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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쉽게도 우리 예상과 다르게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박 중사와 민수네 일행이 나가서 어제 주변을 서성거렸던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 이 발자국.."
" 전투화 자국입니다."
" 군인인가?"
"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장비와 움직임을 본다면 군인이 맞을 것
같습니다."
" 좋은 의도로 접근했다면 좋겠는데."
" 그래도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만약 기습을 할
생각이었다면 어제 같은 날씨에 했어야 맞습니다."
" 그래?"
" 시야도 좋지 않은 상황에 저희보다 장비도 월등하고 수도 많았습니다.
어제 기습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저쪽도 뭔가 간을 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꽤 설득력 있는 민수의 말에 박 중사도 동의했다. 뭐 나야 큰 관심이 없었기에 주변을 둘러봤고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니 타이어 자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차량까지 운용이 가능하군."
" 타이어 모양을 보니 군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군용 타이어야 모양이 죄다 똑같으니 한 눈에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진흙에 선명하게 찍힌 타이어 모양은 일반 차량의 타이어였다.
" 그냥 SUV를 몰고 다니나?"
" 군용차량은 솔직히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데 뭐하러 끌고 다니겠어."
연비도 나쁘고 승차감도 나쁘고 소음도 심하고 그냥 무식하게 튼튼하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는 차량이니 당연히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타이어 흔적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일반 도로에 들어가고 나서는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 여기까지네."
" 완전히 노리고 온건데?"
발자국을 보니 방황한 모습이 아닌 바로 노리고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어딘가 들러서 온 것이 아닌 최단거리를 이동하며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 확실하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 단순히 지켜봤으면 좋겠는데 말야."
" 그런데 이 흔적은 조금 이상합니다.'
" 응?"
민수가 가리킨 곳은 뭔가 강한 바람에 진흙이 페인 모습이었다. 4곳의 페인 부분을 연결하면 가로 2m 정도 세로 4m 정도 되는 사각형 크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 뭐지? 드론인가?"
" 드론 치고는 너무 흔적이.."
" 수직 이착륙기?"
" 고작 이 크기에?"
다들 추측이 난무했지만 처음 보는 흔적에 정체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 뭘까..."
" 그냥 별 것 아닌 흔적인데 저희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닐까요?"
성빈이의 말에 박 중사가 말을 했다.
" 별 것 아닌 흔적은 아닌 것 같아. 꽤 강한 바람에 의해 난 흔적인데?
더군다나 이 진흙을 밀어낼 정도면 상당한 출력이야."
" 그럼 뭔가 소음이 들렸을텐데 어제 그런 소음은 듣지 못했는데?"
" 그러니 더 알 수가 없다는 소리야."
" 흠..."
우리는 우선 펜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있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머리만 아플 따름이었다. 나와 박 중사는 마을에 가보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펜션으로 돌아갔다. 어제 우리 위를 지나간 거대한 녀석이 혹시나 마을에 피해라도 입히지 않았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있었고 마을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함도 있었다.
" 평화롭네."
" 평화롭기 보다 그냥 조용하네."
내 말에 박 중사가 말을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 날씨지만 마을의 움직임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예전보다 조금은 늘어난 인원일 뿐.
" 어제 그 인원들은 마을 사람이 아닌가보네."
" 설마 그런 장비를 숨기고 살았을까?"
" 혹시나 했지."
내 말에 박 중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 없이 웃었고 나는 그런 박 중사를 보다 다시 시선을 마을로 돌렸다. 몇 분을 봐도 마을의 움직임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낚시나 수렵행위를 했고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 이 마을을 그렇다 치고 우리 여기 오기전에 봤던 그 생존 기지를 가볼까?"
" 응? 그 요상한 모양이 있던 생존기지?"
" 응."
처음 여기 오기 전 왠지 마주치기 꺼려졌던 곳이 생각났다. 그곳을 피해 제법 먼 길을 돌아왔는데 이제 와서 그 곳을 가자는 박 중사가 이해되지 않았다.
" 왜 굳이 그곳을 가려고해? 기분 나쁜 곳이던데."
" 혹시 모르지. 우리 예상과 다르게 그곳에서 어제 그 인원을 보냈다면?"
" 설마. 그냥 봐도 별 것 없는 그냥 그런 생존 기지였는데? 솔직히 기지라고
부르기에도 뭔가 한참은 부족한 곳인데."
" 혹시나 해서."
" 뭐 확인해봐서 나쁠 것은 없지만. 거긴 왠지 기분이 나빠."
" 나도 그래. 그래도 모르니까 가보자."
" 알았다."
기분이 꺼림칙했지만 박 중사 말대로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가보기로 했다. 거리가 상당했기에 걸어서 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구해온 자전거를 박 중사가 타고 가기로 했고 나는 무식하게 뛰기 시작했다.
