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지적 의사 시점-97화 (97/195)

97화 chapter 24. 응급 회식 (2)

딩동!

별안간 떠오르는 알림창에 시현의 눈이 커졌다.

[system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새로운……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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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품격있는 회식]

난이도 A

응급의료센터 수간호사 김동미는 매년 똑같은 회식 메뉴에 완전히 질려버렸습니다.

그녀를 도와 응급실 회식 문화를 바꿔보세요!

성공 조건 : 응급의료센터 소속 의료진 ‘모두’가 만족할만한 회식 장소 섭외

성공 보상 : 10,000P + 추가 성장의 기회

실패시 : 패널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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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포인트……?’

회식 장소 한 번 바꾸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높은 보상이었다.

‘거기에 ‘추가 성장의 기회’라는 건?’

거기에 생전 처음 보는 보상도 있었고.

[SORA : ‘가능성’의 영역이라 현재로서는 보상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퀘스트 내용을 살펴보는데 수간호사가 다시 조광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제가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저 집에서 맨날 놀림 받는다고요!”

아까부터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집에서요? 뭐라고 하시는데요?”

조광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입퇴국식 시즌만 되면 언니들이 진짜…….”

“언니분들이라면…….”

내과 병동 수간호사 김금미와 신장 투석실 수간호사 김은미 그리고 응급의료센터 수간호사 김동미까지.

김동미의 가족은 세 자매가 각기 다른 과에서 수간호사로 근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삼아대병원 소식지에 실린 적도 있을 정도.

문제는 같은 수간호사라도 세 사람의 근무 여건이 확연히 달랐다는 점이었다.

다른 병동 수간호사는 관리자라 3교대 간호사에 비하면 편하다고 하는데, 이곳은 말만 수간호사지 각종 인증 준비에 진상 환자 상대까지 도맡아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회식 메뉴도 달랐다.

- 또 ‘그 집’이야? 우리는 여기저기서 회식을 못 시켜줘서 안달이라던데 너희는…… 그러게 왜 응급실을 가겠다고 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대접은 못 받고……

작년 입퇴국식 때 언니들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자기네는 어디 호텔 뷔페를 다녀왔는데 정말 괜찮았었다는 말과 함께.

내과는 원내에서 약물 처방량이 가장 많은 과였다.

제약회사에서도 영업에 가장 공을 들이는 과이기도 했고.

과거와 같은 대대적인 리베이트는 거의 사라졌지만, 제품 설명회와 각종 세미나에서 제공되는 식사만큼은 특별히 신경을 썼다.

반면 응급의학과는 약 처방도 별로 없고 병원 경영에도 도움이 안 되니 이래저래 찬밥신세였다.

“과장님 제발…… 우리도 좀 바꿔봐요. 네?”

“수선생님이 그동안 서운한 게 많으셨군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동안 언니들이 했던 말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수간호사였다.

그녀의 말에 조광필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언뜻 보면 회식 메뉴 투정 같지만…….’

병원 근처 허름한 삼겹살집은 단적인 예일 뿐이고.

본질은 힘들게 일하면서도 보상은 적은, 전반적인 과 생활에 대한 불만이었다.

“과장님, 여기 천시현 선생님 의견도 좀 들어보세요.”

어떻게 퀘스트를 완료할지 고민하는데 돌연 불똥이 이쪽으로 튀었다.

“우리 과 행사이기도 하지만, 1년 동안 콜 성실하게 받은 선생님들 격려하는 자리잖아요? 선생님도 맛있는 거 드셔야죠!”

“네? 제가 그걸 어떻게…….”

응급의학과 소속도 아닌데. 남의 과 회식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천 선생도 좋은 생각이 있으면 이야기해봐. 그런데 병원 근처 식당도 나름 괜찮지 않나? 응급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

- 다들 마음껏 들게나. 난 짜장면!

과장님이 짜장면을 골랐는데 탕수육을 시킬 용기 따위는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적당한 곳 하나 이야기해봐요! 어서요!”

수간호사의 채근에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사이.

모두의 시선이 시현에게로 쏠렸다.

