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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67화 (26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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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시간은 금방 흘러 약속한 일주일이 지났다. 걸어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 줄 알았던 무리는 차량 두 대를 타고 나타났다. 아직까지 굴러다니는 차량이 있다는 것도 연료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 그럼 저희는 이만.."

별 말없이 2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를 내려두고는 떠나는 무리를 우두커니 보고는 시야에서 사라지자 몸을 돌려 내려준 남자를 바라봤다.

" 이름이...?"

" 그냥 규호라고 하시면 됩니다."

" 네.. 저는 그냥 박 중사라고 하시면 되고 여기..."

박 중사는 규호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우리 일행을 소개했다.

" 저는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여기서 있을 예정입니다. 어디 가실

때에는 저에게 행선지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와

여기. 여기는 감염체 상습 출몰지역과 감염 조류 출몰지역입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규호라는 남자는 우리에게 주변 위험지역을 지도를 펼치고 설명을 해줬다.

" 그럼 규호 씨가 소속된 집단이 이 섬을 관리하시는 겁니까?"

" 아닙니다."

규호 씨는 우리에게 지금 섬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섬은 총 4개의 집단이 장악하고 있다고 했고 우리가 속한 집단은 보호비를 받아 지역을 수비하는 인원의 식량으로 쓴다고 했다. 생각보다 넓은 지역이라 경비하는 인원들은 따로 경작이나 채집을 하긴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리 많은 양을 걷어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 대부분은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온전한 건물들이 많고 크기도

크기도 크지 않아 수비하기에도 쉬운 점이 있지만 해안가에서 조금

멀다는 게 단점이죠."

" 그럼 다른 집단은 어디서 생활하고 있습니까?"

"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른 집단도 도심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규호로 인하여 많은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규호는 여기서 생활한지 꽤 오래되어 지금까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 저희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나름

생존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 저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지역에 가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저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조건이라는 것을

알아두십쇼."

" 악조건이요?"

" 저희는 보호비 외에는 특별히 걷어가는 것도 없습니다. 만약 감염체의

공격으로 집을 잃는다면 다른 집으로 갈 수 있게 도와도 드립니다.

솔직히 섬에서 그나마 제일 평화스러운 집단입니다. 뭐 그래도

떠나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절대 절대로 좌측 상단의 구역의 집단은

피하시길 권해드립니다."

규호의 말에 따르면 우측 하단의 집단이 가장 규모가 크고 생존자의 숫자도 많다했다. 하지만 변질된 종교의 영향으로 포악하고 잔인한 면이 많다고 했다. 다른 지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지만 그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 그나저나 상당히 호의적이네요? 와서 감시할 줄 알았는데요?"

" 솔직히 말하면 감시 맞습니다. 단지 여기 근처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많지 않아 집단에서도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의

사항과 이 섬의 기본적인 룰을 설명하기 위해 저를 보낸 것이

맞겠지요. 그리고 설마 여기서 누군가 집을 만들어 지낼거라고

생각조차 못했으니까요. 여긴 저희 집단 구역에서 너무 멀고 제대로 된

주거지역도 없으니까요."

우리의 걱정과 달리 감시자 개념이 아닌 가이드 개념의 사람이 온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차량을 타고 다시 돌아가니 우리에게는 다행이었다. 여자들의 표정을 보니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잘못했으면 저 좁은 폐글루에서 이 많은 인원이 생활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 그럼 20% 보호비는..?"

"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거라고는 낚시와 채집이 전부인데 솔직히 저는

여러분이 여기서 지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뭐라도 나오겠죠."

" 먹고 살기 빠듯하면 보호비 외에 저희에게 경비 인력을 충원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생활하시다 생각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 감사합니다."

규호라는 남자는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아는 것 같았다. 솔직히 우리도 수송기만 없었다면 여기서 자리를 잡을 이유가 절대 없었다. 바닷가도 멀고 주거지역도 멀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말이다. 여자들은 페글루로 들어가 지금까지 챙겨온 가구나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규호 씨와 박 중사와 함께 낚시를 하기 위해 바닷가로 걸었다.

