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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76화 (27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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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박 중사도 애들도 여기서 뭔가 꺼내서 나갈 생각은 못했는지 지금 상황이 난감하게 됐다. 당장 오늘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언젠가는 나가야 하는데 저 많은 폐기물을 치우고 나가기란 시간도 시간이지만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리고 대충 던져서 쌓는 작업은 쉽지만 다시 역으로 빼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 난감하네... 다른 방법이 없나?"

" 수송기 뒤에 저 뭐다냐... 저거 열 수 있는 사람은 있냐?"

" 열리지도 않을걸? 완전히 고장 났을 것 같은데?"

" 아마도 힘들 것 같습니다."

민환이도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그럼 힘으로 열어야 된다는 소리인데... 연다고 쳐도 나갈 방법이 없네?"

" 분해해서 조립하면..."

" 못 해."

" 응..."

기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잘라 말했다.

" 위를 뚫어서 나가는 방법이 제일 편하기는 한데... 비라도 내리면

끝장인데."

" 어쩔 수 없이 그냥 걸어갔다 와야 하나.."

"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건들이는게 불가능하네."

" 그냥 걸어갔다 올게. 기태랑 다녀올게. 그게 제일 안전할 것 같은데."

" 여기 생각도 해야지?"

" 아..."

레이더 같은 역할은 하는 기태라서 같이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여기에 허점이 생겨버린다. 그렇다고 박 중사와 다녀오기도 그랬고 결국은 성국이와 민환이와 함께 가기로 했다.

" 우리가 가진 가방은 이게 전부야."

" 그냥 일반 배낭인데? 거기 가서 구해야 하겠다."

"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자."

" 그래.."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고 다들 일찍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고 낮에 노동으로 인한 피로 때문인지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었다.

" 그럼...다녀올게."

" 조심해서 다녀와요."

침대에서 일어나 은혜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페글루로 내려왔다.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성국과 민환이의 모습이 보였고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묵고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허억...허억..."

" 생각보다 체력이 좋지는 않네?"

" 형님... 10km를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형님이 이상한 겁니다."

뒤에서 헉헉 거리는 성국이와 민환이를 보며 말을 했지만 오히려 나를 더 이상한 놈으로 바라봤다.

" 잠깐 저기서 쉬었다가자."

" 네.."

섬에서 나가려면 다리가 두 개뿐이었기에 길은 몇 개 없었다. 그래도 일반 차도로 달리기보다는 해변을 따라 외진 길로 가는게 지도를 볼 필요도 없이 달리기만 해서 편하긴 했지만 늘어난 이동거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 가자!"

" 넵!!"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고 두 시간이 안 돼서 첫 번째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규모에 우리는 당황했다. 지도 상에는 꽤 크게 나온 지역이었지만 아파트보다 일반 주택이 많다보니 예전에는 흔하게 보던 마트도 없었다.

" 더 가야것다.."

" 네..."

천천히 걷다보니 체력이 조금 충전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둘 한테는 무리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달려 체력을 방전시키면 돌아오는 것도 문제였기에 아주 천천히 뛰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 괜찮냐?"

"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들을 생각해서 천천히 뛰는 것을 알았는지 성국이가 말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가는 중간에 있는 주거지역에는 우리가 원하는 물품을 찾을 수 있는 건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 난감한데... 여기서 더 들어가야 하다니.."

" 지금도 엄청 들어왔는데..."

" 하아.."

처음에 생각했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계획이었는데 우리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잘못하다간... 노숙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 위험합니다."

" 지금 여기서 더 들어가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너희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복귀가 힘들 것 같은데?"

" ..... "

자신들도 자신의 체력을 아는지 말이 없었다.

" 그럼 변....아닙니다."

성국이는 예전 나와 같이 변해서 뛰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것 같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계획이겠지.

" 최대한 노숙은 피해보자."

" 네."

그 후로 한 시간이 더 걸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 했다.

" 전쟁이라도 났었나봐."

" 전쟁은 났었죠."

" 휘유.."

무너진 아파트나 구멍이 뚫린 아파트도 있었고 대부분의 벽에는 소총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 엄청 갈겼구나. 성한 곳이 없네."

" 폐허...수준인데요."

" 이게 감염체 처음에 그런 거라면 좋겠는데."

" 네?"

" 초반에 이렇게 반응했다면 그나마 마트나 가게들을 털어갈 시간이

없었을 것 아냐? 중반에 그랬다면 이미 다 털렸겠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번화가 쪽으로 향했고 번화가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길거리에는 감염체인지 생존자가 죽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는 제법 커진 길고양이가 보여 순간 긴장했지만 다행히 우리를 보고는 도망을 쳤다.

" 와... 덤비는 줄 알았네."

" 고양이가 말입니까?"

내 말에 성국이가 물었다.

" 응..예전에 호랑이처럼 변한 녀석들이 있어서 개고생 했지."

" 호..호랑이 말입니까?"

" 응.. 그 만큼 덩치가 커지고 송곳니도 크고...그리고 피부가 얼마나

단단한지..소총탄이 뚫지도 못했어.."

" 하하... 그런 녀석이...."

여긴 다행히 그런 녀석들이 없는지 고양이들은 우리를 보는 즉시 도망쳤다.

만약 예전처럼 우리에게 덤볐다면 진짜 살아서 돌아가기는 어려울 정도로 고양이는 많았다. 그 정도로 거리에 시체는 널려있었고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냄새는 여전히 고약했다.

" 차라리 완전히 썩었다면 이정도로 힘들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장난 아니네요."

" 장갑차나 전차 헬기 잔해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태 초반에 이렇게

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성국이 말을 했다. 초반에 승기를 잡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참패한 흔적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었다.

