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48화 (247/281)

0248 / 0281 ----------------------------------------------

-3부-

예상대로 10여분이 흘러 비둘기들은 시야에 완전히 잡혔다. 크기도 다양하고 모습도 제각각인 녀석들을 보며 최대한 몸을 숨겼다. 다행히 우리를 보고 온 것이 아닌 듯 주변의 모텔과 마을 위에서 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다른 마을에서 나온 연기를 보고 몰려든 것이 맞는 것 같았다.

" 다행히 목표가 우리가 아냐."

" 다행이네요."

" 그래도 안심하기는 아직 일러. 우선 내가 여기 있을게 자기는 조금 자둬.

내일도 많이 움직일 것 같으니까."

" 괜찮아요. 자기도 못 자는데.."

" 난 괜찮아. 자기랑 나랑은 체력이 레벨이 달라. 그러니 조금이라도 자 둬."

은혜는 계속 같이 있겠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 둘 다 피로를 누적시킬 필요는 없었다. 내 끈질긴 설득 끝에 은혜는 내 옆에서 잠을 자기로 했고 속옷과 옷을 제대로 챙겨 입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며 잠을 청했다. 비둘기들은 해가 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마을과 주변 건물을 맴도는 모습이 보였고 간간히 활강하는 녀석들도 보였다. 그러더니 무리를 지어 건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인지 꽤 큰 소음이 들렸고 총소리도 미약하게 들렸다.

" 흠..."

확실히 지능이 높아진 것 같았다. 단순히 연기를 보고 몰려든 것이 아닌 연기를 보고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유추하고 몰려든 것 같았다.

" 생각보다 지능이 더 높은 건가."

활강을 하던 녀석들 주변으로 다른 비둘기도 몰려들기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와는 상당히 멀어지게 되었다. 작게 들리던 총소리도 이제는 크게 울려 퍼졌고 제법 큰 무기도 사용이 되는지 소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 소리도 얼마 못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비둘기들도 서서히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몇 몇은 제대로 날지 못하다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추락하는 녀석 주변으로 멀쩡한 녀석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 종족을... 먹는 건가?"

동족포식. 자연에서는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라도 들었다. 문제는 동족포식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몸에 영양분이 떨어졌거나 뭐 그런 이유로 생존을 위해서 하는 행위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약간 달라보였다.

뭐랄까 약한 녀석이나 다친 녀석은 방해되니 처리한다는 느낌. 다친 녀석들이 필사적으로 날아보려 했지만 이내 추락을 했고 추락하는 녀석들을 향해 달려드는 다른 녀석들을 보며 망원경을 내려놨다.

" 후우.."

나는 다른 방으로 가 문을 닫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창문도 다 닫고 커튼도 쳤기에 냄새나 빛을 보고 달려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몰라 최대한 빠르게 피고는 다시 은혜 옆에 자리를 잡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완전히 사라진 비둘기들을 보고 나도 잠에 빠질 수가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있었다.

" 깨우지..."

"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잘 잤어요?"

" 덕분에. 뭐하고 있었어?"

" 그냥 자기 옆에서 자다 깨다..."

살짝 웃으며 말을 하는 은혜를 보고 기지개를 한 번 펴고는 허리를 돌려 근육을 풀고 말을 했다.

" 그럼.. 또 이동을 시작할까?"

" 네."

은혜는 이미 짐을 전부 챙겨뒀고 트럭에 짐을 싣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연료도 여유가 있어 이번에는 에어컨을 틀고 이동을 했다.

" 아.. 시원하다.."

" 오랜만에 시원하네요."

거짓말 좀 보태면 연료 게이지가 떨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지경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달렸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움직여 많은 거리를 가지 못 할 것 같았지만 오늘은 그냥 생각 없이 달리고 싶었다. 은혜도 핑크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목적 없이 바다를 따라 한참을 운전하니 멀리서 전함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비둘기들은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아마도 우리보다 더 매혹적인 곳이 있어 우리를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으니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로 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아침 해가 뜨고 바로 이동을 시작했고 멀지 않은 곳에 작은 항구가 보였다. 하지만 항구에는 예상치 못 한 것이 눈에 보였다.

" 전함? 이런 곳에?"

크지 않은 항구에 여러 척의 전함이 보였다. 해군 출신이 아니니 그냥 해군 배는 그냥 전함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함이 제대로 물위에 떠 있다기보다 그냥 쓸려 내려와 침몰 직전처럼 보였다.

