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65화 (65/195)

65화 chapter 18. 증언(1)

“과장님 무슨 일이시래요? 시현이만 따로 불러서?”

“그러게. 나도 처음 보는데.”

심각한 표정의 이광섭.

그리고 1년차 레지던트와의 독대.

3, 4년차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들은 신기한 얼굴로 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그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아.”

교수실에 들어서자마자 이광섭이 말했다.

조동규에 관해 이야기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며칠 전에 왔던 그 젊은 검사님이 천 선생을 찾아갔던 모양이군.”

이광섭이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환자가 아닌 사람이 환자 행세를 하면서 처벌을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버려 두면…….”

“그래서 천 선생이 증언하고 싶다는 건가? 그 사람이 환자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분명 출소 후에 다른 범죄를 저지를 테니까요.”

특히 자신을 신고한 동거녀, 이유진에게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시현은 회귀 전 조동규가 저지른 범죄들을 떠올렸다. ‘그것이 알고 싶나?’에 방영되었던 참혹한 광경들. 방송을 보고 잠을 못 자겠다고 하던 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면담 중에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알릴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해.”

“비밀 보장의 의무는 상대가 환자일 때나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엔…….”

“그 사람이 환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그 점에 대해서는 내 의견도 천 선생과 같아.”

이광섭이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왜…….”

같은 생각이라면서 검사의 부탁을 거절한 의도가 궁금해졌다.

“환자인지 환자가 아닌지를 우리가 판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수십 년간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의 말이라고 해서 법정에서 무조건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반대로 조동규가 조현병 환자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있다면 더더욱.

결국,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만약 조동규의 범행이 일부 증상으로 인정되어서 감형을 받게 된다면?’

이광섭은 ‘환자’의 허락 없이 면담 내용을 법정에서 진술한 의사가 되고 만다.

“조동규 씨가 환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잘못하면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특히나 우리가 이 재판에서 진다면 더더욱.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정신과 과장으로서의 고충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도 굳이 끼어들지 않는 게 좋겠어.”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요?”

시현이 반문했다.

“그래. 환자들은 때로는 면담실에서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말도 하고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도 이야기해. 왜일 것 같나?”

“그건…….”

“잘잘못을 떠나서 진료실에서만큼은 모든 비밀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지. 만약 그 믿음이 깨진다면 어떨까?”

진료상 알게 된 비밀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의사. 자신의 환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의사.

환자들이 과연 이런 의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자신의 치부가 될 수도 있는 일들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라.’

이광섭이 걱정하는 것은 조동규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만날 환자들이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시현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물론 정답은 없는 일이지. 하지만 충분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줬으면 좋겠군.”

그의 얼굴에 다시 인자한 미소가 번졌다.

* * *

며칠 뒤 조동규의 공판 기일.

“오셨군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법복을 입은 강현욱이 시현을 알아보고 자리를 권했다.

“일단 오늘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광섭이 했던 말도 있고 당장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

시현은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사 쪽 방청석 중 제일 앞자리.

피해자 유족들과 같은 줄이었다.

‘이분들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들보다 더 우울한 표정. 조동규에게 살해당한 젊은 여성의 부모님인 것 같았다.

직접 진술을 하기 위해 온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 기분이었다.

‘카이트만의 안경.’

[SORA : ‘카이트만의 안경’을 사용합니다.]

시현의 홍채에 형형한 빛이 감돌며 사람들의 얼굴 위로에 표시선들이 떠올랐다.

“검사측, 피고인 신문하세요.”

“네, 재판장님.”

강현욱이 조동규를 향해 걸어나갔다.

“피고인은 본인이 조현병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데, 증상이 어땠습니까?”

범죄 행위 일체에 대해서는 모두 입증된 상황, 오늘 공판의 관건은 조동규의 범행과 조현병 증상의 연관성이었다.

“죽이라는 환청이 종일 들렸어요.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동규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신 분께 정말 죄송합니다. 죗값을 치르며 반성하겠습니다.”

[system : 조동규가 거짓을 말합니다. (99.9%)]

……

……

[system : 조동규가 거짓을 말합니다. (99.9%)]

시현은 알림창을 하나하나 닫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표정과 일치하지 않는 속마음.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현지…… 현지를 살려내라고!”

“저거 다 거짓말이에요! 얼마 전까지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조현병이라뇨!”

피해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숨넘어갈 듯 통곡했다. 옆에서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쥔 중년 남성도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해야 하니 일단 진정을…….”

주심 판사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검사, 신문 계속하세요.”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어떻게 했습니까?”

“1년 전부터 집 근처 정신과를 다니면서 약물치료 했습니다. 최근에는 증상이 나빠져 입원 권유도 받았고요.”

“치료는 성실하게 받았습니까?”

“아, 네! 물론입니다.”

