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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규호가 가진 무전으로 수시로 현재 상황에 대한 브리핑이 들어왔다.
" 치직..현재...생존자 전원은 현 위치를 지킬 것...치직.."
" 현재 남동쪽 지역에 다수의 감염체 발견. 모든 생존자들은 현 위치를
사수할 것."
" 북동쪽 지역에 감염 조류 무리 발견. 절대 외부로 나가지 말 것."
섬 전체가 아주 난리였다. 예전 국제공항보다 더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았다.
그 때보다 생존자의 숫자는 비교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공항 때 보다는 적은 것 같은데 이 섬은 유독 감염체 출연이 잦은 것 같았다.
" 이 섬에 들어오려면 솔직히 다리는 두 곳인데 그 쪽 수비는 전혀
하지 않나봐?"
" 네. 애초에 단합되어 만들어진 집단도 아니고. 각자 살기 바쁜 상황이라
다리에 보낼 병력 따위는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박 중사의 물음에 규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하긴 누가 남 좋은 일을 팔 걷고 나서서 하겠냐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 그럼 매번 이렇게 감염체가 나타나면 숨는 방법 외에는 없는 거야?"
" 네. 그래도 적은 숫자라면 지역을 관리하는 집단에서 인원을 보내서
처리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와 조류 감염체라면 승산이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 초반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가진 무기도 식량도 별로 없는 상황에
쓸 때 없이 나섰다가는 괴멸할 위험이 크지."
" 그리고 조류 감염체는 소총에 웬만큼 맞아서는 죽지도 않습니다."
" 갈수록 태산이구만. 첩첩산중이야."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다른 종의 다수 출연은 거의 없다는 것이
다행이지요."
" 그런데.. 북동쪽이면 우리가 있는 곳 아니냐?"
무전을 듣던 기태가 말을 했다. 분명 무전에서 북동쪽에서 다수의 조류 감염체가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 맞네..여기 아냐?"
" 조금 전 그 한 마리가 전부가 아니었군."
" 다수라...젠장...."
아직 해가 중천이고 우리가 가진 식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수송기에는 많은 양의 식량이 있었지만 아직 믿을 수 없는 규호에게 우리가 가진 물품을 보여주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은 해 줬지만 우리의 호감을 사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오늘도 밥은 다 먹었네."
" 비축분이 없으신 겁니까?"
" 비축? 아까 나가봐서 알잖아. 뭐 구할게 있다고. 그날그날 입에 풀칠
하기도 힘든 곳인데."
" 흠...예상은 했지만.."
" 20%를 가져간다고 한들 그 양이 얼마나 되겠냐? 오늘 아침에 잠깐
낚시를 했지만 입질도 없었잖아."
" 생각보다 척박하군요. 그래도 밑에는 입질이 꽤 있는 편인데.."
" 낚시라는 게 뭐 순간으로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지금까지는 뭔가 얻기는
힘들 것 같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박 중사가 말을 돌려 너희에게 줘봐야 얼마 가져가지도 못하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규호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여기서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인식하기 못한 듯 했다.
" 잠잠해지면 제가 가서 위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다른 방법은 없나? 꼭 식량을 줘야해?"
" 경비 인력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재는 그 숫자가 많지 않아서.."
"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자리가 없다는 소리야 아니면 경비 부대 자체가
인력이 없다는 소리야?"
" 둘 다입니다."
" 얼씨구."
" 경비 부대라고 해봐야 총인원이 50명이 채 안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몇 백 단위로 움직였다고 했지만 떠나는 사람도 많고 죽는 사람도 많아
충원이 힘든 상황입니다."
" 하아.... 다른 구역 집단도 비슷한가?"
" 잘은 모릅니다만 뭐 예상하자면 전체적으로 사람이 부족하겠지요.
생존자가 여기 들어오는 경우도 이제는 거의 없으니까요. 제가 아는
바로는 형님네 일행이 온 것이 요 몇 달 중에 처음입니다."
" 대단하군."
