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62화 (62/195)

62화 Chapter 17. 방해물을 치우다 (2)

* * *

[김민숙 여/23 R1 천시현/ 담당 교수 Prof. 이광섭]

김민숙은 면담실 의자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병동 담당의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

담당의 소개에도 반응이 없는 환자.

시현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김민숙을 바라보았다.

‘이전 기록 띄워줘.’

[SORA : ‘세상의 모든 차트’에 접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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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status examination(정신상태검사)

- 환자복 차림. 165cm 키에 50kg 정도의 다소 마른 체형으로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머리카락이 다소 헝클어져 있음. 화장기 없는 새하얀 피부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임. 멍한 표정으로 눈맞춤이 잘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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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숙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세상의 모든 차트’에는 과거의 입원 중에 썼던 약물들이며 면담 내용 그리고 매일 있었던 일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차트 열심히 썼었네.’

흡사 전문의의 시선으로 1년차를 되돌아보는 느낌.

시현은 자신이 작성했던 의무기록을 보며 뿌듯해했다.

김민숙 환자는 정신병적 증상이 워낙 심한 탓인지 첫 며칠간은 면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구 투약 또한 거부했기 때문에 수액으로 연명하다시피 했고.

‘이번엔 다른 전략이 필요해.’

시현은 면담을 마친 뒤 스테이션에 앉아 오더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환자 많이 심해요? 간호기록 작성하려고 하는데 협조가 전혀 안 돼서요.”

이선지 간호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우선 5DW(포도당이 들어있는 수액의 일종) 달아주세요. 아마 투약 협조가 안 될 겁니다. 오늘은 취침 전에 할로페리돌 0.5A, 아티반 1A 근육주사하고 일단 수면부터 취하도록 할게요.”

딩동!

[system : 치료 진척도가 상승합니다.]

[치료진척도 16/100 -> 26/100]

[system : 환자의 입원 기간이 단축됩니다.]

‘역시.’

주사제 처방을 입력하자 곧바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과거 입원에서는 최대한 경구 약물을 복용하도록 설득했지만, 결과적으로 헛수고였다.

입원 후 3일이 지나 항정신병약물을 근육주사 한 후에야 조금씩 치료가 진행되었다.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환자는 병동에 입원하기 전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잠도 거의 이루지 못해 수면 박탈 상태에 가까웠고.

큰 행동문제가 없다고 해서 무작정 기다릴 상태는 아니었다.

“아, 그리고 보호자 면회 괜찮을까요?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잠시만요. 제가 먼저 만나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폐쇄 병동에 입원한 첫 며칠간은 안정을 위해 면회를 제한하는 병원도 있지만, 삼아대 병원은 치료상 큰 문제가 없다면 허용하는 편이었다.

‘입원 때 같이 왔던 보호자가 누구였더라…….’

시스템창을 통해 차트를 확인하던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단 보호자 면회 전부 제한해주세요.”

서둘러 병동 밖으로 나가는 그의 얼굴에 심상치 않은 노기가 서려 있었다.

* * *

회귀 전 입원 첫날.

시현은 폐쇄 병동 바깥에 있는 대기실에서 보호자들과 처음 만났었다.

“안녕하세요? 병동 담당의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신가요?”

“네. 제가 민숙이 엄마고 이쪽이 아빠예요.”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김민숙 환자의 부모 옆에는 중년 남성 한 명이 서 있었다.

“아, 민숙이 외삼촌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민숙이를 예뻐하셔서 멀리서 오셨어요. 잠깐 보고 가도 될까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계 보호자만 면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퇴원하시고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시현의 설명에 보호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좀 팍팍하시네. 민숙이 만나려고 지방에서 올라왔단 말입니다. 거, 한 번만 보고 갑시다.”

“그래요. 애 외삼촌이 위험한 사람도 아니고……. 편의 좀 봐주세요. 네?”

보호자들은 시현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무작정 병동으로 들이닥쳤다.

출근길에 꽉 찬 지하철도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여기 빈방에서 이야기 좀 할게요. 잠깐이면 돼요.”

“어? 거기는 면담 예약이 있는데…….”

“잠깐이면 됩니다. 허허허.”

보호자들이 병실에 있는 환자를 데리고 막무가내로 면담실에 들어갔다.

‘무슨 얘길 하는 거야?’

곧 최지훈이 병동 환자 면담을 하러 올 시간이었다.

혹시나 모를 불안감에 시현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들어간 면담실 CCTV를 지켜보기로 했다.

우선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

‘친척이라는데. 별일 없겠지.’

시현이 안심하고 병동을 나서는 순간 바로 그 ‘별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면담실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CCTV 속 환자는 부모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그 사이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를 중얼거렸다.

시현은 곧바로 면담실로 뛰어들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시현이 김민숙을 보호자들로부터 떼 내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환자의 어머니가 가로막았다.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만.”

“나가라! 이제 그만 나가거라! 하압!!”

