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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침이 되어 은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창고 주변과 조금은 멀리까지 가서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새들은 물러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창고에 가기 전에 마을에 들렀다. 마을은 새들이 완전히 박살을 내놨고 생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우리처럼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창고에 돌아가니 마침 은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일어났어?"
" 네. 자기 일찍 일어났네요?"
" 응. 움직이기 전에 주변을 확인하느라."
" 고생했어요."
" 아냐."
" 그럼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은혜의 말에 내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해 대비책을 세우지도 못했다. 설마 새들이 저렇게 한 번에 공격을 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펜션 안까지 말이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어 한 모금 마시고는 은혜에게 주며 말을 했다.
" 우선 우리 펜션으로 가보자."
" 새들이 있으면 어쩌려고요?"
" 새들도 생각보다 지능이 높아서 우리가 떠난 것을 알거야. 그렇게 박살은
내놨으니 다시 올 거란 생각은 안하겠지. 그리고 애들이 다시 올 수도 있고."
" 네.."
은혜는 다시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보였지만 흩어진 일행을 볼 수도 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말없이 한참을 걸었고 다시 도착한 펜션은 폐허 그 자체였다. 카라반도 완전히 박살나 있었고 집기류와 부서진 잔해들이 널려있는 모습을 보고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펜션도 우리가 도망치고 나서 새들이 전부 박살을 냈고 잔해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애들이 왔다가진 않았나보네."
난 조심스럽게 홍렬이의 시신을 꺼내어 주변 돌을 이용해 무덤을 만들었다. 비록 조촐한 무덤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 미안하다. 다음에 와서 제대로 된 자리를 만들어줄게."
난 홍렬이의 무덤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은혜도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몇 분 후 다시 고개를 들었고 부서진 카라반 잔해를 뒤져 쓸 수 있는 물건이나 식량을 찾았다. 다행히 몇 개는 남아 있었고 많지는 않지만 캔 음식도 찾을 수 있었다.
" 그런데 차량이 없는데.. 어떻게 다닐 생각이에요?"
" 걸어.. 다녀야지.."
" 네.."
지금까지 차량을 이용해서 다니다 걸어서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온 차량들도 뒤집히고 새들에게 밟혀 제대로 시동도 걸리지 않았다. 대충 필요한 것만 챙겨도 짐이 한 가득이었다. 은혜도 가방을 챙겼지만 얼마나 걸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 우선 짐 챙긴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자. 근처에 자전거나 뭐 그런 것 있으면
타고 다니면 좋고."
" 한 번 찾아볼게요."
" 아냐. 우선 짐을 챙기고 이 근처에는 탈만한 것이 없을 거야.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동네니까. 다른 곳으로 가면서 찾자."
" 네."
나와 은혜는 잔해들을 치우는 작업을 끝내고 짐을 챙겨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 기온이 무척이나 높았지만 그래도 한 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몸을 피할 곳도 없고 이동 수단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 가능한 빨리 움직여야했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 해안가를 따라 걷기로 했다. 식량이 떨어진다 해도 적어도 굶어 죽을 가능성이 적은 바닷가를 시야에 두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도보로 이동한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잠시 쉬기 위해 그늘을 찾았다. 이런 뙤약볕에 계속해서 이동을 하는 것은 은혜의 체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이미 땀이 범벅이 된 은혜를 나무 그늘에 앉히고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서 줬다.
" 마셔요."
" 자기는요?"
" 나는 아직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표정을 보니 무척이나 힘들어보였다. 은혜의 체력을 감안해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로 했고 혹시 주변에 탈 것이 있나 둘러봤다. 차량 몇 대와 오토바이가 보이기는 했지만 전부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상태를 보아하니 시간도 꽤 오래 지난 것 같았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내 실력으로 고쳐서 운용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주변을 살피는 중간 중간에도 은혜의 위치를 보며 상태를 살폈다. 내 감각에 느껴지는 감염체나 감염 비둘기는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건질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다시 은혜가 있는 곳으로 갔고 은혜 옆에 앉아 물을 마셨다.
