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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의사 시점-21화 (21/195)

21화 Chapter 8. ER (3)

[system : 추천 아이템이 있습니다.]

[시청타촉의 포션(D급)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응급실 풍경이 아닌 새로운 알림창이었다.

[시청타촉의 포션(D급) - 짧은 시간 동안 사용자의 감각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1,000P / 중첩 사용 불가)]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과연 쓸 일이 있을까 싶었던 아이템.

시현은 곧바로 Y를 터치했다.

딩동!

[system : 시청타촉의 포션 효과가 발동합니다.]

[남은 시간 – 2분 59초]

화아악.

알림음과 함께 시현의 손끝에 은은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게…… 향상된 감각?’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공기의 느낌이 종이 결을 쓰다듬는 듯 생생했다. 왼손에 쥐고 있던 청진기의 튜브에서도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탄성이 느껴졌다.

럽덥- 럽덥-

청진기를 쓰지 않고도 환자의 심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집중하니 1심음(방실 판막이 닫히는 소리)와 제 2심음(대동맥 판막이 닫히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 2심음이 작게 들려. 혈압이 낮아서인가?’

[남은 시간 – 2분 39초]

포션 효과에 감탄하는 사이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일단 어디에서 피가 새는지 찾아보자.’

지금 중요한 것은 외상 부위를 찾아내서 특정하는 것.

“복부 좀 다시 진찰하겠습니다.”

시현은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시 환자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환자복을 걷자 가슴팍과 상복부에 푸르스름한 멍들이 드러났다.

방금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

“환자분, 이 멍 언제 생긴 건가요?”

“멍이요? 멍이 어디 있어요?”

환자도 보호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어떻게?’

시현에게는 보이는 뚜렷한 멍자국이 두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혹시 가슴 쪽으로 부딪치거나 다친 적이 있으세요?”

“없는 것 같은데…… 아!”

환자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제가 그저께 한 번 쓰러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하네요. 저는 기억이 전혀 없는데.”

“어휴, 그니까 술을 좀 작작 마셔요. 또 술 마시고 필름 끊긴 거 아니에요?”

“아니야! 나 이번 주에 술 안 마셨어. 정말이라니까?”

“진짜? 365일 중에 366일 술 마시는 사람이 웬일이래?”

보호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술을 즐겨 마시는 환자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식 변화…….’

두 사람의 대화가 시현의 흥미를 끌었다.

“정말 최근에 술을 안 드셨나요?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요! 요즘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술 안 마시고 있다니까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

“그래요. 딱 한 잔 마셨어요. 4일 전에. 직원들이랑 회식하느라 어쩔 수 없이…….”

이실직고하는 것을 보니 최근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시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 * *

알코올 금단 증후군.

매일 음주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거나 줄일 때 나타나는 증상.

가볍게는 손떨림, 불면, 불안 등 증상이 생기지만 심하면 의식을 잃고 발작을 하기도 한다.

환자가 자신이 다친 것을 기억하지 못했던 이유는 의식 소실을 동반한 발작 때문이었다.

“말씀 듣고 보니 여기가 좀 뻐근한 것 같기도 하네요.”

환자가 자신의 가슴 쪽을 가리켰다.

‘위치가 좀 이상해.’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때 흉부 압박 위치는 가슴뼈 아래쪽 1/2.

그런데 정성환 환자의 경우는 그 위치가 명치에 더 가깝고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있었다.

“진찰을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시현은 곧바로 환자의 복부에 왼손 중지를 가볍게 댄 뒤, 오른손 중지로 왼손 중지 두 번째 마디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의과대학 시절 배운 진찰 요령 그대로였다.

환자의 자세를 조금씩 바꿔보면서 오른쪽 복벽을 타진하는데 어느 지점부터 미묘하게 둔한 느낌이 들었다.

‘둔탁음? 아직 간이 나오기 전인데?’

정상적이라면 Tympanic sound(가스팽만음, 울리는 소리)이 나와야 맞는 자리였다.

‘복수인가? 아니면 출혈?’

많은 양은 아닐지라도 분명 환자의 복강에 액체가 고여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환자분 혹시 간질환이 있으셨던가요? 복수가 있었다거나?”

“잘 모르겠는데요? 지방간이 있다고는 했어요.”

환자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혹시?!’