" 매번 보지만 진짜 너 대단하다."
" 힘드니까 말시키지 말고 밟아!"
" 그래. 그래."
한 참을 달리고야 예전에 봤던 기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전히 분위기는 으슥했고 생존기지 벽 근처에 긴 창이 꽂혀있었다. 그 위에는 사람 해골이 매달려 있었다.
"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 진짜는 뭘 말하는 건데?"
내 말에 표정이 좋지 않은 박 중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매달아 놓은 건지 진짜 인육을 먹고 나온 뼈를 매달아 놓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공포감을 조성하기에는 충분했다.
" 저번에는 주변에 텐트나 임시 거처가 꽤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
" 인원이 줄었나?"
" 움직인다!!"
기지에서 문이 열리더니 20명 남짓 되는 인원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손에는 소총이 아닌 창이나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시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어제 그 인원은 여기서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 어제 인원은 여기서 온 것이 아니겠네. 저런 무기를 들었으니 말이야."
" 어디 가는 걸까?"
" 설마 생존자를 사냥하러 가는 것은 아니겠지?"
" 하하... 설마 이 대낮에?"
" 뭔 상관이야? 어차피 처벌하는 기관도 없는데."
" 하긴."
대낮에 범법 행위를 저지른다고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들 입장에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법이 되는 것이다.
" 저 녀석들이 가진 무기가 저런 것이 전부라면 우리와 싸워봐야 큰 이득은
없을 것 같은데."
" 흩어진다."
기지에서 나온 인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흩어지기 시작했고 바다와 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고 있었다.
" 우리 예상과 다른데? 그냥 바다나 산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나본데?"
" 모르지. 정말 인육을 먹는다고 해도 다른 것도 먹어야만 살 수 있을걸?"
" 흠.."
" 그리고 사람을 먹는다고 해도 진짜 낮에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
" 모르겠다."
난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고는 말을 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는 집단을 찾지 못했지만 저 기지에 있는 사람들도 위험한 존재였다.
" 산지사방이 적이네."
" 적의 적은 그냥 또 다른 적이지. 내 편은 아니네. 옛 말도 틀린 것도 있구나."
" 참네. 우선 산으로 들어간 인원을 쫒아가 보자. 바다야 뭐 구하러 가는지 안
봐도 뻔하니까."
" 알았으!"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여 산으로 들어간 인원을 미행했다. 우리 예상과 다르게 땅에서 뭔가를 캐는 모습과 나무에서 뭔가를 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 우리 예상이랑과는 전혀 다르네?"
" 낮이라 그런가? 그런데 왜 저런 무기를 들고 산으로 간 거야?"
" 저 녀석들 때문에."
" 응?!"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들개들이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반 생존자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생존자들은 표정에는 공포감이 보였다. 들개 중 한 마리가 달려들자 생존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대로 뛰지 못한 생존자들은 처참한 비명을 내며 들개들의 먹이가 되었다.
" 끄아아아!!!"
" 사..살려줘!!!"
도대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막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마을 근처에도 들개들이 있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 개들 구역에 들어간 건가?"
" 그렇다고 해도 저건 진짜 심한데?"
" 뭔가 있나?"
" 그런데 개들 후각이면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데 우리에게는 안 오네?"
" 맞네?"
신기하게 개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개들의 모습은 뭔가 분노를 표출하는 듯 보였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다시 기지로 돌아갔고 기지에서는 수십의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공격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기지를 방어하러 나오는 것 같았다. 무기라고 해봐야 창이나 칼이 전부인데 그것도 제대로 된 기능을 할지도 의문인 상태인 것들이 많았다.
" 그래도 개들이 기지까지는 몰려오지 않네."
" 개들도 지능은 있으니까."
도망간 생존자들과 다르게 기지에서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개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왔고 행동을 보아하니 자발적으로 나왔다기 보다 등 떠밀려 나온 것 같았다.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보였고 누군가는 담배를 입에 무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멀리서 뭔가가 느껴졌고 그것이 시야에 잡히는 순간 기지 주변의 반응은 격하게 변하였다.
" 젠장..."
멀리서 꽤 많은 숫자의 새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펜션과 다르게 지금은 피할 곳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기지 밖에 사람들은 기지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고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새들은 기지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기지 안이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새들이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꽤 방어가 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새들은 활강과 상승을 반복했지만 발에는 잡힌 생존자는 없었다.
" 내부는 방어가 잘 되어 있나봐? 새들이 소득이 없네."
"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새들은 몇 분을 더 배회하고는 사라졌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냥 물러갔고 우리도 숨긴 몸을 펴고는 펜션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