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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19화 (19/195)

19화 Chapter 8. ER (1)

- 선생님은 혹시 ‘돌아온 사람’인가요?

숙소 침대에 누웠지만, 최세영이 남긴 마지막 말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 앞으론 조심하세요. 지켜보는 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른 회귀자들을 알고 계세요?

지켜보는 눈들이란 건 뭔가요?

그들에게 노출되면 어떻게 되나요?

최세영을 찾아가 묻고 싶은 말들이 산더미였지만 신중해야 했다.

그런 질문 자체가 스스로 회귀자라는 걸 인증하는 셈이었으니까.

‘뭐라도 대답하는 게 나았으려나?’

이를테면 ‘돌싱… 이요? 저는 결혼한 적도 없는데요.’랄지.

하지만 그런 말을 생각해내기엔 최세영의 질문이 너무나 예상 밖이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과거의 기억들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최세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저 김민홍의 아내나 우현이 엄마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조심하라고 말해준 건 최소한 나쁜 의도는 없다는 거겠지.’

생각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일단은 지켜보자.’

마음이 복잡할 때는 일단 미루고 보는 것도 꽤 유용한 전략이었다.

* * *

주말 당직.

토요일 외래 진료 시간이 끝나면 주말 동안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응급실로 방문한다.

원래의 3월이었다면 불안에 떨며 토요일을 맞았을 테지만 지금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12 : 04 AM

토요일 오후를 무사히 보내고 자정이 넘은 시각. 이제 조금만 버티면 황진호와의 교대시간이다.

‘오늘따라 호출이 별로 없네.’

의국 접이식 침대에 누워 눈 좀 붙이려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전화벨이 울렸다.

[02-20xx - 0119]

응급실이었다.

응급실에서는 인턴이 초진을 본 뒤 해당과 레지던트를 호출하는 식으로 진료가 이뤄진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ER 인턴 노민혜 입니다. 노티 드리겠습니다. 38세 여자 환자분 1시간 전부터 지속되는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환자는…….”

노티(Notify)

응급실 인턴이 환자를 진찰한 뒤 진료과에 맞게 분류하고 보고하는 것을 말했다.

진찰 중에 놓치는 것이 있거나 엉뚱한 과를 호출하면 레지던트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티를 하는 인턴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시현은 노티를 듣는 동시에 응급실 환자 리스트를 띄웠다.

[이정미 여/29 인턴 노민혜 / 담당과 미정]

그는 한눈에 환자를 알아보았다.

과거 1년차 초반, 거의 매주 응급실로 오던 분이라 똑똑히 기억한다.

‘아, 이 분 공황장애 환자인데.’

공황장애.

갑작스러운 심한 불안과 죽을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 등을 동반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었다.

‘주로 새벽 시간에만 오셨었지.’

번번이 쪽잠을 깨우던 분이라 도무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환자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응급실에서는 물론이고 나중에 3년차 때 레지던트 외래에서도 꽤 오랫동안 봐오던 낯익은 환자였다.

주증상은 흉통과 호흡곤란.

그리고 증상 악화 요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내려가서 볼게요.”

시현은 노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인턴 노민혜의 노티는 불과 30초도 되지 않아 싱겁게 끝났다.

과거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 인턴 선생님, 우선 다른 질환 배제가 중요할 것 같네요. 내과 먼저 콜 하고 정리되면 부르세요.

흉통과 호흡곤란의 경우 잠재적인 심혈관계 질환을 놓치는 것이 더 위험하다.

간혹 공황장애인 줄 알고 진료했다가 뒤늦게 심근경색임이 밝혀져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시현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은 접근법이다.

하지만 회귀 후 여유를 찾은 시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진단을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인턴 고생시킬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내가 볼 환자고…….’

시현은 곧장 응급실을 향했다.

“민혜야, 벌써 노티 성공한 거야? 히스토리 엄청 빡세게 했나 봐?”

전화 끊기가 무섭게 담당과 레지던트가 나타나자 주변 인턴들이 부러워했다.

3월 초에 기강 잡는다고 인턴의 노티 내용이 부실하거나 하면 퇴짜를 놓고 면박을 주는 레지던트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천시현 선생님이 그냥 바로 내려와서 봐주신댔어.”

노민혜가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노티했다가 욕먹지 않으려고 병력청취를 20분이나 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난 셈이었다.

“환자 어디 있나요?”

응급실에 도착한 시현은 초진 차트 내용을 확인했다.

‘제법 꼼꼼하게 잘 적었네.’

3월 초.

인턴들이 의사 면허를 딴 지 불과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다.

분명 의사이긴 한데 아직은 의대생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노민혜의 기록은 꽤 신뢰할 만했다.

시현은 추가로 검사 오더 몇 가지를 낸 뒤 곧바로 환자를 만났다.

“이정미 님,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호, 호흡이……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아요.”

환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시현은 바로 환자의 활력 징후가 떠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O2 saturation 100%]

산소포화도는 최대치.

주관적인 호흡곤란은 있을지언정, 실제 산소 공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시사했다.

심박수가 약간 빠른 것 말고는 특별한 소견은 없었다.

“바로 조치해드릴게요. 곧 괜찮아질 겁니다.”

시현은 환자를 향해 가볍게 미소지은 뒤, 담당 간호사에게 말했다.

“바리움 한 앰플 준비해주세요.”

간호사에게 주사기를 건네자 일부는 정맥에 직접 주사하고 나머지를 수액 백에 주입했다.

