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Chapter 6. 천하제일 단타 대회(2)
4:00 AM
이른 새벽.
대다수 레지던트 숙소의 불이 꺼진 가운데 정신과 의국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system : 논문읽기(3/3) 를 완료하였습니다.]
최지훈이 시킨 일 때문에 주말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버틸만 했다.
‘이거 물건이네.’
[숙면 포션(E급) - 수면의 질이 크게 향상됩니다. +3시간 가량의 수면 효과가 있습니다(500P)]
어제만 하더라도 실제 수면 시간은 3시간 남짓이었으나 체감상 6시간 정도 잔 기분이었다.
시현은 남은 포인트로 숙면 포션을 추가 구매했다.
‘가속 포션도 써볼까?’
아이템 설명에는 짧은 시간 동안 이동속도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고 했다.
아이템을 터치하자 다리에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system : 체력 단련을 시작합니다. (0.1/3Km)]
새벽에 일어나 논문을 읽고 아침운동까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증을 의심할 수준이었다.
다시 맞는 3월의 새벽 풍경은 회귀 전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 *
9병동 스테이션.
“좋은 아침이에요.”
병동 막내 간호사 이선지였다.
나이트 근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밤새 별일 없었죠?”
“네, 환자분들 다들 잘 주무셨어요. 그런데 선생님 요즘 일찍 출근하시네요?”
“할 일이 있어서요.”
시현이 첫 번째 환자의 차트를 열며 말했다.
[system : 병동 장악을 시작합니다. (1/30)]
“어? 선생님 담당 환자도 아니신데…….”
이선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 그 유명한 제약회사 회장님이 돌아가셨대.”
병동 한 편에서 TV로 아침 뉴스를 보던 환자들이 수군거렸다.
주식회사 다나아생명과학의 오너가 차량 전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역시나.’
과거에도 김민홍이 다나아생명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사고가 발생했었다.
“돈이 많아 봐야 무슨 소용인가. 저리 허망하게 갈 수 있는 게 인생인 것을…….”
환자들이 TV를 보며 혀를 찼다.
여러 말들이 오고 갔지만, 요지는 인생이 무상하니 우리라도 건강을 잘 지키자는 내용이었다.
창업자이자 회사의 최대주주인 김성렬 회장의 죽음.
주 초부터 다나아생명과학은 극심한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 김민홍 선생님 어떡해. 맨날 이야기하고 다니던 회산데 망하는 거 아냐?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회사의 주가는 그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회장의 유족들 간 경영권 분쟁이 심화 되면서 1주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양 세력 간 주식 확보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재적인 기술 가치가 얼마일지 정확히 판단조차 되지 않는 데다 유통 주식 수도 얼마 되지 않는 회사였다.
특히나 회사가 고형암 면역항암제에 대한 혁신적인 특허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던 시점이라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
월요일 아침 회진이 끝나고 주식 창을 확인한 김민홍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환희에 차 비명을 지르는 김민홍의 얼굴.
그리고 천장을 뚫어버릴 기세로 솟아오른 장대양봉.
첫 상한가였다.
황진호도 김석용도 그리고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시현마저도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구나.’
뜻밖의 빅 윈(Big win)으로 도박중독에 빠진 환자들의 심리를 급 이해하게 된 그였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참 웃픈 일이였지만 시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반응했다.
종목 게시판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병원 카페에 모인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치프 선생님 덕분에 돈 벌었어요!”
“이번 건 시현이 덕분이지.”
김민홍이 시현을 추켜세웠다.
딩동!
[system : 레지던트 김민홍이 사용자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입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1,000P)]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다들 어떻게 생각해?”
시현은 생각에 잠겼다.
기억력이 꽤 좋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세세하게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일단 오늘은 정리하고 내일 저가에서 다시 매수하는 전략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상한가가 안 풀리면 일단 들고 가는 게 맞지 않나? 당분간은 경영권 분쟁이 이어질 것 같은데 좀 더 오르지 않을까?”
황진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긴 하지.’
맞는 말이지만 내일은 아니다.
“분명 뉴스에 따라 크게 흔들릴 거예요. 거래량 없이 쩜상 형태로 가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에는 제 의견대로 해주세요.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시현의 제안으로 하룻밤 새에 30% 수익을 얻은 만큼 다들 더 욕심을 내기보다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 * *
다음 날 아침.
[고 김성렬 회장의 장남 김일정씨와 차남 김이정씨가 협의를 거쳐……]
경영권 관련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기사와 함께 주가는 하한가에 가깝게 곤두박질쳤다.
언제 상한가를 쳤냐 싶게 지난주 주가로 돌아가는 듯했다.
“어제 다 정리하길 진짜 다행이다. 와, 천시현 감 좋은데?”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유독 한 사람의 표정이 똥 씹은 것마냥 좋지 않았다.
김민홍의 동기, 4년차 레지던트 최지훈이었다.
최지훈은 김민홍 덕분에 다나아생명과학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 이거 나중에 대박 날 종목이야. 꼭 사둬!!!
그 말을 잊지 않았던 그는 상한가에 근접할 무렵 추가 매수를 했다.
상승에 베팅한 것이었다.
다른 레지던트들이 시현의 의견을 따라 금요일에 매수를 끝내고 월요일 상한가에 모두 매도한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욕심이 많기로 의국에서 손꼽히는 최지훈이었다.
