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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70화 (26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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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우리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규호에게 우리가 봤던 녀석들의 인상착의를 말했다.

" 역시... 경계선에 있어 저희 움직임을 보고 있던 모양입니다."

" 위험하지는 않아?"

" 당연히..... 위험하죠."

" 젠장..."

" 거처를 옮기시죠. 여성분들도 있고 여기는 생활하기 좋은 곳은 아닙니다."

" 어디든 생활하기 좋은 곳이 지금 어디 있냐?"

옮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수송기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규호는 거처를 옮기지 않는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 애써서 만든 것도 아깝고.. 솔직히 주변에 제대로 된 곳을 찾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섬 중앙 근처로 가기도 싫고."

" 여기 계속 있으시면 분명 저 놈들이랑 언젠가는 마주할 것입니다."

" 어쩔 수 없지 뭐."

내 말에 규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말 했다.

"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시는 것 아닙니까?"

" 다른 곳을 간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이러나저러나 위험은 마찬가지야."

박 중사가 내 대답을 대신 해줬다.

" 위험한 것을 알고 있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지. 괜히 뒤통수 맞을

일도 없고."

재효도 박 중사를 거들었다.

" 다들..."

" 규호 너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우리만의 방식대로

살아남았어."

물론 전부 죽이거나 도망친 것이 전부지만.

" 하아..."

규호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우리랑 관련도 없는 놈이 왜 저렇게 신경써주는지 그것도 신기했다.

" 저는 우선 본부로 복귀하라는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 그래?"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 녀석이 가야 수송기에서 뭐라도 꺼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규호의 말에 다들 표정 변화는 없지만 눈동자가 빛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 우선...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만약 제가 여기서 머무르겠다고 한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이건 뭔 개똥같은 소리인가. 멀쩡한 숙소 놔두고 도대체 왜 식인 무리가 득실거리는 경계선으로 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왜...왜지?"

난 조금 당황하며 말을 했다.

" 첫 번째는 그냥..감입니다. 형님들과 같이 있다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있다면 형님 일행들은

집단에 식량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 경우 물론 몇 분은 여기 경계를

서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요."

' 젠장...'

난 속으로 욕을 내 뱉었다. 그냥 대충 감시하다 가고 우리는 간간히 낚시나 풀뿌리나 캐서 보호비를 내려고 했는데 계획이 완전히 물 건너 가려는 순간이었다.

" 싫어."

" 어래?"

나보다 먼저 박 중사가 말을 했다.

" 네?"

거절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규호가 당황하며 물었다.

" 널 믿을 수 없어."

단칼에 거절하고 면상에 대고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말하는 박 중사였다.

" 저를 믿을 수 없다...고.."

" 당연하지. 반대로 생각해봐라. 며칠 봤다고 널 우리가 지내는 공간에 덥석

받아들일 수 있겠냐? 너희 집단이야 우리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것 아냐? 근처에 있다고 했다면 과연

허락했을까?"

믿지 못하는 사람끼리의 동거는 감염체보다 위험했다.

" 네..맞습니다."

" 이유도 그냥 그래. 감이라... 두 번째 이유는 좀 끌리긴 하지만 우리에게

큰 이득은 없어. 어차피 소득이 바닥이니까."

" ...... "

박 중사의 말에 규호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솔직하게 말한다면 뭔가 중요한 것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 ...... "

박 중사도 사람에 대한 감은 꽤 좋은 편이다. 이런 경우 민환이에게 물어보면 조금 더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바로 물어보기에는 나와 민환이의 거리가 조금 멀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민환이는 어깨를 살짝 들어 잘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 저놈이라고 정확하지는 않는군.'

거절의 대답을 들었지만 규호는 쉽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규호 네 윗사람에게 뭐라고 보고를 해도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괜히 우리에게 뭔가 보복이나 해코지가 들어온

다면...각오는 해야할거야."

박 중사가 목소리를 깔며 위협을 했다. 하지만 규호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힘들게 입을 연 규호를 바라보며 나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다를 편하게 자세를 취했고 그런 우리들을 보고 규호는 약간 벙찐 표정이었다.

" 뭐 어렵게 들어야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살짝 웃으며 규호에게 말을 했다.

" 감염체 사태 전부터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묵고

있는 숙소에 같이 지내고 있지만 저도 집단에 속해있는 상황이라

지금처럼 숙소를 비우는 시간이 많습니다. 지금은 법이 없는 세상입니다.

섬에는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많고 보셨다시피 제 정신이 아닌 놈들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여자 친구 혼자 두는 것이 불안합니다. 실제로

제가 없는 것을 알고 겁탈하려 들어온 놈들도 있었고 다행히 그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규호의 말에 의하면 집단도 멀쩡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어 범인 색출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들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 흠..."

진짜 인지 거짓인지 알 길을 없었지만 조금의 진심은 느껴졌다.

" 제 경험으로 지금까지 이런 조합으로 생존한 경우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런 미모를 가진 여자 일행과 같이 말입니다. 그 말인즉슨

형님들 일행에게는 뭔가 힘이 있다는 증거겠지요."

꽤 예리한 추측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체력적으로 여성들 보다 우위에 있고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곳도 다녀온다. 이런 단순한 이유만 가지고 본다면 여성들보다 생존할 확률은 높아진다. 더불어

규호가 말한 것도 맞는 말이었다. 은혜를 비롯하여 미란이 보미도 절대 떨어지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합류한 희정이도 귀여운 외모로 원래 있던 여자들과는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외모를 가진 아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지금까지 아무런 피해 없이 지금까지 같이 생활했다는 것 자체가 규호가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는 게 당연했다.

