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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갑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이 부담이었는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 아..크흠.. 뭐 별건 아닙니다만 이렇게 저희가 수송기로 오가는 것이
다른 생존자들에게 보이면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 차라리 폐기물과
주변 자재들을 모아서 집처럼 꾸미는 것이 어떤가 해서 말입니다."
" 흠... 여기서 그냥 사는 것 처럼이라.."
" 아무리 수송기를 위장해도 보이기 마련인데 아예 입구서부터 막아
집처럼 꾸며서 외부에서 수송기로 출입하는 모습을 막자는 말입니다."
" 좋은 방법인데.. 이런 물건들로 집처럼 만든다는 게 가능할까?"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차량이나 전차 등 전투에 쓰였던 물건들이라
집 비슷한 것도 만들기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래도 성국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른 곳에서 물품을 구해보기로 했다.
" 우선 위치상 산과 산 중간에 끼인 상태고 주변에 주거 지역이라고는
농사를 짓던 집 몇 채가 전부입니다. 마트는커녕 편의점도 없는 동네
입니다. 하지만 잘만 뒤져 본다면 뭐라도 나오겠지요."
" 여기서 거리가 상당한데? 그리고 중간에 생존자들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고 말야."
민환이가 지도를 보면서 주변을 설명했다. 아무리 주거 지역이 작다고
해도 생존자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 뭔가 지지할 나무나 파이프를 구해보고 천막이나 이런 것으로 막아서
대충 꾸미기라도 하자. 아무래도 저런 물건들로는 절대 답이
안 나오겠는데?"
" 조를 짜서 흩어져서 찾아보자. 나랑 기태가 같이 갈게. 재원이는
성국이 민환이랑 같이 움직이고. 재효는 남아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하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조명탄을 쏴."
" 응. 조심히 다녀와."
박 중사는 나에게 성국이랑 민환이를 맡겼다. 둘의 힘을 봤기에 혹시 딴 마음을 먹는다면 제압이 가능한 인원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서로 반대로 움직이고 몸조심하고 혹시 모르니 다들 조명탄을
챙겨서 움직이자."
" 네."
" 알겠습니다."
나무를 잘라올 수도 있어 손도끼와 정글도를 챙겨 다들 움직였고 나도 민환이와 성국이를 이끌고 박 중사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도 나오는 게 없네."
" 섬 끝자락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성국이가 대답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전력질주의 속도이지만 우리는 그저 조금 빠르게 걷는 수준의 체력 소모를 보이고 있었다.
" 저기는 뭔가 없을까?"
뭔가 공사를 하다가 만 건물이 보였다. 집보다는 상가나 다른 건물을 짓다가 만 것처럼 보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봤다.
" 파이프 몇 개가 전부입니다."
" 그 흔한 공사용 천도 안 보이네."
이미 누군가 한바탕 쓸고 간 것인지 아니면 원래 없던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쓸 것은 없어보였다. 우선 아쉬운 대로 파이프라도 챙겨서 가기로 했다. 생존자의 흔적이 없는 집들을 다니며 이것저것을 주워왔지만 계획했던 집 비슷한 것을 짓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고 부족했다.
" 계획은 좋았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군요."
" 이거라도 어디냐. 그나저나 박 중사가 뭐라도 건져 와야하는데."
먼저 도착한 우리는 챙겨온 물품을 정리했다.
" 저기 오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박 중사의 모습이 보였고 그대로 우리보다는 손에 든 것이 많은 상태로 복귀하고 있었다.
" 그쪽은 수확이 별로네?"
" 진짜 아무것도 없더라. 가서 나무를 잘라오는 게 빠를 것 같던데?"
" 여기도 비슷해. 위치가 위치다보니 주거지역도 없고 생존자의 흔적도
그리 많지 않다. 없다고는 못할 정도고 최근에 움직인 흔적도 보여."
" 그래?"
" 뭐 우리가 움직이는 동안 나타난 적은 없으니 적어도 생존자들이
우리 위치나 수송기를 봤을 확률은 적어지겠지."
박 중사의 말에 내가 말했다.
" 그런데 그렇게 낮게 비행했는데 왜 아무도 안 모이는 걸까? 소음도
엄청 크게 났는데 말야?"
"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위치상 산과 산 사이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지면에 붙어 날아서 이 근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육안으로
보일 확률은 없다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민환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다.
