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50화 (50/195)

50화 Chapter 13. 누구냐 넌 (5)

공감(共感).

타인의 고통을 접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반사적으로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관심하며 죄를 지어도 후회나 죄책감이 전혀 없다.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소시오패스(Sociopath) 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몰랐었다니.’

시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 정신과 선생님 오셨네?”

시현이 다가가자 김정현이 천연덕스럽게 알은척을 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마냥.

“네, 자살시도 환자가 있다고 해서 와봤습니다.”

“근데 어쩌죠? 환자가 의식이 없어서 정신과적 면담은 어려울 텐데요.”

짐짓 걱정하는 눈치였으나 다음 순간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system : 레지던트 김정현의 주된 감정은 ‘즐거움’입니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나?’

<선생님,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요. 너무 억울합니다.>

이수지가 시현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였다.

‘곤란한데.’

시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안 좋은 소문은 돌기 마련이다.

본인도 잘못한 게 있으니 무고니 명예 훼손이니 운운하며 정식으로 문제 제기는 않겠지만.

앞뒤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본다면 시현이 이수지를 괴롭혀온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반면 김정현은 바이탈이 흔들리는 환자를 눈앞에 두고도 싱글벙글이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수지 간호사가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네요. ‘누가’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요?”

시현을 약올리기라도 하듯 김정현이 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글쎄요. 누군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을까요?”

시현이 말했다.

“무리한…… 요구?”

“네. 예를 들면, 굉장히 부적절한 일을 지시받았다거나.”

그 말에 김정현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니 나 몰라라 했다던가.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야. 정신과 선생님이 되시더니 상상력이 풍부해지셨군요.”

김정현이 코웃음을 쳤다.

“상상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이수지 간호사에게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요.”

시현이 김정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병원에서 잘릴 상황이 돼도 선생님을 감쌀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시죠.”

처음으로 김정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의무기록의 조작 및 삭제.

그리고 의사 아이디 도용.

이수지가 저지른 일은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될 일이 아니었다.

발각됐다가는 직장에서 해고당할 수도 있는 일인 만큼 김정현과 상의했을 것이 분명했다.

‘김정현은 분명 끝까지 잡아떼라고 했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걸고넘어지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다음 순간 누워있는 이수지의 왼팔 손목 안쪽이 시야에 들어왔다.

‘상처들…….’

가늘고 반복적인 절창.

지금은 아물어 흔적만 남은 상처들부터 비교적 최근에 생긴 듯한 상처들까지.

전형적인 자해흔이었다.

‘마음고생이 많았나 보네.’

시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침상에 누워있는 이수지를 바라보았다.

최근 1년, 김정현과 만나면서 그녀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때로는 버림받을까 두려워 매달렸고 한편으론 벗어나고 싶었다.

반복적인 자해는 그런 양가감정의 결과물이었다.

‘아니면 김정현이 일부러 그런 사람들만 찾은 것인지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고 지속적으로 착취한다.

이 또한 또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천시현 선생님, 내가 충고 하나 할게요.”

충고?

너 같은 놈한테 충고라니 얼마나 참신한 소리를 해대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내 일에 끼어들지 마. 난 거슬리는 것들은 뭐든 다 치워버리는 성격이니까.”

‘치워버린다고?’

불현듯 회귀 전에 들었던 이수지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 ER 차치한테 들었는데 응급실에 들어갈 때까지는 의식이 있었다는 거야. 뭔가 처치가 잘못된 거 아닐까?

‘혹시 이 자식이?’

두근두근.

[system : 사용자의 교감신경계가 극도로 항진되었습니다. 정보 열람 범위가 한시적으로 확장됩니다.]

응급실 스테이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정보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SORA : 카이트만의 안경 ‘피아식별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피아식별 기능이…….’

세 번째 기능의 활성화 조건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정보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사람들의 등 뒤로 오라가 피어났다.

대체로는 중립을 상징하는 노란색인 가운데 유독 김정현의 오라가 눈에 띄었다.

이수지가 누워있는 침상을 태워버릴 것만 같은 붉은 기운.

전에 시청역에서 봤던 것보다 더 짙어진 것 같았다.

[system : 레지던트 김정현의 주된 감정은 ‘살의’입니다.]

굳이 시스템창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의 살기였다.

띠- 띠-

때마침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이수지 여/25 인턴 김원기 / R2 김정현]

BP 90/60 mmHg

여전히 혈압이 불안정한 상태.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던 시현의 눈이 커졌다.

[치료 진척도 0/100 퇴실까지 0시간 25분 34초]

‘퇴실이라고? 저 상태로?’

당장 입원해서 경과를 관찰해야 할 환자가 퇴실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측 결과였다.

“선생님은 그만 다른 일 봐요. ‘내 환자’한테 그만 관심 가지고.”

김정현의 말에도 응급실을 떠날 수 없었다.

일단 스테이션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치료 진척도 0/100 퇴실까지 0시간 3분 21초]

‘갑자기 좋아질 리가 없는데. 어떻게…….’

남은 시간은 3분. 21초.

저혈압이 약간 교정된 듯했으나 아직 이수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플루마제닐 준비해주세요. 제가 직접 IV 할게요.”