‘도대체 뭘 골라야…….’

우선 병원 앞 식당은 배제.

삼겹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가는 만족은커녕 역적이 될 분위기였다.

“그래도 한식……이 무난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 일단 두루뭉술하게 말해보기로 했다.

“한식? 그럼 그냥 원래 가던 대로…….”

조광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삼겹살도 한식 아닌가. 확실히 양식이나 일식 중식은 아니니까.

“어휴, 한정식 말하는 거잖아요? 맞죠? 저기 먹자골목 조금 지나서 괜찮은 집 있어요.”

수간호사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거긴 좀 멀지 않나?”

그 말에 조광필은 난색을 표했다.

‘원장단에 책잡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니…….’

수간호사나 레지던트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는 조광필이 생각한 예산을 초과할 듯했다.

‘난이도가 A인 데는 이유가 있어.’

원래 회식 장소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곳은 더더욱.

딩동!

퀘스트 실패를 직감하는 순간, 또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SORA : 추천 아이템이 있습니다.]

‘추천…… 아이템?’

회식 장소 정하는데 무슨 아이템이 필요할지 생각하던 찰나.

- 나중에…… 찾아주세요.

얼마 전 퇴원한 김민숙 환자의 보호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시에 가운 주머니에 담긴 지갑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이걸… 여기에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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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화로가든 50% 단체 할인권]

- 지참 시 모든 메뉴 50% 할인.

- 제공되는 고기의 등급이 향상됩니다.

- 1회 사용으로 소진됩니다.

- 보호자 면담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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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A : 어차피 정신과에서는 쓸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 올해부터는 입퇴국식에 학술대회를 겸할 거라서 고깃집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

보호자가 회식 때 꼭 들러달라는 말을 했다고 전하자 이광섭이 했던 말이었다.

“한정식도 좋지만, 한우는 어떠십니까?”

보호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는 게 좀 걸리긴 해도.

일단 질러보기로 했다.

평소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일만 하던 수간호사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추가 성장의 기회’라는 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고.

“좋아요! 우리도 소고기 한번 먹으러 가봐요!”

수간호사가 시현의 제안을 뛸 듯이 반겼다.

“그, 그럴까?”

조광필이 주변 눈치를 살폈다.

수간호사도 레지던트들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래요…… 한번 알아봅시다.”

잠시 고민한 끝에 조광필이 입을 열었다.

문제는 예산인데, 정 안되면 사비라도 보태겠다는 말과 함께.

“와, 우리도 드디어!”

반응이 예상보다 더 뜨거웠다.

“과장님, 남해화로가든은 어때요? 병원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고요.”

굳이 시현이 말하기도 전에 김민숙 환자 보호자가 운영하는 식당 이름이 나왔다.

“남해화로… 가든?”

“거기 완전 맛있어요! 아무래도 한우라 좀 비싸긴 하지만…….”

가본 적은 없었지만, 반응을 보니 보호자의 말대로 꽤 유명한 집인 것 같았다.

“그래. 거기도 괜찮겠는데…….”

아무래도 비싼 메뉴가 달가울 리 없었다. 말은 괜찮겠다고 하지만, ‘만족’과는 거리가 먼 표정이었다.

“여기 대표님 명함입니다.”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듯, 시현이 김민숙 환자 보호자가 준 명함을 건네자 이내 조광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할인권인가?”

“네, 50% 할인권입니다. 사장님과 인연이 좀 있어서…… 나중에 회식 때 꼭 들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오, 그렇단 말이지?”

그 말에 조광필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와…… 반값이면 그날은 아침부터 NPO(공복)로 가야겠네요.”

다른 레지던트들도 덩달아 신난 표정이었다.

“고맙긴 한데 정신과에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거 우리 줘도 되는 거야?”

“괜찮습니다. 저희 입퇴국식은 과장님께서 이미 다른 곳으로 잡으셔서요. 응급실에서 써주시면 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로소 조광필도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딩동!

[system : 퀘스트 ‘품격있는 회식’ 성공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system : 10,000P를 지급합니다.]

