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11화 (11/195)

11화 Chapter 5. 시스템 관리자 (1)

[system : 누적 획득 포인트가 5,000P를 돌파했습니다. 아이템 샵이 활성화 됩니다.]

시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알림창으로 손을 뻗었다.

[자원 보유량 5,000P]

‘일주일 사이에 많이 모았네.’

그도 그럴 것이 시현의 업무 능력은 과거의 1년차 초반과 비교했을 때 하늘과 땅 차이였다.

‘뭘 사볼까?’

아이템 샵의 상단에 있는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왔다.

[코어 아이템]

1. 노신사의 카우치(S)

2. 카이트만의 안경(S)

3. 오래된 수용자의 거울(S)

아이콘 테두리가 금색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딱 봐도 고급 아이템.

‘이름이…… 참 정신과스럽네.’

대충 감은 오지만 그래도 부가 설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일단 ‘노신사의 카우치’부터.

[노신사의 카우치 - 사상 최강의 소파를 소환합니다. 해당 필드에서는 무의식과 욕망에 대한 이해가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역시.

노신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고안한 치료 기법인 정신분석을 시행할 때 환자를 카우치에 눕히고 자유 연상을 하도록 했다.

‘필드 효과가 있는 아이템인가. 정신분석 하시는 선생님들이 좋아하시겠군.’

안타깝게도 시현은 정신분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어서 다음 아이템.

[카이트만의 안경 - 카이트만의 평생 연구가 빛을 발합니다. 감정을 분석하고 참과 거짓을 판별합니다.]

카이트만.

실존 인물은 아니며 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세한 표정 변화를 분석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이었던 것 같다.

‘오, 이건 꽤 유용하겠다.’

시현의 손끝이 ‘구매하기’를 향했다.

[system : 보유 자원이 부족하여 구매가 불가합니다.]

[카이트만의 안경 - +999,999P]

‘무슨 가격이…….’

꽤 비싼 아이템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마저 아득히 뛰어넘는 가격.

레지던트 끝날 때까지 살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system : 구독 서비스 5,000P / 1일로 이용 가능합니다.]

‘뭐? 하루 구독에 5,000P?’

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진 돈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가난해진 기분.

며칠 사이 획득한 5,000P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오래된 수용자의 거울’도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뭐, 그래도 구경은 공짜니까.’

그래도 명색이 코어 아이템이었다.

의사로서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아이템이니만큼 봐둘 필요는 있어 보였다.

[오래된 수용자의 거울 - 삶의 목적과 의미를 비춰줍니다. 절망에 대한 내성이 증가합니다.]

오래된 수용자…….

- 인생을 두 번째로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 생각하라.

정신의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

그중에서도 시현이 가장 존경했던,

나치수용소에서의 생존 경험으로 의미치료(Logotherapy)를 만든 인물.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분명했다.

‘이건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데.’

욕망의 이해. 정교한 관찰. 의미의 발견.

과거로 돌아온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의미 없는 고민일 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템 샵을 뒤졌지만 살 수 있는 아이템은 한 종류도 없었으니까.

* * *

[3:00 AM]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 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망했다.’

불 꺼진 당직실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3시가 되었다.

내일 할 일도 산더미인데 아이템 구경한다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이템 샵을 닫고 잠을 청하려는데 팝업창 구석에 작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정렬 방식 : 높은 가격순]

도로 잠이 깨는 기분이었다.

아이템 가격이 하이퍼인플레이션 맞은 것마냥 비쌌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낮은 가격순으로……’

이번에는 각종 포션들이 눈에 들어왔다.

1. 회복 포션(E) - 사용 시 종일 진료로 누적된 피로감을 서서히 제거합니다. (500P)

2. 숙면 포션(E) - 사용 시 수면 부족 상태에서 회복합니다. 수면의 질이 크게 향상됩니다. 현재 등급에서 +3시간가량의 수면 효과가 있습니다. (500P)

3. 가속 포션(E) - 사용 시 짧은 시간 동안 이동속도가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500P)

[1년차 특별 팩! 2+1]

심지어 이벤트까지.

이건 안 살 수가 없다.

시현은 1,000P로 포션 3개를 각각 하나씩 구입한 뒤 눈을 감았다.

‘잠깐만, 숙면 효과라고?’

아이템 설명에 따르면 3시간만 자도 6시간 수면을 취한 효과가 있는 셈이었다.

‘일단 써보자.’

시현은 바로 숙면 포션을 터치했다.

체감상 출근 시간이 3시간은 뒤로 늦춰진 기분을 느끼며 시현은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딩동!

[system : 아이템 첫 사용 효과로……]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분명 짧게 잔 것 같은데.

푹 자고 일어난 듯 몸이 가벼웠다.

‘그런데…… 여기는?’

눈을 뜬 곳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낯선 공간이었다.

문마다 진료실, 검사실, 처치실과 같은 안내가 되어있는 곳을 보니 병원인 것 같았다.

시현은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자신 말고는 다른 환자가 없는 걸 보니 썩 잘되는 병원 같지는 않아 보였다.

