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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어차피 목적지도 없는 상황에 급하게 이동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비둘기를 피하기 위해 초반에는 빨리 벗어나려고 한 것 뿐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꽤 벗어난 상황이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빠르게 집들을 뒤졌고 다행히 집들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식량이 있었다. 쌀이나 캔 음식 등이 꽤 많이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은혜가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 멀지 않은 곳에서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 젠장.. 여기도 있는 건가?"
나는 빠르게 뛰었고 바로 집에 들어가 은혜를 찾았다.
" 자기야! 자기!"
" 네?!"
" 어서 창문 커튼을 닫고 우선 숨자! 비둘기들이 몰려오는 것 같아!"
" 네!"
설마 생존자가 없는 여기에도 비둘기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은혜와 방 한 구석에 숨어 상황을 지켜봤다. 다행히 비둘기 무리는 빠르게 우리를 지나갔고 다행히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는 녀석이 없었다.
" 지나 갔나봐."
" 다행이네요. 설마 또 오지는 않겠죠?"
" 모르지. 그래도 지금은 없으니 빨리 식사 준비를 하자. 다행히 근처 집에 먹을
음식이 꽤 있어서 많이 가져왔어."
" 아하! 오늘은 제대로 먹을 수 있겠는데요?"
은혜도 내가 가져온 음식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제법 근사하게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숯과 그릇을 챙겨 밖이 아닌 안에서 요리를 해서 먹기로 했다. 혹시나 우리를 보고 비둘기나 생존자들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치익...치익.."
숯 위에 올린 냄비 안의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뭘 끓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물어보기에도 뭐했다. 열심히 요리를 하는 은혜를 뒤로 하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한 번 방심의 대가가 이렇게 클 줄이야. 너무 우리 능력을 믿어 안일하게 생활했던 것이 실수였다. 예전처럼 부비트랩도 설치하고 화력도 강화해서 있었어야 했는데 너무 우리 능력을 믿고 비둘기나 감염체의 공격 횟수가 줄자 우리의 긴장감도 같이 떨어져 버렸다. 그 결과는 우리 일행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주변에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자꾸만 밖을 확인하게 되었다.
" 다행히 아무것도 없네."
난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니 요리를 끝낸 은혜의 모습이 보였다. 제법 그럴듯한 밥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진짜 맛있다!"
" 제대로 만든 것도 없는데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 에이! 그래도 이 정도 재료로 만든게 어디야!"
나는 허겁지겁 은혜가 마련한 식사를 먹기 시작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은혜도 흐뭇한 얼굴을 하고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끝내고 남은 양을 보니 세 번 정도는 더 먹을 수 있는 양이 남아 있었다. 하직 해가 쨍쨍한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더 이상 이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동안의 피로누적도 있었고 물이 나오는 곳을 언제 또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하루 정도 머물다 갈 생각이었다. 욕조에 받은 물의 양이 상당했기에 은혜가 목욕을 할 수 있게 양동이에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 나만 하고 물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해요?"
" 여분의 물을 받아놨으니 걱정 하지마."
" 물이 그렇게 많이 나와요?"
생각보다 물이 많은 것이 은혜가 놀라는 표정이었다.
" 옥상에 물탱크에 가봤는데 1/3 정도 남아있더라고 우리 둘이 쓰기에는
충분해."
" 다행이네요!"
물이 충분하다는 내 말에 은혜가 웃으며 말했다. 끓인 물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은혜는 새 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었던 옷도 같이 가지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들어간 시간이 꽤 흘러서야 은혜는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변해서 나왔고 그 시간 동안 물을 끓인 나도 욕조에 새 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 후우.."
그 동안의 피로가 녹아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굳었던 근육들이 풀어지는 듯 기분이 몽롱해져갔다.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 뜨거웠던 물은 상당히 미지근해졌고 나는 입었던 옷을 목욕하고 남은 물을 이용해 세탁을 시작했다. 얼마나 더러웠으면 구정물이 계속해서 나와 세탁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세탁을 끝내고 핑크도 불러 씻겼다. 핑크도 기분이 좋은지 가만히 있었고 이런 저런 행위를 끝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 하암..."
은혜도 무척이나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잘 곳을 준비한 은혜는 먼저 들어가 쉰다고 말을 했고 핑크도 따라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다시 살폈다. 아직 내 감각에 걸리는 느낌이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다행히 시야에 보이는 녀석들은 없었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우리가 쉬고 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들어갔다.
