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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69화 (268/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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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은혜의 기억에 의하면 저 녀석은 온전했던 사회에서 보디가드로 있었다고 했다. 은혜가 아르바이트로 행사를 뛰던 시절에 친했던 언니가 있었는데

스토커로 꽤나 오랜 시간 고생했었는데 점점 그 강도가 높아지자 개인적으로 고용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 제 기억으로는 그 스토커가 행사장까지 와서 난리를 쳤는데 저 남자가

가볍게 제압했어요. 그 때 제 기억으로는 무술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 그렇다면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겠군."

" 모르죠. 소문이 잘못됐을지도..."

" 어렵군...복잡하고."

은혜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우리를 감시하는 업무보다는 감염체를 제거하거나 공격하는 업무에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거나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다.

"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알겠지. 정말 실력자라서 숨기고 있다고 해도

언젠간 티가 나겠지."

"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왜 실력을 숨기고.."

" 자기 밑천을 들어내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으니까."

온전한 사회에서도 발톱을 드러내면 안 되는 법이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전부 드러낸다면 사람들은 이용할 생각만 하지 좋은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감염체는 전부 지나갔나? 조용하네."

"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몸을 숨기고 있죠."

규호의 말에 다들 조용히 몸을 기대고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감염체가 지나가고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체감적으로는 몇 시간이 흐른듯 했다.

" 하암...젠장.."

" 이제 슬슬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 그럴까?"

기태의 말에 조심스럽게 폐글루에서 나갔다. 우리 주변은 감염 조류가 먹다 남기고 간 일반 감염체와 재수 없게 감염체를 먹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녀석들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시체를 한 곳에 모아 불태웠고 그 냄새는 예전과 달랐다.

" 원래 이런 냄새가 났나? 장난이 아닌데?"

" 우웩... 뭐지? 이 냄새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분명 예전에도 몇 번 태웠는데 그 때는 이런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 새 때문인가? 지금까지 다른 녀석들이라?"

" 예전에도 태워봤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도대체 이유가 뭐야?"

" 2차 감염인가..."

" 응? "

" 뭐?"

우리는 기태의 중얼거림을 듣고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생각해보면 감염체도 감염된거고... 조류도 감염이 된 상황인데.. 그런

녀석이 다른 녀석을 먹고 죽는다라.. 쉽게 생각하면 목감기가 걸렸는데

코감기도 걸려서 죽은 상황?"

" 일반적으로 감염이 된 녀석들인데 다르게 감염된 녀석들을 먹으면

감염된 조류는 죽는다는 거야?"

" 뭐 쉽게 생각하면."

" 그럼 지금까지는 왜?"

" 모르지. 우리가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

"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군요."

우리의 대화에 규호가 말을 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해도 지금 상황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는 기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기도 실제로는 몇 백 종류의 감기가 있다고 하잖아.

감기약이라는 것도 실제로 감기를 낫게 하는 게 아니고 증상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야. 처음에는 그냥 일반적인 감염이었던 것이 전이가

되면서 변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 감염이 전파되면서 돌연변이가 생겼다는 말이군?"

" 박 중사 말이 맞아. 예전에 봤던 대형 감염체나 조류 따위를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빠르게 돌연변이가 생긴거지."

" 돌연변이라..."

기태의 추측이라면 우리가 변한 것도 어쩌면 돌연변이 감염이 원인일 수도

있었다.

" 뭐 제대로 된 연구도 없으니 그냥 생각이지."

" 그래도 천적이 있어서 다행인가?"

" 규호. 무전으로 별다른 말은 없어?"

" 저희 쪽 상황은 무전을 했는데 다른 곳은 별다른 무전이 없습니다."

" 아직 섬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 섬으로 연결된 다리가 겨우 2곳인데 막지도 못하다니..."

" 자기 살기 바쁘니까."

박 중사는 제대로만 막으면 일반 감염체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뼈저리게 느낀 건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몇 변 겪어 봤잖아. 변하지 않아."

" 하아..."

" 그냥 우리만 잘 살아남으면 되는 거야.. 우리만.."

박 중사의 말에 기태가 말을 했다.

" 무전으로 현재 육안으로 발견되는 감염체는 없다고 합니다."