“천시현 선생님. 1번 진료실 들어가세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련된 베이지색 재킷을 입은 여자가 시현을 안내했다.

‘기다린다고? 누가?’

문이 열리고 방 안에는 한 눈에도 값비싸 보이는 중역 책상에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는 활짝 웃으며 시현을 맞았다.

‘이 사람은 누구지?’

분명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낯설지만은 않은 느낌이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형.

별다른 특색이 없는 이목구비.

자신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처음 뵙겠습니다. 혹시 저를 아시나요?”

시현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 없이 미소 띤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딩동!

남자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기 무섭게 떠오른 알림음.

[system : 시스템의 관리자와 조우하였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떠오른 메시지에 시현의 눈이 커졌다.

반사적으로 시선이 남자의 가운을 향했다.

정신과 전문의 원장 강성진.

시스템 관리자와의 첫 대면이었다.

‘여긴 어디지? 이 사람은? 혹시 NPC 같은 건가?’

일단 시현이 아는 정신과 전문의 중에 저런 사람은 없었다.

“저 혹시 선배님이십니까?”

“선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야. 다만 이곳은 최대한 자네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꾸며봤다네.”

강성진은 시종일관 웃으며 시현을 대했다.

“여기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네.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어서 물어보게.”

딩동!

[system : 관리자에게 3번의 질문이 허용됩니다.]

강성진의 등 뒤로 빛나는 물음표 세 개가 떠올랐다.

‘NPC 맞는 것 같은데.’

시현의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되어갔다.

“저는 왜 다시 1년차가 된 겁니까? 시스템이나 아이템 이건 다 뭐구요?”

4년 전으로 돌아온 뒤부터 계속 궁금했던 것들.

시현이 질문을 고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군……. 두 가지 질문으로 봐도 되겠나?”

강성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음표 두 개가 동시에 꺼졌다.

“일단 1년차로 돌아온 건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 또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세. 그리고 시스템과 아이템은 그 바람을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제공되는 것이고.”

모호한 대답이었다.

‘바라는 사람? 그건 도대체 누…….’

시현은 곧장 그 사람들이 누구고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싶었으나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시현이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이네. 정말 좋은 질문이야.”

강성진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답은 없지. 이번엔 내가 묻고 싶군. 자네는 어떻게 살고 싶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의대생 때 이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의 기간은 너무도 바빴다. 당장 오늘 닥친 일 해결하기도 버거워서 매일 발등의 불을 끄는 심정으로 살아온 것만 같았다.

“1년차 2번 하는 것도 억울한데 일단은 아무거나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게. 그중에 답이 있지 않을까? 시스템은 항상 자네를 응원할 걸세.”

구체적인 답은 아니라서 부족하다고 느낄 무렵 강성진이 말했다.

“다만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공부 많이 하고 특히 환자를 성실하게 보고…… 그러면 좋을 것 같아. 이왕 4년 보내는 건데 안 그런가? 어쩌면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이 자네를 다시 불러왔을지도 모르니까. 아, 그리고 논문도 좀 열심히 쓰고…… 교수님들 말씀도 잘 듣고. 이광섭, 진철영 교수님도 잘 계시지? 아무튼,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도 자주…….”

“…….”

‘관리자가 이렇게 꼰대일 줄이야.’

금방이라도 ‘라떼는 말이야.’가 나올 기세였다.

“저, 관리자님?”

“흠흠. 미안하네. 시간이 별로 없는데.”

관리자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물음표에 불이 꺼졌다.

“아쉽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로군. 가기 전에 소개해 줄 사람이 있는데.”

강성진이 호출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똑똑.

문을 열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예인을 눈앞에서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단정한 정장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평범한 옷차림이었으나, 차분한 눈매에 투명한 피부톤이 인상적인 비현실감이 들 정도의 미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천시현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깍듯하고 절도 있는 인사에 시현은 약간 긴장한 듯 대답했다.

“앞으로 자네를 도와줄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레지던트 조력자’라네.”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설마 그게 이름일 리는 없고, 직책이라고 하기에도 상당히 낯선 표현이었다.

“저를 돕는다는 게 무슨…….”

“시스템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드릴 겁니다.”

강성진을 대신해 여인이 대답했다.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이군. 행운을 비네. 진심으로.”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성진이 시현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웃고 있었으나 기대와 염려 그리고 응원이 섞여 있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가 소개해 준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레지던트 조력자’가 진료실 문을 열어 주었다.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현은 문을 나섰다.

* * *

번쩍.

5 : 59 AM

시현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 기분이었다.

‘꿈을 꾼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방금까지 나눴던 대화가 너무도 생생하다.

딩동!

[system : 신규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레지던트 조력자(Subjective Objective Resident Assistant, SORA)]

‘꿈 아니네…….’

시현이 알림창을 클릭하자 추가 메시지가 떠올랐다.

[system : 현재 비활성화 상태입니다.]

어떻게 활성화하는 거지?

궁금증이 폭발하는 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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