" 그나마 섬 중심지는 사람이 조금 있는 편인데 그 지역은 4군데 집단의
경계선에 딱 걸리는 부분에 있어서 다들 꺼리는 편입니다. 저희도 본부
외에는 거기서 사는 인원은 없습니다."
" 서로 사이가 안 좋구나."
"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왠지 꺼려지죠."
" 저기...저거 설마..."
창밖을 바라보던 재효가 말을 더듬으며 말을 했다. 일제히 창밖으로 시선이 쏠렸고 창밖의 하늘은 마치 먹구름이 빠르게 밀려오는 착각을 불러 왔다.
" 저게 다 감염 조류...인거야?"
" 하하...예전에 뭐 둥지를 폭격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새때. 외형도 크기도 가지각색 이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 완전히 괴물로 변했네."
" 저러고 어떻게 날아 다닐 수 있지?"
" 하아..."
낮게 날고 있는 몇 마리의 입과 발톱에는 사람이었던 육체의 일부분이 걸려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를 당했는지 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화를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 잡히면 바로 그냥 저 세상이군."
" 저쪽은 일반 감염체다."
" 가지가지 한다 진짜."
반대 방향에서는 수백의 감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감염된지 한 참은 되어 보이는 상태였지만 몇 몇의 옷차림은 출처를 의심케 했다.
" 저 옷... 우리나라가 아닌데?"
" 응?? 어라?"
" 기모노 아냐?"
" 일본..?"
옷이 엉망이 된 감염체였지만 살아생전 입었던 옷은 대충 알 수 있었다.
" 한 녀석이라면 그냥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저
숫자는 좀 많은데?"
" 어디 근처에서 축제라도 했던 것 아닐까요?"
" 일본 전통 옷을 입고 일본 축제를 했다면 뉴스에 나왔을 걸."
감염체 사태 전 반일 감정이 꽤나 크게 번지고 있었기에 어디선가 축제라도
했다간 바로 뉴스에 나왔을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런 뉴스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 설마...아니겠지?"
" 뭐가?"
" 일본에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규호가 심각하게 물었다.
" 아마도..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신빙성 있지 않을까?"
" 하지만 감염체는 물을 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 피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물에 들어간다고 죽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어디서 쓸려 왔을 가능성도 있고."
" 에라이...진짜!!!"
" 얼굴이야 완전히 썩고 말라서 알 수는 없지만 저 정도 인원이라면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멀쩡한 육체였다면 대충 알 것도 같지만 지금은 복장 외에는 분간할 방법이 없었다. 감염체 무리의 반 정도가 기모노나 일본 복장으로 의심되는 것으로 보아 국내에서 감염된 녀석들은 아닌 것 같았다.
" 그럼 일본에서 여기까지 쓸려왔다는 소린가요?"
" 아마도... 지진이나 쓰나미로 인하여 쓸려왔을 수도 있지."
" 지진이라..."
" 지금 기후도 이상하자나? 불과 일주일 전에도 우리 밤에 추워서 덜덜
떨면서 있었는데?"
" 하긴... 눈도 이상하리 만큼 많이 왔고 비도 많이 왔지."
" 특히나 비는 엄청나게 왔지."
" 하긴 소문에는 중국인지 북한군인지 비슷한 복장의 감염체 무리도
봤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 그런 감염체는 우리도 봤어. 많지는 않았지만."
" 익사하지도 않는다란 건가? 감염체는?"
" 물에 들어가면 죽겠지. 하지만 다시 육지로 나오면 살지 않을까? 예전에
강원도에서 식당에서 자살한 사람 기억 안나? 줄을 푸니까 살아나서
난리쳤던?"
" 하긴... 근데 그 사람은 감염체에게 물리거나 상처 입은 흔적이 없었는데?"
" 모르지...다른 방법으로 감염 됐을지도."
" 영원히 물에 담궈야하나..."
" 그럼 물이 오염돼서 우리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 아오..."
우리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동안 일반 감염체와 조류 감염체가 교차하여 지나갔다.
" 퍼퍽!!!!"
" 끼에엑!!!"
" 푸욱!!!"
" 어랍숑? 재들 봐라?"
