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66화 (66/195)

66화 chapter 18. 증언(2)

후우.

“이거 만만치가 않네요.”

공판을 마치고 강현욱이 고개를 저었다.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에서 사건에 대한 집념이 엿보였다.

“원래는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기로 했었는데, 변호인들 요청으로 한국대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살인 사건의 피고인을…… 외부 병원으로 옮겼다고요?”

“네. 무슨 희귀병이 있다고 하는데, 국립병원에서 보기는 조금 까다로웠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최고의 변호인단을 꾸리고 외부 병원에서 따로 평가를 받는다, 라.’

감형을 받는 데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진술 내용을 보니 변호인들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한국대 교수가 직접 출석한 것만 봐도 그렇죠. 저기 저 변호사 보이십니까?”

복도 끝에 아까 법정에서 봤던 변호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공판이 만족스러웠는지 매우 밝은 표정으로 동료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의사 출신이라고 하던데, 아마 저 사람 작품일 겁니다. 의료 소송 분야에서는 거의 국내 탑 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말 안됐습니다. 피해자가 외동딸이었다고 하던데요.”

시현의 시선은 복도 반대편을 향했다.

어깨가 축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 걷고 있는 중년 부부. 이쪽을 등지고 선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법정에서 봤던 울먹이는 표정이 눈에 선했다.

“피해자는 어떤 분인가요? 범행 방법이나 동기는요?”

문득 피해자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회귀 전에는 동거녀 이유진에 대한 사건이 주로 조명되었기에, 그 전 피해자에 관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범행 방법은 교살(絞殺)이었습니다.”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된 이유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준비된 끈으로 목을 졸랐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부검 결과 피해자의 갈비뼈에 다수의 골절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갈비뼈에요? 교살이라면 갈비뼈가 부러질 리가…….”

사인과 맞지 않는 병변에 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심폐소생술을 한 건가요?”

“네, 맞습니다. 환청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뿐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피해자가 숨을 안 쉬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피해자를 살리려고 한 걸까요? 나중에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려고 사후에 흉부 압박을 했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조동규가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후자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진실은 당사자밖에 모르는 거지만.

“바로 그겁니다! 워낙 교묘한 놈이라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죠.”

강현욱의 생각도 비슷한듯했다.

“저, 천시현 선생님?”

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와 시현을 불렀다.

“아, 이유진 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잘 못 지냈어요. 너무 불안해서 제가 환자가 될 것 같아요.”

[system : 이유진의 주된 감정은 ‘불안’입니다.]

알림창 없이도 알 수 있을 정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야위어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긴 무슨 일로?”

“조동규 씨 재판 보러 왔습니다. 정신질환이 쟁점인 것 같아서요.”

“오빠…… 아니, 저 사람 혹시 금방 풀려날 수도 있는 건가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강현욱을 보며 물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감형이 된다고 해도…….”

“그래도 몇 년 후에는 다시 나올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이유진은 울먹이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년 뒤의 보복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 조동규의 성격을 생각하면 자신을 배신한 사람은 끝까지 쫓아가 해코지할 터.

그가 출소한 이후의 평범한 일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현욱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쉬 안심이 될 리 없었다.

“그런데 저 정도의 변호인단에게 사건을 의뢰하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요.”

시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화학회사였는데…….”

얼른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유명한 회사는 아닌 것 같았다.

“회사원 연봉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으로 보이는데요. 지난번에 무슨 공방을 운영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혹시 거기서…….”

시현은 지난 입원에서 이유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공방은 취미 수준이라 거기서 나오는 수입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럴 리 없다는 대답.

‘수입이 많지 않다고?’

그 말에 시현의 눈썹이 짧게 꿈틀댔다.

“그렇다면 누군가 수임료를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아시는 게 있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부모님이 도와주신 게 아닐까요? 재산이 많은 걸로 알아요.”

“그렇군요…….”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꾸벅 인사한 뒤 저만치 멀어져가는 이유진.

“저분도 걱정이 많으시겠군요. 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강현욱이 말했다.

“알아봐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열심히…….”

[system : 이유진이 거짓을 말합니다. (99.9%)]

[system : 이유진이 거짓을 말합니다. (99.9%)]

[system : 이유진이 거짓을 말합니다. (99.9%)]

새로 떠오른 알림창들을 닫으며 시현이 중얼거렸다.

* * *

삼아대병원 정신과 병동.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이유진으로서는 조동규가 빨리 출소하는 상황을 누구보다 꺼릴 터. 수사에는 최대한 협조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천시현…… 선생님?”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고.”

병동 간호사 이선지가 다가와 말했다.

“신환 올라오셨어요. 지금 보실 건가요?”

