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74화 (273/281)

0274 / 0281 ----------------------------------------------

-3부-

나와 박 중사는 폐글루로 돌아와 남자 일행들에게 우리가 봤던 상황을 설명했다.

" 예전 강원도 그 펜션보다 더 한 놈들인데요?"

재효도 펜션에서 겁탈을 자행하던 우리에게 공격 왔던 일행들을 기억하는 듯 말을 했다.

" 생각보다 제 정신이 아닌 놈들이 모인 집단이야. 우리한테는 거리가 얼마

멀지 않아서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고 진화 인간도 있는 상황이니."

" 무기 상태는 어떻습니까?"

" 자세하지는 않지만 소총이나 그런 종류는 많지 않은 듯 보였어."

" 흠..."

" 규호는 알고 있었어?"

" 저도 눈으로 본 적은 없습니다. 이야기만 간간히 들었고 자주는 아니지만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 약탈을 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뭐 당연히

여자들도 데려갔고요."

" 그럼 그 구역에서 보복은 안했나봐?"

" 네. 솔직히 가장 힘이 강력한 집단이니..맞붙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 가장 강력한건 모르겠다만 가장 또라이는 맞는 것 같네."

" 제 정신이 아닌 놈들을 상대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는데."

" 절대 여자들은 나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 그래도 쉽게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 아니. 올걸."

" 네?"

" 가는 길에 재원이가 우리를 감시하는 인원 셋을 저 세상으로 보냈거등."

" 네에?!!"

" 앵?!! 느껴지는 놈들은 없었는데?"

기태가 자신의 감각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놀라 물었다.

" 거리가 상당했어. 망원경으로 멀리서 그냥 감시만 한 수준이라 우리가

느끼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 그나저나 저 세상으로 보냈다면.."

" 깔끔하게 보내더라."

" 워우..."

내가 제거 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다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 뭘 그렇게 봐? 조치는 취해야지. 살아 보낼 수는 없잖아. 괜히 우리 정보만

더 누출되니까."

" 맞기는 한데..."

" 다음에 또 보낼텐데 그때도 없애려고?"

" 그 때는 상황 봐서 감염체를 끌고 가거나 감염 조류를 유인해야지."

" 타이밍이 문제군."

" 우선 여기에 무기를 보관하고..혹시 모르니 중화기도 가져다 두자."

" 응."

우리는 오늘 밤 경계 근무를 정하고는 감염체와 인간을 방어할 수 있는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 대장님. 감시하러 갔던 인원이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 응?"

" 전에 경계선에 있던 생존자를 감시하라고.."

" 아... 얼마나?"

" 세 명을 보냈는데 셋 다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 그 때 감염 조류가 나타난 시점 아닌가?"

" 맞습니다."

" 재수 없게 걸렸겠구만."

" 그러기에는 셋 다 복귀하지 못했다는 게 걸립니다."

" 너무 어렵게 생각 하지 마. 네가 보낸 녀석들이라면 그래도 실력 좀

있는 놈일 것 같은데 별것도 없다는 생존자들이 뭐라도 했겠어?"

" 하지만...뭔가.."

" 정찰 간 놈들 복귀 안 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뭘 그리 신경 써,

내일 쯤 다시 인원을 추려서 보내."

" 알겠습니다."

" 아니다. 여유 되면 보내. 뭐 여자들도 없고 거기 근처는 식량도 없는데

굳이 인력을 빼서 감시하는 것도 낭비고."

" 네.'

" 마셔..마셔!!"

"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대장의 집에서 조촐한 술자리가 이뤄졌다. 대장과 그를 보필하는 한 남자. 그리고 대장 옆에는 저번과 다른 여자가 안겨있었고 이 여자는 그 전 여자와는 다르게 거칠게 반항하고 있었다.

" 여자가 이런 맛이 있어야지...나 들어간다."

" 네.."

뭐가 좋은지 웃으며 여자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대장을 보고 남자는 이를 갈았다.

" 빠드득.."

" 인간이길 포기한 놈 같으니.."

잠시 후 방에서는 비명 소리와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펴졌고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거칠게 문을 닫으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남자의 집은 조그만 한옥 같은 집이었다. 방 안에는 뚱뚱한 여자가 단정하게 옷을 입고는 남자를 마중했고 둘은 별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고는 각자 하던 행동을 이어갔다.