" 말씀드렸다시피 여기서 생활하시려면 옆 집단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형님들 일행에 여자들이 많고 또 미모도 상당하니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감염체만 상대하지 다른 집단과

전투는 하지 않습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규호와 친해져서 우리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주는 게 고마웠다.

" 그런데 보통 우리처럼 생존자들이 온다면 너처럼 그런 식으로

설명해줘?"

" 아뇨. 주의사항 몇 가지만 알려주고 보통은 다시 돌아가요. 형님네

일행이 거리가 있다보니..."

" 그렇군."

" 보름이라고는 했지만 보통은 이삼일 정도면 철수해요."

" 그래?"

" 네. 있어봐야 할 것도 없고 집단에서 보면 전투력 낭비라서 말은

보름이지만 길어야 삼일 정도면 철수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하지만 철수는 하되 종종 와서 상황을 본다는 것은 크게 반가운 소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던져 물고기를 기다렸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잡히는 것은 없었다.

" 왜 여기서 생활하지 않는지 알 것 같네."

" 돌겠군. 입질도 없는데?"

" 후우.... 거봐요."

내가 준 담배를 감격에 겨워 피며 말하는 규호였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섬이다보니 물자는 진즉에 떨어졌고 섬을 나가도 한참을 가야 번화가라고 불리는 곳이 나와 지금은 가기 힘들어  생필품이 부족하다고 했다. 물론 담배는 아예 없었고.

" 치직...치직... 규호!! 규호!!"

" 네. 말씀하세요."

규호가 가진 무전기에서 규호를 찾는 무전이 들려왔다.

" 치직...너 ...거기에 있지..?"

" 네...근처에서 있어요..."

어딘가 위치를 묻는 무전에 규호가 대답을 했다.

" 치직.. 근처 감시병이 그들이 돌아다닌다는 무전이 들어왔어.

가능하면 숨어라."

" 알겠습니다. 치직...치직..."

무전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감염체가 아닌 다른 생존자들이 우리 주변에 서성거린다는 무전 같았다.

" 바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 집단이 저희 위치 근처에 있다고 하네요."

" 불가침 아니었나?"

" 그건 어디까지나 집단 대 집단이지 저런 소수가 와서 약탈하는 것까지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아요. 저들의 생존 방식은 경작과 채집이 아닌

약탈이라 대부분 모여서 살고 있는 거에요."

" 젠장..."

우리는 낚싯대를 걷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폐글루 근처에 도착하자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재효가 우리의 걸음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우선 들어가. 들어가서 애기 하자. 다들 들어오라고 해."

" 응!"

다급한 목소리로 박 중사가 말을 했고 재효도 이리저리 다니면서 흩어진 우리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폐글루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폐글루는 외부에서 보면 그냥 쓰레기 더미에 불과했기에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차리기 힘든 구조였다. 규호의 무전 내용을 설명하고 여자들은 가능한 안쪽에서 그리고 남자들은 창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무기라고는 규호의 권총 한 자루와 쇠파이프 몇 개가 전부였다. 물론 규호의 권총보다 우리의 쇠파이프가 더 엄청난 무기였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규호는 긴장된 표정으로 밖을 바라봤다.

" 왜 그렇게 긴장해?"

" 네?? 아.... 저 집단은 솔직히 완전 미친 놈들의 모임이라.."

" 어디나 미친 놈은 있지 뭘."

" 저기 보이는 녀석들인가?"

" 네."

반바지에 민소매 티를 입은 남자 열 명이 창을 들고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얼굴에는 뭔가 위장크림 비슷한 것으로 덕지덕지 발라놨고 팔과 다리는 빈틈없는 문신으로 가득했다. 거리는 꽤 됐지만 다른 집단이 시야에 들어오자 더 긴장된 모습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규호가 마음에 걸렸다.

