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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281화 (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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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수송기에 올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런 상황에 이런 다툼이 어째보면 복에 겨운 다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행동과 다툼들이 아직은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삐진 것도 아니고 단지 남들이 하는 내 과거를 듣고 저러는 상황이 난감했다.

"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풀릴 거야. 너무 풀어주려 안해도 돼."

" 응?"

내 옆에 다가온 보미가 말을 했다. 그나마 여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으니 보미가 하는 조언이 가장 신뢰성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뭐... 내가 아는 은혜라면 잠시 저러고 말거야.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 조언이냐?"

" 뭐..."

"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좋던 싫던 뭔가 내가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싶다."

" 단지 어린아이의 질투라고 생각해.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애라더니

여자를 잘 몰라."

" 잘 알면 그것도 문제 아닐까?"

" 그런가."

억지로 웃는 보미의 모습에 약간은 허탈했다. 이런 녀석에게 뭔가 해답을 바란 내가 바보였지.

" 하아.."

" 방에 들어갔으니 잘 이야기 해봐. 솔직히 할 이야기도 없는 상황인데."

" 저런 반응이 정상이냐?"

" 사람마다 다르니. 질투심이 강한 편인 은혜니..."

" 질투라...질투.... 바람을 펴고 싶어도 안 되는 상황인데."

" 바람이라도 펴시게?"

" 참네."

보미는 약 올리듯 말을 했고 나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에는 예상과 다르게 없었고 잠시 기다리니 방문이 열리며 들어왔다.

" 어?"

" 왔어요?"

은혜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보였다. 조금 전까지 세상 암울한 표정으로 있다가 갑자기 변한 모습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 뭘 그렇게 봐요?"

" 아...아니..."

" 핏..."

어물쩍거리는 내 대답을 듣고는 살짝 미소 지으며 내 옆으로 왔고 내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일어서서 말을 했다.

" 식사 준비 끝났으니 어서 와서 먹어요."

" 응.."

갑자기 저렇게 풀린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는 은혜를 따라 식당으로 이동을 했고 이미 다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량을 아끼느라 먹을 것이 풍족한 식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허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다들 허겁지겁 식사를 끝내고 여자들은 설거지를 하고 남자들은 나가서 부비트랩과 바리게이트 작업을 진행했다. 이제는 제법 그럴싸하게 변하고 있는 우리 집을 보면서 다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에 열중했다.

" 대장... 예상 외로 강한 놈들이 많습니다."

" 어렵군.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는거 아닌지 몰라."

" 아직 여유는 있습니다. 지금 걱정할 건 식량이 아니라 저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입니다."

" 걱정 마. 내 생각이 맞다면 둘 다 함부로 우리에게 오지 못하니까."

" 어째서 입니까?"

" 둘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에 집이 비면 빈집털이 당하기

딱 좋지. 삼각관계가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 네... 알겠습니다."

" 그래도 혹시 저 둘이 마음이 변할 수 있으니 우선 큰 움직임은

피하도록 하고 다들 몸 사리라고 전해."

" 네."

대장은 말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주변에 여자도 없고 술 잔치도 없는 것으로 보아 긴장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약속됐던 시간이 되어 우리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처음에는 우리를 보고 경계하던 병사들도 누군가의 말에 나와 싸웠던 남자에게로 안내했다.

" 오셨군요."

" 왔다. 뭐라도 가져와라. 목 마르다."

" 알겠습니다. 김 상병 가서 차 좀 내와."

" 네."

남자는 병사를 시켜 간단한 다과와 차를 준비시켰다.

" 이런 과자가 아직도 있네? 이런 변방까지 보낼 정도로?"

"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생각과 다르다고."

" 흠..."

" 그래서 우리에게 알려줄 정보는?"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현재 포항 지역과 부산 지역에 안전한 생존 지역이 마련되었습니다.

뭐 겪어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만 그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일정부분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상당히 넓은 지역에 방벽도 3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 그 넓은 지역에 방벽을 전부?"

" 네."

" 그래서?"

" 현재 그 지역들을 기점으로 저처럼 생존자들이 많은 지역을 찾아

파견하여 그 일대를 장악. 생존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생존자가 많아야

싸울 수 있는 병사가 많은 것이니까요."

" 흠.."

단단한 생존 구역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힘을 키워간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민환이 일행을 본다면 어딘가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하지만 그런 생존 구역이 있을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했는데..

크게 도움 되는 정보는 아닌데?"

박 중사의 말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포항은 원래 있던 정부..라고 해야하나? 뭐 그런 사람들이 만든

곳이겠군?"

" 맞습니다."

" 다른 생존 구역은.. 그럼?"

" 또 다른 생존 집단이.."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예상하는 집단이 맞는 것 같았다.

" 현재까지....는.. 앞으로도 얼마 동안은 서로 싸우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감염체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감염 조류 숫자도 늘어나는

추세라 도시 지키기 급급합니다."

" 근데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지? 감염체나 감염 조류에 관한?"

" 아직... 가동되는 위성이 있으니까 가능합니다."

" 오호.."

" 그래서 우리에게 넘긴다는 정보가 이게 다야? 생존 구역이 있다는?"

