민수도 땀이 흥건한 모습으로 보아 무척이나 더운데도 불구하고 참고 있었다.

" 하아.. 난 진짜 더위에 약한데."

" 가서 물이라도 뿌리고 오시는게.."

" 근무 끝나면 같이 가자. 너도 더운데 나 혼자 갈 수는 없지."

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20분 정도만 버티면 다음 근무자가 나올 것이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 응?!"

" 왜 그러... 헉!!"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멀리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내 감각에 제대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보니 거리는 가까운 것이 아니라 생각되었지만 움직이는 양이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 일행을.. 깨울까요?"

" 아직은.. 괜히 여기서 움직이지 말자. 여기를 노리고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네."

" 서울 폭격이 이뤄졌으니 다른 곳에 둥지를 마련했을 것이 분명한데 설마 그

둥지가 이 근처는 아니겠지요?"

" 모르지. 하지만 제들도 지능이 있으니 여기가 별로 좋지 못한 곳이라는 것은

알겠지."

" 뭐 때문에..?"

" 들개들이 수시로 공격을 하고 있으니까. 제들도 안전한 곳에 둥지를 마련하고

싶지 위험한 곳에 마련하겠어?"

" 하긴.."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뭐 때문에 야밤에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참을 바라보니 어느새 다음 근무자가 나왔고 박 중사도 우리가 보고 있는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고는 말을 했다.

" 보아하니 이곳으로 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 들어가서 쉬어."

" 응.. 그래야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깨워."

" 응. 걱정마."

박 중사는 불안해하는 우리를 떠밀며 보냈고 민수와 함께 근처 개울을 찾아 땀을 식혔다. 가는 도중에도 수 없이 많은 들개들이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가 지나가면서 고개만 들어 확인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 아예 여기에 자리를 잡았네."

" 그래도 개들 덕분에 저희가 수월한 것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 마지. 제들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

" 내일 날씨가 풀리면 나가보실 생각이십니까?"

" 글쎄... 박 중사랑 이야기 한 것도 있어서 나가는 봐야겠는데 날씨가 이러면

너무 빨리 지쳐서 힘들어. 우리도 힘들지만 개들도 오래 못 버텨."

" 그나저나 비둘기들은 감염된 시체를 먹고 변했는데 왜 개들은 멀쩡할까요?"

" 나도 그게 궁금하긴 한데 지금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 빗방울이 떨어 지네요."

" 휴.. 다행이네. 조금은 이 더위를 식혀주겠지."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카라반으로 들어갔고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깨어 있었다.

" 안 잤어?"

" 너무 더워서 깼어요."

" 아.."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은혜였지만 이 더위에는 장사가 없었다. 전기도 제대로 생산이 안 되니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가동할 전기도 없었다. 태양열 집열판에서 얻어지는 전기는 대부분 냉장고 사용에 소비되었기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배터리에 여분을 항상 아껴두어야만 했다.

" 나가서 씻고 올래?"

" 그래서 자기 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옷과 간단한 샤워 용품을 챙겨 나왔고 무척 어두웠지만 내 옆이라 그런지 별 두려움 없이 개울로 천천히 걸어갔다.

============================ 작품 후기 ============================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상당히 긴 시간의 연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악재가 겹쳐

일을 처리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꾸준히는 아니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올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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