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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대충 끼니를 때우고는 차량에 시동을 걸고 움직였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한적한 곳을 따라 움직이니 소수의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근처에 다가가니 극도의 경계심을 내보였기에 괜히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 생각보다 경계심이 심하네."
" 아무래도 낯선 사람을 함부로 맞이하기에는 무리겠지요."
" 맞지. 사람이 모이면 감염체나 비둘기의 공격 받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리고
괜한 긴장감을 가지고 갈 필요도 없고."
" 지도를 보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곧 마을이 나올 거예요."
은혜의 말이 끝나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작은 항구가 보였다. 하지만 항구의 모습은 처참했다. 곳곳에 시신이 보였고 비둘기 시체도 보였다. 흔적을 보니 일반적인 공격이 아닌 탄흔이 보였다. 그리고 상태를 보아하니 오래 지난 것이 아니었다.
" 이 상태. 오래 지난게 아냐."
" 네?"
" 군인들과의 전투인 것 같은데? 총을 사용한 흔적도 있고. 기관총을 사용한
흔적도 보이는데. 하지만 이 흔적은 뭔가 이상한데? 그 때 우리를 염탐했던
사람들이 왔을 때 봤던 흔적이랑 똑같은데."
" 그래요? 뭐지?"
" 흔적들이 곳곳에 있고 헬기가 낮게 날아다녔나? 왜 이렇게 페인 곳이 많아."
곳곳에 마치 헬기가 지나간 듯 바람에 쓸린 모습들이 많았고 신기하게 탄흔들이 땅에 난 곳도 있었다. 시신들은 감염체의 시신인 것 같았고 죽은 비둘기들도 목이나 날개가 베어진 녀석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칼을 써서 죽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항구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곳에서 지내는 것은 무리였다.
" 다른 곳으로 가자. 여기서는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조금.."
" 저도 그래도. 이런 곳에서 자는 것은.."
비둘기가 죽고 나오는 악취로 인해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껄끄러웠다. 나와 은혜는 다시 차에 올라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집을 향해 갔다. 다행이 이곳에는 생존자들이 있지 않아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갔고 차량을 숨기고 집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 힘들죠?"
" 후우.. 그냥 피로가 쌓였네."
" 대충 정리하고 일찍 자요. 오늘은 제가 안마 해 줄께요."
" 응. 고마워!"
잠만 자고 다시 이동을 해야 했기에 최소한의 정리만 했다. 자리에 누워 은혜의 안마를 받으며 오랜만에 편하게 잠에 빠질 수 있었다.
" 우선 차량으로 여기서 여기까지 가로 질러 가장 빠르게 이동해야 할 생각이야.
이 길은 큰 도시도 있고 원래 휴가철에 사람이 많은 곳이니 감염체나 비둘기도
많은 수 있으니까. 주변에 주유소를 찾아서 남은 기름이 있는지 확인을 하면서
가능한 빠르게 가자."
" 알겠어요."
대도시를 지나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기에 가능한 돌아서 가기로 했다. 중간에 주유소를 확인했지만 남은 양이 얼마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1리터만 있다면 적어도 몇 킬로미터는 더 갈 수 있으니 말이다.
" 후우.. 진짜 덥다."
" 에어컨이라도 틀면서 가요. 기름이 떨어지더라도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죠."
" 아냐. 그래도 창문 열고 달리면 조금은 버틸 수 있으니까. 걱정 하지 마."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내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은혜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는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어차피 다니는 차량도 얼마 없으니 사고가 날 확률도 없었다. 최대한 관성 운전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기 위해 신경 써가며 이동을 했다. 출발한지 두 시간이 가량 지나 대도시를 피해 동해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착한 곳도 예전에는 꽤 유명한 해변이었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벗어나 국도 중간에 덩그러니 있는 주유소로 들어갔다. 보통은 주유소 2층은 직원용 숙소가 있고 혹시 남은 연료가 있는지 확인도 할 겸 들어왔다. 차량은 자동 세차기 안에 숨겼고 주유소 연료 탱크를 확인하니 많지는 않지만 남은 연료가 있는 것을 확인 했다.
" 다행히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남은 연료가 있네."
" 다행이에요! 여기 2층은 숙소인가 봐요?"
" 보통은 주유소 2층에 직원 숙소나 사무실로 쓰는 곳이 많아. 다행히 여기는
숙소 인가봐."
" 뭐라도 있겠죠?"
" 뭐... 운이 좋다면 캔 음식이나 레토르트 식품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이런
외진 곳이라면 며칠 분의 식량을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니까."
주유소 뒤편에는 바닷가가 바로 보였고 근처에는 몇 개의 모텔도 보였다.
" 모텔이라.."
" 왜요?"
" 응?!"
