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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규호의 결정과 본부의 결정은 늦지 않았다.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 그리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식량이 별거 없다고 생각한 상황에 정찰 임무가 더 효율적이라고 느꼈는지 바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우선 규호의 여자 친구를 먼저 우리에게 보내고 규호는 며칠 있다가 온다고 했다.
" 안녕하세요. 예진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 민구입니다."
민구는 차례대로 우리를 소개했다. 규호가 29살이고 여자 친구는 20살이라고 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의 여자 친구는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안이었다.
"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요."
미란이의 말에 약간은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지만 다시 나와 재효를 보고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과거에 좋은 일이 없다보니 남자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 걱정 말아요."
은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예진이는 은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 네."
"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 우리가 가진 옷이 여유가 있으니."
" 감사합니다."
예진이의 옷은 얼마나 오랫동안 입었는지 이곳저곳 헤져 있었고 냄새도 상당했다. 예진이의 말에 따르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외에는 아무것도
지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 심각한가?"
" 당연한거 아니냐? 지금 상황에 어디서 수도를 끌어와?"
" 우리는 귀족 생활이구만."
태양열 집열판까지 이용하여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약간의 전기를 얻어 생활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해 온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예진이는 그렇게 생활했던 것이다.
" 어딘가 속해 있으면 조금은 편하기는 한데 저는..."
" 너무 걱정 마. 지금부터 잘 지내면 되지."
" 네.. 감사합니다."
예진이는 뭐가 그리 감사한지 말끝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미란이와 다른 여자들은 또 다른 여자 일행을 반기며 편하게 대했고 다행히 예진이도 처음보다는 긴장을 늦춘 표정이었다.
" 산적 같은 놈이 여자 친구는 여리여리하네."
" 참네..너는?"
내 말에 기태가 말을 했다. 나는 그런 기태에게 욕을 한바탕 해주고는 폐글루 옆으로 갔다.
" 아무래도 옆을 터서 공간을 늘려야겠는데.."
" 무리야. 지금도 아슬아슬한데."
전문적인 지식도 없이 대충 만든 폐글루를 증축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지금도 자는 공간을 제외하면 거의 여유 공간이 없는 마당에 규호와 예진이가 들어온다면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었다. 물론 각자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금의 상화에서였다. 입었던 옷과 속옷을 빨아도 널어놓을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여자들 입장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자신의 신체 사이즈가 알려진 다는 것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물론 굳이 사이즈가 궁금해서 훔쳐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느끼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생존자라면 사치라고 느껴질 것이지만 우리 상황은 그들보다는 조금 더 아니 많이 나은 편이었다.
남자 친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른 남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긴 무리였다.
" 규호가 온다면... 수송선을 보여줘야겠지?"
" 너무 이른 것 같은데.."
" 하아... 복잡하구만."
공교롭게도 박 중사만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 다른 외로움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박 중사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 조금 더...지켜보자."
" 그래.."
나는 피던 담배를 끄고는 다시 폐글루로 돌아갔다.
규호는 예진이가 오고 이틀 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다행이 우리의 상황이 잘 전달되어 나와 박 중사가 정찰조로 포함되는 조건에 의하여 보호비는 면제되었다. 물론 크게 하는 일을 없지만 그래도 간간히 티는 내줘야 한다고 규호는 말을 했다.
" 현재 다른 곳 상황은?"
"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입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 돌겠네."
규호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집단의 관할 구역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른 집단은 크게 위협적이지 못했지만 우리와 근접하게 붙은 집단은 생각보다 큰 위험이었다.
" 그 쪽이 제일 인원수도 많고 무기도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 도대체 그 무기들을 어디서 얻은 거야?"
" 조금만.. 위험을 감수한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식량인데.."
우리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규호는 우리의 식량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아직 박 중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알려주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고 최대한 시간을 끌기로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얼마 오래 걸리지 못했다.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라곤 낚시가 전부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던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씨가 말랐고 주거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하나도 없었다.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을 수준이 되었고 다들 굶주림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 오늘도 수확은 별 도움이 안 되네."
" 야!! 그냥 수송선 보여줘! 배고파 죽을지도 몰라!"
" 하아..."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일반 여자들이었다.
" 젠장..."
나는 기운 없이 누워있는 은혜를 보고 말했다. 은혜 뿐만 아니라 미란이와 보미도 차례로 누웠고 그나마 체력이 좋은 희정이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 본부대에서 식량이나 뭐 그런거 지원은 없냐?"
" 없습니다. 지금 걷은 보호비도 수비대가 소비하기에는 턱도 없는 양
입니다."
" 미치겠군. 여기서 어떻게 지낸 거야?"
" 점점 옆에 집단에서 넘어오는 횟수가 늘어나는데?'
우리만 아니라 다른 생존자도 식량 구하기가 힘든 듯 옆 집단에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 넘어와 기웃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그리고 우리 근처로 오는 거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 알아차렸나? 우리 숫자를?"
" 진짜..욕 나오네...지금 상황에.."