" ..... "
" ......."
우리 둘 사이에는 서먹한. 아니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감돌았고 둘 중 누가 먼저 입을 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바꿀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은혜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입을 열었다.
" 다시 걸을 수 있겠어?"
" 네. 걱정 말아요. 이래봬도 튼튼하다고요!"
은혜는 애써 밝게 웃으며 말을 했고 바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도 은혜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가방을 들고 다시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 하악...하악..."
옆에서 은혜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한 시간 정도 걷고 쉬고를 반복했지만 떨어지는 은혜의 체력을 보충할 수는 없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나는 잘 곳을 찾으면 오늘 이동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다.
" 근처에 잘 만한 곳이 나오면 오늘은 그만 가자."
" 괜찮아요. 더 걸을 수 있어요."
자신의 사정을 봐주는 것을 알고 은혜가 말을 했지만 상태를 보니 지금 걷고 있는 것도 대단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우리가 걷기 시작한지 여섯 시간이나 되었다. 실질적으로 걸은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래도 오래 걸었다고 생각했다.
" 잘 곳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곳을 찾아야하고 찾는다고 해도 정리도
해야 하니까 시간일 걸릴 것 같으니까."
" 네.."
은혜는 잘 곳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고 근처에 주거 지역이 보여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어갔다.
" 끼이익..."
우리는 가장 외진 곳에 있는 허름한 집을 찾아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최근의 흔적을 찾았지만 사람 발자국은커녕 동물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핑크를 선두로 집으로 들어가니 집 안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 사람이 안산지 오래 됐나봐요."
" 그런 것 같네.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네. 다행인가.."
" 집은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지어진지 오래되어 보이는 집은 평범한 구조였다. 방 두 개와 거실. 그리고 제법 큰 화장실이 있었다. 다행히 집 안 상태는 온전했다. 옷장과 주방의 상태는 떠날 때 그대로 인 듯 했다.
"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겠다. 우선 작은 방 하나만 청소를 하자."
" 네."
" 핑크랑 같이 있고 난 혹시 모르니 근처 집을 확인해 볼게."
" 네. 조심해서 다녀와요."
은혜는 마치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듯 말을 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집을 나갔다. 집과 집의 거리는 제법 되었다. 일일이 확인을 해야하니 빠르게 뛰면서 집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다른 집들도 버려진지 오래 된 상태였다.
혹시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우선은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주변 확인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은혜는 방 한 곳을 깨끗하게 치운 상태였고 서랍을 뒤져 침구류까지 챙겨 논 상태였다.
" 먼지만 털면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나가서 털어 줄래요?"
" 응.. 그런데 나가서 털면 괜히 소음이 나거나 누군가 볼 수 있으니 다른 방에서
창문만 열고 털게."
" 네. 부탁해요."
나는 은혜가 준 침구류를 가지고 다른 방으로 가서 침구류를 털었고 털고 보니 은혜 말대로 상태는 좋아보였다. 그대로 방으로 가져가 깔아 잘 준비를 끝냈다.
" 뭐라도 먹어야하지 않을까요?"
"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네.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주변에
우물이라도 없나? 먹을 물은 둘째고 씻을 물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 시대에 우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요새는 수도가 발달했으니 거의 대부분 수도가 공급되고 있었으니 우물이 있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 오늘은 씻지도 못하고 자야할 것 같아."
" 어쩔 수 없죠. 지금까지 너무 호화롭게 살았네요."
아쉬운 감정이 느껴졌지만 현실에 수긍을 하고 바로 포기하는 모습에 미안했다. 나라고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어느 남자나 똑같은 것이니 말이다.
" 물은 내일 이동하면서 마셔야 하니까 저녁은 대충 때우죠. 괜히 물 낭비 하지
말고요."
