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chapter 19. 아이템 (2)
“어제는 잘 주무셨나요?”
시현은 일단 김민숙 환자 면담부터 시작했다.
“네, 잘 잤어요.”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괜찮은 것 같아요.”
짧은 대답. 원래부터 수줍음을 많이 타는 말이 없는 환자였다.
“……빨리 호전되셔서 다행입니다.”
아직 모든 증상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병동 생활에서도 며칠 전 외출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번 주에 외박을 다녀오면 퇴원인가요?”
입원 중 외박은 일상생활에 복귀했을 때 별다른 증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단계.
주로 퇴원이 임박한 환자들이 다녀오곤 했다.
“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입원하기 전이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누가 내 생각을 읽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 들렸던 건…… 환청이 맞는 거겠죠?”
‘병식(病識, 병에 대한 인식)이 생겼어.’
상태가 호전되면서 입원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증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른 과 질환은 고열이 나거나 흉통이 있는 등 증상이 심할수록 질병을 인식하는 반면, 정신질환은 병이 한창일 때는 자신의 병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실 환청은 실제 소리와 구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재발할 수도 있어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데. 저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요.”
현실적인 주제에 대한 고민.
병식이 생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호전되었음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치료 진척도 89/100]
치료 진척도가 말해주듯 입원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봐도 좋았다.
회귀 전에 치료에 애를 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퇴원하면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요?”
“아마도…… 다음 학기에는 복학해야겠죠?”
‘표정이 좋지 않아.’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무슨 이유에선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근데 학교 다니려면 자취를 해야 하는데 그게 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증상이 대학 다니면서 처음 시작됐거든요. 병인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꺼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전부터 조금씩 들리던 환청이 심해진 것은 선배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였다.
거기에 동기 남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망상이 더해지면서 결석하고 집안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현실과 망상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상태.
환자의 일상은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몇 년 동안 계속 나빠졌던 거 같은데…… 부모는 몰랐던 건가?’
아무리 자취를 했다고 하더라도 치료 시작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사이비 퇴마사를 데려오거나 정체불명의 기도원에 환자를 보낸 것 만 보더라도 협조가 잘 되는 보호자 유형은 아니었다.
“일단 쉬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거 같긴 한데요……. 새로운 진로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해보면 이 병이 생기기 전에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거든요.”
시현이 김민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질병은 그간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단 면담 주제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정신과 증상에 관한 내용보다 환자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진로라면 어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요. 솔직히 재능이 썩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해 봐야죠. 안 하면 또 다른 병이 날 것 같아서요!”
“웹툰이라…… 어떤 사연을 가진 주인공들인지 궁금하네요.”
전에는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기에 ‘세상의 모든 차트’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정말요? 혹시 보여드려도 될까요?”
웹툰 이야기를 시작하자 환자의 눈이 빛났다.
“그럼요. 당연하죠!”
말과 행동.
글과 그림.
그리고 환자가 좋아하던 것들.
복잡다단한 심리검사 결과보다 시현이 더 신뢰하던 것들이었다.
워낙 감정 표현이 없는 환자라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뭔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첫 번째 독자네요.”
그녀는 신이 난 표정으로 입원 후 늘 지니고 다니던 스케치북을 면담실 책상에 올려놓았다.
처음엔 새것이었는데 퇴원할 무렵이 되니 여기저기 손때가 묻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콘티 수준의 그림이었지만.
중간중간 신경 써서 그린 인물들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흰색 코트가 마치 의사 가운처럼 보였다.
“장르가… 메디컬 인가요?”
응급실과 수술방처럼 보이는 배경.
환자를 실은 스트레쳐카를 끌고 달리는 모습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렸다.
“네, 맞아요. 주인공이 의사예요.”
“재능이 없다는 말은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이 그림들…… 참 좋아 보이던데요. 캐릭터 묘사도 그렇고 의상도 너무 근사했어요.”
빈말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 하나하나가 생동감이 넘치고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이 캐릭터는 준식이 느낌인데……. 여기는 채이진 선생님?’
이내 같이 일하는 동료 레지던트들을 떠올릴 만큼.
“실력이 좋아 보여요. 전공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시현의 반응에 김민숙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건 취미로만 해야 할 것 같아요. 부모님은 경영 쪽 공부를 하기를 원하셔서요.”
‘카이트만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면 분명 거짓으로 판정했을 표정이었다.
‘그림에 미련이 있는 것 같은데. 진로 문제로 부모와 갈등이 있겠어.’
전에는 몰랐던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럼 부모님 모시고 면담 이어서 할게요.”
시현이 스테이션으로 전화를 걸자 이내 김민숙의 보호자들이 면담실로 들어왔다.
“덕분에 우리 민숙이가 완전히 돌아온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몇 년째 방에만 있던 애가 이제…….”
김민숙 환자의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그 사기꾼한테 당할 뻔한 거 막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놈도 양심은 있는지 선수금으로 받은 돈을 돌려줬더라고요. 자기는 우리 민숙이한테 도움이 되려고 한 거지 다른 마음은 없었다나.”
“다행입니다.”
시현은 며칠 전 강현욱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 * *
“그럼 작은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면…….”