" 그... 그게... 이 정도면.."

" 뭐 좋아해야하나..?"

"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똑같다. 그냥 우리는 여기서 살아남으면

되는 거야."

" 보통 생존 구역이 있다면 어떻게든 가려고 하는 다른 생존자들과는

다른 반응이군요."

" 경험으로... 결과를 대충 예상할 수 있으니까."

내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 대충 들어 알기는 하지만 여기는 다릅니다. 뭐 억지로 가시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구역들입니다."

" 다른 정보는? 감염체나 감염 조류에 관한?"

"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는 감염체들 종류가 많아졌다는 것과 동시에 감염

조류 숫자와 종류도 늘어났다는 것이 제가 알 수 있는 전부입니다."

" 크게 이득이 되는 정보가 아닌데.."

내 말에 두려움을 느낀 듯 눈동자가 떨리는 보습이 보였다.

" 앞으로 정확하게 알아 전달하겠습니다."

" 그래... 믿도록 하지.. 그리고.."

" 네??"

또 뭔 말을 하려고 하나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 남자에게 말을 했다.

" 너를 뭐라고 부르지?"

" 아..? 네... 우선 여기선 중대장입니다."

" 중대장이라... 그래... 그리고 또 하나."

" 네.."

" 우리에게 피복류와 식량. 연료라도 줬으면 한다."

" 네..."

중대장이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이렇게 억지로 뭔가를 뜯어 내는게

조금은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힘이 없었다면

상황은 반대가 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 그리고 옆에 싸이코 집단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 우선 저희가 교류가 없다고 예상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입니다. 우리나

저들이나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방심하게 만든

후 공격할 예정입니다."

" 공격이라..??"

" 네... 저들은 솔직히 인간답지 않은 행동으로 유명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많은 조사를 했기에 꽤 정확한 정보입니다."

" 식인을 말하는 건가?"

" 그것도 있고 대장이라는 놈이 여자를 엄청 밝히는 놈이라 눈에 보이면

바로 잡아가서 꽤 거칠게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시는.."

" 우리 걱정은 말고."

" 네..네... 뭐 바로 당장은 저들이라고 뽀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서로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 알겠어."

" 그나저나 여기 인원이 더 늘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박 중사가 말을 했다.

" 현재 3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고 열흘 뒤 추가된 인원을 수송하기 위해

본부대에서 인원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 잘 나가네..."

" 배 편이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이번에 들어오면 꽤

많은 물자와 식량을 받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알았어. 우리도 주는거 잊지 마."

" 알겠습니다."

그 뒤로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계속되었고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다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며칠간 상황은 급변하였다.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섬의 생존자들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고 옆 싸이코 집단의 숫자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는 저들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졌다. 단지 걸리는 게 있다면 우리 위치가 딱 저들 중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 재수도 없지 하필 착륙한 지점이 여기라니.."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내 말에 민환이가 대답을 했다. 우리는 조촐하게 차려진 식사를 먹으며 말을 했다.

" 그래도 저것들이 우리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 모르지. 그래도 조심해야지."

두 집단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중간에 끼인 우리의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 이러다가 또... 이사가야하나.."

" 언제까지 피하려고?"

가능한 싸움을 피하고 싶은 내가 말을 했지만 박 중사의 대답은 날이 선 대답이었다.

" 많이 변했다... 너도.."

" 솔직히 두려워.."

나와 박 중사는 식사를 끝내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면서 말을 했다.

" 두려워?"

" 응... 너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힘을 쓸 때

마다 이성이 날아가버릴까 얼마나 긴장하는데.."

" 그랬냐..."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고 싶은 기분을 느껴본적 있냐.."

" 응?"

" 내가 힘을 쓸 때마다..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말... 죽이라는... 그리고

움직이는 내가 나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어쩔 수 없이 힘을 써야하는

상황이..."

" 그...약의 부작용인가..."

" 모르지... 몰라...진짜 이성이 날아가... 너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두려워..."

" ....."

누구도 몰랐던 내 심정을 박 중사에게 말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 예전에 앞서서 싸우고... 뭔가를 계획했지만... 지금까지는 운 좋게

살아남았는데 앞으로 그게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이 점점 나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 그렇구나..."

" 이런 상황이 생길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생각했지만 이 수송기만

봐도 예상한 누군가가 있다는 증거고 힘 있고 빽 있는 자들은 이미

자기들 살 길 다 마련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점점 힘이 빠지네.

헤어진 일행들은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 너도 부담감이 심했구나.... 하긴 너한테 의지하는 것들이 많았으니."

" 웃기지... 누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우리 일행은 솔직히

너무 약해..."

" 약해?"

" 이런 힘이 없었다면... 이런 운이 없었다면... 저들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없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저들이

어떻게 보면 더 대단하지."

" ..... "

짐을 한가득 들고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섬의 생존자들을

보면서 내가 말을 했다.

" 아마도... 난 더 움츠려 들지 않을까...싶다..."

담배를 저 멀리 던지고는 나는 다시 폐글루로 돌아가 수송기로 들어갈 때까지 박 중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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