2연상의 탐욕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익일 급락에 졸지에 -20% 이상의 손실을 봤다.
손실은 아프다.
특히나 모두가 수익에 환호할 때 혼자 경험하는 손실은 많이 아프다.
“선생님, 말씀하신 논문 40편 요약 마쳤습니다. 중요한 테이블과 도표는 여기 따로 인쇄해뒀습니다.”
‘미친. 이걸 벌써?’
애초에 다 하기를 기대하고 준 과제가 아니었는데, 뜻밖에도 시현이 요약본을 내밀었다.
“어? 어…….”
그러나 이미 최지훈에게는 그 내용을 검토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다들 털고 나갔는데…… 더 미련 갖지 말자.’
김민홍이 산 커피를 마시며 혼자서 외래로 내려가는 길.
그는 눈물을 머금고 손절을 단행했다.
* * *
같은 날 점심시간.
“어? 4년차 방에는 웬일이야?”
시현은 김민홍을 찾아갔다.
김민홍이 주로 지내던 곳은 4년차 남자 레지던트들이 이용하는 숙소였다.
“선생님, 다나아생명과학 다시 들어가시는 건 어떠세요?”
“왜? 이미 하한가 거의 다 왔는데. 호재라도 있어?”
호재는 없다.
하지만 4년 전 뉴스에서 본 것을 시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일주일 내내였어.’
이 회사는 앞으로 5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친다.
그 와중에는 예전의 김민홍을 패닉으로 몰아갔던 롤러코스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도 종가는 결국 상한가였다.
“상속 문제도 있고 경영권 분쟁이라는 게 하루 만에 끝날 리가 없잖아요? 일부러 합의를 하는 듯 정보를 흘려서 싸게 지분을 늘리려는 전략일 수도 있죠.”
이번에도 김민홍은 시현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황진호와 김석용도 같은 생각이었다.
2 : 50 PM
동시 호가 시간을 30여 분 남기고 주가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시 30분.
상한가를 의미하는 붉은 화살표가 화면에 떠올랐다.
같은 날 하한가와 상한가를 모두 기록하는 것은 뉴스에 나올 만큼 드문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김민홍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만약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면 그대로 허공에 뿌릴 듯한 모습이었다.
“시현아. 내 주식 인생에 이런 날은 처음이다. 하한가에 사서 상한가까지 가다니! 수익률 실화냐. 이거 보이지?”
김민홍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오늘은 시간 외로 정리하지 마시고 들고 계시는 게 어떨까요? 내일 또 지켜봐야 알 것 같지만요.”
김민홍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유는 묻지 않았다.
* * *
5 : 00 PM
이광섭 교수의 오후 회진을 앞두고 레지던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들떠있는 다른 레지던트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최지훈은 상황을 파악했다.
부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특유의 비꼬는 말을 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최지훈을 보던 시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저게…… 지금 웃어?’
하얀 피부톤 때문인지 붉게 물든 얼굴이 도드라져 보였다.
“천시현, 이런 게 있었으면 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너 담당 4년차인데. 너 때문에 진짜…….”
“제가…… 왜요?”
시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
예전 같았으면 미처 말을 못 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정상인 상황이다.
또다시 의외의 반응에 최지훈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가 아직 1년차라 잘 몰라서 그런데…… 주식거래 내역까지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
“그렇게 궁금하시면 먼저 물어보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순간 시현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말들이 있었다.
- 야, 천시현. 환자 이따위로 볼 거야? 네 자존심이 환자보다 중요해? 모르면 물어봤어야지!
자존심 때문에 못 물어본 것이 결코 아니었다.
- 야, 이런 것도 공부 안 하고 물어보면 오프 때 도대체 뭐 하는 건데? 앞으로 2주간 당직만 서! 알았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매번 이런 식이기 때문이었다.
“…….”
최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늘 해오던 말을 신입인 1년차에게 듣는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때마침 이광섭 교수가 들어왔다.
“최 선생, 왜 그래? 무슨 일 있나?”
상기된 최지훈을 보고 이광섭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닙니다.”
“회진 바로 시작하지.”
브리핑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광섭은 회진을 돈 뒤 병동을 떠났다.
‘이게 말이 돼?’
1년차에게 면전에서 망신을 당했다.
내심 아랫년차들이 나서 시현을 야단하기 바랐을 테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버럭 화를 낸다면 더 추해지기만 할 뿐.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대로 회의실을 떠났고.
이내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자자 분위기가 왜 이래? 오늘 저녁에 맥주 한잔하자. 시현이도 꼭 오고.”
김민홍이 분위기를 풀어주듯 말했다.
“저희도 갈게요.”
하도영이었다.
꼭 같이 가자며 권원주에게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웬일? 하 선생이랑 권 선생이 다 온다고 하고? 오늘은 진은이 당직이니까 황진호 선생도 와.”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하극상의 달인 - 4년차의 기세를 패기로 꺾었습니다. (불가능 난이도 +2,000P)]
[치프의 심복 - 1개월 내로 치프의 신뢰도가 최고치에 다다랐습니다. (불가능 난이도 +2,000P)]
여지없이 울리는 알림음.
오늘은 왠지 밤이 길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