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Chapter 3. 이번엔 다르게 (2)
“그래? 우리 신입 레지던트 선생님이 생각해둔 게 따로 있는 모양인데 한 번 디스커션 해봅시다. 어떤 처방이 좋다고 생각하나?”
반면 진철영은 시현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Lamictal과 Abilify 병합요법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현이 대답했다.
과거 여러 번의 약물 변경 끝에, 김수영이 치료를 종결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약물들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레지던트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게 적절하다고 생각해? Lamictal은 급성 조증에 효과가 없는 약이라고.”
최지훈이 시현을 꾸짓듯 말했다.
“무턱대고 약을 바꾸는 건 아니지 않나? 기본적인 적응증도 모르면서!”
만약 진철영이 듣고 있지 않았다면 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을 기세였다.
“그건…….”
이번만큼은 시현도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 시기의 양극성 장애 치료 가이드라인으로만 본다면, 그의 말은 정론이었다.
오히려 시현의 주장에 설득력이 부족한 상황.
‘다 해봤다고 할 수도 없고.’
이대로라면 전에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왜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듣고 싶은데.”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진철영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일단은 부작용 때문입니다.”
“부작용?”
“최근 며칠 사이에 2kg가량의 체중 증가가 있었습니다. 약물 치료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상태입니다.”
“그래봐야 정상 체중… 아니 저체중에 가까운 상태인데 무슨 문제야? 치료자로서 권위를 가져야지. 환자한테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닌가?”
최지훈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분으로 그 부분에 특히 민감합니다. 퇴원 후 임의로 약물을 끊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우려라기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사실이었다.
체중 증가로 인한 잦은 치료 중단 그리고 재발.
회귀 전 약물 변경을 고려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최근 면담에서 환자가 다이어트 약을 복용 중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일단은 끊도록 했지만, 체중 유지가 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재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약이라면 성분은?”
최지훈이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증 증상을 포함해서 환자가 겪은 부작용들을 봤을 때 중추신경 자극제 계통의 약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가수 지망생에 중추신경 자극제…….”
진철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미 복용해버린 건데 성분이 중요하겠나. 앞으로 절대 복용하지 않도록 충분히 설명했겠지?”
“네, 교수님.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일단 약물은 천 선생 말대로 바꾸도록 해.”
“하지만 여전히 액팅아웃할 수 있고 병동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는 위험이…….”
최지훈이 항변했다.
“아까 저체중에 가까운 환자라고 하지 않았나? 병동에 상주하는 인력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다른 사항 없으면 회진은 여기까지 하지.”
진철영은 레지던트들을 향해 빙긋이 웃어 보인 후 그대로 회의실을 나갔다.
‘추정만 했을 리가…… 재미있는 친구군.’
병동을 떠나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 * *
일주일 뒤.
김수영의 치료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늘 아침은 좀 어떠세요?”
“푹 잤어요. 몇 달…… 아니 몇 년만인 것 같아요.”
그동안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그녀는 최근 며칠 동안 12시간 이상씩을 푹 잤다.
‘이게 정확히 4주분이었어.’
회귀 전, 한 달 내내 진정제를 달고 살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각성제에 가까운 약을 먹고 있었으니 조증 치료제가 제대로 들을 리 없었다.
일단 조증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다이어트 약을 중단시킨 것이 주효했지만, 김수영은 시현과 면담을 이어가면서 더욱 안정을 찾아갔다.
그저 모든 것들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는데 묘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휴, 카드 할부는 다 어떡하죠?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조증이 한창일 때 그녀는 돈을 뿌리고 다녔다.
구두, 핸드백, 입원 직전에 충동 구매한 고가의 기타까지.
“이제 그 기타로 돈 많이 벌어야죠.”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걱정 마세요.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시현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은 낙관론자시군요.”
“네?”
“그거 정신과 쌤들 영업용 멘트 아니에요? 이 바닥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억울하네. 진짠데.’
퇴원 후 1년 정도가 지나 기분이 안정되자 김수영은 더 좋은 곡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한다.
그나저나 낙관론자라.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시현은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등 근거 없는 막무가내식 긍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워낙 명확한 근거가 있으니 이런 말도 할 수 있지만.
막연한 희망은 때론 위험하다.
시현이 줄곧 가져왔던 생각이었다.
이번 달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해가 바뀌면 나아지겠지.
번번이 좌절과 실망만을 안겨주는 그런 근거 없는 말들이 싫었다.
결국 남는 것은 학습된 절망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 재발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 질환이니까요. 지망생 생활을 하다 보면 과로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의 경과는……
과거 환자에게 했던 말들이 뇌리를 스쳤다.
정론이지만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는……
그저 그런 설명들.
“아마 지금 처방 꾸준히 유지하시면 당분간 재발은 없을 겁니다. 기분이 안정되면 자연히 분명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곡도 쓰시게 될 거고요.”
하지만 이제 이런 말 정도는 할 수 있다.
더없이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서.