[system : 조동규가 거짓을 말합니다. (99.9%)]

역시나. 조동규의 진술에 진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해자 김현지 씨의 사망 추정일은 올해 3월 초, 개인병원에서 증상 악화로 입원을 권유한 것은 작년 10월 말입니다. 치료를 미룬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조동규는 강현욱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피고인을 삼아대병원 입원실에서 체포한 것이 올해 3월 중순입니다. 증상에 대한 입원 권고는 무시해왔고 굳이 범행 후 입원을 했다는 건, 질병 치료보다 감형에 목적이 있는 것 아닙니까?”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 객관적인 사실과는 다릅니다.”

조동규의 변호인이 발끈했다.

“조현병의 경우 증상이 심할수록 스스로 병에 대한 인식, 즉 병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검사, 신문 계속하세요.”

재판부가 일단 변호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석연치 않은 점이 또 있습니다. 저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피고인이 삼아대병원에 입원했을 때 투약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검사도 거부했다고 하던데. 정말 치료를 위해 입원한 게 맞습니까?”

“검사를 거부한 것은 아니고…… 경제적 사정 때문에 미룬 것이었습니다. 약은…… 너무 불안해서 못 먹었습니다.”

“불안해서 못 먹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불안 증상을 치료하기 위함이라면 오히려 더 약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강현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힘들어서 입원은 했지만, 삼아대병원이 정말 믿을만한 곳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병실 환자들이 저를 해칠 것만 같았습니다. 수군거리면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

[system : 조동규가 거짓을 말합니다. (99.9%)]

시현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새로 떠오른 알림창을 닫았다.

병 때문에, 환청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 하지만 깨뜨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강현욱은 몇 가지를 더 물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수사 기관의 역할이라는 것이 죄를 입증하는 것이지 환자의 정신상태를 감정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변호인, 신문하세요.”

더는 나올 이야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환자의 정신감정을 맡은 한국대 병원 정신과의 김상진 교수를 참고인으로 신청합니다.”

‘교수가… 직접 왔다고?’

강현욱은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참고인 조사를 통해 서면 자료 제출 정도를 할 것으로 예상했던 터였다.

“김상진 교수님, 피고인은 범죄 사실에 대해 지시하는 환청에 따른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신감정을 위해 몇 주 동안 관찰하셨을 텐데, 병동에서는 어땠습니까?”

김상진이 증인석에 앉자 변호인이 신문을 시작했다.

“병동 입원 초기에는 환각 행동이 있었고 피해망상으로 인해 타 환자와 다투는 모습들이 있었지만, 항정신병 약물을 충분히 사용하면서부터는 그런 문제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군요. 교수님이 판단하시기에 환자가 이런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게 조현병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변호인이 곧바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조동규 씨의 경우 법적인 문제도 있고 증상으로 인한 2차적 이득도 있는 상황이라…….”

그는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어떤 의사도 단정적인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피고인의 경우 약물에 대한 반응이 있다고 봐도 좋을까요?”

예리한 질문이었다.

약물 투여로 인한 행동 변화가 명백하다면, 간접적으로나마 질병 여부를 유추할 수 있을 테니까.

“네, 입원 초와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상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동규를 바라보았다. 마치 치료가 좀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듯했다.

“혹시 한국대병원에서 추가로 진행한 검사가 있다면 설명해주십시오.”

“본원에 입원해서는 심리검사와 뇌 MRI 그리고 qEEG(정량뇌파)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결과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우선 MRI에서 동 연령대 대비 약간의 뇌실 확장이 관찰되고, 심리검사에서는 극도의 불안과 강박 그리고 편집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뇌파검사에서는 좌측 내측 전두엽(medial frontal) 및 좌측 하두정엽(inferior parietal)에서의 베타파 활성도가…….”

김진상이 마치 학회에서 발표라도 하는 것마냥 이상 소견을 쏟아냈다.

“저, 교수님. 비의료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표현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검사상 환청을 호소하는 조현병 환자에서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의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system : 김상진이 진실을 말합니다. (99.9%)]

그의 말에 재판관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데.’

검사 결과를 속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김상진의 의도가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조현병은 첨단 의료기기와 혈액검사 등을 통해 진단하는 병이 아니다.

현재까지 여러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조현병 환자를 확진할 수 있는 생물학적 검사 결과는 없기 때문.

유전적으로 100% 같은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한 명은 발병하고 다른 한 명은 발병하지 않을 수 있는 병이 아니던가.

오히려 조현병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면밀한 임상 면담과 경과 관찰이다.

김상진이 말한 지표들도 통계적으로 그럴 확률이 높다는 정도이지 확진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 셈.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듣는다면, 김상진이 여러 검사들을 통해 조동규가 조현병 환자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어렵게 데려온 보람이 있어.’

김상진의 진술이 끝나자 변호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검찰 측에 추가 제출할 자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반면 강현욱의 표정은 괴롭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럼 다음 공판은 2주 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기일이 잡혔다고는 하나 이런 양상이라면 결과는 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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