" 후우.."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은혜 때문에 집에서 피기는 좀 그래서 근처 집에서 피거나 외진 곳에서 피고 오곤 했다. 지금도 은혜가 있는 집이 한 눈에 보이는 집 창문에서 담배를 펴고 있었다. 온 김에 집 안에 뭐가 있을까 뒤져봤지만 쓸만한 물품은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 봤을 때 차고 비슷한 곳도 건물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뭔가 있을 것 같아 가보았다. 굳게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충격으로 안에 쌓였던 먼지가 날렸다.
" 켁! 켁! 에고고.."
고개를 돌려 먼지가 가라앉을 때를 기다렸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창고 안의 모습이 보였다.
" 횡재했다고 해야 하나?"
창고 안에는 소형 트럭이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신형인 것으로 보아 새 차를 뽑고 아마 감염체 사태가 일어난 것 같았다. 옆에는 다른 차를 주차했는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문제는 이 차량이 과연 시동이 걸리냐였다. 수동은 차량을 밀어서 가속이 붙으면 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세상이 멀쩡하던 시절에도 수동기어를 가진 차량을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면허야 1종 보통을 취득했지만 시험 볼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 난감하네. 은혜도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했는데."
차량을 밀어서 시동이 걸린다면 문제가 없는데 만약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은혜를 사지로 몰아버린 셈이다. 어차피 차를 밀어야 하는 사람은 나니까.
" 흠.."
이리저리 차량을 살펴보니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의자 시트 중간에 비닐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사용하지도 못한 차량이었다.
" 안됐네. 차주 분은."
다행히 열쇠는 차량에 꽂혀 있었기에 내일 날이 밝으면 시험해 보기로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은혜와 일찍 일어나 차량을 끌고 언덕길로 올라갔다.
" 에고고!!!"
아무리 힘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높은 언덕길을 혼자서 끌고 올라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언덕 끝에서 차량에 탈 준비를 하고 힘껏 밀었다.
" 으쌰!!!"
차량은 서서히 가속이 붙으면서 내려갔고 핸들도 잠긴 상황에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뛰어내릴 생각으로 자세를 잡았다.
" 끼기기긱!!"
" 제발...제발..."
" 끼기기긱... 부릉!!!"
" 좋아!!"
몇 번을 키를 돌려 겨우 시동을 걸 수 있었고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아 차량을 정지시키고 핸들을 돌렸다.
" 시동이 걸렸군요!!"
" 응! 운이 좋았지!"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자동 기어 차량이라면 시동을 끄지 않는 한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시동이 걸린 상태로 있었겠지만 수동 기어는 잘못하면 시동이 꺼진다. 애써 힘들게 시동을 걸었는데 다시 꺼뜨린다면 난감하니 적어도 30분 정도는 유지를 해야만 했다.
" 자기. 여기 앉아서 이것 좀 밟고 있어봐."
나는 주변에서 큰 돌이라도 구해와 놓을 생각으로 잠시 은혜에게 작업을 넘겼고 주변에서 큰 벽돌을 구해와 클러치에 놓고 짐을 챙겨 트럭에 적재를 하기 시작했다. 걸으며 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짐은 많지 않았다. 짐을 적재하고 차량에 탑승하여 연료 게이지를 보니 가득에 가깝게 표시되어 있었다.
" 어디로 가지?"
생각해 보니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갈 곳이 없다. 다시 우리가 있었던 펜션으로 돌아가 가져오지 못한 것들을 가져오자고 은혜가 말을 하였다.
" 다시.. 돌아가서 무거워서 가져오지 못한 것들을 가져오는게 어떨까요?
자기 칼도 버리고 왔는데."
" 하긴.. 걸을 생각으로 최소한의 짐만 챙겨왔으니. 어차피 차량이 있으니 빨리
갔다오면 되겠다."
" 네."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차량을 몰아 폐허가 된 펜션으로 돌아갔다.
" 하아.."
펜션의 모습은 우리가 떠났던 당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이 다녀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여기저기 탄피가 널려진 모습이 보였다. 비둘기 시체들은 다른 비둘기가 먹어버렸는지 아니면 들개들이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죽였던 그 당시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칼을 버린 위치를 찾아 다시 칼을 찾았고 은혜도 펜션 주변에서 긴장하며 배회하고 있었다.
" 소총도 있고.. 탄약도 좀 남았네. 거긴 쓸만한 것 없지?"
" 주방 기구나.. 뭐 이런 것.. 옷 몇 개하고요."
