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chapter 21. 감별진단 (5)
‘생존 확률이 갑자기?’
[생존 확률 22%]
알람이 울린 것은 채이진이 기기를 정리하고 나가려는 시점이었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건가?’
시현이 속으로 생존 확률이 떨어진 원인을 가늠하는 사이.
“아버님 병실로 모셔도 될까요? 현기증이 가라앉으니 배가 고프다고 하셔서요…….”
보호자들이 환자를 부축하여 안정실에서 나왔다.
“네. 병실에서 안정 취하도록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세일이 보호자들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다시 증상이 생길 수 있으니 일단 수액은 유지하자는 말과 함께.
‘단서가 필요해.’
병실을 향해 주춤주춤 걸음을 옮기는 환자의 뒷모습이 영 불안해 보였다.
‘시청타촉의 포션.’
[SORA : ‘시청타촉의 포션’을 사용합니다.]
초음파 검사까지 마친 마당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화아악.
또다시 시현의 홍채에 형형한 안광이 깃들었다.
실내의 미세한 기류마저 손에 잡힐 듯 생생했고.
럽덥- 럽덥-
눈을 감자 환자의 심장 박동과 호흡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상징후가…… 없어?’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는 메시지가 무색하게 의심되는 병변을 찾을 수 없었다.
“아이고 목이 탄다.”
병동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환자가 마실 것을 찾았다.
“아까 드시던 거 마저 드세요. 아버님 좋아하시는 가게에서 산 건데…….”
“그래, 고맙다.”
보호자로 온 딸 내외가 곁에 앉아 환자에게 간식을 권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든 음료와 쿠키였다.
“아, 시원하다.”
간식을 들고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환자.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두근두근.
환자의 심박수가 다시 오르는 것 같았다.
그의 주변으로 온 감각을 집중하자 묘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포도 주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무겁고 쌉싸름한 향이었다.
‘이건…… 와인?’
그렇다고 알코올 특유의 냄새가 강하지는 않았다. 병동 환자에게 술을 권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았고.
“아이고 다시 어지러운 것 같아. 좀 누워있어야…….”
“그게 다 당이 떨어져서 그래요. 이것 좀 더 드세요.”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환자에게 간식을 권했다. 고소한 버터와 초콜릿 그리고 치즈 향이 나는 쿠키였다.
‘와인에 치즈…….’
다음 순간 시현은 번개라도 맞은 듯 눈이 번쩍 떠졌다.
“잠시만요. 그거 드시면 안 됩니다.”
“왜 그러세요? 이거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간식 섭취를 만류하는 시현을 보호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병동에 주류 반입은 불가합니다.”
“아, 이거요? 저희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와인에이드인데…… 알코올 함량은 거의 없어요.”
환자의 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미량의 알코올도 불안장애 환자들에게는 나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뭔가요?”
“아, 같은 가게에서 산 치즈쿠키예요. 선생님들 나눠 드시게 좀 드릴까요? 엄청 유명한 건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확인해볼 것이 있습니다.”
시현은 곧바로 초음파기기를 정리하던 채이진에게 말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환자 초음파 다시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심장 초음파라면 벌써 했는데…….”
“심장 말고 복부 쪽을 살펴봐 주세요.”
시현의 부탁에 채이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환자분이 황달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금식 상태가 아니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내일 다시 해보면 어떨까요?”
복부초음파의 경우 물만 마셔도 담낭이 수축되어 온전한 모습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아침 식전에 검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담도계는 괜찮습니다. 신장과 부신을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확인해볼게요. 환자분, 이쪽으로 오세요.”
의외의 부탁이었지만 채이진은 순순히 그리하겠다고 했다.
심장에 댔던 초음파 프로브(probe)를 복부로 옮겨 보기만 하면 되니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아, 이건…….’
한참 동안 환자의 복부를 살피던 채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병변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에서 영상을 정지시키자 모두의 시선이 초음파 화면을 향했다.
“부신에…… 종양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
검사를 마친 환자가 병실로 돌아가자 시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크롬친화세포종이었어.’
크롬친화세포종(Pheochromocytoma).
주로 부신에 생기는 종양으로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호르몬을 과량 분비하는 내분비계 종양이었다.
엄밀히 말해 악성 종양은 아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직학적 분류일 뿐.
과잉 분비된 호르몬은 심한 고혈압을 초래하고, 그로 인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생겨 사망하는 환자들도 종종 있었다.
“부신이라면…… 크롬친화세포종일 가능성이 높습니까?”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정세일이 물었다.
“초음파로 확진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증상으로 본다면 그럴 것 같습니다.”
‘이걸 놓쳤다니…….’
두 사람의 대화에 황진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평가하여 입원을 결정한 것이 그였기 때문.
“죄송합니다. 제가 기저질환 파악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정신과로 입원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이내 정세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응급실 초진만으로 쉽게 감별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닌데,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천만다행이야.”
그도 그럴 것이 크롬친화세포종의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1명에 못 미칠 정도.
내분비계 질환을 전공한 의사가 아니라면 평생 1명을 볼까 말까 한 수준으로 희귀한 질환이었다.