예상과 다르게 조류 감염체가 지상으로 내려와 일반 감염체를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일반 감염체는 공격이나 방어할 생각도 안하고 갈 길을 가고 있었고 중간 중간 조류 감염체가 낚아 채가는 모습만 보였다.
" 그냥...먹이구나.."
" 그래도 딱 먹을 만큼만 잡아가네."
" 죄다 쓸고 지나가면 좋으련만."
생존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되는 일반 감염체를 공격하여 물어가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일반 감염체의 숫자라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 쿠웅....."
" 쿵!!!"
" 뭐지?"
" 무슨 일이야? 누가 공격이라도..?"
" 아닌 것 같은데?"
잘 날아가던 몇 마리가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을 했다. 추락을 한 조류 감염체를 유심히 보니 입에는 씹다만 일반 감염체가 보였고 입에서는 검붉은 피를 토하며 푸득거리다 완전히 힘을 잃어 늘어졌다.
" 몇 마리는 독이라도 있나봐? 다른 녀석들은 잘만 날아가는데?"
" 복불복이구만."
" 그나저나 저것들은 피도 흘리는구나..."
" 조류는 인간과 다른가봐. 우린 죽어서 변하는데 저것들은 살아서 변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 진화...라기 보다는 변화겠지."
" 그래서 어느 한 쪽의 개체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던 것이군. 저런 식으로
숫자를 유지한 건가?"
" 타의로 유지됐지. 저건."
" 무섭네요."
그 뒤로 몇 마리가 더 하늘에서 추락했지만 다른 조류들은 관심도 없이 유유하게 떠나갔다.
" 무전에서는 별 말이 없네?"
" 아무래도 다들 몸을 사리고 있겠지."
" 무섭다. 무서워..."
"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지금 나가면 너무 위험하겠지?"
배가 고파 뭐라도 잡아 올 생각으로 내가 말을 했지만 규호가 말렸다.
" 적어도 몇 시간은 지나서 움직이는 것이 안전합니다."
" 그래..."
아직 우리 힘을 모르는 규호는 최대한 안전한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나가자고 했다. 솔직히 우리가 무기만 충분히 받쳐 준다면 방금 온 감염체 전부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다가 폐글루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모인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제는 크게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희정이는 예상외로 표정이 겁을 먹고 웅크린 표정이었다. 그런 희정이를 은혜가 잘 다독이는 모습이었고 내가 알기로는 희정이의 힘도 우리처럼 변화된 것으로 아는데 저렇게 겁을 먹는 이유가 궁금했다.
" 희정이는...아직 불안전 합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옆에서 민환이가 조용하게 대답을 했다. 불안전이라..
도대체 불안전 하다는 것은 뭘 말하는 걸까?
" 불안전 하다라니?"
" 예전 형님처럼...변하면 이성을 잃습니다. 물론 기억도."
" 헐크냐...."
" 뭐 비슷하죠. 인간의 육체를 극한까지 올릴 수 있는 약물이니까요."
" 그런 약물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그걸 맞을 생각을 했던 너희도
대단하다."
"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요."
뭔가 사정이 있는 듯 슬픈 눈으로 말을 하는 민환이를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도 은혜를 구하기 위하여 그 약물을 맞았으니 말이다. 나는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은혜 옆에 앉았다.
" 좀 괜찮아?"
" 네. 조금 놀래서 그런가 봐요."
은혜 옆에서 잠이 든 희정이를 보고 나는 물었다. 이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공포심이 크다보니 그냥 뇌에서 잠이나 자버리라고 억지로 재운것 같았다
" 배고프다... 먹을 것도 없고... 저 녀석은 언제 가는 거야."
" 계속 숨길 생각이죠?"
" 당연하지. 저 녀석을 뭘 믿고."
" 네..."
은혜의 말에 난 단칼에 말을 했고 은혜의 눈을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자기... 저 녀석을 아는구나?"
" 네... 저를 보는 눈을 보니 저 사람을 저를 기억 못하는 것 같은데.."
" 자기를 봤는데 기억을 못한다는 게 더 신기하네."
" 그럴 수도 있죠."
" 어떤 사람인데?"
내 물음에 은혜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