" 그럼 다행인데... 그나저나 이걸로 집을 만들 수 있을까?"
" 우선 대충이라도 만들어보자. 재원이는 다시 애들이랑 다녀와."
" 왜 나냐?"
" 너희가 제일 힘이 좋으니까 많이 들고 올 수 있잖아."
" 참네.."
박 중사의 말에 대꾸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박 중사가 갔던 길로 이동을 했고 꽤 멀리가고서야 쓸 만한 물품을 건질 수 있었다. 그래봐야 H빔 몇 개와 공사장 천막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 가져왔어."
" 쿵..."
" 그래도 꽤 건졌네?"
" 너희도 꽤 그럴싸하다?"
몇 개의 지지대를 박아서 그 주변으로 차량 본넷으로 벽을 만들고 지붕은 수송기 낙하산을 찢어서 얼기설기 이어서 만들었다. 완전히 원초적인 집이었지만 그래도 수송기 입구를 가리기에는 충분한 크기였고 우리 일행이 들어가 지내기에도 충분했다. 생존자들이 본다고 한들 의심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 어디서 H빔은 구해왔냐?"
" 몇 개 더 있던데.. 자! 여기 천막."
" 몇 번 더 다녀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비 오면 완전 홍수 나겠는데?"
"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뭐. 이거라도 어디냐."
" 아직 여름이 끝난 것도 아닌데 여기서 잘 못하면 쩌 죽을 수도
있겠는데요?"
" 그냥 컨테이너라도 있다며 좋으련만.."
우리는 아예 주변 집이나 창고를 부숴서 자재를 구하기로 했다. 주변에 생존자가 없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니 약간의 소음이 나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들이 오래된 덕분에 슬레이트나 벽돌이 많은 덕분에 처음보다는 더 튼튼한 집이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 그 후에는 집 안에서 쓸 만한 가구를 가져오는 건가?"
" 천천히 하면 안 될까? 뭐가 급하다고 보는 사람도 없는데?"
" 이왕 하는 김에 그냥 해버리자."
갑자기 속도가 붙은 박 중사가 우리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며 찾아오라고 지시를 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 시키는 것을 하긴 했지만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 아 쫌!! 그냥 내일 하자고!!!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꾸며?"
" 야! 그대로 뭔가 있어 보이는 게 좋지 않냐?"
박 중사의 표정을 보니 지금 이런 행위가 즐거워 보였다.
" 너 솔직히 그냥 이게 만드는 게 즐거워서 계속 하는 거지?"
" 역시 눈치를 빨라."
" 이제 와서 알았냐?"
이미 알고 있는 듯 성국이가 말을 흐렸다. 하긴 성국이 능력이라면 진즉에 알아 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아차려 짜증을 냈을 때에는 이미 그럴싸한 집이 완성된 후였다. 물론 외부에서 본다면 그냥 폐자재로 이글루 형식으로 만든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말이다. 마치 영화 속 폐허 속 빈민가를 연상 시켰다. 외관은 허접하지만 내부는 그럴싸하게 꾸민 모습이었다. 바닥에 어디서 구해왔는데 합판을 이용해 수평을 잡았고 벽도 꽤 튼튼해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곳에 수송기 출입구와 연결된 나름 비밀통로도 만들어 놨다.
" 완전 폐자재 이글루구만."
" 칭찬 고맙다."
" 이걸 칭찬으로 듣는 네가 대단하다."
" 그래도 내부가 꽤 넓고 아늑한데요? 방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네요."
" 이 상황에 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네가 이상한거다."
재효의 말에 박 중사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런 재료로 이 정도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칭찬할 만 했다.
" 집들이나 해야겠네. 근처에 낚시 도구 판매하는 곳이 보이던데
난 가서 쓸 만한 게 있나 다녀올게."
난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일이 없음을 느끼고 우선 주변을 살펴볼 겸 나가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물품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여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 감염체만 아니라며 정말 살기 좋은 곳이네요."
" 그렇지... 감염체만 아니라면.."
나를 따라온 민환이가 말을 했다. 얼마 걷지 않아 낚시 용품을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했지만 내부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이미 누군가 오래전에 가져간 듯했다.
" 역시 동네가 동네다 보니 가게는 없다고 생각해야겠습니다."
" 흠... 아쉽네."
" 모든 것을 충족하며 살기는 어려운 시절이 됐으니까요."
" 조금 더 둘러보자."