" 우선 챙길 수 있는 것은 전부 챙겨두자. 다시 올 생각은 하지 말고."
난 펜션을 보면서 은혜에게 이야기했다. 좋은 기억이 있는 곳도 아닌데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은혜도 내 마음과 비슷한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봐서 짐을 챙겼고 트럭 짐칸에 던지듯 놓고는 다시 펜션을 떠났다.
" 하아.."
뜨거운 햇빛이 온 지면을 달구고 있었지만 우리는 에어컨을 틀지 못했다. 불편하게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아무리 창문을 열어 달린다고 해도 엔진이 밑에 있는 트럭의 구조상 더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구름 한 점 없이 내리 쬐는 햇볕은 나를 더 미치게 했다.
" 진짜 덥다. 이제 슬슬 선선해질 법도 한데."
" 맞아요. 이렇게 더워서야.."
나보다는 잘 버티고 있지만 은혜의 목덜미에도 땀이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미 머리가 다 젖은 상태일 정도로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저기 마을이 보여요!"
망원경으로 주변을 보던 은혜가 말을 했다. 지금까지 들렀던 마을보다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라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이런 마을에는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컸기에 괜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가니 역시나 생존자들의 모습이 보였고 어느 정도 들어가니 도로를 막는 인원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차량에서 내려 그 사람들과 마주했다.
" 무슨.."
" 마을에 들어갈 수 없다. 돌아가라."
" 후우.."
역시나 낯선 사람을 경계했다. 나를 막아선 사람들은 내 또래의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었고 무장 상태는 그냥 식칼을 대걸레 봉이나 쇠파이프에 붙인 것이 전부였다. 저런 무기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여기에는 감염체나 비둘기들의 공격이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 알겠습니다."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순순히 돌아간다고 말을 했다. 물론 힘으로 저들을 어찌 할 수는 있지만 괜히 힘 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려 차량으로 돌아가려는데 차 뒤편 적재함 쪽에서 몰래 조수석 문으로 다가가는 녀석이 보였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힘껏 달려 그 남자를 잡고 멀리 던져버렸다.
" 콰앙!!!"
" 이런.."
급박한 마음에 힘 조절을 하지 못하고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남자는 그대로 날아가 주변 건물 벽이 무너질 정도로 날아갔고 사태를 보아하니 살아있긴 힘든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우리 앞을 막고 있는 인원이 덤빌까 적재함에서 칼을 꺼내어 들었지만 그 인원들은 겁에 질려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 가자.."
" 네.."
담담하게 은혜에게 말을 하고는 운전석에 올라 반대로 나갔다. 누군가 우리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달렸고 혹시나 미행을 하지 않을까 신경 쓰며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한적한 곳에 건물이 보였고 차량을 주차시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텅! 텅!"
" 잠겼어요."
문은 셔터가 내려진 상태로 잠겨 있었고 감염체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망한 음식점 같았다. 테이블 몇 개와 주방 집기류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모습이 보였고 내부가 상당히 넓고 창문이 많아 방어가 힘든 구조였다. 내부에서 불을 피우면 외부에서 쉽게 발각이 되는 구조였다.
" 여기는 무리일 것 같네. 구조도 별로이고."
" 다른 곳을 찾아봐요."
" 응. 힘들지는 않아?"
" 괜찮아요. 걷는 것도 아닌데. 전보다 훨씬 편한데요 뭘. 걱정하지 마요."
웃으며 이야기하는 은혜의 표정을 보고 나도 웃음으로 답했고 다시 차량에 올랐다. 연료 게이지를 보니 다행히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꽤 이동거리가 길 것 같았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켜서 우리 위치를 찾았고 주변에 뭐가 있는지 검색을 해봤다. GPS가 작동을 하지 않으니 이렇게 일일이 수동으로 찾아야만 했다. 그래도 지도보다는 훨씬 편하니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 여기서 5km 정도만 더 가면 작은 마을이 있네. 항구도 있고."
" 항구가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 큰 항구가 아니라서 아마 생존자들이 많이 없을 것 같네. 여기로 가보자."
" 네. 그 전에 뭐라도 먹고 출발해요. 저희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 아.. 맞다.. 뭐 간단하게 먹을게 있어?"
" 네. 우선 이거라도.."
가방에서 열량이 높은 과자를 꺼내어 나에게 건냈다. 배는 부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열량이 높으니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참을 움직여야했기에 억지로 입 안으로 과자를 집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