플루마제닐(Flumazenil).

벤조디아제핀 계열 진정제의 반대작용을 하는 안티도트로써 진정제 과다 복용시 해독을 위해 사용한다.

김정현이 주사기 하나를 들고 이수지의 침상 쪽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는 시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건…….’

확보된 라인을 통해 정맥 주사를 하려는 순간.

시현이 뛰어들어 김정현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만 멈추시죠.”

그의 손에서 낚아챈 주사기가 시현의 손에 들려있었다.

“너 이 X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김정현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시현은 그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는 듯, 빼앗은 주사기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이거…… 플루마제닐치고는 양이 많지 않습니까?”

딩동!

[system : 레지던트 김정현의 주된 감정은 ‘공포’입니다.]

시현의 질문에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다.

‘주사기의 용량은 20cc…….’

심지어 주사기의 최대 눈금을 초과하여 주사액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거 빨리 내놓지 못해? 환자 잘못되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김정현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플루마제닐은 한 앰플을 다 쓴다고 해도 5cc를 넘지 않죠.”

반면 시현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환자 산소포화도 99%에 혈압도 조금씩 오르고 있습니다. 기다려 보시죠. 인디케이션이 아니에요.”

이수지의 상태라면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약이었다.

“그건 담당의인 내가 판단해! 네가 이래라 저래하 할…….”

“이 실린지…… 플루마제닐이 아니군요.”

시현의 말에 김정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반응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이 정도 볼륨이면…… 혹시 KCl?’

KCl.

전해질 교정에 쓰는 약물이지만 빠른 속도로 정맥에 직접 주사할 경우 심정지를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한 약물이기도 했다.

과거 이수지의 사인은 어쩌면 자살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자살로 위장되었을 뿐.

딩동!

[system : 이수지의 치료 진척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치료 진척도 23/100 퇴원까지 2일 12시간 3분 17초]

김정현의 주사기를 빼앗은 것만으로도 치료 진척도가 급격하게 올랐다.

주사기에 들어있는 약이 해독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입막음할 이유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지독한 반사회성.

과거 김정현에게 느껴졌던 섬뜩함의 정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단순히 스토킹이나 남의 아이디로 오더를 손댄 것 정도를 무마하기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가 더 있을 텐데.’

숨겨진 무언가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야! 천시현. 이거 약물중독이야. 내가 볼 거니까 빠지라고. 더 이상 우리 과 업무에 간섭하지 마!”

말이 통하지 않자 김정현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최소한 시현의 손에 들린 저 주사기 만큼은 어떻게든 회수하려는 듯했다.

[SORA : 안면 분석에서 사용자에 대한 강한 공격성을 감지하였습니다. 가용한 모든 포션 사용을 추천합니다.]

‘모두 사용할게.’

회복 포션과 가속 포션을 사용하자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뒤이어 존재감 포션도 사용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대한 이목을 끄는 게 유리하다.

“간섭이요? 다른 과 오더까지 검토해서 삭제하시는 분이 하실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

한마디에 김정현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이참에 스토킹 문제도 매듭을 지어야 했다.

- 그렇게 정현이한테 매달리는 여자들이 많더라고.

“이번이 처음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김석용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시현이 말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김정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

존재감 포션 때문인지 스테이션 간호사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저기 이수지 간호사 앞에 천시현 쌤이랑 김정현 쌤 왜 저래?”

“그러게. 혹시 그런 거 아냐? 삼각관계?”

“어? 진짜? 그럼 이수지가 양다리인 거야?”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지만, 두 레지던트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대치하는 것만으로도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병원 생활에서 그나마 이런 종류의 싸움 구경은 제일 재밌는 축에 속했다.

얼마 전 남혜미가 박종일 교수에게 깨진 이후 최고의 볼거리였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에 시현이 있었다.

“거기 두 사람 뭐 하는 건가?”

이수지의 침상 곁으로 흰 가운을 입은 거구의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조광필 남/56 삼아대병원 응급의학과장 응급의료센터장]

김정현이 90도로 인사를 하며 그를 맞았다.

조광필이 주사기를 들고 있는 시현과 화를 내는 김정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수지의 활력징후 모니터를 힐끔 보더니 김정현에게 말했다.

“바이탈 스테이블한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자넨 다른 환자부터 봐.”

“교수님…… 이 환자는…….”

“김정현 선생. 방금 내가 뭐라고 했나?”

대단한 위압감이었다.

김정현은 조광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천 선생은 잠깐 보지.”

“네. 교수님.”

“따라오게.”

언뜻 보면 조광필이 나타나 싸움을 말린 것으로 보였으나, 이 다툼이 계속되면 불리한 쪽은 김정현이었다.

조광필을 따라 응급실 보호자 면담실로 들어가는 길.

평소보다 조광필 교수의 등판이 더 크게만 느껴졌다.

‘센터장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무리 타과 교수라도 센터장급에게 찍히면 여러모로 불편했다.

‘결국 제 식구 감싸기인가?’

두근두근.

답답함에 가슴이 뛰었고.

[SORA : ‘피아식별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조광필의 등 뒤에서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 사람이 왜…….’

다음 순간, 시현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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