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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주변 폐자재들은 정말 가지각색의 물품들이 모여 있었다. 전차 장갑차 할 것 없이 전투에 쓰였던 장비들부터 경운기 트랙터 일반 승용차까지 모아놨던 것이다.
" 양이 어마어마하네."
" 우선 저 쪽으로 밀고 가죠."
" 무슨 수로 이걸 밀고 가겠다고? 차라리 저것들은 이쪽으로 옮기는게
빠르겠다. 그냥 봐도 백 톤은 가볍게 넘어갈 덩치인데. 그나마 가까운
곳에 착륙...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어쨌든 착륙했으니 대충 위장을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네. 저 먼지 구름을 보고 다른 생존자들이 몰릴
지도 모르니까."
" 알겠습니다."
박 중사의 말에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혜와 미란이 보미는 수송기 내부를 정리하기로 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외부 위장을 하기로 했다.
" 쿵..."
" 콰앙!!"
" 더럽게 무겁네. 진짜."
어디서 승합차를 주워온 재효가 투덜거리며 말을 했다. 승합차라고는 하지만 형체는 알아보기 힘들었고 뼈대만 남은 수준이었다.
" 그나저나 저 세 명 장난이 아닌데?"
" 워우.."
이번에 우리와 합류하게 된 세 명의 힘은 재효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우리 중에 평범한 기태도 일반 사람에 비하면 괴물 수준의 힘을 가졌지만 저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 저런 놈을 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했구나."
" 자자!! 해가 지기 전에 어서어서 움직이자고."
어지간한 중장비보다 월등한 효율을 자랑하는 인원들이 모였기에 폐기물로 위장하는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폐기물이 워낙 많았기에 쌓아 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장갑차나 군용 트럭에서 쓰다 남은 연료나 탄약 등 물품이 쏠쏠하게 발견되었다.
" 여기 전부 뒤지면 꽤 쏠쏠하겠다."
" 여기 연료통에 연료가 꽤 남았는데? 여긴 발전기도 있고."
" 상태가 좋아 보이니 우선 챙기고 보자."
우리는 작업 중간 중간 물자를 챙기며 일을 진행하였고 수송기 옆면을 가득 메우고 윗면을 메우기 위해 자잘한 자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 혹시 모르니 여기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서 밤에 경계를
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 근데 시야가 한정적이라.. 차라리 산 위로 올라가는게 더 좋지
않을까?"
" 굳이 올라가기보다 여기서 해결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무식하게 덮을 수는 없었기에 방어나 경계에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는 다시 폐자재들을 가져와 수송기 윗면을 덮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꽤 많은 폐자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은 양의 폐자재들이 굴러다녔고 우리는 쓸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폐자재 사이사이를 누비며 뒤지기 시작했다.
" 캉....캉..."
" 빈 통이네."
" 신기하게 생긴 차량이네.."
" 감염체를 상대하기 위해서 개조한 차량인가 봐."
오프로드 차량에 기관총과 여러 무기를 장착한 차량 몇 대가 눈에 보였다. 전투 헬기로 추측되는 동체도 발견이 되었고 전투기 날개도 보였다.
" 진짜 상태만 온전하면 완전 박물관 수준인데?"
" 이걸 정말 까마귀가 옮긴거 맞아? 이 많은걸?"
" 맞습니다. 제 눈으로 봤습니다."
성국이의 말에 약간 의심의 들었지만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 변종 조류라...비둘기라고 생각됐던 것들이 사실을 비둘기가 아니었던
거라.."
" 상대적으로 비둘기가 월등하게 많아 대부분은 비둘기가 맞습니다."
얼추 수색이 끝나고 수송기로 돌아오며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직은 서로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지금 상황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다. 지금은 서로 필요에 의해 모인 상황이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제법 그럴싸하게 위장이 된 수송기는 그냥 본다면 정말 쓰레기 더미에 불과했다.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제외하고는 밖에서 봐서는 비행기라고 생각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물론 꼬리 날개는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 저 위에서 경계를 서면 되는 건가?"
" 솔직히 경계를 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 생존자들이 수송기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 전에 저희 눈을 피해
근처까지 온다는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지요."
" 하긴... 굳이 쓸 때 없는 일에 체력을 낭비하기도.."
" 완전 요새가 따로 없네. 이래서는 그냥 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긴 어렵겠다."
" 저 산 중턱에서 이런 폐기물들이 모여져 있는 곳이 있습니다."
" 생각보다 많은가봐?"
" 네. 제가 알고 있는 곳만 4군데입니다."
" 생각보다 많네."
민환의 설명에 기태가 말을 했다.
" 이 섬에는 감염체가 없나봐?"
이제는 편하게 반말을 하는 박 중사였다.
" 제가 알기로는 일반 감염체는 간간히 발견되기는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류 감염체야 뭐 날아다니니 파악하기는 어렵고요.
크게 소음을 내면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면 생존자라고 저희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치도 섬 거의 끝자락이니."
" 하지만 섬에도 생존자들이 늘어난다면 어디선가 또 일반 감염체가
나타나겠죠."
민환과 성국이 번갈아가며 말을 했고 걸으면서 한 곳을 응시하던 기태가 입을 열었다.
" 감염체가 늘었나보다."
" 응?? 왜??"
" 저기 저곳에서 일반 감염체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어. 아무래도
우리가 착륙하는 소리를 듣고 모이는 것 같은데?"
" 어서 들어가자!!"