“지난번에 병동에서 봤던 정길수 씨한테 따로 연락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시는 환자에게 얼씬도 못 하도록요.”
“아,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적당히’ 이야기해두죠.”
강현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뭐라고 이야기를 했길래?’
시현의 부탁대로 따로 연락한 모양인데. 바로 돈을 돌려준 것을 보면 ‘적당히’는 아닌 것 같았다.
* * *
‘일단 그 문제는 해결된 것 같고.’
시현이 좋은 분위기를 틈타 진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김민숙 님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따로 배우신 건가요? 병동에서 틈틈이 그리시는 것 봤는데 전문 작가 수준인 것 같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데다, 그림에 재능도 있어 보였다.
이왕이면 환자가 원하는 쪽으로 힘을 실어줄 요량이었다.
“아, 그렇던가요? 감사합니다.”
환자의 아버지는 좋게 봐주어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썩 달가워하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요즘에는 전업으로 웹툰이나 웹소설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놉시스라고 하나요? 어떤 이야기인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시현이 환자에게 공을 넘겼다.
막상 집에서는 진지하게 해보지 못했을 이야기도 면담실에서는 편하게 하곤 했으니까.
그동안 고민해왔던 것들을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일단, 요즘 자주 나오는 설정들은 다 집어넣을 거예요.”
그 말에 환자는 의욕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주…… 나오는 설정? 그게 뭐니?”
보호자들이 김민숙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일단은 ‘회귀’죠. 굉장히 억울한 일을 겪고 죽거나 아니면 자고 일어나 눈 떠보니 몇 년 전이라는……. 이 경우는 인턴이나 1년차가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보호자들의 표정에 실망감이 스쳤다.
“보호자님께서 웹툰을 잘 안 보셔서 의아하실 수 있는데. 주인공이 회귀하는 건 가장 흔히 쓰이는 장치…….”
기성세대의 관점에서는 그게 무슨 재미냐고 할 법한 내용 아닌가.
시현이 어떻게든 환자의 편을 들어보려는 찰나.
“어휴. 그게 돈이 될까?”
“언제 적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거니? ‘또 회빙환이야?’ 하는 댓글이 눈에 선하다. 좀 더 창의적일 수는 없을까?”
보호자들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
‘괜한 걱정을 했네.’
부모가 환자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는커녕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너 혹시…… 시스템창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럼 너무 흔해서 매출이 나올까 걱정스러운데?”
“아무튼 회빙환은 안된다! 시스템창도!”
보호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환자를 뜯어말렸다.
‘그, 그게 어때서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시현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식상한가요?”
“당연하지! 거기에 주인공은 흉부외과로 할 거지? 손이 빨라서 심장 이식을 한 시간 만에 하고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가능한 수술로 환자 막 살리고?
“…….”
환자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딸아, 아빠가 웹소설은 누구 못지않게 많이 읽었는데…… 이쪽 업계가 그리 만만치가 않단다. 일단 하던 경영 공부는 계속하고…….”
“그럼 ……의사로 하면 되잖아요!”
보호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 *
“뭐? 정신과 의사?”
“팍팍한 현실에서 사이다를 원했다면, 이제는 좀 더 나아가서 잔잔한 위로를 원하는 독자들도 있을 거라고요!”
김민숙이 처음으로 자기주장을 펼쳤다.
“힐링이라…….”
보호자들은 잠시 그녀의 말을 곱씹는 듯하더니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개를 돌려 시현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괜찮지 않을까요? 상태창은 증강현실이나 AI 기술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독자들에게도 익숙할 테고…… 회귀도 많이 쓰이긴 하지만 그만큼 대중성도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시현이 꼭 누군가를 변호하듯 말했다.
“맞아요. 분명 그 이야기를 좋아해 주는 독자님들이 있을 거예요. 솔직히 그 학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흐음.”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환자의 아버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알겠다. 그럼 1년, 딱 1년만 민숙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렴. 이왕 써보는 거 ‘지구최대공모전’ 에도 한번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고.”
“네, 열심히 해볼게요!”
“대신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하던 공부 이어서 하는 거다. 그건 약속할 수 있지?”
“네! 그럼요!”
환자는 원하던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다.
“선생님도 기대하세요! 제가 정말 열심히 그려서 보여드릴 테니까요!”
“잘 되실 겁니다. 아까 보여주신 그림도 너무 인상 깊게 봤어요.”
반복된 약물 중단으로 증상이 악화되었던 케이스인 만큼 주기적으로 병원에 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설령 그 동기가 작품 자랑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김민숙이 그려갈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회귀한 정신과 의사에 시스템이라니 나름 괜찮지 않을까?
“매달 김민숙 님이 가져오실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요?”
딩동!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감성 영업 - 면밀한 사전 조사를 통한 강력한 아부를 펼쳤습니다. 사용자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1,000P)]
‘생산적인… 면담이었다.’
김민숙은 퇴원 후 진로에 대한 자신감을.
시현은 포인트를 얻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선생님, 저희가 너무 감사해서 보답을 좀 하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손사래 치는 시현을 향해 김민숙 환자의 아버지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