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60화 (60/195)

60화 Chapter 16. PGR (3)

다음 순간.

진철영의 자리에 있던 고정 마이크에 불이 들어왔다.

“파킨슨병 치료 중에 발생한 도박 문제나 충동 조절 문제에 대해서는 케이스 리포트가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

‘저 말이…… 진짜라고?’

그의 첫 마디에 나경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해외에서는 도박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고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도 있었다고 하죠. 프라미펙솔을 처음 시작한 게 언제쯤인가요?”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어진 질문에 그는 옷깃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본격적으로 돈을 잃기 시작한 시기와 묘하게 겹치는군요.”

진철영이 미소지었다.

“없던 증상이 새로 생겼을 수도 있고 기존 증상의 악화로 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내용입니다.”

- 와 그럼 저 말이 맞는 거야?

- 미쳤네. 지금 1년차 5월인데 저 정도면…….

- 삼아대는 애들을 폐쇄 병동에 가둬놓고 공부만 시키는 거 아냐?

- 그게 공부로 돼? 저거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이잖아?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도박중독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참신한 접근을 보여준 증례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 증례는 발표 후 토의 과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발표의 주인공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저는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다른 코멘트?”

진철영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상진을 보며 말했다.

“없습니다. 오늘 발표는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전공의 선생님들께 많은 도움이 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상진이 짧게 답변했다.

“교수님, 준비하신 강의 자료 이어서 올릴까요?”

연단에서 내려온 나경철이 김상진에게 물었다.

“이만 마무리 하지.”

‘지금 분위기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해.’

원래는 발표가 끝나면 이번에 한국대병원에 새로 들어온 fMRI를 소개하고 여러 질병에서의 임상적 활용에 대해 짧게 강의할 생각이었다.

‘천시현이라고 했나…….’

김상진의 시선이 강의실에 뒤편에 앉아있던 시현을 향했다.

* * *

PGR 후 회식 장소.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증례 토의의 좋은 예 - 경과에 도움이 되는 의견 제시로 해당 환자의 도박중독 재발 확률이 30% 감소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3,000P)]

[우리 1년차가 이 정도라고 - 소속 의국의 명성이 소폭 상승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2,000P)]

시현이 새로 뜬 알림창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마셔! 마셔! 오늘 아주 그냥 속이 다 시원하다.”

김석용이 잔에 담긴 맥주를 끝까지 비우며 말했다.

“김상진 교수님 말이야. 평소에 연구비 좀 땄다고 학회에서 거들먹거리는 거 꼴불견이었거든.”

“아, 그랬군요.”

시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실은 앞으로 4년간 김상진의 행보를 다 알고 있는 터라 김석용에 비해 얄미운 감정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시현이가 너무 기대치를 높여놨어. 나도 분발해야겠는데.”

황진호가 즐거움과 부러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진호 너도 정말 잘하고 있어! 치킨으로 망상 치료하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김석용이 황진호의 잔에도 맥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저…… 여기 앉아도 될까요?”

[세연대병원 2년차 나희선]

[세연대병원 1년차 이호찬]

낯익은 얼굴 둘이 시현의 테이블에 와서 앉았다.

“희, 희선쌤…… 오랜만이네요? 올해 첨 보죠?”

“그러게요. 석용쌤도 잘 지냈죠?”

취기 때문일까?

나희선을 맞는 김석용의 얼굴이 상기되어 보인다.

“이쪽은 세연대 2년차 나희선 선생님이시고 이쪽은 처음 보는데…… 1년차 선생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이번이 입국한 이호찬이라고 합니다.”

덩치 큰 곰과 같은 인상의 1년차, 이호찬이 김석용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 한국대 PGR인데 MVP는 삼아대에서 가져갔네요?”

나희선이 시현을 향해 미소지었다.

“석용쌤, 너무 빡세게 굴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뇨. 전혀요! 시현아, 뭐라고 말 좀 해봐.”

김석용이 당황하여 시현을 재촉했다.

“김석용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아~주 잘 해주십니다.”

기계적인 말투의 무미건조한 대답.

김석용을 보는 나희선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어머, 1년차 선생님 대답하는 것 좀 봐. 거의 로봇인데?”

“진짜 그런 거 아닌데…….”

“공부시킨다고 막 벌주고 그러는 거 아니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거 수상한데요?”

나희선에게 유독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김석용이었다.

그녀 또한 그런 분위기를 은근 즐기는 것 같기도 했고.

‘마음 있으시면 적극적으로 좀 해보세요. 후회라도 안 남게.’

일에 치여 전혀 안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기 시작했다.

회귀 전 시현이 4년차였을 때, 전문의가 된 나희선은 곧장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접하고 김석용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분 너무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사귀는 사이 십니까?”

콜록콜록.

“그런 거 아냐!”

예상 밖의 질문. 김석용이 마시던 잔을 쿵 내려놓더니 연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와, 석용쌤! 너무 강하게 부정하니까 나 살짝 서운한데.”

나희선이 짐짓 토라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래도 1년차 선생님이랑 사이가 좋아 보여요. 하긴, 김석용 선생님이 누구 함부로 대할 사람은 못되죠.”

그녀의 말에 김석용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 레지던트십니다. 후배들에게 늘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요.”

“좋은…… 말씀이요?”

나희선이 시현의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시현에게 해주었다는 김석용의 말에.

“그게 뭐예요? 궁금한데요?”

“맞아. 내가 무슨 말을 해줬다고…….”

당사자도 어리둥절한 상황.

“Listen to your patients…….”