그리고 환자의 외삼촌은 손으로 환자의 등을 세차게 때려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하압! 하아압!!”

‘망했다.’

시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다행히 스테이션에서 호출한 보안요원이 금세 도착했고, 보호자 세 사람은 끌려나가다시피 병동에서 쫓겨났다.

“병동에 저런 사람들을 들이면 어떡해? 제정신이야?”

마침 면담실 도착한 최지훈이 시현을 나무랐다.

“당장 X-ray 찍고 OS(정형외과) 협진 내!”

“죄송……합니다.”

보호자들이 막무가내로 들어오긴 했어도 병동 내에서 생긴 사고인 만큼 담당의 책임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내쫓을 수 있었는데! 왜 방해하는 거요? 이건 정신병이 아니야! 영의 문제라고!!!”

환자의 외삼촌, 아니 환자의 외삼촌이라고 주장하는 작자가 끌려나가다 말고 큰소리를 쳤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소리를 질러대는 중년 남성을 애써 무시하며 시현은 병동 보호사와 함께 환자를 데리고 방사선 촬영실로 내려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민숙은 스트레쳐카에 누워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자신의 관리 소홀로 환자가 다쳤다는 생각에 너무도 괴로운 순간이었다.

* * *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간호사님, 병동문 절대 열어 주시면 안 됩니다.”

시현은 이선지에게 신신당부를 한 뒤 병동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병동 담당의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병동 밖 대기실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세 사람이 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제가 민숙이 엄마고 이쪽이 아빠예요.”

“네. 심려가 많으셨겠습니다.”

두 사람이 부모인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현은 고개를 돌려 환자의 부모 옆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김민숙의 어머니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이분은 민숙이 외삼…….”

“환자는 안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오늘은 면회가 어렵습니다.”

시현은 보호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좀 팍팍하시네. 내가…….”

“부모님 면회도 조금 미뤘다 하시는 것이 좋을 상황입니다. 하물며 친척은 말할 것도 없고요.”

“…….”

“멀리서 오셨다고 해도 예외는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뻐하셨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시현은 보호자들이 할 법한 말들을 하나하나 미리 언급했다.

대충 둘러대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김민숙의 부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 의아한 것은 시현의 태도였다.

시종일관 자기들이 데려온 ‘외삼촌’을 노려보며 화를 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호자 면회도 안 되고 이런 병원이 어딨어? 인권 문제 아니야? 내가 민원 넣을 거야! 알아들어?”

부모와 함께 방문한 중년 남성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면회가 안된다고 여겼는지 돌연 화를 내며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네.’

처음에는 그냥 돌려보내기만 하려 했으나 마음을 바꿨다.

저대로 뒀다가는 홧병이 날 것 같았으니까.

두근두근.

[system : 사용자의 교감신경계가 극도로 항진되었습니다. 정보 열람 범위가 한시적으로 확장됩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자의 머리 위로 텍스트가 떠올랐다.

[정길수 남/50]

‘이 사람 때문이었어…….’

퇴원 후에 김민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련원에 입소하여 임의로 약을 끊기도 했고 잦은 재발로 여러 차례 재입원했다.

그때는 단지 어려운 환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입·퇴원을 반복하게 만든 장본인이 따로 있었다.

물론 아직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떻게 떼어놓지?’

시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확실히 치료에 방해가 되는 인물.

이 기회에 적절히 떼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면회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려운 걸음 하셨으니까 잠깐 상담은 하고 가시지요.”

시현은 병동 밖에 따로 마련된 면담실로 보호자들을 안내했다.

“환청과 피해망상이 강력하게 의심됩니다. 우선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면서 안정을 시키고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과 약이라는 게 부작용도 많고 위험한 거 아닙니까? 아직 시집도 안 간 애한테 너무 독한 약 쓰는 것 아니에요?”

시현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길수가 딴지를 걸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환자를 일반적인 치료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정체불명의 약초나 사이비 종교에 돈을 쓰게 만드는.

보호자들의 불안을 자극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끌고 나가려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정신과 약 드시는 분들을 많이 보셨나 봅니다.”

“그럼요. 많이 봤죠. 약 쓰다가 잘못되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생님이 아직 젊으시고 환자 경험이 없으셔서 잘 모르나 본데…….”

정길수가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조카가 아파서 찾아온 사람 같지 않게 약간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 종류만 해도 수십 종류입니다. 부작용이 걱정되실 수 있지만, 그중에 김민숙 환자에게 맞는 약 한 종류가 없겠습니까?”

시현이 김민숙의 부모를 안심시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 최근에 나온 약들은 부작용이 개선된 것들이 많아서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면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게 뭔가요? 어떤 걸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김민숙의 부모가 시현의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치료가 어려운 질환일수록 이상한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입니다. 남의 불행을 집요하게 이용해서 먹고사는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죠.”

시현의 시선은 어느새 정길수를 향해 고정되었다.

“안 그렇습니까? 정길수 님?”

“너, 뭐 하는 놈이야?”

순식간에 정길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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