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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77화 (27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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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역시나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한 귀환 길이었다. 체력이 떨어진 둘은 올 때보다 현저하게 느린 속도였고 쉬는 텀도 짧아지기 시작했다.

" 이대로 가봐야 의미가 없겠다. 여기서 자리를 잡고 오늘 하루 지내자."

" 죄송합니다."

" 죄송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라. 죄송할 것도 없어.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야."

" 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성국이에게 약간 짜증을 냈지만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몇 가구 없는 마을이었다. 바로 전까지 수없이 많은 산업단지가 있었는데 얼마 떨어지자 바로 논 밭이 펼쳐지며 시골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기에 한적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 그래도 침대도 있어서 편히 자겠네요."

" 노부부가 살았나 봅니다. 생필품도 간결하네요."

" 덕분에 부수입이 없네."

집을 뒤졌지만 정말 생활에 딱 필요한 물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급하게 나갔는지 아니면 밖에서 화를 당했는지 집은 시간이 오래되 더럽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상태는 깔끔했다.

" 노숙이라...오랜만인데.."

" 예전에도 해 보셨습니까?"

" 응?? 아.. 예전에 일행들이랑 헤어져서 몇 달 동안 혼자서 살아남은 적이

있었지.."

" 아... 대단하시네요."

" 뭐 대단까지야. 이래저래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지. 우선 뭐라도 먹자.

챙겨온 것 중에 뭐라도 먹을 게 있겠지."

" 여기.."

다행히 스프 캔이 꽤 많았기에 우리는 집안에서 불을 피워 스프를 끓였다.

많은 양을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 일찍 자자. 그래야 내일 일찍 움직이지."

" 경계는 안 서실 생각입니까?"

" 경계라... 괜찮겠냐?"

나는 상관없지만 하루 종일 체력의 끝을 보며 달린 녀석들이 과연 제대로 경계를 설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중간에 깨운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 번화가에서 거리도 상당하고 주변에 공업 단지에 논밭이 많으니 감염체가

나타날 확률을 낮지만 위험이 있다면 감염 조류겠지. 하지만 보통 다수가

몰려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저것들도 쉽게 우리를 발견 못하는 것 같으니

우선 자자. 내가 완전히 잠들었다고 해도 감염체나 감염 조류가 나타나면

보통은 깨어나니까.. 오늘도 그러기를 바래야지."

난 애써 웃으며 말을 했고 경계에 자신이 없는 둘도 마지못해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집 주변을 정리하고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방은 외부에서 보이는 곳이 아니라 쉽게 발각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마트에서 챙겨온 담배를 가지고 화장실로 갔다. 밖에서 핀다면 꽤나 위험했기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폈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둘 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는 웃기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 고등학생도 아니고 화장실에서 담배라.."

" 요새는 사복입고 길거리에서 펴도 구분하기 힘듭니다."

" 하긴..... 여자 애들도 꾸미고 그러면 구별하기 어렵더라."

우리는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갔고 연속으로 두 개를 피고는 자리를 잡고 누웠다. 눕기 무섭게 둘 다 코를 골며 잠에 취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잠을 청했다.

" 끄응..."

다행히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몸이 뻐근했다. 긴장감 속에 달리고 마트를 털고 잠을 청했더니 몸이 굳은 느낌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둘 다 몸이 굳었는지 일어나는 표정은 그닥 상쾌해 보이지 않았다.

해는 서서히 떠올라 거리가 밝아졌고 우리는 공복에 일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침이라 조깅하는 속도로 시작하여 점점 속도를 올려 뛰기 시작했다.

" 허헉....카악!! 퉷!!"

" 우웩...."

" 자 물 마셔..."

두 시간이 걸려서 겨우 폐글루에 도착 할 수 있었고 밤새 우리를 기다린 박 중사가 마중을 나왔다. 도착하자마자 민환이와 성국이는 쓰러졌고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떨어지고 있었다.

" 저 둘은 저 모양인데 넌 왜 멀쩡하냐?"

" 낸들아냐?"

죽음의 문턱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둘과는 전혀 다른 상태의 내 모습을 보고 기태가 말을 했다. 우리가 제 때 도착하지 못해서 인지 다들 밤 새서 우리를 기다린 모습이었다.

" 그냥 잠이나 자지 왜 기다리고.."

" 참네. 너라면 잘 수나 있겠냐? 은혜는 밤새 창 밖을 응시하더라, 나가지

못하게만 안했어도 나갈 기새였어."

" 에휴.."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나를 반기는 은혜의 모습을 보니 밤을 새어 기다렸다고 생각은 했었다. 우리는 페글루에 모여 우리가 가져온 물품들을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마치 크리스마스에 유치원에서 싼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들 같았다.

" 그래도 꽤 구해왔네? "

" 생각보다는 상태가 양호했는데 오다가 감염체를 만나서 고생 좀 했다."

" 수고했다."

" 하루지만... 별 일은 없었지?"

" 아니. 군인 무리들이 움직임이 활발해. 아무래도 가진 게 많다 보니까

움직이는데 별로 위험을 못 느끼는 것 같다."

" 그래?"

" 우리 근처까지 와서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냥 둘러보고는 갔어.

아무래도 여기는 쓰레기장 수준이니까."

" 다행이네."

" 앞으로가 걱정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왔고 왜 굳이 다른 곳

놔두고 생활하기 어려운 저기로 자리를 잡았는지."

" 하아..."

다들 챙겨온 물품을 정리하는 중에 나와 박 중사는 따로 떨어져 이야기를 나눴다. 밖으로 나온 우리의 눈에는 멀리서 움직이는 군인 무리와 그 무리를 감시하는 옆 집단의 무리가 보였다.

" 저것들도 긴장하는 모양이네?"