“네, 바로 볼게요.”

새로 입원한 환자들을 치프에게 보고하고 담당의를 배정받도록 하는 것도 1년차의 일이었다.

시현의 시선이 병동 중앙 홀에 앉아있는 백발의 노인을 향했다.

아직 병동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는 다른 환자들에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이분이 있었지.’

[왕백운 남 / 88 담당의 미정 / 담당 교수 Prof. 진철영]

눈에 익은 환자였지만 과거에는 황진호가 담당했던 터라 직접 면담한 적은 없었다.

* * *

회귀 전, 과거의 이 무렵.

“저기 저 환자분 어떤 것 같아? 도무지 모르겠네.”

황진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왕백운 님? 특별히 우울해 보이지 않아. Affect(정동,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감정 표현)도 적절해 보이는데?”

시현이 차트를 쓰다 말고 잠시 왕백운을 바라보았다. 수간호사가 진행하는 티타임에 참석해 다른 환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였다.

“그렇지? 진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환자인데?”

“일단 주소(주된 호소, chief complaint)는 환청이긴 한데. 그것도 서로 대화하는 양상의…….”

일단 대화하는 양상의 환청은 조현병에서 흔한 증상 중 하나였다.

“다른 증상은? 망상이라던가 음성증상은 없고?”

“응. 환청 말고 다른 증상은 별로 없어서 진단 기준에 맞지 않아. 그리고 정작 환자는 요즘 들어 환청이 덜 들리는 게 불편하다고 해.”

“환청이 줄어들었는데…… 그게 불편하시다고?”

시현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환청이라고 하면 존재하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대개 병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유쾌성 조증에서 환자를 칭찬하는 양상의 환청이 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마냥 좋은 경험은 아니다.

“진짜 특이하지? 어떻게 치료할지도 난감해. 환청이 더 들리게 만드는 약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환자 본인 말로는 신기가 떨어져서 그렇다나……. 이 환자 내일 회진 때 어떻게 보고하지?”

황진호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 * *

“왕백운 님, 병동 담당의 천시현이라고 합니다.”

김민홍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왕백운을 1년차에게 배정했다.

증상이 독특하기는 했으나 어찌 됐든 주증상은 환청이었으니까.

“외래 진료 때 환청이 들린다고 하셨었는데, 지금은 어떠신가요?”

“병동에 올라오니까 ‘신기’가 조금 돌아온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희미하게 잘 안 들리던 소리가 이제는 크게 잘 들립니다.”

증상은 더 심해졌는데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환청이 심해지면 집중도 힘들고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젊은 선생님, 병원에서는 그걸 환청이라고 하는가 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이 늙은이 적적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주는데 불편할 게 뭐 있겠습니까?”

환자는 잠깐 먼 산을 바라보듯 허공을 응시하더니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천지만물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가요? 사람의 목소리인가요 아니면…….”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귀신의 조화인지도 모르지요.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그것이 다 병은 아닐 겁니다.”

‘환각이 병이 아니라니……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건가?’

시현이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으나 왕백운은 여전히 두루뭉술한 대답만을 내놓았다.

“지금은 이게 무슨 말인고 싶겠지만, 나중에 선생님도 이해할 때가 올 겁니다. 가만히 보니 우리 젊은 선생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그럴만한 재능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앳된 얼굴인데 산전수전 다 겪고 난 사람 같은 인상이랄까. 간혹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런 경우가 있지요.”

“산전수전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이제 막 의사 생활을 시작했을 뿐인…….”

“단순히 경험의 많고 적음에서 나오는 기운이 아닙니다.”

시종일관 웃는 낯이었으나 그의 말에 알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런 종류의 기운은 뭐랄까…… 그래, 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대한 회한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어찌 젊은 분에게서 이런…….”

시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환자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과거에 봤던 마지막 환자와 전문의 시험 전날 있었던 사고가 스쳤다.

언뜻 ‘남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난다.’는 식의 모호한 말들이었지만, 시현의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듯했다.

“지금 말씀하신 것만 들어보면 왕백운 님은 그다지 불편한 점이 없어 보이시는데, 어떤 것 때문에 입원하시게 된 겁니까?”

기분이 우울해 보이지 않았고 불안에 시달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차라리 환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속세를 떠나서 마음 아픈 사람들과 몇 주 보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산속으로 혼자 들어가기는 무섭기도 하고. 허허허.”

‘진짜 도인인가?’

단순히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이 환자는 내가 봐도 모르겠다.’

레지던트 과정을 모두 마친 입장에서도 딱히 떠오르는 진단이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던 황진호의 마음을 절로 이해하게 된 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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