은혜는 마실 물도 아까워 요리는 포기했다. 조촐하게 캔 음식으로 끼리를 때웠고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인원이 두 명이고 크게 움직이고 다니 것도 아니라 감염체나 비둘기가 올 확률은 적었기 때문에 약간은 안심하며 잠에 빠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한 낮에 뜨거웠던 기온이 집을 달궈나서 인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래된 집이고 통풍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 집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뜨거웠다.
" 진짜 후텁지근하네요.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 그러게. 진짜 덥네."
기온이 더 떨어지거나 밖에 바람이 많이 부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집에 있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의 기온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기분 탓인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 그런 것 같은데요?"
단지 창문만 열었을 뿐이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핑크도 묵묵하게 있는 것으로 보아 감염체는 없는 것 같았고 내 감각에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경계하는 것을 알았는지 내 뒤로 와서 나를 안는 은혜가 느껴졌다.
" 너무 불안해하지 말아요. 우리가 여기 오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둘 뿐이니
감염체나 비둘기가 알리는 없을테니까 오늘은 푹 쉬어요."
" 응? 응.."
" 다들 잘 살아 있을게 분명해요. 강한 사람들이니. 너무 걱정 말고요. 언젠가
이렇게 계속 다니다보면 어디선가 만날 수 있어요. 그러니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아요. 지금은 우리 둘만 생각해요."
" 후우... 그래야지!!"
나는 큰 숨을 몰아쉬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은혜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한데 옆에서 묵묵히 나를 따라오고 지켜줬다.
" 이제 좀 선선해 진 것 같네. 어서 자자. 내일 아침 일찍 움직여야하니까."
" 네."
내일도 꽤 오랫동안 걸어야 했기에 나는 누워있는 은혜에게 다가가 다리를 주물러줬다.
" 아아! 아파요..."
" 오늘 풀지 않으면 내일도 고생해. 그러니 조금은 풀어두는게 좋아."
" 네.."
가늘고 곧은 다리에 이곳저곳 상처가 난 모습이 보였다. 꽤 쓰라렸을텐데 묵묵하게 걸은 은혜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삼십 분을 은혜의 몸을 주물렀고 서서히 조용해진 은혜를 보고는 나도 잠을 청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챙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은혜의 걸음걸이에 속도를 맞춰야했기에 빠르게 이동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마을이 보이면 들러 식량이나 이동수단. 그 외 필요한 것이 없나 확인 작업을 하면서 이동했기 때문에 이동거리에 비해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었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마을에 들러 집을 뒤지고 있었다.
" 자기!! 여기 캔 음식이 몇 개 있어요!!"
" 진짜?!"
" 네! 그리고 여기 물도 나와요!"
" 응?! 물이?!"
전기가 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나오는게 신기했다. 은혜의 외침에 주방으로 가니 정말 물이 나오고 있었다.
" 신기한데?! 물이 나오다니!"
" 옥상에 물탱크가 보였는데 거기서 나오나?!"
아무리 물탱크가 있다해도 단전이 되면 물이 나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여기는 다른 방법으로 물탱크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이런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가기로 했다. 바닷가도 있으니 가서 낚시라도 한다면 뭔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니 나쁠건 없었다.
" 창고에 숯도 있고.. 여러 가지 물품이 있네요? 여기서 살던 사람은 꽤 잘 사는
사람이었나봐요."
집안의 상태는 어제 그 집과 비슷했지만 내부의 물품들 중에는 꽤 고가의 물건도 보였다. 외부에는 잘 꾸며진 정원과 작은 창고가 보였고 창고에는 숯이나 정원을 가꾸는데 필요한 기구들이 보였다.
" 우리에게는 진짜 다행이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 이런 기회도 흔치
않을 것 같은데?"
" 네! 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니 아껴서 사용해야죠."
" 욕실에 욕조가 있는 것 같던데? 거기에 최대한 받아봐. 그럼 양을 알 수
있으니 나눠서 사용하면 되지."
" 좋은 방법인데요?"
물이 풍족하다면 잘하면 씻을 수도 있을 것이니 은혜도 찬성했다. 바로 욕실도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고 나는 은혜에게 잠시 있으라는 말과 함께 다른 집을 뒤지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