"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겠지."

" 별일 없기를.."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중얼거렸다.

" 대장. 이번에 군대가 북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 군대?"

집에서 앉아 담배를 피며 술을 마시고 있던 대장에게 일전에도 계속 붙어 다니던 남자가 말을 했다.

" 네. 생각보다 숫자도 상당하다는 보고입니다. 그리고 그 근처와

저희 쪽에 정찰이 수시로 온다고 합니다."

" 무슨 생각인거지?"

"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언젠가는 저희와의 충돌이 예상되네요."

" 흠..."

" 한 동안 약탈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장상태도 상당하니

괜히 꼬투리 잡힐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게.."

" 무슨 상관이냐. 법도 나라도 없는 마당에."

대장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고리타분한 놈이 지휘관이라면 번거로울 수도 있습니다."

" 상관없어. 우린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돼."

" 알겠습니다."

" 그나저나 요새 약탈을 가도 별 소득이 없는데 조금 멀리 나가봐."

" 식량은 아직.."

" 다른 것."

" 알겠습니다."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대장의 의중을 알아들었는지 남자는 바로 대답을 했다.  대장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고 그런 모습을 보고는 남자는 집 밖으로 나갔다. 집 밖에는 여러 명의 남자가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었고 남자가 나가자 잡담을 중지하고 바라봤다.

" 조금 멀리 나가서라도 해와야겠다."

뭔가 말이 이상하긴 했지만 남자들은 알아들은 눈치였다.

" 하지만 군대도 있고 지금 근처에 여자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어디가서.."

" 어디 가서라도 구해야지. 괜히 또 히스테리 부리면 괴로운 건 너희와

나라는 거 모르나?"

" 알겠습니다."

더럽고 치사하다는 표정이 보였지만 누구하나 대장에게 가서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강력한 힘에 포악한 성격이니 괜히 밉보였다간 바로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었기에 다들 고개를 숙이는 것 같았다.

" 이번에 경계선에 온 무리는?"

" 남자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간간히 나가서

식량을 구하고 바리게이트를 설치했는데 허접한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무리 같습니다."

" 그래... 다른 곳은?"

" 지근거리 안에는 그 무리가 전부입니다. 일전에 근처에 자리를 잡은

무리에 여자도 저희가 잡아오지 않았습니까?"

" 후우.."

" 지금 다른 무리들도 뭉쳐서 생활하기 시작해서 예전과 상황이 다릅니다.

이제는 저희 피해도 감수해야합니다."

" 난감하군. 저러다 또 난리치면 그 때는.."

" ....... "

일전에 뭔가 사건이 있었는지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색을 심하게 밝히는지 식량보다는 대장의 쾌락을 위한 여자를 구하는데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 우선 돌아가고.. 추후에 일정을 잡아 움직이도록 하겠다."

" 알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다들 흩어졌고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는 말을 했다.

" 젠장... 저런 놈과 계속..."

남자의 말에는 살기가 가득했지만 양육강식의 세상에서 힘이 없으면 어쩔 수 없었다.

박 중사와 나는 폐글루 앞에 방어라인을 보강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일행들은 벽난로에 쓸 나무를 구하러 갔거나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 다들 혹시 몰라 조명탄을 챙겨갔고 조명을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고는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다행히 해변에서 먹을 걸 구할 수가 있었어. 주변에 낚시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저번과 다르게 뭔가 낚이는 모습이던데? 그래서 내일부터는

우리도 나가봐야 할 것 같아."

" 북쪽의 군대는 둘째고 옆 집단의 그 싸이코들 무리 움직임도 많아졌고

또 다른 생존자인지 해변에 꽤 많이 모여 있더라."

" 섬에 점점 사람이 많아지나?"

" 어디서 움직인 인원인지 모르지만.. 현재로 본다면 생존자들이 여기로

모이고 있는 느낌이 드네."

" 규호야. 무전에서 별 이야기는 없어?"

" 주파수가 바뀌었는지... 물어도 대답도 없고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 그래... 너 거기서 친구는 없었냐? 뭔가 정보가 없나?"

" 네... 친구...따위는 없었습니다."

뭔가 슬픈 얼굴을 하고 대답을 했기에 더 이상 물어보기가 뭐했다.

" 군대 본거지가 확실히 잘 지었던데? 위치도 식량을 구하기 힘든 점을

빼면 수비하기에 유리한 곳이고."

박 중사가 화제를 돌려 말을 했다.

" 아무 생각 없이 간 것은 아니었군."

" 주기적으로 군용 트럭이 오고가는 것으로 보아 뭔가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아."

" 지원이라... 어딘가 멀쩡한 곳이 있다는 말인가.."

" 모르지..."

" 툭.."

" 응?"

" 어라?"

폐글루 앞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나가봤고 하늘에는 드론이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곳 앞에 작은 상자가 떨어져 있었고 안을 열어 내용물을 봤다.

" 응? 뭐야 이거?"

상자 안에는 초코파이 몇 개와 지도가 들어 있었다. 지도 하단부에는 우리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군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고 간략한 글이 써 있었다.

- 보호를 바라면 합류하라 -

" 대단한 자신감인데?"

" 뭘 믿고 합류하라는 거야?"

" 초코파이라... 유통기한이...어라!?!"

" 왜?"

" 유통기한이 아직 한 참 남았는데?"

"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소리잖아?"

" 오호.... 그럼 진짜 어딘가 멀쩡한 곳이 있다는 소리인가.."

" 그런데 왜 구하러 오지 않는거야?"

" 예전에도 뭉쳐봤지만... 뭉친다고 좋은건 아냐."

재효의 물음에 박 중사가 말을 했다. 예전에도 방벽까지 치고 생활했지만 결국 감염체에 밀린 상황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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