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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66화 (26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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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생각한다고 뭐 달라지나? 어차피 말아먹은 세상인데. 정말 먹고 살기

팍팍한 세상이 왔네."

"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정말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남지 않으셨

습니까?"

민환이의 대답을 들으니 아무래도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고 있는 듯 했다.

" 뭐 대충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네. 솔직히 우린

엄청나게 호화롭게 살아왔지. 진짜 엄청나게..."

" 지금도 그런 상황 아닙니까? 저 수송기만 있다면 몇 달은 고생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요?"

" 맞아.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지.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

"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 박 중사도 기태도 재효도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위장을 하고

어렵게 사는 척을 하는 거야. 감염체보다 더 무서운 게 또 다른

생존자라는 것은 알겠지?"

" 네..."

" 가진 힘을 숨길수록 적은 방심하기 마련이니까."

" 흠..."

" 아무래도 또 다른 생존자들이 우리 존재를 알았나보군."

" 네?"

" 너 아직은 이런 감이 없나봐?"

" 그런 쪽으로는.."

" 꽤 멀지만... 그래도 숫자는 열 명 내외인데?"

" 그 정도로 느껴지십니까?"

" 뭐... 어쩌다보니."

" 어쩌실 생각입니까?"

" 모른 척 해야지. 여기서 뭘 어쩌겠어. 긴장하지 말고 소총 내려놔."

민환이는 내 말에 긴장했는지 소총을 잡고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망원경으로 우리를 감시하는 생존자들의 위치를 봤지만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 우리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저들은 어떻게 우리를 보고 있는거지?"

" 그냥 저희랑 비슷하게 보는 것 아닐까요? 그냥 저희 인원수 정도를

알려고.."

"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되네."

" 그냥 모른척하고 있자. 아마 우리가 자고 있다고 생각할거야."

" 네."

나는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눕히고는 눈을 감았다.

" 설마 경계 근무 중에 주무시려는 겁니까?"

" 아냐..그냥 잠깐 누운거야."

" 네.."

눈을 감고 우리를 훔쳐보는 생존자들의 움직임을 느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랑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냥 지금까지 살아남은 일반 생존자 같았다.

" 별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은데..아마 며칠은 저렇게 와서 우리를 훔쳐

볼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야밤에 무섭지도 않은가? 감염체나 감염

조류가 공격하면 어쩌려고?"

" 낮에서 싸우는 것을 보니 꽤 경험이 많은 무리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밤에도 움직일 수 있겠지요."

" 대단한데? "

나와 민환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지나 다음 근무자인 박 중사와 성국이가 내려왔다.

" 별 일 있지?"

" 알면서 뭘 물어?"

박 중사도 느꼈는지 물었다.

" 숫자는 열 명 내외. 뭐 크게 적대적이기 보다 그냥 염탐하러 온

수준?"

" 다행이네. 뭐 적을 파악하지도 않고 쳐 들어오는 멍청한 놈들은

아니란거네."

" 그게 다행인거냐."

" 이거나 저거나."

" 그럼 수고하고. 우린 들어간다."

" 응. 푹 쉬고 혹시 모르니까 불 키지 마라."

" 알았다. 수고해."

민환이와 수송기로 올라가 대충 씻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몸은 던졌고 침대위에 떨어지기 무섭게 내 의식은 멀고 먼 꿈나라로 떨어져 버렸다.

" 상황은 어때?"

밤새 우리 주변을 맴도는 생존자들 때문에 잠을 깊게 잘 수 없었다. 마치 잠을 자는데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 계속 뒤척거려야 하는 느낌이었다.

" 특별한 움직임은 없어.

" 신경 쓰이네.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만들고."

" 언제까지 저럴 생각일까?"

" 우선은 모른 척 하고 지내자. 여자들은 가능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

" 너무 나가지 않아도 의심 받지 않을까?"

" 지금까지 경험상 여자가 끼어서 좋은 상황이 없었으니까 우선은."

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은혜와 미란이. 그리고 그에 뒤처지지 않는 보미와 희정이까지. 은혜와 미란이가 묘한 색기를 품은 여자라면 보미는 청순한 외모. 희정이는 작은 체구에 귀여운 얼굴과 애교가 많은 말투였다.

" 우선 나와 민환이는 여기서 머물게. 박 중사와 재효는 주변에서

식량이나 물자를 구하는 척을 하자."

" 응."

" 그리고 여자들은 동시에 4명이 나오지 말고 2명씩 짝을 지어 번갈아

하면서 나오자."

" 네."

" 그럼, 우리의 연극이 먹히길 바라며.."

나와 민환이는 폐글루에서 나가지 않고 망원경으로 우리를 감시하는 생존자를 감시했다.

" 체격이 좋은데? 먹고 살만 한가봐? 워.. 소총까지?"

" 대단한데요? 차량도 보여요. 개조차량인데요?"

" 생각보다 화력도 좋고.. 훈련 상태 영향상태도 좋고... 운 좋게 살아

남은 집단이 아니란 소리인데.."

나는 혹시 몰라 저격 스코프를 이용해 감시 인원들을 살펴봤다.

" 저들도 상당히 긴장한 표정입니다."

" 설마 수송기를 노리고 온 건 아니겠지?"

" 설마요. 만약 수송기를 알았다면 저 인원으로 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그렇겠지?"

수송기를 알고 왔다면 더 많은 인원으로 우리 숫자만 알면 바로 공격했을 것이다. 아무리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른다고 해도 추락한 수송기라면 분명 뭔가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들은 밖과 안을 오가며 평범한 힘들게 살아남은 생존자 연극을 했다. 하지만 저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나와 민환이를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 서..설마 지금 들고 있는게 박격포?"