" 그럼 너도 돌아가나?"

나는 배고품에 바로 물었고 규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 저는 복귀 무전이 없었습니다. 아마 며칠간은 여기서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래...?"

난 아쉬움에 대답을 했다. 우리 물자를 아는 민환이 일행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굳이 규호에게까지 말을 해줄 필요도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 자자!! 혹시 모르니 오늘은 다들 안에서 숨죽이고 있자고!"

" 그러자..."

기태가 지금 분위기를 바꾸려고 일부러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 얻은 식량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굶고 지나가야만 했다.

" 꼬르륵..."

" 아놔...젠장..."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요 근래는 좀

많이 못 먹었다. 점점 힘이 떨어지면서 기운도 없어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있었지만 꾹꾹 눌러 참으며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이제는 계절이 바뀌려는 것인지 아니면 지형적 특성인지 새벽에는 제법 찬 기운이 느껴졌다. 달력도 없이 그냥 대충 하루하루를 지내니 정확한 날짜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 오늘은 박 중사랑 민환이랑 성국이랑 식량을 구하러 가고 나는 기태랑

주변을 뒤져서 쓸 만한 게 있나 찾아볼게."

" 그래.. 재효랑 규호는 남아서 혹시 모르니 집을 지켜줘."

" 네."

" 알겠습니다."

무전은 아직도 규호의 복귀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많은 인원이 20평

남짓이라 추측되는 폐글루에서 같이 생활하니 다들 엄청 불편했다. 화장실 문제부터 잠을 자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하루하루 피로는 엄청나게 쌓여갔고 다들 표정에서도 짜증스러움이 묻어났다.

" 다들 힘들겠지만 시간을 두고 조금씩 보수해가자."

" 네..."

" 네..."

가장 힘든 것은 여자들이었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니 냄새는 둘째고 밤에 코고는 남자들이 대부분이니 잠을 설치고 화장실도 편하게 갈 수도 없고 먹은 것도 없었다. 다들 지금까지 얼마나 호화스럽게 살았는지를 아는지 별 말은 없지만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여자들도 주변에 뭔가 먹을 것이 있는지 찾으러 나갔고 그 옆을 재효가 지키기로 했다. 멀리만 나가지 않는다면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았기에 추가로 따라가는 인력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금 우리 상황이 매우 좋지 못 했지만.

나는 기태랑 몇 없는 주택을 수색하기로 했고 규호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천천히 이동을 했다.

" 위험하지 않을까? 규호만 두고?"

" 재효도 있고 여차하면 희정이도 있으니까."

" 민환이 일행도 아직은 신용하기 이르지 않아?"

" 어쩔 수 있나... 믿지는 못하지만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으니.. 규호 놈이

저렇고 있으니."

" 하긴..."

" 그 놈 속을 모르니 함부로 우리가 가진 것을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주기도

싫고."

" 은혜가 말한 것이 맞으면 실력자일텐데... 재효로도 괜찮겠지?"

" 여차하면 조명탄을 쏘라고 은혜에게 말해뒀으니 시간을 벌 수 있을거야."

" 에휴.."

" 그나저나 여기 뭐 있는게 하나도 없냐?"

나는 기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누군가 살았던 집을 도둑놈 마냥 뒤지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꽤 큰 집이라 생각되었는데 내부는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 흔한 소파나 침대도 없는 집이었다.

" 노인들만 살아서 그런가.. 진짜 소박하네."

" 참네. 숟가락도 4개가 전부네."

" 라면이나 뭐 그런 건 없냐?"

" 아무것도."

그 흔한 레토르트 식품도 전혀 없었고 냉장도고 감염체 사태 전에도 보기 힘들었던 아주 옛날 모델이었다.

" 더럽게도 튼튼하게 만들었나보다. 고장도 안 났나봐."

" 대단하다. 저 냉장고."

냉장고를 열어 내용물을 살폈지만 반찬통 몇 개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누군가 먼저 가져 간건가?"

" 모르지.. 침구류나 좀 챙겨가자."

" 근데 이거 한꺼번에 들고 가면 의심하지 않을까?"

그냥 봐도 무거워 보이는 침구류를 우리 둘이 가뿐하게 들고가면 규호가

의심할 것이 뻔했다.

