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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니 은혜가 돌아왔다.
" 비행에 성공했다고요?"
"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 다들 이야기 하던데요? 처음으로 추락하지 않고 날았던 사람이라고?"
" 그래? 다들 추락을 했구나."
그래서 시험 비행을 바다에서 하는 것이었다. 추락해도 별 피해 없이 수거가 가능하니까. 은혜도 옷을 챙겨 씻으러 나갔고 그 사이 나는 갑판으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 후우.."
" 아직도 남은 담배가 있으세요?"
" 하하.. 뭐 이리저리 많이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다가온 병사가 말을 했고 그 눈빛은 자신도 하나만 달라는 눈빛이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 하나 드릴까요?"
" 감사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하는 병사를 보고 살짝 웃음이 나왔다. 같이 담배를 나눠 피는 사람이 오랜만이라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담배 하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그럼 다음에.."
" 네. 수고하세요!"
다음에도 마주친다면 담배를 하나 더 달라는 것인지 다음에 만나자는 것인지 아리송한 말을 하고 사라진 병사를 보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이미 씻고 나온 은혜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방에서 샤워 실은 거리가 제법 되었다.
"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길을 잃을 뻔 했어요. 무슨 배가 이리 복잡한지.."
" 여기서 마음먹고 숨으면 찾기도 힘들다잖아."
" 이 정도 규모의 배에 사람이 별로 없다니.. 주변의 생존자들을 배에 타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 나도 물어 봤는데.."
나는 왜 이 배에 다른 생존자가 타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해줬다. 은혜도 그런 속사정을 듣고는 이해를 하는 표정이었다.
"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 응?"
은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솔직히 사람이 많이 모여 방어를 하고 지내면 어렵게라도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요?"
" 사람은... 이기적이니까.."
" 에휴..."
인간이라면 남들보다 더 나은 삶과 환경을 원하게 되니 이런 환경에서도 남들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체계가 아직 남아있는 이 배에서는 조금 더 오랜 시간 유지가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알 수는 없었다.
" 뭐 우리도 이기적이지. 우리도 지금까지 남들보다 훨씬 편한 생활을 했지만
다른 생존자과 같이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 흠.."
" 오늘은 늦었으니까 어서 자자. 내일도 힘들텐데."
" 자기는 내일부터 나가요?"
" 아니. 내일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이틀 후부터 나가기로 했어."
" 나가게 되면 너무 무리하지 마요. 또 흥분해서 날뛰지 말고."
" 걱정 하지 마. 이제는..."
" 네."
은혜는 웃으며 말을 했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같이 침대에 누웠다. 이제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배 안은 살짝 더울 정도였다.
" 배 안은 아직 덥네. 밖은 꽤 선선한데."
" 그러니 엉큼한 생각하지 마요. 땀나면 또 씻으러 가야하니까."
" 내가 뭘? 뭘 생각 하는거지?"
" 쳇..."
내가 약을 올리듯 말하니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내밀었다. 그런 표정이 귀여워 뺨을 어루만지고는 자리에 누웠다.
" 위윙잉!!"
" 이제 그만 하셔도.."
" 조금 더 하겠습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훈련이었지만 나는 바다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날면 얼마나 빠른지 알고 싶었다.
" 지금까지 나온 측정 수치 중에 가장 높은 속력입니다. 이 상태에서 부스터를
사용하면 탑승자와 보드가 분리 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 그럼 부스터는 언제.."
" 정말 긴박한 상황에 사용 하시죠. 괜히 사용했다 보드와 탑승자에게 피해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요."
" 알겠습니다."
나는 움직임에 더 익숙해지려 비행을 했고 해가 떨어질 때쯤 다시 배로 돌아왔다.
" 컥!!"
보드에서 내리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 의자에 앉으시죠. 피드백이 온 것입니다."
" 피드백이요?"
" 갑작스럽게 큰 힘을 소모하면서 나오는 증상입니다. 보통은 극심한 근육통이나
두통. 구토를 호소하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그런 증상 직전의 한계를
알게 되실 겁니다."
" 네."
" 몇 번 비행을 하면 그 한계치에 도달하면 헬멧에서 경고를 해줄 것입니다.
프로그램도 학습이 필요하니까 그 전까지만 조심하면 별 무리는 없을 것이지만
명심 할 것은 헬멧에서 나오는 경고를 절대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 경고를
듣고도 계속 비행하면 신체가 붕괴될 것입니다."
" 붕괴..."
"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최소한의 힘까지 끌어다 쓰면 당연히 몸은 망가지겠죠.
그 경고를 무시하고 비행했던 인원은 아직도 이 배 의무실에 누워있습니다."
" 죽지는 않는군요."
" 글쎄요.. 뇌만 살아 있다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연구원은 냉정하게 대답을 했다.
" 그나마 무너지기 전에 저희 쪽에서 강제로 보드를 정지시켜서 그 정도
입니다. 만약 계속 비행했다면 신체는 완전히 무너졌을 겁니다."
" 무시무시하군요. 어찌 보면 부작용.."
" 부작용은 아니죠. 한계를 넘어가면 당연한 결과이니. 부작용이라고 하면
방금 겪은 그 정도가 현재까지 알려진 전부입니다. 그런 부작용을 가진 무기로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싼 값이죠."
" 맞군요."
" 늦었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출정입니다. 푹 쉬어 두세요."
" 알겠습니다."