시현이 조심스레 환자의 우상복부를 눌렀다.

“아얏!”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

심한 흉통 때문에 미처 모르고 지나갔을 뿐 배를 눌렀을 때도 심한 통증이 있었다.

‘복벽이 긴장되어있어!’

이른바 앱도미널 가딩(Abdominal guarding).

복부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복근에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이걸 놓칠 뻔하다니…….’

잘못된 흉부 압박으로 장기 손상.

환자가 알코올 금단으로 잠깐 의식을 잃은 사이, 주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분당 100회의 깊숙한 압박.

정확한 포인트를 누르면 멈춘 심장도 다시 뛰게 하지만, 잘못하면 복부를 두들겨 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 손상과 그로 인한 복강 출혈이 의심되는 상황.

시현은 곧장 스테이션을 향했다.

* * *

“환자 다 보셨나요? 어떤가요?”

“정신과적으로 특별한 증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복통을 호소하네요?”

시현은 짐짓 모르는 척 채이진의 반응을 살폈다.

“흉통이 아니라…… 복통이요?”

역시나 채이진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네, Epigastrium(명치부위)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이었습니다.”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에서 간혹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채이진은 환자의 복통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도 복부 CT 촬영을 한 번 해보는 게…….”

“누구 마음대로 CT를 찍어요?”

바로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시현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건 저희 과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선생님은 정신과적인 것만 신경 쓰면 좋겠는데. 환자 어떻던가요?”

내과 3년차 남혜미가 짜증스레 물었다.

“최근에 알코올 금단 발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의식 소실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의식…… 소실?”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에 남혜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꼼꼼히 병력 청취를 하지 않으면 간과하기 쉬운 부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응급상황에서도 놓치지 않고 의뢰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반면 시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께서도 그 부분을 우려하셔서 협진 의뢰하신 것 아닌가요?”

뇌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협진을 낸 남혜미는 ‘내가? 내가?’라는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렸다.

“그, 그건 내과 의사로서 당연한 거고요. 그래서 왜 CT를 찍자는 거예요? Rationale(근거)가 뭐에요?”

“일단 상복부에 압통이 있었습니다. 병력 상 외상이 의심되고 진찰했을 때, 소량의 fluid collection(액체가 고여있는 상태) 있어 보였습니다.”

시현은 방금 자신이 진찰한 내용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피지컬(신체검사)을 믿으라고? 눈에 띌 정도로 배가 부른 것도 아닌데, 소량의 복수를 어떻게 찾았다는 거예요? 손가락에 초음파 프로브라도 달린 모양이죠?”

남혜미는 기가 찬다는 반응이었다.

“복수보다는 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시현이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얜 뭐 하는 놈이야?’

환자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길래 형식적으로 정신과 협진 노트 정도 받으려고 불렀더니 느닷없이 내과 진찰을 열심히 하고 온 듯한 인상이었다.

“복수인지 출혈인지는 모르겠고, 정 복부 CT 오더 내시려거든 선생님 이름으로 하세요. 괜히 과잉진료했다는 컴플레인 듣고 싶지 않으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적당히 물러날 줄 알았는데 시현은 바로 스테이션 PC에 앉아 추가 처방을 입력하고 있었다.

- Contraste-Enhanced Abdominal CT(조영제 복부 CT) * [응급]

‘이게 지금 날 무시해?’

명색이 레지던트 3년차였다.

아무리 타과라지만, 의대 2년 선배 아니던가.

남혜미는 속이 부글거렸으나 본인이 해놓은 말이 있다 보니 더는 뭐라 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채이진 선생님, 이따 CT 촬영한 거 뜨면 확인해주시겠어요? 판독은 제가 영상의학과 당직 선생님께 부탁드려볼게요.”

시현은 남혜미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채이진에게 영상 확인을 부탁한 뒤 응급실을 떠났다.

* * *

20분 뒤.

‘이게 뭐야? Liver laceration(간파열)에 Hemoperitoneum(혈복강, 복강에 피가 고인 상태)??’

채이진은 방금 올라온 CT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시현 선생님이 맞았어.’

환자는 복부 외상으로 인한 출혈이 지속되는 상태였다.

불안정 협심증이 심근경색으로 진행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혈을 잡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의료사고가…….’

설상가상으로 심장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항혈전제를 들이붓고 있는 상황.