‘그런데 성장의 기회라는 건 뭐지?’

포인트 외에 다른 말이 없어 의아했지만, 추가 보상이 무엇인지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2주 뒤.

“오늘 응급실 회식 가는 날이지?”

“어, 당직 바꿔준 덕분에 다녀오려고.”

“순위권에 들었다는데 당연히 바꿔줘야지. 거기 가면 술 많이 마시긴 할 건데…… 그래도 축하(?)한다.”

황진호가 시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표정을 보니 축하와 위로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system : 업적 보상을 지급합니다.]

[응급실에로의 초대 - 응급실 소속 의료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회식에 참석합니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 +1,000P)]

“고마워, 다녀올게.”

* * *

식당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홀을 메우고 있었다.

데이 조는 퇴근 후에 나이트 조는 출근 전에 회식에 참석했다.

거기에 시현처럼 조광필 교수가 따로 부른 사람들까지.

현재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을 제외한 응급의료센터 식구들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껄끄러운 상대였던 2년차 김정현도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어? 시현아, 여기!”

유독 앳된 얼굴을 한 레지던트가 시현에게 자리를 권했다.

[한준식 남/26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용케 시간 내서 왔네? 잘 지내?”

“아니.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다. 죽을 것 같아…… 어레스트 나면 CPR(심폐소생술) 하지 말고 그냥 편히 보내줘.”

한준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까지 수술방에 갇혀있다가 간신히 나온듯했다.

그를 향해 웃어 보이며 시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 근무의 연장이라고 판정한 탓이었을까?

그의 시선에 따라 옆 테이블에 앉은 간호사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박혜선 여/24 응급실 신규 간호사]

[정유희 여/26 응급실 간호사 3년차]

[현유민 여/28 응급실 간호사 4년차]

‘통성명은 수월하겠어.’

병원에서야 명찰을 차고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밖에서 만나면 헷갈리기 일쑤였다.

유니폼 차림에 마스크를 쓴 모습만 보다가 사복을 입고 밖에서 보면 못 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온라인 게임 정모라도 하는 것 같네…….’

“우리 막내가 투표결과 나오기 전부터 과장님한테 엄청 건의했어요. 시현쌤 꼭 데려와야 한다고.”

그중 가장 연차가 높은 간호사, 현유민이 웃으며 시현에게 말을 건넸다.

‘정… 말인가?’

두근두근.

딱히 박혜선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지난 1년간의 평판이 궁금하기는 했다.

회귀 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가장 많이 바뀐 것이 동료들과의 관계였으니까.

‘카이트만의 안경.’

[SORA : 카이트만의 안경 구독권을 사용합니다.]

포인트야 많이 들지만, 그래도 회식 참석으로 얻은 게 더 많지 않은가.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혹시라도 서운한 점은 없었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운이 좋으면 ‘성장의 기회’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투표도 선생님한테 했다고요!”

박혜선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system : 간호사 박혜선이 거짓을 말합니다. (99.9%)]

“혹시 우리 시현쌤한테 관심있는 거야? 그런데 천 쌤은 이미 만나는 사람 있을 거 같은데, 맞죠?”

[system : 간호사 현유민이 거짓을 말합니다. (99.9%)]

“…….”

‘아…… 괜히 썼나.’

열이 오르는 기분에 반응하듯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SORA : ‘피아식별 모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이게 뭐라고 피아식별까지.’

동시에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등 뒤로 오라가 켜지기 시작했다.

옅은 녹색에서 비교적 짙은 녹색까지.

저쪽 테이블에서 인턴들에게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고 있는 김정현을 제외하면.

대부분 호의적인 오라들이었다.

“아무튼, 천쌤 덕분에 맛있는 것도 먹고 너무 고마워요! 한 잔 같이해요!”

다음 순간 누군가 다가와 시현에게 잔을 내밀었다.

[정유희 여/26 응급실 간호사 3년차]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현이 웃으며 잔을 부딪치는데.

그녀의 등 뒤로 타는 듯 붉은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분은 왜……?’

회귀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특별히 교류가 없었던 사람.

시현의 궁금증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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