그러나 이어진 시현의 말에 김석용의 눈이 커졌다.

“…… They are telling you the diagnosis.”

환자의 말을 경청하라.

그들은 진단명을 말하고 있다.

- 결국 우리과 진단이라는 건 환자가 하는 말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어?

회귀 전 김석용이 시니어가 되었을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복잡한 기술정신의학 용어보다.

장시간에 걸친 심리검사 결과보다.

환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환자가 호소하는 날것 그대로의 말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비록 1년 선배였지만, 시현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의사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언제 이야기했더라…….’

스스로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었으나, 후배들 앞에서 강조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시현이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마도 술자리에서 말한 모양이다.

“와, 그런 멋진 말도 할 줄 알고. 석용쌤 다시 봤는데요?”

김석용이 의아해할 틈도 없이 나희선이 감탄하며 말했다.

“아, 제가 한 말은 아니에요. 윌리엄 오슬러 경의 격언이죠.”

“윌리엄…… 오슬러요?”

“네,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이죠. 존스홉킨스 병원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고 의사들이 병원에 상주하도록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만든…….”

취기가 오른 탓일까.

평소와 달리 나희선 앞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곧잘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존스 홉킨스…… 왠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느낌이네요. 저 레지던트 끝나면 미국에서 공부해볼 생각이거든요.”

김석용의 말을 듣고 나희선이 과거에는 말하지 않았던 유학 계획을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트레이닝(전공의 수련)을 다시 하실 건가요?”

“네, 그래서 학부 때 USMLE(미국의사고시)도 따뒀어요. 선생님도 관심 있으시면…….”

‘오오. 선생님! 파이팅입니다!’

시현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아니, 이 정도면 솔직히 좋은 편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는 사이, 누군가 다가와 시현의 테이블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하나?”

진철영이 넥타이를 약간 풀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교수님, 안녕하셨습니까?”

“나 선생도 잘 지냈고? 여기는 처음 보는 선생님인데?”

“네, 교수님. 저희 1년차예요.”

“오, 인물이 아주 훤하구먼. 반가워요.”

시니어 교수임에도 평소 다른 병원 레지던트들과도 격의 없이 지냈던 터라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모두 불편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아이고, 오늘은 우리 천시현 선생 덕분에 술을 많이 얻어먹었다.”

후우.

진철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교수들 사이에서도 잘난 척으로 유명했던 김상진에게 그의 제자가 한 방 먹여준 셈이었으니 축하주를 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교수님, 여기.”

시현이 재빨리 얼음물이 담긴 잔을 그의 앞에 놓았다.

“오, 땡큐.”

그는 시현이 건넨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천 선생은 그 환자 파킨슨인지 어찌 알았나? 담당 레지던트도 잘 모르고 있던데.”

“아, 그게…….”

시청타촉의 포션을 쓰는 동안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영상 속의 환자가 보이던 손떨림. 움직임에서 느껴지던 뻣뻣함.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길 때의 미세한 딜레이.

- 항정신병약물도 고려했지만 잘 맞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나경철이 흘리듯 했던 말까지.

‘파킨슨병 환자들은 도파민을 차단하는 항정신병약물 부작용에 특히 더 취약하지.’

그렇게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졌을 뿐이었다.

“집단치료 영상을 보는데 환자분 움직임이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항정신병약물이 안 맞았다는 것도 EPS(추체외로증상, 약물 부작용의 일종)에 민감해서 그런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고요.”

“그랬어? 나도 영상 봤지만 잘 모르겠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황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화면상으로 그런 게 다 보였다는 말이지?”

진철영이 남은 물을 마저 들이키며 말했다.

“간혹 감각이 특별히 발달한 사람들이 있다.”

“아, 그건 타고 나는 거군요…….”

황진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감만으로 그리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오늘 아주 인상적이었어. 자, 한잔 받아.”

“감사합니다. 교수님.”

시현이 진철영이 주는 잔을 받는데 옆에서 황진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시현이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연애도 안 하고…… 제가 진짜 좋은 친구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마다했어요.”

‘마다한 게 아니고 타이밍이…….’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필이면 황진호의 ‘마법’을 부린 탓에 환자가 미어터지게 온 날 소개팅녀가 병원에 온 게 문제였을 뿐.

“그랬단 말이지? 아주 훌륭하구먼! 허허허.”

반면 진철영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이었다.

딩동!

[system : 제한시간 초과! 퀘스트에 실패하였습니다.]

‘응? 이건 뭐지?’

메시지를 확인한 시현의 눈이 커졌다.

“PGR도 마쳤으니 이번 학기는 이렇게 또 마무리되는 것 같아. 우리 선생님들, 특히 1년차들 고생 많았고…… 하반기에도 열심히 해보자고!”

“네! 교수님!”

쨍쨍.

진철영의 건배 제의.

그리고 잔들이 부딪치는 소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석용과 나희선의 표정이 유독 밝아 보였다.

“진호야, 한잔하자.”

반면 시현만은 아까부터 심각한 얼굴이었다.

“어. 근데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연거푸 잔을 들이키는 그를 향해 황진호가 물었다.

“아, 아냐. 아무것도.”

대답과는 달리 여전히 씁쓸한 표정.

시현이 비운 술잔 너머로.

평소와 달리 물기로 얼룩진 시스템창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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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비행 레지던트]

난이도 E

1년차 극초반에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성공 조건 : 소개팅 수락 및 연인관계로의 발전

성공 보상 : 용자의 칭호 + 5,000P

실패시 : 향후 1년 동안 소개팅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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