이 약물들 때문에 복강 출혈이 더 심해질 수도 있었다.

“후아암. 정신과에서 낸 CT 올라왔어?”

아무것도 모른 채, 한참 만에 응급실로 돌아온 남혜미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때? 별거 없지? 보나 마나…….”

“네, 여기 있습니다.”

채이진이 정성환 환자의 복부 CT 영상을 모니터에 띄웠다.

다음 순간, 남혜미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이거…… 교수님께 노티 드려야겠다. 아닌가? 간담췌외과(간, 담도, 췌장 파트 진료를 하는 외과의 분과) 당직 선생님께 먼저 연락 드려야 하나?”

그녀 또한 심장질환과 간파열이 동시에 있는 환자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채이진 선생님. 이 환자 복부 CT, 우리 내과에서 처방한 거예요. 알겠죠? 복부 진찰도 우리 과에서 한 거고.”

“네? 복부 CT 오더는 아까 정신과 선생님이…….”

“어차피 정신과 기록은 타과에서 못 봐요. 오더는…… 그래! 실수로 옆에 천시현 선생 아이디로 로그인된 PC에서 냈다고 하시고요. 이거 나중에 교수님이 아시면 혼나요. 알겠죠?”

당황한 와중에도 문책을 피하기 위한 머리만큼은 지나치게 잘 돌아가는 남혜미였다.

“이 환자인가?”

남혜미가 CT 영상을 보며 당황하는 사이 뒤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며 물었다.

[외상외과 교수 강백혁]

“네, 아까 말씀드렸던 간파열 환자입니다.”

강백혁의 옆에 서 있던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외과 레지던트 유근웅]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남혜미와 채이진이 동시에 일어나 강백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려운 환자 보느라 고생이 많네. 채이진 선생, 할만해?”

“네, 교수님. 윗년차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십니다.”

강백혁은 채이진의 대답을 듣고는 남혜미를 보며 말했다.

“남선생이 잘 좀 봐주세요.”

“네, 교수님.”

남혜미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채이진을 다그칠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 환자는 내가 김교수하고 직접 상의할게요.”

“네? 아, 감사합니다. 교수님.”

마침 새벽 시간이라 당직 교수에게 전화하기가 꺼려졌는데 교수들끼리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준다니.

남혜미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왜?’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복부 CT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외과 당직 레지던트와 통화하기도 전에 해당과 당직 교수가 나타나다니.

“선생님이 먼저 GS(외과)에 연락했어요?”

“아닙니다. 저도 검사 결과 방금 확인했습니다.”

어리둥절하기는 채이진도 마찬가지였다.

* * *

응급의료센터 앞 주차장.

“그 환자, 강백혁 교수님이 심장내과 김진홍 교수님하고 직접 통화해서 응급으로 수술부터 하고 PCI(관상동맥중재술, 대동맥으로 긴 관을 넣어 좁아진 관상동맥을 넓히는 시술) 바로 이어서 하기로 했다.”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서.”

시현과 유근웅이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죄송하긴. 어차피 응급 수술 잡힌 거 있어서 안 자고 있었어.”

유근웅이 자판기 커피를 들이키며 말했다.

“근데 강백혁 교수님이 응급실 바로 갈 건 어떻게 알았냐? 나도 예상 못 했는데.”

“독특한 케이스잖아요. 허혈성 심질환이랑 복강내출혈이 동시에 있는…… 강 교수님 그런 거 좋아하시지 않나요?”

“그런가?”

유근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수술 들어갈 시간이네. 수고해! 남은 당직 잘 서고!”

유근웅은 시계를 흘끗 보더니 황급히 수술 준비를 하러 갔다.

딩동!

[system : 정성환 환자의 치료 진척도가 상승합니다!]

[치료 진척도 21 -> 44/100 퇴원까지 14일 4시간 21분 18초]

[생존확률 51%]

반가운 알림창.

생존확률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시현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변화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최세영의 경고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현의 역할은 너무도 명확했다.

‘내 일이야.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되는.’

다음 순간 익숙한 알림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딩동!

[system : 사용자의 의지가 시스템과 공명합니다.]

[새로운 기능이 활성화 됩니다!]

번쩍.

시현이 서 있던 텅 빈 주차장이 갑자기 환한 빛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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