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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펜션에 도착하니 일행들은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남은 식량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가능한 바닷가에 잡은 생선이나 채집한 해산물을 가지고 식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 아직 남은게 있었나봐?"
" 이제는 별로 없어. 진짜..."
표정이 굳은 채로 이야기하는 재효를 보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우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굳은 것으로 보아 우리의 위기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변했다.
" 다들 표정 좀 피고! 아직 죽을 위기도 아닌데 마치 죽을 것처럼 하고 있지
말라고!"
" 맞습니다. 지금까지 잘 버티시지 않았습니까?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 분명 다른
길이 열릴 것입니다."
내 말에 맞장구를 치는 민수가 고마웠다. 나와 민수의 말을 듣고는 다들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 숨은 지금까지의 고민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 그래! 이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에잉! 먹다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고! 먹자
먹어!"
기태가 표정을 풀고 말을 했고 다들 그런 기태를 보며 웃었다.
" 그래요! 어차피 먹을 음식! 더 먹죠 뭐!"
미란이도 기태의 말에 동조하며 카라반에서 식재료를 더 꺼내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조촐하게 차려진 음식은 어느새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휘황찬란한 식단으로 변했다. 카라반 깊숙이 숨겼던 양주도 한 병 꺼내어 다들 잔에 술을 채웠다.
" 뭐 지금까지 가끔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네."
" 크아!! 독하다!!"
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던 재효가 말을 했다. 그런 재효의 표정을 보고 다들 술병을 확인했고 술이 79도라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 이..이런 술도 있었나?"
" 원래 칵테일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술인데 지금 이거라도 어디야."
" 먹으면 죽는거 아냐..?"
" 걱정 하지마. 예전에 형들이랑 아르바이트 할 때 많이 마셨으니까."
내 말에 다들 믿지 못한다는 표정이었지만 기태만은 인정해 주었다.
" 저 녀석 술 엄청 강해. 취한 걸 본 사람이 진짜 한 손으로 셀 정도니까."
기태는 말을 하면서 잔에 술을 전부 다 따라주었고 잔을 들고 다들 기태를 바라봤다.
" 왜 날 봐? 건배사라도 해야 하나?"
" 그냥.. 앞으로 무사히 잘 지내자."
내가 말을 하고는 건배를 했고 다들 잔에 들은 술을 한 번에 들이 부었다.
" 크아!!"
" 끄윽.."
" 끼야!!!"
술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위에 도달했는지 위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고 오랜만에 들어간 술로 인해 몸이 금새 나른해 졌다.
" 위력이 대단한데."
"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네."
" 후아.."
술은 한 모금씩 마시고 다들 식사를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대화들이 오고 갔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분위기만 본다면 우리는 펜션에 놀러온 커플과 다름이 없었다. 그동안 긴장감에 파묻혀 살아서인지 다들 금방 풀어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씩 쓰러지며 잠이 들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다들 술이 약하네."
" 약한 것도 있고 오랜만에 마셨으니 몸이 버티질 못하겠지."
나는 잠이 든 은혜를 업고 카라반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직 술이 부족한 나는 남은 술과 안주 몇 개를 챙겨 펜션 지붕으로 올라갔다.
" 후우.."
" 여기서 뭔 청승이냐?"
" 왔냐."
어느새 지붕으로 올라온 박 중사와 기태와 같이 앉아 남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 처량하네. 하하!"
" 처량하긴. 운치 있고 좋구만!"
기태의 말에 내가 대답을 했고 기태의 잔에 술을 마저 따라줬다. 반 정도 남은 술을 가져 올라왔지만 셋이서 먹으니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아쉽지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아쉬운 감정을 뒤로 하고 옥상에 누워 선선한 바람을 느꼈다. 이대로 평화로운 시간이 지속된다면 좋겠지만 새롭게 변이 된 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의 감시. 여러모로 우리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우리 상황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기에 더 크게 작용했다.
" 이제 그만 내려가자.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것도 없고."
박 중사의 말에 나와 기태는 옥상에서 내려갔고 개울가에 들러 몸을 씻고는 카라반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근무도 서지 않고 전원이 잠에 빠진 것을 알았고 어째보면 꽤 큰 사건이었지만 우리는 담담하게 넘어갔다. 솔직히 주변에 들개들도 널려서 잠을 자고 있었고 기태와 나도 있는 상황에 누군가 다가온다면 분명 반응이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 들개?"
" 응? 왜?"
" 저번에 우리를 감시했던 인원들. 어떻게 들개 무리를 뚫고 여기까지 왔지?"
" 어... 맞네?"
생각해보니 그 인원들이 어떻게 들개를 피해 여기까지 왔는지 의문이었다. 하다못해 핑크까지 피했다는 것은 진짜 엄청난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 신기한데? 많은 들개도 그렇지만 어떻게 핑크도 피해서 이 근처까지
올 수 있었던 걸까?"