“낙관이 싫으시다면 바람이라고 해두죠.”
“바……람이요?”
시현의 말에 김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지만, 꼭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잘 되기를 바란다…… 선생님도 제 팬이 된 거네요?”
김수영이 재밌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런가요? 맞는 말이네요. 다시 건강해져서 어떻게든 잘 되시기를 바라니까요.”
“알겠어요. 기타값 벌려면 열심히 해야겠네요. 앞으로 1년 더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둬야죠.”
김수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1년은 짧아요. 2년은…… 아니 최소한 2년 반은 더 해보세요.”
회귀 전 3년 차 가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수영을 TV에서 보고 뿌듯해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반 뒤였다.
“네? 왜 하필 2년 6개월이에요?”
마치 점쟁이처럼 말하는 시현이 이상했는지 김수영이 되물었다.
시현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적당한 대답을 찾았다.
“초발 조증의 경우는 유지 치료를 최소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니까 쉬엄쉬엄 하시는 게 좋고요. 그 기간 지나고 나서 1년 더 하면 준비한다고 하면 2년 반이죠.”
“아…… 그런 거구나. 난 또 선생님이 미래라도 아는 줄 알았죠.”
“아마 맞을 거예요. 제가 이런 감은 좀 좋거든요.”
그렇게 김수영은 퇴원 후 계획까지 차근차근 세워가고 있었다.
* * *
‘이건 좀 곤란한데.’
김수영이 호전되면서 시현에게는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환자가 일찍 퇴원하게 되면서 병실에 빈 병상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
원래라면 김수영은 4월 중순에 퇴원을 했어야 했다.
그녀의 빠른 퇴원으로 병상에 여유가 생기고 병상 회전율이 올라가면 전에 없던 새로운 환자들이 입원할 수도 있다.
당장 시현의 맡게 될 두 번째 환자부터 회귀 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전에 걱정했던 대로 황진호와 교대로 받는 환자 순서까지 꼬이게 된다면?
두 사람이 진료했던 환자군이 정반대로 바뀔 수도 있었다.
‘환자를 일부러 천천히 봐야 하나? 그건 아닌데…….’
충분히 호전된 환자들을 억지로 병동에 붙들어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딸애가 예전 모습을 다시 찾은 것 같아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안정된 것 같기도 하고요.”
김수영은 눈에 띄게 좋아져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돌아왔다.
보호자들이 조심스럽게 주 초에 퇴원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외박 때도 별문제가 없었다면 괜찮겠지.’
당연히 시현도 동의했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분명 별일은 없을 것이다.
“한 달은 넘게 있을 것 같더니만 의외로 일찍 가네.”
병실에서 퇴원 짐을 싸는 김수영을 보며 수간호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요? 입원하고 바로 좋아지길래 그렇게 안 봤는데?”
스테이션에 있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병동에 딱 들어올 때 느낌이 최소 한 달 이상이었는데……. 요즘 약이 좋아져서 그런가?”
‘그걸 어떻게?’
시현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괜히 수간호사가 아니었다.
환자가 병동에 들어오는 걸음걸이만 보고도 얼마나 입원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듯했다.
30년 간호사 생활 끝에 얻은 심득이 저러할까.
회귀 전의 흐름을 생각하면 소름 돋을 만큼 정확한 판단이었다.
담당의가 시현이라는 새로운 변수만 뺀다면.
“그동안 감사했어요. 여기서는 다시 보지 말고 나중에 방송에서 꼭 보세요!”
김수영이 폐쇄병동 출구에 서서 시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김수영의 모습에 시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옷차림도 이목구비도 입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생기발랄한 표정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회귀 전 TV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들이 겹쳐보였다.
“응원하겠습니다.”
“지난번에 2년 반이라고 하셨죠? 그때까진 정말 열심히 해볼 거예요.”
시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 순간 김수영이 내민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악수…….’
나름 친근함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현에게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치료자와 환자 간의 신체 접촉, 특히 이성 환자와의 신체접촉은 가급적 피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
보편적인 원칙이지만 종종 서운해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시현의 손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아, 죄송합니다. 환자분과의 신체 접촉은 하지 않도록 되어…….”
하지만 다음 순간 시현의 눈이 커졌다.
“괜찮아요. 저희는 팬분들 손 많이 잡아드리거든요.”
김수영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시현의 손을 꼭 쥔 채로.
* * *
‘3주 단축했네. 안정제 한 번을 안 맞고…….’
폐쇄 병동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을 보니 내심 뿌듯했다.
시현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이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자, 또 일하러 가볼…….”
고개를 돌려 병동을 향하려는 순간, 생전 처음 경험하는 느낌의 어지러움이 일었다.
순간 시현의 신형이 흔들렸다.
딩동!
뒤이어 들리는 알림음.
마치 두개골 안에서 울리는 것마냥 생생한 소리였다.
[system : 시스템 활성화에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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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시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림음과 함께 허공에 떠오른 팝업창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