혼자 말을 하는 것을 들었는지 은혜가 말을 했다. 대학시절 집에서 학교가 멀어 학교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모텔해서 자곤 했던 기억이 있었다. 처음 간 모텔은 스파 욕조에 엄청 큰 침실 등 완전히 신세계였지만 나이가 들어 운전면허를 따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별 감흥이 없어진 곳이었다.
" 많이 가봤나 봐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는 은혜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 뭐. 워낙 인기가 많아서."
" 참네."
내 말에 은혜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했다. 그런 은혜와 장난을 치며 주유소 2층으로 올라갔고 작은 사무실과 몇 개의 방이 보였다. 방문을 열어 확인을 해보니 두 개는 고시원 같은 구조로 싱글 침대와 옷장. 그리고 작은 책상이 마련된 방이었고 한 개는 더블 침대가 있는 제법 큰 방이었고 나머지 한 개는 창고로 사용하는 방이었다.
" 직원 전부가 여기서 생활했나?"
" 그런 것 같은데요? 정리도 제법 잘 되어 있는게 신기하지만."
대부분 남자가 생활했을 거라 예상했던 거와 다르게 은혜가 방 옷장에서 여자 옷과 속옷을 발견했다.
" 여자도 여기서 생활 했나 봐요. 옷이랑 속옷이 있네요?"
" 맞는게 있어?"
" 그냥 봐도 여기서 있던 여자분. 체격이 무척이나 외소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해주네요."
은혜가 꺼낸 옷들은 생각보다 작았고 속옷도 가장 작은 사이즈라 은혜가 입기에는 턱도 없는 크기였다. 일할 때 입는 옷을 빼고 사복을 찾았지만 맞는 옷이 없었다. 이럴 때에는 정말 은혜가 그냥 평범한 체형을 가졌으면 했다. 은혜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서 입을 만한 것이 있나 찾아봤지만 외출복 몇 벌은 은혜가 입기에는 도저히 무리였다.
" 허리는 들어가는데 길이가..."
치마가 몇 벌이 있어 입어봤지만 허리는 맞는데 길이가 너무 짧아 입는 의미가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창고를 뒤져 주유소 새 유니폼을 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은혜가 옷장을 뒤지는 사이 나는 창고를 뒤졌다. 유통기한이 지난 레토르트 식품이 몇 개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외 쓸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단순한 구조에 2층인 점과 옥상 물탱크에 많지는 않지만 세탁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물이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물을 끓여 세탁이 필요한 의류를 삶기 시작했다. 물이 끓자 대충 세안 정도만 하고 세탁물을 집어 넣고 삶기 시작했다.
" 오늘은 여기서 지내야겠지요?"
" 응.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 뒤에 바다도 있고."
" 자기 낚싯대 챙겨 온 것 있지 않아요? 가서 낚시라도 해봐요."
" 세탁만 끝나면. 자기 혼자 두기는 좀 그래서."
" 너무 걱정 하지 말고 다녀와요. 누가 오면 자기도 알테고 핑크도 있잖아요."
" 그래.."
은혜는 뭘 그런 것을 걱정 하냐며 나를 내보냈다. 낚싯대를 챙겨 건물 뒤 바다로 나갔지만 낚시를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방파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대충 바위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땅을 파서 미끼를 구하고는 바늘에 끼고 낚싯대를 던졌다. 애초에 잡을 계획 따위는 없었다. 단지 조금은 마음을 식히고 저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낚싯대를 던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 힘이 낚싯대를 통해 전해졌고 몇 분간의 사투 끝에 올라온 녀석은 제법 씨알이 굵은 녀석이었다.
" 생각지도 못 한 수확인데?"
별 기대 없이 던진 낚싯대에서 월척이 올라오자 조금은 오기가 생겼다. 다시 미끼를 끼고 던지기를 반복했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씨알이 굵은 녀석 3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 오늘 굶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나는 잡은 물고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다시 주유소로 올라갔다.
" 나왔어."
" 빨리 왔네요?"
이상하게 은혜는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나는 몇 초간 영문을 모르다 은혜의 복장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언제 세탁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이 해야 했고 은혜는 입고 있던 옷과 속옷까지 세탁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복장은 상당히 가벼운 복장에 속옷까지 입고 있지 않았으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상당히 오랜 시간 같이 지냈지만 아직까지도 저런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니 귀엽기도 했다.
" 아.. 요 녀석들만 놓고 다시 나갈 거야."
나는 잡은 물고기를 보여주고는 다시 짐을 챙기는 척하고는 주유소를 나갔다. 굳이 할 일이 없다해도 지금 안에 있으면 은혜가 불편해 할 것이니 차라리 밖에 있는 것이 서로 편했다.
" 하아..."