" 다행히 멀쩡한 매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약탈의 흔적이 아닌 전투의 흔적으로 추측되는 상황이 많았기에 우리는 우선 의류 매장을 둘러봤다. 하지만 패션이라는 것이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유행을 따라가기 마련이니 종류는 많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의류는 구하기 힘들었다.

" 결국... 저기를 가야만 하는 건가.."

눈앞에 보이는 대형마트를 보고 내가 말을 했다.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마트를 들어가는 것은 꽤나 꺼려지는 행위였다. 셔터까지 내려졌지만 유리창이 깨진 상태이기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 철컥.."

나는 소총을 장전하고 입에 손전등을 물고는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성국이도 소총을 장전했지만 주변 시야를 밝히는데 손을 썼기에 총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 사아악..사아악.."

먼지와 무너진 물품들이 발에 걸리며 듣기 거북한 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었다. 아무리 능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순간적으로 공격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었고 심적 부담감까지 덜어지는 건 아니었다.

"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법 온전해 보이는데.."

" 3층이 의류 코너입니다."

" 젠장.. 왜 또 하필 3층이야.."

보통은 일층에 의류 매장이 있지만 패션 매장보다는 스포츠 매장이나 등산 매장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할 확률이 높았기에 3층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옷을 챙길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 집어 들고는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 누군가 다녀가기는 했군."

" ..... "

2층 식품 매장을 얼핏 보니 어지럽게 널려진 것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미 다녀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먼지가 엄청 나게 쌓여있는 것을 보니 최근에 다녀간 흔적 같지는 않았다. 온전한 세상에서의 이동이라면 몇 분 걸리지도 않을 거리였지만 10분이 넘게 걸려 3층에 도착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스포츠 등산 매장에서 필요한 옷들을 빠르게 챙겼다. 그리고는 캠핑 용품 코너에서도 칼이나 손도끼, 코펠 따위를 챙겼다.

" 챙!!"

" 썅!!"

" 죄...죄송.."

" 조용!"

성국이가 성급하게 챙기다 들고 있던 코펠을 놓쳤고 그 소리는 건물 내부에 울려 펴졌다. 혹시나 소리를 듣고 감염체가 몰려들지 않을까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지만 다행이 건물 내부에는 감염체가 없는 것 같았다.

" 휴...빨리 챙기자!"

" 죄송합니다."

" 됐어. 신경 쓰지 말고 챙겨."

우리 셋은 빠르게 물건을 챙기고 등산 가방을 찾아 메고는 2층으로 내려갔다. 식품 코너에서 혹시나 남은 캔 음식이라도 찾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동을 했지만 역시나 남은 것은 몇 개 없었다.

" 이거라도 어디냐. 어서 챙기자."

" 라면은 힘들겠죠?"

"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은 지났을걸?"

한 가득 쌓여있는 라면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는 민환이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떨어진 캔 음식을 모조리 주워 담았다. 양념 코너에 가서 MSG를 가득 챙겼고 나는 여자들이 부탁한 여성용품을 마구 쓸어 담았다. 다행이 많은 양이 남아 있었고 우리는 속옷 코너에 들려 남자용 속옷을 챙겼고 여성용 코너에 잠시 주춤거리며 섰다.

" ..... "

"...... "

우리 일행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남자와 다르게 여자들 속옷 사이즈는 상대적으로 범위가 넓었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대충 눈으로 본 크기를 가늠하여 챙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우리는 서둘러 나가기로 했다.

화물용 캐리어와 등산 가방 가득 물건을 챙기고는 건물을 나가기 위해 움직였고 건물에 감염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들어왔을 때보다 긴장감은 덜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천천히 아주 조용히 이동했다.

" 제....젠장..."

" 빌어먹을!!!"

하지만 건물을 나가자마자 우리는 반겨준 것은 많은 숫자의 감염체였다.

소리가 건물 밖에까지 들렸던 것인지 아니면 저것들이 청각이 좋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그럴 여유도 없이 무조건 뛰어야만 했다.

" 뛰어!!!"

" 방향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헷갈린 나는 반대로 뛰었고 성국이가 내 방향을 잘못된 것을 알려주고는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멀어진 민환이와 성국이로 인하여 다시 멈춰야했고 주변에 주인을 잃고 서있는 소형 승용차를 보고 민환이와 성국이를 보고는 손을 휘둘렀다.

" 비켜!!!"

" 설마!!"

" 콰앙!!!!"

민환이와 성국이가 나란히 뛰다 갈라졌고 그 사이로 내가 밀쳐낸 소형 승용차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감염체 무리 중간에 길이 생겼지만 바로 채워졌고 나는 주변에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 쿠웅!!!"

" 채앵!!!"

" 콰아앙!!!!"

" 형님 그러다 주변에 있는 감염체가 죄다 몰려오겠습니다!!"

" 우선 뛰기나해!!!"

나는 감염체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애썼고 덕분에 민환이와 성국이와 감염체 사이가 꽤나 멀어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몇 개를 더 집어 던진 후에 나도 뒤따라 뛰기 시작했고 감염체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건물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 허억...허억... 죽을 뻔했네."

" 죽을뻔하긴..."

" 그나저나 대단하십니다"

성국이가 존경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려 피하면서 밖을 바라봤다.

" 다행이 우리가 있는 곳을 알지는 못하네. 따돌린 것 같은데."

" 제 시간 안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마트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시간을 보니 우리가 왔을 때 걸린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뛰어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 우선 최대한 가보고... 안 되면 노숙을 해야지."

" 알겠습니다."

" 가자.."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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