" 팀원 소개는 내일 오전 7시에 있을 예정이니 늦지 마세요."
" 네."
나는 연구원의 당부를 잊지 않고 일찍 잠을 청했고 6시 30분쯤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 내 보드까지 포함하여 10대의 보드들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고 갖갖이 장비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 당신이 김 재원씨군요."
" 네?"
뒤에서 들리는 중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5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고 그 뒤로 7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가 보였다.
" 이번에 새로 합류한 김 재원씨다. 다들 잘 지내도록."
" 네."
" 넵!"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 여로 이뤄진 부대였고 군복보다는 활동하기 편한 복장이었다.
" 우선 첫 전투니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 알겠습니다."
" 아.. 순서가 반대가 됐군. 우선 이쪽부터.."
남자는 차례대로 부대원들을 소개해줬다. 정확히 이름은 외우기에는 내 머리로는 한계가 있었다. 예전부터 이름은 더럽게 못 외웠으니까.
" 가지죠."
" 네."
부대원과 오늘 정찰을 나갈 곳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지그재그 방식으로 꼼꼼하게 확인을 하면서 비행해야 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린다고 했다. 간단한 비상식량과 권총과 탄약을 챙겨 보드 적재함에 실었다.
" 출발하겠습니다."
" 이륙!"
" 이륙!"
헬멧에서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다들 비행을 시작했다. 일렬로 서서 날아갈 줄 알았는데 선두에 부대장만 비행을 하고 나머지 부대원들은 불규칙적으로 비행을 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 저 때문에 속도를 늦출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 하시던 속도로 가도 상관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지금보다 속력을 높이도록 하죠."
내가 오히려 더 답답하여 말을 하였다. 부대장은 속도를 높이겠다고 말을 했고 점점 속도가 높아지며 수색 정찰 속도를 높였다.
" 전방에 움직임 발견! 전원 전투 준비!"
" 전투 준비!"
뭔가 움직임을 발견했다는 부대장의 말에 다들 각자의 무기를 챙겼다. 그리고 얼마 후 감염 비둘기 무리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적 발견! 근거리 접근 시 바로 공격한다!"
"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헬멧에서 무전 내용이 흘러 들어왔고 부대장은 바로 배에 연락을 취했다.
" 현재 서쪽 방향 약 8km 지점에서 감염 비둘기 무리 발견. 지원요청!"
" 현재 지원 가능한 병력이 없다. 무리해서 전투하지 말고 후퇴하도록!"
" 알았다."
무전을 끝낸 부대장이 우리에게 다시 말을 했다.
" 얼마 전 피해가 아직 복구 되지 않았나보군."
" 거리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후퇴할까요?"
" 언젠가는 마주칠 놈들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제거 한다."
" 알겠습니다."
나도 칼을 들어 전투를 준비했고 우리 부대는 좌우로 서서 전투를 준비했다.
" 타당!!"
부대장의 총소리를 시작으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나는 칼을 들어 달려드는 비둘기를 제거했다. 상하 좌우에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헬멧으로 시야의 한계가 있었기에 계속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해야 했고 달려들거나 지금 싸우고 있는 비둘기에 집중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 헉.. 헉..."
" 생각보다 체력이 약하군."
" 그런가요?"
체력적인 문제보다 긴장감이 문제였다. 나는 잠시 일행에서 떨어져 호흡을 가다듬기로 했다.
" 어디가십니까?!"
" 1분만요!!"
내가 무리에서 이탈하자 부대원 중 한 명이 무전을 했고 감염 비둘기가 없는 곳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 하아..하아.. 분명 예전에는 보지 않아도 근거리에 있는 녀석들은 알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난 정신을 집중해서 감염 비둘기를 봤고 30초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부대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 촤악!"
휘두르는 칼에 감염 비둘기는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첫 전투라 정신이 없었고 보드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니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의 감각이 살아나며 전투에 익숙해져갔고 감각도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대충 위치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였다.
" 신기한데? 저 각도에서 보일 수가 없는데?"
" 허..."
내 전투 방식에 다들 감탄하고 있을 때 무전으로 다른 내용이 흘러들어왔다.
" 레이더에 잡힐 정도로 많은 숫자의 감염 비둘기가 현재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 조심하십쇼. 숫자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 네. 알겠습..."
부대장은 무전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멀리서 다가오는 시커먼 먹구름을 바라봤다.
" 먹...구름은 아니겠지요?"
" 하하..."
" 빌어먹을!!!"
한 눈에 봐도 엄청난 숫자. 지금까지 봐 왔던 무리 중에 가장 많은 숫자였다. 얼핏 본다면 시커먼 먹구름이 이동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 이동한다!"
" 저것들 이동 방향이 저희 배쪽입니다!"
" 젠장.."
빠르게 다가오는 녀석들은 그대로 직진하며 다가왔고 그대로 간다면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배로 갈 것이 뻔하였다.
" 본부에 무전하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한다."
" 여기서 시간을 끄는 것이 어떤가요? 저 속도로 이동했다간 배에서 제대로
준비도 하기 전에 당할 것입니다."
" 보드에 무기가 장착되지 않은 인원은 배로 돌아가 방어 준비를 도와주고
나머지는 녀석들 속도를 떨어뜨린다."
" 알겠습니다."
" 네!"
부대장의 무전이 끝나자 3대의 보드가 방향을 돌려 배로 돌아갔다. 일렬로 선 우리는 감염 비둘기가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고 불과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