" 아까 오면서 리어카가 있던 것 같았는데?"

" 다시 보고 올게."

내 말에 기태가 잽싸게 집을 나갔고 잠시 후 덜덜 거리며 리어카를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 바퀴가 좀 헐겁지만 그래도 굴러는 가겠다."

" 우선 비닐로 좀 덮고 가져가자."

침구류는 상태를 깨끗했다. 단지 시간이 오래 흘러 먼지가 수북했기에

기태와 군대에서 모포 털듯이 털고는 비닐로 밑을 덮은 리어카에 싣고는 다른 집으로 향했다.

" 이 낙서들은 뭐야?"

집 담벼락이나 건물에 락카 스프레이로 뿌려진 낙서들이 보였다. 뭔가 표시 같기도 하고 그냥 마구 휘갈긴 것 같기도 한 낙서들이라 한번 보고는 말았다.

" 이번 집은 그나마 쓸 만하 게 있네."

" 양은 냄비도 있네. 그것도 큰데?"

" 솥도 있다야."

" 들고 갈까? 폐글루 앞에 아궁이라도 만들자."

" 그럴까?"

기태와 나는 집 곳곳을 뒤졌지만 주방 용품 몇 개를 빼고는 건진 것이 없었다. 이미 여기서 생존한 사람들이 진즉에 털어간 것이었다. 더 이상 챙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다른 집을 가려다가 리어카 무게도 생각해야 했기에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 에휴.... 이제는 이런 식으로 뭘 구한다는 건 생각조차 말아야지."

" 그래서 그 식인 무리가 생긴 건가?"

" 가보고 싶기는한 데..."

" 미쳤냐?"

" 뭐 우리가 간다고 무슨 일이라도 당하겠냐?"

" 아서라. 그 호기심."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에 꼭 미친 녀석들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실에서도 생겨버린 상황이 우스웠다.

" 뭘 혼자서 쪼개냐?"

" 웃기지 않냐? 영화에서만 보던 상황이 이렇게 현실이 되니까?"

" 참네..."

"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이렇게 변한 것이 과연 다행인 것인가 생각을 해봤다. 진화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즉에 감염되거나 죽었을 것 같지만 변화지 않았다면 이렇게 생활하지도 않았기에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 강원도가 좋았는데.."

" 처음에 거기?"

" 응... 그래도 그 때는 먹고 살만 했는데 말야."

" 엎드려!!!"

과거를 회상하며 유유히 걷다가 기태의 외침에 바로 엎드렸다.

" 왜?!"

" 차량..."

" 응??"

기태가 가리킨 곳을 보니 처음 들렀던 집 근처에 차량 세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차는 일반 승용차와 SUV였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 와우...폐션니스트인데?"

" 미친 놈. 이 와중에 농담이 나오냐?"

내 말에 기태가 다그쳤다. 차에서 내린 남자들은 긴 바지에 상체는 도화지도 아니고 온 몸에 잔뜩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신기한 모습은 차에서 여자들도 내렸는데 그들이라고 남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와우... 박 중사가 보면 까무러치겠는데?"

" 뭐여 저것들?"

옷이나 속옷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알겠지만 저들은 구하기 힘들어서 안 입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섬이고 집에 옷이 몇 벌만 있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 아무래도...우리를 찾으러 온 것 같지?"

" 동선이 그러네."

우리가 첫 번째로 갔던 집과 두 번째로 갔던 집을 차례로 가는 모습을 봐서는 누군가 우리를 감시한 것이다.

" 누군가 우릴 감시했는데 못 느꼈냐?"

" 멀리서 감시했나본데? 근처에 뭐 특별히 느껴지는 것은 없었는데."

" 아니면 우리랑 비슷한 부류가 있는 건가?"

" 없다고는 생각 못 하겠지."

나와 기태는 풀숲 한 곳에 몸을 숨겨 원시인 같이 차려입은 녀석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 녀석들은 다행히 우리가 마지막으로 둘러봤던 집을 끝으로 차량에 타고는 바로 돌아갔다.

" 우리가 저 놈들 구역 경계선에 있다고 했는데... 앞으로 자주 볼 사이겠다."

" 아오..."

내 말에 기태는 혀를 찼고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폐글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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