" 빨리 움직여!!"
우리는 서둘러 수송기 안으로 들어갔다. 수송기 안으로 들어가 기태가 알려준 방향 쪽의 창문을 열어 감염체의 움직임을 감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감염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얼마나 멀리 있는 거야?"
" 글쎄...나라고 거리를 정확하게 판명할 수 있는건 아니니.."
그렇게 긴장된 채로 한 시간이 지나서야 감염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숫자는 상당했다.
" 대충...오백? 육백?"
" 더 되어 보이는데?"
" 이 좁은 땅에 많기도 하다.."
망원경으로 감염체의 모습을 보니 처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저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궁금했다. 영양 섭취도 없는데 말이다.
" 아직까지 멀쩡한 모습을 보니 신기하네. 도대체 어떻게 육체를
유지하는 걸까?"
" 그걸 알면 지금쯤 저것들은 멸종했겠지?"
" 그래도 움직임을 보아하니 상당히 둔해진 것 같습니다."
민환의 말에 다들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확실히 초반 감염체의 모습보다는 야위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외형에 걸음도 더 부자연스럽게 변했다. 전부 그렇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현재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은 그랬다.
" 어라? 저기 생존자들 아냐?"
" 용감한데?"
약 30명의 무리들이 창 같은 무기를 들고 감염체를 제거 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수의 인원이 큰 소음을 내는 뭔가를 들고 이목을 집중시키면 나머지 인원이 반대편에서 제거해가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노련해보였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 꽤나 체계적으로 움직이는데?"
기태의 말에 망원경으로 상황을 보던 박 중사가 말을 했다.
" 실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총을 가진 인원들이 보이는데?"
" 최후의 수단에 사용하려고 하나? 아무래도 소음이 크게 울리면 또 다른
감염체가 몰려들 수 있으니까?"
" 저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 남아다라.. 대단한데?"
" 어떻게 보면 제일 효율적인 방법일지도.."
시간은 좀 걸렸지만 감염체들이 빠르게 줄어갔고 다시 한 번 죽음을 겪은 감염체를 한 곳에 모아 불에 태우는 모습을 보고 창문을 닫았다.
" 진화된 생존자는 아닌 것 같은데 상당히 빠른 속도인데?"
" 그런가?"
박 중사의 말에 별 감흥이 없었다. 나라면 솔직히 몇 분도 안 되서 쓸고 다녔을 숫자였기 때문이다.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내 모습이 한 편으로 불안하고 씁쓸한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런 내 감정의 변화를 눈치 챘는지 옆에 있던 은혜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은혜를 바라봤다. 은혜는 별 말 없이 특유의 눈웃음을 나에게 보여줬고 나도 살짝 미소 지으며 은혜의 행동에 답을 해줬다.
" 배고프다. 뭐라도 먹자."
" 그럴까요?"
" 그러고 보니 제대로 먹지를 못 했네."
" 그럼 저희는 식사를 준비할게요."
" 저도 도울게요."
여자들이 식당으로 가면서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고 희정이 같이 도와주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은 아이 같았다.
" 담배 피나?"
" 네. 하지만 거의 반 강제적으로 끊었죠."
나는 민환과 성국에게 흡연의 여부를 물었고 아직 여분이 남아 있던 나는 폐자재가 쌓여있는 한 곳으로 가서 담배 하나를 건내 주었다.
" 아직도 남아 있다는게 신기하군요.."
민환이의 표정을 보니 감격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 후우...."
깊게 연기를 마시고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살짝 웃기기까지 했다.
" 오랜만에 피니까 핑 도는데요?"
" 자자.. 여기 이거 가지고 아껴 펴."
" 어익후... 한 갑씩이나."
셋 다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라 친해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생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일 수도 있으니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 걱정 마십쇼. 그럴 생각 없습니다."
약간은 딱딱한 군대 말투를 쓰는 성국이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말을 했다. 내 표정만 봐서는 알기 힘들었을 것인데 저 녀석의 능력이 대충 감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뭐랄까.. 그냥 감?? 이라고 해야 하나요."
" 촉이라고 해야 하나..."
역시나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대답을 했다.
" 다방면에 능력이 발달했군."
" 뭐 형님처럼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많이 갑니다."
"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 네... 일전에 맞았던 주사와 비슷합니다."
" 그럼...너희 집단은 벌써 강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야?"
생각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이었다.
"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별이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존율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저만 해도 죽다 살아났으니까요."
말을 하는 민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민환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했다.
" 솔직히 너희를 아직까지 완전하게 신용하기는 어려워. 하지만
정말 너희가 단순히 우리와 함께 앞으로 살기 위해 합류했다면..
나도 최선을 다하도록 할게."
" 감사합니다."
" 감사할 것까지야.."
우리는 피우던 담배를 끝까지 피고는 다시 수송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직 내 눈에는 완전하게 위장이 된 것 같지 않아 폐자재들 몇 개를 더 주워와 꼼꼼하게 쌓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민환과 성국도 나를 도와 위장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인지 안에서 쉬고 있던 박 중사와 기태. 재효까지 나와 위장 작업을 손보기 시작했다.
"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왠지 내가 한 짓 때문에 다들 쉬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 뭐 굳이 쉬어봐야 뭐하냐. 꼼꼼하게 해 둬야 나중에 탈이 없지."
" 그럼 조금 외부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응?"
" 외부?"
묵묵히 자재를 나르던 성국이가 말을 했고 다들 성국이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