" 규호야. 무전에서는 별 이야기 없냐?"
" 없습니다. 무전은 그냥 감염체가 나타나면 들어오는 편이라."
" 에휴..."
그래도 폐글루의 방어는 튼튼한 편이었다. 버려진 차량에서 연료를 수거하고 무기와 탄약을 모았기에 수송기 안에 있는 무기를 쓰지 않고도 상당한 양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같은 섬인데 이렇게 차이가 심한가? 남쪽 지역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하던데?"
" 그 쪽은 경작이나 낚시가 잘되는 상황이니."
" 아오!!!!!"
점점 높아지는 스트레스로 미쳐버릴 거 같았다. 더 이상 유지하는 것도 무리라고 판단됐는지 박 중사가 입을 열었다.
" 그냥....알려주자.."
" 그래..이러다가 우리가 먼저 죽겠다."
어쩔 수 없이 규호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해가 지고 다들 폐글루에 모여서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박 중사가 말을 했다.
" 규호.."
" 네?"
" 우리가 지금 너에게 보여주는 것이... 다른 곳으로 세어 나간다면...범인은
너 밖에 없다.."
" 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규호는 박 중사의 말에 되물었다.
" 일루와."
박 중사는 페글루 한 쪽에 쌓여진 물건을 치우고는 수송기와 연결된 통로로 들어갔다. 규호는 박 중사의 행동을 그저 숨겨 놓은 식량이라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 한 것 같았고 수송기를 내부로 들어가고는 표정이 완전 변하였다.
" 이...이건...."
" 우리가 타고 온 수송기. 식량 물자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 왜 이제야..."
" 널 알지 못했으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고."
" 네...."
규호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규호의 여자 친구인 예진이도 은혜와 미란이와 같은 신세였기 때문이다.
" 우선 여자애들을 수송기로 옮기고 남자들은 폐글루에서 돌아가며
경계를 서자."
" 응"
박 중사의 말에 여자들은 편한 침대와 소파로 이동을 시켰다. 그리고 재효는 주방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겨와 여자들에게 챙겨주기 시작했다.
규호는 수송기 크기, 식량 및 무기 보유량에 크게 놀랐다.
" 이런게...어째서.."
" 우리도 몰라. 누군가의 농락이겠지."
" 대단하군요."
" 우선 여자들부터 챙기자."
" 네."
" 재원이랑 재효는 발전기를 점검하고."
" 아까 봤는데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더라."
" 바로 가동해도 될까?"
" 소음이 조금 생기겠지만...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
" 그럼 바로 움직여줘. 이러다 애들 쓰러지겠다."
" 응."
나와 재효는 발전기를 가동하기 위해 내려갔고 기태와 민환이는 폐글루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했다. 그 와중에도 규호는 수송기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 그만 놀래라. 조금 미안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 이해합니다."
" 우선 예진이에게 가봐. 뭐라도 챙겨 먹이고."
" 감사합니다."
" 내일이면 따뜻한 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대충이라도 씻자."
" 아우...냄새 장난 아니네."
규호에게 우리의 물건을 숨기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그래도 틈틈이 물을 가져와 수송기 물탱크에 채웠기에 씻는 것은 문제가 없어보였다. 바닷물을 채울 수 없었기에 꽤 멀리 떨어진 저수지에서 퍼왔기에 그 양은 넉넉하지는 않았다.
" 이렇게 된 마당에 우선 내일을 저수지에서 물을 가져오고."
" 그 저수지 낚시는 가능하냐?"
" 전에 해봤는데 전혀."
" 되는 게 없네."
" 치직...치직... 박 중사."
" 응?? 치직..."
" 녀석들이 주변을 포위했다."
" 뭐!?!"
기태의 무전에 박 중사가 크게 놀랐다. 설마 이렇게 빨리 우리 주변에 다가올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 포위라고 해봐야 거리가 좀 있는 편이야. 시야에도 잡히지 않고. 하지만
움직임을 보니 우리 쪽으로 온다는 것은 확실하고."
" 수송기... 때문인가?"
"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르지."
" 여자애들인가?"
" 미치겠군. 숫자는?"
" 대략 30명."
무전으로 박 중사와 기태의 말에 다들 긴장했다.
" 무기고에 가서...챙겨오자."
" 가능한 많이."
박 중사의 말에 나와 재효. 규호. 민환이 성국이는 무기고로 가서 각자의
무기를 챙겨왔다. 우선 저격 총 몇 자루와 기관총 유탄 수류탄을 챙겨 내려왔다. 폐글루 조그만 창문에 자리를 잡고 기태가 말한 녀석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 언제 오려나..."
" 아까와 별 다른 움직임은 없는데?"
" 뭐지?"
바로 우리 근처로 올 것이라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저 거리라면 우리가 보이지 않을텐데?"
" 무슨 생각이지?"
더 이상 우리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해가 완전히 넘어가 달빛에만 의존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 전투는 절대적으로 우리가 유리했지만 긴장을 놓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