" 도대체 왜... 지금 바로 공격 하려나?!!"

나는 소총을 잡고 바로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저들의 박격포는 우리를 공격하려고 가져왔다기보다 일반 감염체를 방어하기 위해 가져온 듯 했다. 왜냐면 설치 방향이 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다른 곳에 감염체가 나타 났나요?"

" 아니. 느껴지는 것은 없어. 그냥 방어용인 것 같은데??"

" 그럼 다행이지만 설마 박격포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 솔직히 여기 조금 더 뒤져보면 더 많이 나올걸?"

밖에서 물품을 구하러 갔던 박 중사는 연신 뭐를 들고 오고 있었다. 자동차 연료통부터 시작해서 소형 발전기 유탄까지 들고 왔다. 물론 무기류는 잘 숨겨서 가져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대단한데? 어디서 훔쳐 오는 건가?"

" 저것도 능력입니다."

" 태양열 집열판은 어디서 들고 온 거야?"

진짜 여기서 한 살림 차려 제대로 살아보자는 의지가 활활 타고 있는 박 중사의 모습을 보니 웃기기까지 했다. 이리저리 선을 연결하고는 밖에다 간이 주방까지 만들고 있었다.

" 엄청 열정적이다?"

" 이왕 살아가려는데 제대로 살아야지. 그나저나 저것들은 갈 생각을

안 하네?"

" 한 동안 저렇고 있겠지. 우리도 한 동안 이런 모습만 보여야하고."

" 뭐 크게 힘든 일은 아닌데 걸리적거리기는 하네."

" 재효는 어디가고?"

" 성국이랑 주변에 뭐 건질 것 있나 보러 갔어."

" 그래.."

아직은 둘만 보내기는 불안한데 박 중사는 아니었나보다. 혹시나 민환이 일행이 딴 마음을 먹으면 재효와 박 중사의 힘으로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당하지는 않겠지만 피해는 엄청 받을 게 뻔했다.

" 원래 있던 무리는 가고 다른 무리가 왔네."

" 교대인가.."

" 우선 우리도 상황을 지켜보자."

하지만 저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무리를 느끼고 새벽부터 우리는 긴장하고 잠을 깨어 있었다. 집을 정비하는 척 움직이고 있자 스무 명쯤 되는 인원이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장상태는 소총 인원 몇 명과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보다는 감염체를 상대하기 위한 무장으로 생각되었다.

" 뭐지.."

우리에게 다가오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과 옷을 보아하니 감염체와 전투를 최근에 치른 것 같았다.

" 언제 이곳에 온 것입니까?"

"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예상외로 꽤 정중한 말투로 물었고 대답은 박 중사가 대신했다. 내가 했다가는 또 감정적으로 나갈 것 같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 저희 눈을 피해서 오다니...그것도 감염체 위험 구역인데 운이

좋으시군요."

" 감염체 위험 구역이라..."

나는 남들이 듣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런데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 저희 구역에 오셨으니 보호비를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 보호비요?"

조폭도 아니고 자기 구역에 자리를 잡았으니 보호비를 걷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 하..하지만 저희는 여기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습니다."

" 앞으로 계속 계실 것 아닙니까? 주변을 보아하니 꽤 준비를 철저히

하셨고 계획도 있으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다행이 이들은 우리가 수송기를 타고 온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무기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박 중사의 말투는 적당히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표정도 보아하니 완전히 연기 대상감이었다.

" 그럼 뭐를 얼마나 드리면 되는 겁니까?"

" 만약 저희가 있는 곳으로 와서 지낸다면 채집, 수집양의 30%를

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다면 특별히 20%만 받도록 하죠.

대신 순찰은 하루에 한 번 정도 가능합니다."

" ....... "

칼까지 들었으니 날강도의 완전체를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주변에서 얼마나 얻을 수 있다고 20%를 가져간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드리면 됩니까?"

박 중사는 순순히 보호비를 내겠다고 말을 했다. 나는 묵묵히 박 중사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지만 아까운건 어쩔 수 없었다.

" 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일주일 후부터 받으러 오겠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보름간 저희 인원이 이곳에서 상주하겠습니다."

한 놈을 박아 놓고 자기들을 속이지 않는지 감시하겠다는 말이었다. 다행히 바로 상주하지 않아 우리가 대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 그럼.."

박 중사의 말에 무리들을 순순히 물러갔고 우리는 당장 대책회의를 해야만 했다.

" 한 녀석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씩이나 여기 머무를 줄이야.."

" 당장 폐글루부터 손을 봐야겠는데?"

" 여자들이 생활할 공간이라도 따로 만들어야하나?"

" 이것도 겨우 만들었는데 어떻게 집을 늘리냐."

" 미치겠군."

당장 일주일 후에 우리를 감시할 인원이 온다는데 우선 수송기를 숨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치 채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그리고 낯선 자가 와서 우리의 공간에 같이 지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젠장... 귀찮아 졌는데? 그냥 가서 쓸어버리면 안 되냐?"

" 숫자가 얼마나 될 줄 알고? 그래도 저렇게 점잖게 나오는 게

신기하네."

" 보름동안 힘들어지겠네."

" 눈치싸움이 시작된 건가.."

" 우선 주변을 둘러보고 수송기 주변을 꼼꼼하게 메꾸자."

" 그래..."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낯선이의 합류에 대응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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