“지금은 좀 어떠세요?”

“휴우. 이제 좀 숨이 내려가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는 바로 안정을 찾았다.

과거 1년차 초반에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던 때라 호흡이 불편한 환자를 붙들고 이것저것 많이도 물어봤었다.

- 어릴 적에 주로 누구 손에 자라셨나요?

-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 학창 시절 때 친구 관계는 어떠셨나요?

그 시절을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 면담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질 수는 있지만, 절대로 죽지 않는 거 아시죠?”

“정, 정말이죠?”

“그럼요. 실제로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만약 정말로 심장이 멎으면 몇 초안에 의식을 잃고 맙니다. 이렇게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죠.”

환자를 안심시키고 공황장애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딩동!

[system : 이정미 환자의 치료 진척도가 상승합니다.]

[치료 진척도 11 -> 23 / 100]

“기본적인 혈액검사와 심전도에서 이상은 없습니다. 심근 효소들도 특별히 문제없고요. 안심하세요.”

“네, 알겠어요!”

시현의 설명에 기분이 좋아진 환자는 한결 밝은 표정이었다.

“퇴실 처방해뒀습니다. 호흡 안정되시면 귀가하시고 3일 뒤에 정신과 외래로 오시면 됩니다.”

설명을 마치고 응급실을 떠나려던 시현이 무언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추고 다시 환자에게 갔다.

“아, 환자분 제가 깜빡한 게 있네요. 공황발작은 스트레스 안 받는 게 제일 중요한 거 아시죠?”

“네. 근데 그게 마음대로 돼야 말이죠…….”

“그런데 가끔 예방할 수 있는 스트레스도 있더라고요.”

시현이 웃으며 말했다.

“음, 예를 들면, 돈 빌려 달라고 집요하게 졸라대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인연 끊고 사는 것도 예방 아니겠어요? 그런 건 하실 수 있죠?”

“아… 네…….”

“요즘 경기가 안 좋은지 돈 빌리고 잠수타는 인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안 그렇습니까? 보호자님?”

시현이 환자 옆에 서 있던 남자친구를 보며 물었다.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손을 꼬옥 잡은 모양새가 정말 자상한 남자친구 같지만 실은 반대였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걔만 안 만났어도 제가 이 병 안 걸렸다니까요?

앞으로 환자가 받을 스트레스의 대부분이 이 남자에게서 나온다.

주사에 양다리로도 모자라 돈 문제까지.

남친이라기보다 빌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 그렇죠. 하하.”

시현의 말에 대답하는 남자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선 외래 전까지 드실 약 처방해드릴게요. 혹시나 불편하시면 언제든 다시 오십시오.”

매번 거절을 못 해 당하고만 살던 환자가 이번만큼은 힘들게 번 돈 떼이지 않고 멀쩡한 남자 만나 잘 살기를 바라면서.

“와 오늘 무슨 날이야? 풀베드에 대기실 복도까지 다 차서 앉을 자리도 없는데…… 환자가 또 온다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차트를 쓰는데 누군가 수화기를 덜컥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

1년차 첫날 시현에게 수액을 달아주던 응급실 차지간호사였다.

저쪽에서는 노민혜와 다른 인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가 지쳐있었다.

“정신과는 환자 오면 인턴 선생님들한테 주증상만 파악해서 바로 노티 하라고 하세요. 태클 안 걸 테니까.”

시현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올~ 천시현 쌤! 노티도 잘 받아주고, 뭔가 멋짐 폭발인데?”

갓 의사 면허를 따고 처음 근무를 시작한 곳이 응급실이라니. 생각할수록 딱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보니 5년 전 인턴이었던 시현 자신의 첫 근무과도 응급실이었다.

‘이번엔 좀 잘해줘야겠어.’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응급실의 아이돌 - 응급실 인턴들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어려움 난이도 +500P)]

[말리그는 아니네! - 응급실 간호사들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어려움 난이도 +500P)]

시현의 생각에 반응이라도 하듯 새로운 보상들이 떠올랐다.

딩동!

[system : 누적 획득 포인트가 30,000P를 돌파했습니다. 신규 아이템들을 오픈합니다.]

‘신규 아이템들?’

뒤따라 울린 알림음에 시현의 눈이 커졌다. 곧바로 아이템 샵을 열었을 때 상단에 ‘NEW’라고 표시된 아이템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시청타촉의 포션(D) - 짧은 시간 동안 사용자의 감각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1,000P / 중첩 사용 불가)]

[멀티 태스킹 포션(D) - 짧은 시간 동안 사용자가 다양한 일을 동시 진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1,000P / 중첩 사용 불가)]

‘시청타촉이라…….’

시청타촉은 시진, 청진, 타진, 촉진의 줄임말로 환자 진찰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들이었다.

정신과 영역에서는 임상 면담이나 심리검사 CT나 MRI와 같은 영상의학적 검사들이 주로 쓰이고 있어 간과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의사라면 누구나 익혀야 할 기본 진찰법이었다.

‘나중에 진찰할 일 있으면 써야겠다.’

시현이 아이템 설명을 읽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누군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까만 단발에 새하얀 피부, 작은 얼굴에 비해 유독 크고 총명해 보이는 눈이 인상적이었다.

급히 나온 탓인지 미처 다 말리지 못한 머리에 물기가 약간 남아있었다.

가운 포켓에 꽂힌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내과 채이진]

‘오랜만이네.’

시현이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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