주유소 건물 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멀리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생존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주변에서 감염체나 비둘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대충 이쯤이면 내려가도 된다 싶어 내려가니 은혜의 복장이 달라져 있었고 세탁한 것들이 한 쪽 방에 잘 널려 있었다.
" 잡아 온 물고기는 어쩌죠?"
" 그냥 구워먹자. 요리할 물도 없는데. 그래도 간단한 조미료 정도는 있던데 소금
정도만 있어도 먹을만 할 것 같은데."
" 네. 제가 대충 손질을 할게요. 바닷물이라도 좀 퍼와주세요."
" 응. 금방 갔다올게."
손질하는데 굳이 물탱크의 물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바닷물을 떠와 달라고 했고 나는 큰 통을 가지고 바다가로 나가 물을 퍼왔다. 은혜는 내가 잡은 물고기를 꼼꼼히 손질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한 구석에서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주변에 드럼통이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없었다. 금속으로 된 큰 통이라도 있는지 찾기 시작했지만 전부 플라스틱 제품 뿐이었다.
" 난감하네. 불을 피울 마땅한 것이 없는데.."
" 밖에서 피울까요?"
" 조금..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연기야 처음에만 잠시 나니 상관은 없었지만 불빛은 달랐다. 밤에도 잘 보이니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 조금 더 찾아볼게."
" 네. 저도 거의 끝나가요."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가 꼼꼼하게 주변을 살폈고 다행히 업소에서 쓰는 대용량의 고추장 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금속으로 된 것이라 구멍만 조금 뚫고 바로 나무를 가져와 불을 피웠다. 조그만 불이 커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불길이 거세지기 시작하고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 캬아.. 잘 구워졌다."
" 잘 먹겠습니다."
" 많이 먹어요!"
은혜와 나는 한 마리씩 잡고 먹기 시작했다. 씨알이 굵은 녀석이니 뼈를 발라내니 굵직굵직한 살점들이 떨어져 나왔고 약간의 간이 배어있는 살들은 꽤 먹을 때까지도 질리지 않았다. 둘이서 세 마리 전부를 해치웠고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마련해둔 자리에 누웠다. 건물 근처가 안전하다고 느낀 것인지 은혜도 오랜만에 제법 편한 복장으로 누웠고 나는 손가락을 들어 은혜의 상체에 손을 넣었다. 당황한 은혜는 약간 놀라며 내 손을 잡았지만 이내 손에 힘을 풀고는 내 품 속으로 들어왔다. 내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움찔거리며 놀라기는 했지만 큰 거부감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이런 행위를 원하는 내가 어떤 면에서는 한심해 보일 수 있었지만 은혜는 별 저항 없이 내 욕구에 맞춰가고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은혜의 신체 부위를 탐닉하며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 하아..."
점점 숨을 몰아쉬는 은혜는 나지막한 신음을 뱉어냈다. 은혜의 인내력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몸을 떠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를 안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은혜의 긴 다리는 내 다리를 꼬고 있었다. 점점 우리 둘은 숨이 거칠어져 갔고 서로의 입을 맞추며 부드러운 혀의 감촉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 꾸엑!!"
하지만 한창 무르익어 은혜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핑크가 내 옆구리를 밟으며 위로 올라왔다. 마치 은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순식간에 풀린 분위기로 허탈감 마져 느꼈다.
" 핑크야 왜 그래?"
은혜는 핑크를 안으며 말을 했고 핑크는 은혜의 품에 안기기는 했지만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런 매서운 눈으로 나를 본 적이 없던 핑크였기에 당황도 되었다.
" 이 녀석. 왜 이렇게 나를 노려봐?"
나는 장난삼아 핑크의 머리를 쥐어박았지만 핑크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어라? 이 녀석 봐라?"
" 크르릉.."
" 어??"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보고 공격적으로 으르렁 거린 적이 없던 녀석이 갑자기 변했다. 순간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망원경을 들고 창문으로 뛰었다. 방향마다 창문을 돌며 주변을 확인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창문으로 가서 망원경을 들고 본 장면은 심각한 광경이었다.
" 젠장.."
" 왜..왜요..?"
내 표정을 본 은혜도 겁에 질려 물었고 대답을 하지 않아도 뭔지 예상되는 광경에 은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설마 눈치 채지는 못했겠지?"
" 아마도..."
불을 피울 때 연기가 나기는 했지만 많은 양도 아니었고 불을 피운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차라리 저 멀리 보이는 연기가 훨씬 오래 피어올랐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었다.
" 우선 침착하고..."
" 네.."
나와 은혜는 창문에 붙어 최대한 몸을 숨겼다. 거리와 속도를 보아하니 적어도 10분이면 이곳에 도착할 것 같았다.
" 그래서 네 녀석이 그랬군."
지금의 핑크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은혜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녀석. 핑크의 얼굴을 보고 다시 창문을 보고 움켜진 칼을 힘을 주어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