“오히려 몇 가지 증상만으로 크롬친화세포종을 의심했다는 게 더 이해가 안 되는데.”
정세일은 한껏 기가 죽은 황진호를 다독이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천시현 선생은 도대체 뭘 근거로 복부초음파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가?”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시현에게 집중되었다.
‘증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검사인데 어떻게?’
특히 내과 의사인 채이진은 궁금증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정세일이 먼저 묻지 않았다면 분명 따로 물어봤을 것이었다.
“불안 발작 전에 환자분이 드셨던 음식 때문입니다.”
“음식? 와인에이드를 말하는 거라면…… 너무 미량인데?”
황진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알코올이 공황 발작에 영향을 줄 수 있다지만, 그러기엔 양이 너무 적었다.
게다가 불안은 알코올의 금단증상에 해당하기 때문에 술기운이 떨어질 때 자주 생기는 경향이 있다.
섭취량과 시간대를 고려했을 때 연관성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알코올 때문이 아니야. 와인과 치즈에 들어 있는 ‘티라민’ 때문이지.”
“티라민이라면…….”
의외의 단어에 채이진의 눈이 커졌다.
티라민(Tyramine).
발효와 숙성을 거친 음식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아미노산의 일종.
보통 사람은 과량 복용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크롬친화세포종 환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소량의 티라민 섭취로도 카테콜아민 분비가 촉진되어 극단적인 혈압상승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
“크롬친화세포종 환자가 와인이나 치즈를 섭취했을 때 혈압이 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역으로 혈압이 오른다고 크롬친화세포종을 먼저 의심하는 건 일반적인 판단은 아니지 않나요?”
궁금증이 미처 풀리지 않은 듯, 채이진이 반문했다.
전체 고혈압 환자 중 크롬친화세포종이 원인인 환자는 채 0.1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터.
그 가능성 떨어지는 진단명을 먼저 떠올린 시현의 사고 과정을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시현은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여러 근거들을 수집하여 진단에 다다르는 학문 아니던가.
진단은 맞췄다고 하더라도 진단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면?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식을 먹자마자 실시간으로 심박수가 오르는 걸 확인했다고 할 수도 없고.’
시현은 잠시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응급실에서는 제법 많이 봤지만, 병동 입원 환자로 불안장애 환자를 받아본 게 거의 처음이기도 하고 해서 교과서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 사교육은 따로 받은 적이 없었어요. 학교 수업과 교과서, 그리고 EBS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매년 수능 만점자 인터뷰를 하면 단골로 나오는 대사 아니던가.
그들이 정말 그렇게만 공부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왠지 교과서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교과… 서요?”
채이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공황장애와 감별해야 할 진단들이 여럿 나오는데…….”
이걸 과연 납득할까.
시현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응급실에서 평가한 것도 그렇고 방금 선생님이 심장 초음파로 봐주신 것도 그렇고…… 일단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같은 심혈관계 질환은 다 아닌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웬만한 건 모두 배제한 셈이죠. 그렇다고 희귀 질환을 먼저 떠올리는 건…….”
“남은 건 내분비계 질환이잖아요? 그런데 방금 갑상선 기능 항진도 방금 아닌 것 같다고 하셔서…… 남은 보기들을 따져보니 크롬친화세포종 까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기본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배제해 나간다…….’
채이진은 시현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과 진단 체계가 그렇죠. 가능한 신체 질환 그리고 약물에 의한 영향을 배제한 후에야 비로소 진단을 확정할 수 있으니까요.”
정세일이 채이진에게 부연 설명하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1년차 말이라 타성에 젖어서 환자를 대충 보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기우였네. 오늘 아주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인상적이다.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는 그에게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딩동!
[system : 정세일 교수의 사용자에 대한 신뢰도가 추가 상승합니다. (어려움 난이도 +1,000P)]
‘그래! 이제부터는 교과서다.’
설명이 어려울 때 언제나 통하는 치트키였다.
“채이진 선생님도 고생 많았습니다. 혹시 환자분께 추가로 조치할 것이 있을까요?”
“크롬친화세포종의 근본적인 치료는 수술인데, 수술 전 혈압 조절을 위해 alpha-blocker로 전처치를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Phenoxybenzamine 투여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소변검사를 추가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검사와 치료 계획까지.
군더더기 없는 답변에 정세일은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내분비 내과로 전과하고 혈압 조절되는 대로 수술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할게요.”
딩동!
[system : 정광철 환자의 생존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생존 확률 88%]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진단의 달인 – 명의는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 법! 진단은 검사실 소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5,000P)]
크롬친화세포종은 수술적 제거를 통해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지만, 공황장애로 오진하여 방치할 경우 자칫 사망할 수도 있는 질환이었다.
환자의 생존 확률이 크게 상승한 만큼 넉넉한 보상이 주어졌다.
‘보상도 좋고.’
환자를 받아준 황진호가 고맙게 느껴질 지경이었는데 별안간 의외의 알림음이 울렸다.
딩동!
[system : 히든 퀘스트 ‘외래 조기 입성’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애초에 수락한 적이 없는 처음 보는 유형의 퀘스트였다.
시현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스템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