" 왜 그래?"

" 저 녀석들 식인도 해요."

" 뭐?!"

" 설마.."

" 제가 직접 봤어요."

" 하...정말이야? 그렇게 먹을 게 없나?"

" 먹을 게 없어서 식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 미쳤군."

" 더군다나 여긴 여자도 네 명이나 있습니다. 만약 저들 눈에 보인다면

지금 당장은 물러가겠지만 어느 순간 집단 전체가 미쳐서 날 뛸 수도

있습니다."

저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냥 주변을 둘러보러 나온 것 같았다. 특별히 어디를 찾는다거나 뭔가 얻으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 설마..수송기... 착륙을 본건가??"

" 그럼 큰일인데.."

나는 박 중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규호의 말에 따르면 분명 여기에는 얻을 수 있는 게 다른 곳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를 저들이 모를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들이 온 이유는 우리가 착륙할 때 봤다는 가능성이 높았다.

" 쉽게 발견하기는 어려울 거야. "

" 그럼 좋겠는데.. "

장난을 치며 마치 근처 공원에 놀러온 듯 장난치는 놈들을 보니 정말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방어나 공격 무기도 없이 저렇게 편하게 입고 간단한 무기만 챙기고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 끼에엑!!!"

" 응?!!"

" 뭔 소리야?!"

어디선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소리였다.

" 와....우..."

" 하하...뭐냐...저건...?"

지금까지 우리가 보던 감염 비둘기보다 훨씬 큰 감염 조류의 등장이었다. 그것도 발이 4개나 달린. 엄청 큰 날개에 악어 입을 연상시키는 부리를 가진 그리고 카멜레온 같은 눈을 달고 이리저리 날던 조류 감염체는 밖에서 마실 나온 듯 놀던 인원들은 공격하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딱 한 번의 공격이었다.

" 하하... 이래서 여기 아무도 안 살았구나.."

" 저희 이사 갈까요?"

"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냐?"

다들 감염 조류를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발이 4개나 달린 녀석은 한 번에 4명의 사람을 낚아서 올라갔고 뛰어 도망가는 나머지 인원을 부리를 이용해 잡아 채갔다.

" 으득...으득.."

" 젠장...설마...저 소린..."

이미 기절했는지 부리에 매달린 사람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부리가 움직이면서 뭔가를 씹는 듯 움직이더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아직 살아있는 녀석들은 정말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머지 인원에 별 관심이 없는지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고 우리 위로 날아가는 녀석의 부리에서는 피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 돌아버리겠군."

" 장난이 아닌데? 활강하는 속도가 어마 어마해."

다들 감염 조류의 모습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일전의 우리가 봤던 감염 조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놀랐고 그 움직임을 보고 한 번더 놀랐다.

" 도대체 발이 4개인 이유는 뭘까? 뭐가 저렇게 변한거지? 발이 4개인데

날개가 달린 생물체가 있었나?"

" 그게 뭐가 중요하냐? 지금 저런 녀석이 있다는 게 문제지."

" 하하...더럽네 진짜.."

" 우선 저는 보고 하겠습니다. 잠시만.."

" 지금 나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조금 있다 나가는게 좋을 것 같다."

" 그...그럴까요?"

감염 조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위험은 남아 있었다. 혹시나 우리 시야에 없는 곳에서 나타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지나 별 움직임이 없어 규호는 나가서 바로 무전으로 연락을 했고 다시 30분이 지나 무전으로 연락이 들어왔다.

" 치직..현..현재 섬 주변 전체에서 감염 조류와 감염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온 상황...치직... 정찰 대원은 현 위치를 지키고... 공,방조는

치직..공,방조는 복귀하라."

" 난감하군."

" 너 여기서 지내야 하는거냐?"

" 그렇게 됐네요...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아...정말 귀찮게 됐다. 규호가 가면 뭐라도 챙겨 먹으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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