" 뭔가 찜찜한데.."

남자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며 말을 했다. 아무래도 감시병들이 복귀하지 않은 게 영 걸리는 모습이었다.

" 인원을 보내볼까...그냥 기우인가.. 뭐 기분 탓이겠지."

남자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결정은 훗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것을 예상치도 못하고 말이다.

" 안 보내는 것 같은데?"

" 포기했나?"

나와 기태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폐글루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까지 나왔지만 우리를 감시하거나 지나가는 생존자들도 느껴지지 않았다.

" 진짜 감염 조류에 당했다고 생각하나?"

" 설마 우리가 죽였다고 생각할리는 없잖아? 그냥 일반 생존자라고 생각

하고 있을 걸?"

" 그럼 다행인데.."

" 이만 들어가자. 해가 지려는데?"

" 어서 가자."

" 아우.."

" 아놔..."

몸을 돌려 페글루 쪽으로 향하려는데 폐글루 근처에서 감염체의 기운이 느껴졌다. 다행히 우리가 더 먼저 도착할 수 있었지만 꽤 많은 숫자의 감염체가 우리 곁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 저 방향으로 간다면 그 집단 본거지인데.."

" 제발 그쪽으로 가라.."

" 쉿!!!"

우리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감염체 몇이 서서 고개를 돌리고는 갸우뚱 거렸다.

" 생각보다 청력이 좋은데?"

" 이번에는 북한군인가? 뭐야 저 복장은?"

어느 나라 군복인지 알 수 없는 복장의 감염체 여럿과 일반 감염체 몇 백이 무리지어 이동해갔다. 움직임이 꽤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영양분을 섭취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 생각보다 숫자가 상당한거야? 아니면 느린거야?"

" 둘 다."

" 씨앙..."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속도로 우리 양옆을 통과해가는 감염체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 대장!! 감염체가 나타났습니다!!"

" 전원 대비!"

" 오대기 출발해!!"

" 네! 알겠습니다."

트럭과 일반 SUV에 탑승한 인원들이 무기를 챙겨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기라고 해봐야 창이나 식칼을 대걸레 봉에 테이프로 감은 것이 전부였지만 개중 소총을 들고 가는 인원도 눈에 들어왔다.

" 치직... 숫자 대략 천.."

" 치직.. 알겠다."

무전기까지 사용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에 문명의 혜택을 완전히 못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 전원 수비 대형!! 수비!!"

" 바리게이트를 가져와!!"

이제는 시야에 보이기 시작한 감염체를 방어하기 위해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잠시 후 대장의 집에서 대장이 무기를 들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기는 무식하게 큰 쇠파이프였다.

" 부웅!! 부웅!!"

대장이 쇠파이프를 돌릴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감염체가 다가오자 홀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감염체를 제거해 가기 시작했다.

" 퍼억!!! 퍼억!!!"

얼마나 힘이 센지 쇠파이프가 머리를 가격하자 그대로 터지며 쇠파이프는 원래 가던 방향을 방해 없이 가고 있었다. 그의 힘 앞에 사람 뼈 중 가장 단단한 두개골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 콰앙!!!"

하지만 스피드는 많이 떨어지는 듯 한자리에서 계속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효과는 절대적이었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마냥 감염체들은 대장 근처에서 또 다시 죽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을 지나쳐 들어오는 감염체는 후방에서 대기하던 인원들이 차례로 제거해 가기 시작했다.

" 끝."

" 허억...허억.."

꽤 많은 숫자였지만 대장은 크게 지쳐 보이지 않았다. 대장을 할 일을 끝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집으로 들어갔고 남은 인원들이 감염체를 모아 태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 타닥...타닥..."

" 사람이 타는데.. 마치 마른 나무가 타는 소리가 나는구나.."

대장을 보필하던 남자가 감염체를 태우며 말을 했다. 감염체를 태우는 냄새는 엄청나게 역했고 바람을 타고 재원이 일행이 있는 곳까지 쉽게 날아가고 있었다.

" 마무리 하나보다. 냄새가 어기까지 나네."

" 어우..."

" 역겹다. 냄새가."

우리는 감염체를 태우는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 이로써 우리는 더 이상 의심받지 않겠군."