" 흠.."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저 많은 숫자의 개를 피해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정말 영화에서처럼 수면 가스나 뭔가 다른 것을 썼다는 소리인데 우리가 멀쩡한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 운이 좋았을 수도 있어. 그날 비도 내렸고 주변에 감염 비둘기들도 많이 날아
다녔으니 들개들이 그쪽으로 갔을 수도 있고."
" 흠. 단순이 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 그 후에 더 온 것도 아니니까. 우선은 지켜보자."
" 형! 들개들이 전부 사라졌어!"
" 응?!"
박 중사와의 대화중에 갑자기 재효가 달려오며 말을 했다.
" 무슨 소리야? 핑크가 여기 있는데?"
은혜 옆에서 놀고 있는 핑크를 보며 내가 말했다. 재효는 숨을 헐떡이며 상체를 숙이고 무릎에 손을 얹고 말을 했다.
" 근처에 들개들이.. 들개가 전부 사라졌어. 미란이랑 개울에서 물을 뜨는데 뭔가
이상해서 주변을 살펴봤는데 정말 한 마리도 없어."
" 뭐!?"
" 뭐지.."
" 설마 비둘기들이.."
" 그럼 어딘가 시체라도 있어야하는데 발견된 것도 없어."
" 도대체.."
" 핑크! 전부 어디 갔냐?!"
" 컹!"
" 너 설마 그러면 핑크가 어디 갔습니다! 라고 말할 줄 알았냐?"
" 쳇."
물어본 내가 바보였다. 핑크의 표정도 자기한테 그런 것을 왜 물어본다는 표정인 것 같았다.
" 요새 비둘기들이 많이 보이던데 그 곳으로 사냥을 갔나?"
" 아무리 그래도 그 많은 개들이 전부 사라졌다는게 말이 안 되는데."
" 우선 핑크를 절대 우리 곁에서 떨어지게 하지 말고. 오늘 밤부터 제대로
근무를 서자."
" 응."
" 알겠습니다."
" 다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이제부터 소총을 장전하고 예비 탄약을
소지하고 다니자."
" ...."
" 너무 과한 것 같은데?"
" 상황이 상황이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동물이 제일 먼저 안다고 했잖아?
개들도 뭔가를 느끼고 떠났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는 의미지."
" 흠.. 정체도 모르는 집단도 우리를 감시하니."
" 다들 철저히 준비하자고!"
" 응!"
" 저기...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를 방해해서 죄송한데요.."
" 응?"
옆에서 서성이며 불안한 표정을 짓던 미란이가 말을 했다.
" 저..저기 보이는게 비둘기 무리 맞죠?"
" 응?"
" 어라?!"
미란이의 말에 우리의 시선은 먼 곳에서 다가오는 비둘기 무리를 바라봤고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녀석을 보고 다들 몇 초간 움직임이 없었다.
" 이런!! 썅!! 다들 들어가!!"
" 무기 챙기고!!"
" 여자들은 펜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고! 민수 홍렬이는 2층으로! 재원이는 1층 거실 창문!"
" 알았어!"
다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무기를 챙겨 펜션으로 들어갔고 나도 소총과 칼을 챙겨 펜션으로 들어갔다. 펜션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가득 뒤덮은 비둘기가 보였다. 이제는 비둘기라고 부르기도 이상할 정도로 괴상하게 변한 녀석들과 엄청나게 커진 녀석들을 보고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총을 잡은 손에서도 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올 정도였다.
" 도대체 숫자가 얼마나 되는 거야?"
" 지금까지 봤던 그 숫자보다 월등히 많아."
" 젠장. 도대체 저 녀석들 어디 있다 온 거야? 서울 폭격은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나?"
" 그 숫자를 제외하고도 저렇게 많았다는 소리인가?"
" 하아... 이제 와서 저 숫자를 어떻게 감당한담.."
" 다행이 이번에도 여기가 목적이... 젠장.."
" 어?! 뭐..뭐야?!"
지나가는 것처럼 하더니 그 많은 숫자의 비둘기들이 우리 펜션 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듯 약을 올리듯 펜션 바로 위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녀석들과 카라반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우리는 눈앞에 닥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 우선 여자애들을 가장 안전한 방에 옮겨."
" 여기서 안전한 방이 어디 있냐? 그냥 방에 들어가 있어야지."
나는 탄창을 확인하며 소총에 결합하고 말했다. 창문에는 커튼이 쳐진 상태였으니 밖에서 보일리 없었지만 창문 밖에 실루엣을 보니 언제라도 창문을 깨고 들어올 듯 했다.
"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와중에 박 중사는 침착하게 우리에게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 재원이는 거실 가장 큰 창문을 지켜. 홍렬이란 민수. 성빈이는 2층에서 대기.
기태와 재효는 재원이를 지켜줘. 나는 2층에서 애들이랑 같이 싸울게."
" 조심해라."
" 너도 조심하고!"
다들 탄창을 확인하고 여분의 탄약을 챙겨 자리로 이동을 했다. 밖의 녀석들은 분명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이다. 작정이라도 하고 온 듯 주변을 떠나지 않았고 다들 긴장감에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펜션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