민환이와 조금은 빠르게 걸으며 말을 했다. 낚시 포인트가 아닌 듯 더 이상 낚시 용품은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한적한 곳이지만 다행이도 펜션과 숙박업소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 썰렁하게 서 있는 모습이 웃겼다.
"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 지어진 건물이 많구나."
" 네?"
" 지금까지 이곳저곳을 돌며 살아남았는데 그 때마다 느꼈지만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 건물들이 참 많다는 거야. 동시에 그 안에는
생각보다 물품이 많다는 것도 포함되지."
난 조심스럽게 잠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먼지가 엄청나게 쌓여 감염체 초기부터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건물 자체도 오래된 상황에 인적이 끊긴지도 오래되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였다.
" 뭐...아무것도 없는데요?"
" 숙박업소 치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 깨끗한 수건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 매트리스 몇 개라도 들고 갈까?"
" 뭐.. 그것도 좋죠."
민환이와 나는 매트리스 몇 개를 묶고는 다시 우리가 있는 곳을 달렸다.
박 중사가 만든 폐자재 이글루 앞에 '폐글루' 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 이건 뭐야?"
" 폐자재 이글루의 줄임말."
" ....... "
" 어디서 그런건 또 구해왔냐?"
" 저기 오래된 모텔에서. 여인숙이라고 해야 하나?"
" 뭐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박 중사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드럼통 하나를 가져왔다.
" 그건 뭐에 쓰게?"
" 불 피울 때 쓰려고."
" 이 여름에?"
" 글쎄.. 여긴 생각보다 춥다고. 그리고 일전에도 느꼈지만 더 이상
계절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아마 조만간에 엄청 추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 설마..."
하지만 그날 저녁. 우리는 박 중사의 드럼통에 큰 고마움을 느껴야만 했다.
" 돌겠군. 뭐 이런 날씨가 다 있어?"
"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게 설마 입김인건가.."
" 덜덜덜.."
박 중사가 만든 일명 폐글루에서 남자들이 덜덜 떨고 있었다. 굳이 여기서 떨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나 생존자들이 멀리서 우리 모습을 볼 수도 있었기에 가능한 여기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기에 이 추위에도 여기서 떨고 있는 것이다.
" 내일은 가서 뭐라도 덮을 것을 가져와야 것다."
" 그냥 지금 가져오면 안 되냐?"
" 해가 넘어갔어. 어두워서 위험해."
" 도대체 네가 위험하다는 상황이 뭔지 궁금하다."
" 참네.."
내 말에 기태가 웃자고 말을 했다.
" 우선 돌아가면서 수송기에서 잠을 자고 나머지는 경계를 서자."
" 알겠습니다."
" 그럼 순번을 정해서 서 볼까나.."
" 철컥.. 탁! 탁!"
나는 소총에 탄창을 확인하고 결합시켰다.
" 굳이 소총까지...?"
"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는 해야지."
" 기태야 뭐 느껴지는 건 없냐?"
" 아직까지는 크게... 가끔 뭔가 움직임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희미해서
정확히 뭔지는 알 수가 없고."
" 방향은?"
" 산지사방이야. 정확하게 가늠하긴 어렵고."
" 다들 들어가서 쉬고 나는 민환이라 초번초니까 정리 좀 할게."
" 그럼 수고해."
" 들어가."
" 수고하십쇼."
다들 우리를 남겨두고 수송기로 통하는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 진짜 날씨나 현재 상황이나 저희 앞날이나 가늠할 수 있는 게 없군요."
" 결과를 알면 재미없지 않겠냐?"
" 지금 이 상황에 재미.."
" 그럼 어쩌냐? 울고불고 난리를 칠까? 아니면 굿이라도 할까? 그냥
낙천적으로 생각하자. 솔직히 우리는 아니 나는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신의 저주인지 모르겠지만 이 힘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었지.
뭐 제대로 발휘한 적도 없지만."
" 그럼 앞으로 계획은 있으십니까?"
" 계획이라.."
" 솔직히 제가 이곳을 말씀드렸지만 뭔가 계획이 있으셔서 승낙하시고
오신 것 아닙니까?"
" 뭐 예전 공항이랑 비슷하게 출입로가 몇 개 없다는 것도 이점이고
바닷가도 끼고 산도 많아서 뭔가 먹을 것도 있지 않을까 싶고.."
" 하하...뭐 즉흥적인 결정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