" 참 타이밍 하고는..."

" 그나저나 이 난로 괜찮겠지? 중간에 새면 중독되어 죽을지도 몰라."

" 걱정 말라고. 꼼꼼하게 처리했으니까."

박 중사는 폐글루 한 곳에 벽난로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우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마당에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빈 집이라고 생각됐던 곳들이 대부분 생존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 예상보다 훨씬 많은 생존자가 여기서 살고 있네."

" 저도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집단의 통솔력이 약해져서 보호비도 잘

걷지 못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 저기 새로 왔나보다?"

" 그러네?"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 와서 가장 가깝게 본 생존자였지만 반갑다고 인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저 사람들도 우리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본데?"

" 텐트라...너무 위험한데.."

" 그냥 계속 이동하는 중에 잠시 머무르는 것 같기도 하고.."

남자 3명에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 1명. 총 4명이 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우리를 봤는지 가끔 흘겨봤지만 크게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었다.

" 근처 빈 집이 있을텐데 굳이 텐트라.."

" 아니면 빈 집이 아닐 수도 있지. 요새 계속해서 생존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니.. 주거지역이 부족할 수도 있어. 애초에 많은 사람이 살던

섬도 아니고 대부분 번화가에 모여 있으니."

"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

" 응?"

" 제대로 미친놈들이 설칠 수 있는 발판이 되겠지. 그들에게는 저들은 그저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니까."

우리는 새로 온 생존자를 보며 말을 했다. 우리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지만 이렇게 우리 주변으로 생존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채집 식량도 이제는 경쟁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가뜩이나 얻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적자생존의 연속인데 과연 저들이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 그래도 며칠 못 버티겠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

" 난 가서 나무나 잘라 오련다."

" 다녀와."

나는 구경신세가 된 생존자들을 뒤로 하고 민환이와 함께 겨울에 쓸 땔감을 준비하러 나갔다. 다행이 주변에는 쓸 만한 나무들이 많았기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 쿵!! 쿵!!!"

" 넘어간다!!"

" 쿠웅!!!"

" 와... 이런 나무를 이렇게 쉽게.."

꽤 큰 나무를 도끼질 몇 번으로 넘어뜨렸고 이동하기 편하게 조각으로 잘라 폐글루로 날랐다. 벽난로는 열효율이 엄청 나쁜 난방도구다. 로맨틱하고 뭔가 있어보기는 했지만 따뜻해지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무언가 탈 것이 필요한 난방도구다. 하지만 근처에 나무가 많으니 구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주변도 허허벌판이니 쌓아둘 곳도 많았으니 걱정은 없었다. 단지 수시로 나무를 구해야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 참네... 네가 놀라기는.."

" 하하.."

보통 사람이라면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양을 우리는 단숨에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살아생전 도끼로 나무를 해 본 기억은커녕 도끼를 잡아 본적도 없다. 당연히 요령도 없지만 이렇게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무식하게 힘만 있는 놈들이니까 가능했다.

" 이 정도면 며칠은 버틸 수 있을거야."

" 생각보다 얼마 못 버티네요?"

" 나도 잘 몰라. 그냥 예상이지. 내가 뭐 벽난로를 사용해본 적이 있냐."

" 하긴..."

우리는 한 가득 짊어진 나무를 가지고 날랐고 폐글루 근처에서 다시 쓰기 편한 크기로 잘랐다.

" 쿠웅..."

" 에라이..."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또 바닥까지 내리 찍으며 우렁찬 소리가 났다.

" 힘만 쎈 무식한 놈 같으니..요령이라곤.."

"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봤어야지."

" 줘 봐."

옆에서 잔소리를 하던 박 중사가 내가 들고 있던 도끼를 가지고는 가볍게 쥐고는 높이 들어 내리 찍었다.

" 콩."

" 쩌억...."

" 어라?"

별 힘을 쓴 것 같지도 않은데 나무는 신기하리만큼 깔끔하게 반으로 잘렸다.

" 요령이야..요령..."

" 잘났다! 네가 해라!"

나는 건내 받은 도끼를 다시 주고는 폐글루로 돌아갔다. 그런 내 모습에 뭐가 웃긴지 밖에 있는 인원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고 안에 있던 여자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몰라."

나는 뭔가 삐졌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수송기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