" 그래서?"

" 저는 상관없습니다. 제 여자 친구라도 형님들 일행에 받아 줬으면 합니다."

규호의 말에 박 중사가 조금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단순히 우리 일행에 끼고 싶다는 것보다 여자 친구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뭘 믿고 여자 친구를 우리에게 맏기는 거야? 네가 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면 어쩔 건데? 오히려 여자 친구를 더 위험한 곳으로 보낸 결과

일텐데?"

" 제 직감을 믿습니다."

" 자신감이 넘치네."

규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말을 했다.

" 상당히 위험한 도박을 하는군. 그것도 자기 여자 친구를 걸고 말이야."

내 말에 다들 나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말을 했던 박 중사도 묵묵히 내 말에 집중을 했다.

" 네가 틀렸다면? 네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라면? 저 아이들도 내가

가진 절대적인 힘을 따르고 있다면?"

은연중 내 힘을 말하며 말을 했다.

" 사람은.... 누군가 따르고 믿을 때와 두려움으로 따를 때와 눈빛이

다릅니다. 적어도 제가 본 여성분들의 눈빛은...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오호..."

" 만약..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너무...너의 감을 믿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 상관없습니다. 적어도..적어도 지금 있는 곳보다는 나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규호의 말에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박 중사. 네 생각은?"

" 당장 결정해야해?"

" 뭐... 지금 규호는 당장 대답을 바라는 것 같은데?"

내 말에 박 중사가 살짝 당황하며 말을 했다.

" 흠..."

" 바로 대답을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해봐야 별로 신용이 안가."

말과 표정이 다른 규효를 보며 나는 말을 했다.

" 언제부터 오려고?"

" 저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 모르지만 여자 친구는 바로 가능합니다."

" 허락하지."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박 중사가 빨리 결정을 했다. 뭐 다른 일행들의 생각을 묻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지만 대부분 박 중사의 결정에 따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희정이도 있는 마당에 한 명이 더 추가된다고 문제 될 것은 없어보였다. 정말 문제라면 우리가 가진 수송선인데 과연 그것까지 규호에게

말해 줄지 의문이었다.

"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짧았지만 너의 모습을 보고

결정한 결과야. 하지만 네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거야."

" 알겠습니다."

" 피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클 수도 있어. 우리 중에서 가장 온순하면서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재원이라 알아서 하겠지만."

" 왜 하필 나냐?"

" 뭐... "

갑자기 내 이름이 나오자 꽤 불편했다. 물론 여기서 내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긴 했지만 대놓고 피력하기는 처음이었다.

" 그럼 언제부터 합류할 생각이야?"

" 여자 친구는 큰 문제가 없기에 제가 복귀하면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문제를 보고하고 가능하면 이동 없이 형님들이 평범한

정찰 보고를 하는 방향으로 보호비를 면제하는 쪽으로 해보겠습니다."

" 그래...알았다. 그럼 바로 실행해."

"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규호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냥 표면적으로 봐서는 진심으로 느껴졌지만 지금까지 겪은 경험으로는 확신하기는 일렀다.

" 진행 상황을 우리에게 수시로 알려줘."

" 헌데 무슨 수로.."

" 여기.."

박 중사는 따로 챙겨둔 무전기를 건내며 말을 했다.

" 우리라고 지금까지 어렵게 생존했다고 생각 하지 마."

" 네."

우리가 또 다른 무전기를 가졌다는 사실에 꽤 놀라는 표정이었다. 단순한 무전기로 놀란다면 우리가 가진 것을 보여준다면 정말 기절할 지도 몰랐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허튼 수작 부렸다가는 진짜 각오해야 할거야."

" 네. 믿어 주십시오."

" 그럼 바로 움직여."

" 네."

박 중사의 말을 듣고 규호는 바로 페글루를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는 처량함과 희망이 동시에 보였다.

" 나 혼자 결정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다들 별 반대는 없지?"

" 전 상관없어요. 여자가 늘어나면 좋죠."

" 나도 크게.."

" 뭐 지금 인원에서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다들 큰 반대는 없는 것 같았다. 은혜의 증언도 한 몫을 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그의 행동은 우리의 호감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 과연 잘한 걸까?"

박 중사의 중얼거림에 기태가 말을 했다.

" 뭐 결정 다 해놓고 뭔 걱정이야. 우리가 보고 느낀게 틀렸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은 안 받으면 되는거야."

" 재원이 네 생각은 어때?"

" 뭐 지금은 네가 결정한 상황이니 난 크게 불만은 없어. 솔직히

반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네 생각도 비슷하니 다행이네."

"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하잖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

진짜 저 녀석이 나은 놈이라면 다행이고 아니라면 그냥 묻어

버리면 되는거고."

" 생각보다 단순하게 대답한다?"

" 어려울 게 뭐가 있겠냐? 산전수전 다 겪은 마당에.."

" 그럼 기다리면 되는 건가?"

" 뭐 규호 말을 들어보면 크게 변할 것도 없을 것 가고."

나는 은혜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며 말을 했다. 이런 나의 행동이 싫지 않은 듯 은혜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기다림이라..."

다들 의견이 비슷한 가운데 각자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누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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