" 항공모함?!!! 말도 안 돼!! 어떻게저런 곳에?!"

배들 옆에 거대한 모습의 항공모함도 보였다. 하지만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해안선을 벗어나 내륙으로 달리는 도로였다. 잠시 차를 세워 배를 보니 분명 생존자들이 보였다. 그것도 군인들이. 내가 차를 세운 것을 보고 은혜도 잠에서 깨어 내게 다가왔다.

" 군용 배에요?"

" 응?? 응.. 생존자도 있어. 군인이야."

" 정말요?!"

" 제법 숫자도 되어 보여. 항구에도 사람들이 이동하는 모습도 보이고 차량도

상당히 많은데?"

" 와! 그럼 우리.."

" 아직 판단하긴 일러. 제대로 된 집단인지 아니면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집단이지 모르니 다가갈 수도 없고. 저 정도 숫자라면 아무리 나라도 자기를

지키고 싸우기는 불가능해."

" 아..."

제법 무장상태도 좋고 숫자도 많았다. 더군다나 기울어진 배는 단순히 수심이 얕아 기울어진 것 같았다. 저 큰 배가 수심이 얕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외관상 크게 부서진 곳이 없으니 잘만하면 운용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저들이 진자 생존을 위해서 자리를 잡은 것인지 아니면 불순한 생각의 생존자인지는 모르니 섣불리 다가가서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미군도 보이는 것 같았다. 주변에는 비둘기 시체를 태우는 모습도 보였고 그 모습이 여유롭기까지 했다.

" 꽤 모습이 안정적이네? 공격 받아도 별 피해가 없다는 말인가? 어제 그 새들

여기로 온 것 같은데?"

주변의 전투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어제의 새들은 분명 여기를 공격한 것이었다.

" 신기한 무기가 상당히 많은데요?"

" 흠... 뭐지 저건?"

작은 컨테이너 박스로 뭔가를 계속 실어 나르는 모습이 보였지만 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꽤 중요한 물건인지 경비는 삼엄했다.

" 뭔지는 몰라도 꽤 중요한 물건인가 봐요? 경비가 삼엄하네요?"

" 저렇게까지 삼엄하게 한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물건인건 확실하네."

" 어라?!"

" 왜요?!"

갑자기 군인들의 움직임이 바빠졌고 우리 뒤에서도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 눈치 챘나? 갑자기 움직임이.."

" 이상한데요? 그래도 이 정도 거리에 숨어있는데 설마.."

" 설마가 사람 잡았군."

확실히 군인들의 움직임이 우리가 있는 곳이 확실했다. 섣불리 움직이기에도 우리 위치는 너무 좋지 않았다. 칼을 잡고 자세를 잡기도 전에 이미 군인들은 나와 은혜의 주변을 둘러버린 후였다.

" 멈춰라!"

내가 칼을 잡고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한 남자가 말을 했다. 얼핏 보아도 숫자가 수십은 넘어 보였고 숨어 있는 녀석들까지 하면 내가 은혜를 지키면서 상대하기에는 무리인 숫자였다.

" 탱!!"

나는 순순히 칼을 땅에 던졌고 그 모습을 보고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 정체를 밝혀라!"

" 정체는 무슨.. 그냥 생존자다."

반말을 하는 병사에게 나도 반말로 응수했다. 병사는 잠시 주춤하더니 나에게 말을 했다.

" 몸에 상처는 있는가?!"

" 상처는 무슨.. 멀쩡하다."

" 혹시 모르니 검사를 해야 한다!"

나는 병사의 눈이 은혜에게 향한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 속셈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 여자의 몸을 네 녀석들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노려보며 말을 하자 우리에게 다가왔던 병사들이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멀리서 꽤 계급이 높은 남자로 보이는 군인이 다가와 말을 했다.

"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아라."

" 소령님."

"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가 상황이 상황인지라 너무 과하게 반응한 것 같습니다.

대신 사과드립니다."

" 아닙니다."

꽤 정중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그래도 제 정신인가 했지만 이내 느껴지는 느낌은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 당신..."

" 네. 당신도 비슷한 상황이군요."

내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정중하게 나를 대한 것 같았다. 병사들은 소령의 말을 듣고 물러났고 나도 칼을 다시 잡고는 말을 했다.

" 저희가 여기 있으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단지 보이는 배 안으로 들어오시지만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주변에도 생존자들이 꽤 있는 상황이라 감염 새의 공격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고요."

" 그거야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럼.."

나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 주변을 살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몇 분간 바라보다 소령도 다시 배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마을이라 집들도 많지 않았다. 항구 근처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생존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우리는 항구에서 제법 떨어진 곳의 건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보니 생존자들이 이곳을 꺼린 것 같았다. 집이라고 해봐야 작은 주택 형태였고 당연히 담벼락도 없었다. 예전에 누군가 살았는지 집은 꽤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 생각해보니.. 그 소령 우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지?"

" 네?"

" 그 병사들 우리를 보고 바로 이곳에 처음 왔다는 것을 알았단말야. 그 말은

병사들이 여기 마을에 있는 생존자들을 전부 알고 있다는 건데.."

" 맞네요? 왜 굳이 생존자를 알아야 할까요?"

" 그만큼 저 배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보안을

신경 쓰네."

" 진짜 뭔가 중요한 것이 있나 봐요."

" 모르긴 몰라도 반격을 할 수 있는 무기는 확실한 것 같네. 여기 사람들

생각보다 여유롭네. 미군도 보이는 것으로 봐선."

" 네.."

" 우선 정리가 끝났으니 먹을 거라도 구해올게. 지금 남은 것도 얼마 없으니."

" 같이 가요. 혼자 있기는 왠지 불안해서.."

" 그래. 같이 가자."

은혜와 나는 낚싯대를 챙겨 한적한 바다로 나갔다. 사람들이 제법 살고 있는 항구라 그런지 생각보다 입질이 많이 없었다. 멀리서 보이는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 마리 잡혔지만 씨알이 작아 많이 잡아야 할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잡았지만 수확은 좋지 못했다. 낚시를 하면서도 항구의 배들을 유심히 봤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애애애앵!!!!"

" 응? 뭐..? 뭐지?"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마자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고 핑크도 고개를 들어 한 방향을 바라봤다.

" 설마.."

가져온 망원경으로 핑크가 바라본 방향을 보니 상당한 숫자의 감염 비둘기들이 보였다. 그 사이렌 소리는 감염 비둘기가 공격해 온다는 경고의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배를 바라보니 갑판 위에서 기관총과 여러 무기들이 설치되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시야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비둘기들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움직였지만 몇몇은 힘을 잃고 추락 하였다. 일반 생존자들도 빠르게 집으로 들어갔고 병사 수십은 개인 화기를 들고 나와 추락한 비둘기를 처리했다.

나도 은혜와 함께 집으로 달려갔고 집 안으로 들어가 밖의 상황을 지켜봤다. 훈련이 잘 된 병사들이라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였지만 2차로 다가온 녀석들의 숫자가 많았기에 밀리는 모습이 보였다.

" 이대로라면 병사들이 밀릴 것 같은데.. 표정은 그렇게 긴장한 표정들이

아니네?"

" 무기가 많아서 그런가요?"

" 단순히 화력이 아닌데.. 응?!"

항공모함 갑판에서 처음 보는 비행체들이 이륙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르망 레이스 자동차 같은 모양과 흡사한 비행체 위에 사람이 서서 탑승한 모습이 보였다. 바퀴가 있어야 할 곳에 추진체가 달린 듯 날아올랐고 인원들의 손에는 화기나 대형 칼이 쥐어져 있었다. 감염 비둘기를 상대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날아오른 비행체들은 날고 있는 감염 비둘기 근처로 다가가서 비둘기를 상대하기 시작 했다.

" 퍼억!!!"

" 콰광!!!"

" 생각보다 화력이 강한데?"

비행체에서 나가는 미사일을 보고 말을 했다. 마침 우리 집 앞에 떨어진 비둘기가 아직 죽지 않고 우리를 보고 퍼덕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칼을 들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녀석의 목을 내리쳐 마무리를 했고 뒤늦게 다가온 병사들이 내 모습을 보고 다시 방향을 바꿔 주변의 비둘기를 처리했다.

" 생각보다 숫자가 너무 많은데?"

나는 하늘을 보면서 말을 했다. 은혜는 이런 상황이 이제는 익숙한지 예전처럼 겁을 먹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 자기는 집에 들어가 있는게 좋을 것 같은데?"

" 크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니 조금 지켜볼래요. 질 것 같지는 않은데요?"

" 하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하늘의 비둘기는 거의 정리가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